주유(周瑜)는 적벽대전때 동오(東吳)의 대도독(大都督)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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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삼국)

2020. 10. 22.

글: 장공성조(長空星照)

 

주유는 적벽대전을 주도하여 승리를 거두었다. 그래서 후인들은 '삼국주랑적벽(三國朱郞赤壁)'이라는 말을 하게 된다. 다만 손권은 전투를 시작하기 전에 양로(兩路)의 부대를 파견했고, 각각 주유와 정보(程普)이고, 좌우독(左右督)으로 임명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적벽대전은 주유가 독립적으로 지휘한 것이 아니고, 주유는 대도독도 아니었다고 말한다. 사실의 진상은 그렇다면 어떠했을까?

 

대도독이라는 관직이 정식으로 나타난 것은 황무원년(黃武元年)이다. 유비가 촉한대군을 이끌고 오나라를 정벌하러 오자, 손권(孫權)이 육손(陸遜)을 대도독으로 임명하여 유비를 막게 한 것이다. 그가 지휘하는 수하의 장수들은 경력이 더 많고, 공로도 큰 사람들이었다. 예를 들어, 주연(朱然), 반장(潘璋)등이다. 이들은 모두 강릉에서 관우를 토벌하는데 참가한 바 있고, 큰 공을 세웠다. 그래서 손권은 육손에게 가절(假節)의 대우를 부여했고, 그 목적은 그가 이들 장수들을 지휘하는 권위를 갖게 하기 위함이었다. 동오의 지역은 약간 특별하다. 월남(교지)를 개발하기 전에, 동오는 장강을 따라 길다란 띠같은 영토를 가지고 있었다. 남북으로는 아주 좁고, 동서로는 아주 길다. 나중에 남월지구와 형주강남지구를 가지면서 지역이 비로소 방원형상을 갖추게 된다. 비록 그렇기는 하지만, 새로 개발한 지구는 경제가 발달하지 않아서, 그의 중점지역은 역시 이 동서로 길다란 장강의 띠와 같은 모양의 땅이었다. 주유가 살았던 때는 바로 순수하게 길다란 띠와 같은 동오의 판도를 가지고 있을 때였다. 동오의 통치중심은 동해에 치우쳐 있다. 그러나 병력이 모여 있는 것은 강서구강과 무한 일대이다. 그래서 일상적인 병력운용은 명망있는 장수가 각 부대의 군대를 통일적으로 지휘해야 했다. 그리고 손권은 형을 이어받아 동오의 주군이 되었기 때문에, 군사적으로는 그다지 성숙하지 못했다. 그래서 건안13년(208년) 손권은 강하를 토벌할 때 주유를 "전부대독(前部大督)"으로 임명한다. 사람들이 주유를 대도독이라 부르는 것은 아마도 이때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적벽대전째 주유는 어떤 역할을 했을까?

 

적벽대전전에, 손권은 조조와 맞서싸우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주유와 정보를 좌우독으로 임명한다. 그렇다면 두 사람의 지위가 대등한 도독이라는 말일까? 두 사람이 모두 손권의 직접 지휘를 받는 것은 맞다. 다만 주유가 주(主)이고 정보는 보(輔)인 국면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전쟁전에, 손권은 이미 마음 속으로 조조와 싸울 것을 결정했지만, 그는 최종 결정을 내리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노숙(魯肅)의 건의를 받아들여, 주유를 전선에서 돌아오도록 부른다. 주유가 돌아온 후, 동오의 문신무장들에게 조조를 막아야 한다고 설득한다. 이를 보면 그는 동오의 장수들 중에서의 지위가 정보와 비견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주유는 5만의 병력을 달라고 한다. 손권은 일시에 모두 모을 수 없으니 우선 3만을 주겠다고 한다. 이것도 주유에게 말한 것이다. 이를 보면 알 수 있다. 정보는 비록 같은 도독이지만, 일반 장수들보다 조금 더 많은 부하를 거느린 것에 불과했다는 것을. 노숙이 가장 먼저 손권에게 조조에 투항해서는 안된다고 말한 것이 손권의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노숙의 건의를 받아들여 주유를 조정으로 불러들였던 것이다. <삼국지.노숙전>을 보면, 손권이 주유에게 전방의 전투를 주재할 권한을 주고, 노속을 참군교위로 임명하여, 주유를 도와 전투의 책략을 세우라고 명한다. 조조는 적벽대전에서 패배한 후 도주한다. 그후 노숙이 먼저 돌아와 손권을 만난다. 손권은 여러 장수들에게 노숙을 영접하게 한다. 여기에서 명칭으로 보나 실제 상황으로 보나, 노숙의 이 직무는 임시적인 것이다. 그의 이 참군교위는 주유에게 책략을 내는 것이고, 다른 사람에게 내는 것이 아니다. 즉 만일 양로도독이 사령부를 두었다고 하더라도, 역시 주유의 쪽에 있었던 것이고, 정보의 쪽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전선이 불에 탄 후, 조조는 북으로 물러간다. 조인을 남겨 강릉을 지키게 한다. 주유와 정보는 남군으로 진군하여 장강을 사이에 두고 조인과 대치한다. 아직 직접적인 교전은 시작되지 않았다. 형주의 강북지역을 점령하기 위하여, 주유는 감녕(甘寧)을 '이릉'으로 보내어 점거하게 한다. 조인은 일부 병력을 나누어 감녕을 포위공격한다. 감녕은 주유에게 위급함을 알리고, 주유는 능통(凌統)을 남겨 지키게 하고, 자신이 직접 여몽등 병력을 이끌고 감녕을 지원하러 간다. 감녕의 포위를 풀어준 후, 주유는 그 기세를 틈타 강의 북안으로 건너가, 조인과 강릉에서 결전을 벌일 준비를 한다. 강릉성은 이미 고립되었고, 군대는 전염병이 돌아서, 조인은 버틸 수가 없었다. 할 수없이 조인은 철수한다.

