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청일전쟁이 일어날 것인가?

댓글 0

중국의 정치/중국과 일본

2020. 10. 26.

글: 심주(沈舟)

 

1주일동안 중공은 두번에 걸쳐 한국전쟁을 기념했다. 2차에는 많은 군인도 참가하여 마치 무슨 동원대회같았다. 시진핑은 70년전의 대미일전을 높이 평가했다. 다만 핵심요소는 빠트렸다. 그때 중공군대 240만명으로 미군 33만명을 이기지 못했다는 것이다. 중공이 사용한 것은 인해전술이었고, 근본적으로 병사의 목숨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원래 한반도를 통일하고 점령하려 했지만, 결국은 38선을 넘지 못했던 것이다.

 

오늘날, 중공고위층은 소리높여 미국과 싸우겠다고 한다. 여전히 병사와 백성의 목숨은 신경쓰지 않는다. 그런데 인해전술을 쓸 수도 없다. 아마도 전쟁형태는 주로 해전, 공중전이 될 것이다. 이는 다시 한번 100여년전의 청일전쟁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렇게 하면, 중화민족은 아마도 다시 한번 역사의 전철을 되밟게 될 것이다.

 

청일전쟁은 굴욕의 역사이고, 지금도 고귀한 귀감의 가치가 있다.

 

청일전쟁 전후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1894년 9월 17일, 황해 해역에서 청나라의 북양함대외 일본군간의 전투가 벌어진다. 북양함대는 14척의 전함, 4척의 어뢰정이 참전했고, 일본군은 12척의 전함이 참전했다. 결과적으로 북양함대의 5척은 침몰하고, 3척은 손괴되었으며 850명이 전사한다; 일본군은 4척의 전함이 크게 손상을 입었으며, 298명이 전사한다. 북양함대의 대패였고, 제해권을 빼앗긴다.

 

북양함대는 1888년에 정식 설립된다. 아시아에서 최초로 철갑군함을 보유했다. 영국에서 구매한 것이다. 한때 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함대였다.

 

청나라의 해군이 강해지자, 일본도 해군을 적극 발전시킨다. 1894년 일본해군의 전함총톤수는 이미 청나라를 넘어섰다. 일본은 유럽에서 군함을 수입했고, 계속 기술을 배우며 스스로 건조하기 시작한다. 적극적으로 해전기술을 연구개발하고 발전시켰다. 

 

청나라는 군함을 구매할 때, 부정부패가 있었고, 탄약을 제대로 보급하지 않았다. 그리고 엄격하게 보관하지도 않았다. 청나라의 장교는 영국으로 가서 훈련을 받았는데, 단기간내에 해전전술을 제대로 배울 수 없었다. 청나라는 영국군사고문을 초빙했지만, 북양함대는 훈련을 소홀히 한다.

 

전쟁개시전에, 청나라의 영국고문은 이렇게 말한다. 북양함대는 실질적으로 일본보다 낙후되었다. 일본의 영국고문은 이렇게 말한다. 일본해군은 유럽수준에 이르렀다. 청나라는 군함이 비록 많지만 승리를 거둘 수는 없을 것이다.

 

북양함대의 2척의 대형철갑선은 7천톤급이고, 나머지 전함은 2,900톤급이 2척, 2,100톤-2810톤급이 6척이며, 나머지 6척은 2천톤이하이다. 일본군은 참전한 함정중에서 4천톤급이상이 4척, 3,600톤-3,700톤이 3척, 3,150톤이 1척, 2,200톤-2,450톤이 2척이며 나머지가 2척이다. 일본의 전함은 대체적으로 장갑이 더욱 좋았고, 속도도 더욱 빨랐다. 또한 속사포를 장착하고 있었다.

 

청일전쟁의 결과는 바로 최종적으로 실력의 차이였다. 북양함대는 장비, 인원자질, 지휘관리에서 모두 부족했다. 청일전쟁은 세계역사상 철갑전함의 제1차 대형해전이었다. 일본해군의 전술은 검증을 받았고, 각국의 해군들이 이를 본받는다.

 

북양함대는 그후 계속 항구내에 머물러 있었고, 더 이상 출전하지 않는다. 청일전쟁은 군사적으로 실패일 뿐아니라, 더더욱 청정부의 정치적무능과 부패를 보여주는 셈이 되었다.

 

청일전쟁은 왜 발생하였는가?

 

청일전쟁의 도화선은 한반도에 있었다. 1894년 5월, 조선정부는 청정부에 동학농민군의 진압을 위해 도움을 요청한다. 청정부는 병력을 조선으로 보낸다. 일본도 그 기회를 틈타 조선에 출병한다. 얼마 후, 조선정부와 동학당은 타협을 하고, 청군은 철수를 준비한다. 동시에 일본에도 철군을 요구한다. 그러나 일본은 무력으로 조선을 점령하려고 하였다.

 

청정부는 신속히 증원하기 위하여, 북양함대의 2척의 순양함, 2척의 포함, 3척의 빌린 영국상선에 육군을 실어 한반도로 보낸다.

 

1894년 7월 25일, 한국의 아산만 풍도해역에서, 청나라함대는 일본함대의 3척의 순양함을 만난다. 전투는 약 1시간 지속되었고, 청나라 함대는 손상을 입고 패