 

적벽대전중 적벽에서 발생한 전선을 불태운 것은 그거 부분전투에 불과하다. 전체 전투는 주유가 군대를 이끌고 서쪽으로 진격한 후, 강릉은 수복할 때까지이다. 이것이 완전한 과정이다. 그래서 적벽대전이라고 부르는 것은 단지 적벽에서 발생한 전투가 가장 핵심이며 가장 대표적인 것일 뿐이다. 강릉성까지의 전투를 보면, 완전히 주유가 지휘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주유가 전체 전선부대의 지휘권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적벽대전에 참가한 장수들 중에서 명망이 있고, 지위가 있는 황개(黃蓋), 감녕, 능통, 한당(韓當)과 여범(呂範)이 있다. 그들의 전기에 기록된 것은 모두 "주유를 따라(隨) 조공을 격파했다"는 것이지, "정보를 따라 조공을 격파했다"는 것이 아니다. 손권은 적벽대전전에 싸울 수 있는 장수는 이들이 거의 전부이다. 만일 주유와 정보의 지위가 같았다면, 특히 두 사람이 각각 1만명씩 이끌고 서진했다면, 왜 그들은 모두 주유의 지휘하에 적벽대전에 참가했을까? 설마 이들 명성있는 장수는 모조리 주유의 휘하에 모여 있었단 말인가? 두 사람의 기재는 약간 차이가 있다. 하나는 여몽(呂蒙)이다. "주유, 정보등과 함께(與) 조공을 오림에서 격파하고, 조인을 남군에서 포위했다" 또 하나는 주태(周泰)이다. 그는 "주유, 정보와 함께 조공을 적벽에서 막았고, 조인을 남군에서 공격했다." 여몽이 직접 손권의 지휘를 받는 부대였는지, 주태가 이때 장군이었는지를 불문하고, 강릉성하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모두 주유의 지휘를 받았다. 강릉성 아래에 도착한 주유, 정보는 손권이 새로운 명령을 내리지도 않았으므로, 누가 누구의 명령을 들었는지는 분명하다. 주유가 당연히 전선총지휘관이다. 이는 주유가 총독의 책임도 있고, 총독의 직권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대도독의 직무는 일맥상승된다. 그리고 그 전승은 아주 명확하다. 조그만치의 모호함도 없다. 주유의 병이 위중했을 때, 손권에게 서신을 써서 이렇게 말한다. 현재 변방에 일이 많으니, 좋은 장수를 보내어 지켜야 합니다. 노속은 지모가 충분히 감당할 만하니, 그로 하여금 나의 직위를 맡게 해주십시오. 주유가 죽은 후, 손권은 노숙을 "분무교위(奮武校尉)로 임명하여 주유를 대신하여 병력을 거느리게 했다" 노숙이 죽은 후, 후임자는 여몽이다. 여몽은 유수(濡須)에서 육구(陸口)로 오고, 손권은 노숙이 직접 거느리든 1만여명의 부대를 전부 여몽에게 귀속시킨다. 여몽이 상대하는 것은 관우였다. 육손이 여몽의 뒤를 잇는 것은 과정이 있었다. 먼저 관우를 마비시키기 위하여, 여몽은 건업으로 돌아가 병치료를 한다. 손권은 그에게 누구로 대체하면 좋을지 물어본다. 여몽은 육손이라고 말한다. 손권은 육손을 "편장군우부독(偏將軍右部督)"에 임명한다. 비록 우부독이지만, 분명히 그는 여몽을 대체한 것이다. 여몽은 강릉을 탈취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하므로, 육손은 이 도독을 계속 맡게 된다. 유비와 싸울 때 비로소 대도독에 임명된다.

 

이를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 주유는 바로 적벽대전때 동오의 전선총지휘관이다. 만일 이전에 주유가 '대독'을 지냈던 것을 감안하고, 그후 동오에서 '대도독'이라는 직위를 두게 된 것을 감안하면, 주유를 대도독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안될 것도 없다. 이것은 에로 들자면 누군가 대장인데, 그를 대장군이라고 부르는 것이나 같다고 할 수 있다. 굳이 자잘하게 따질 필요는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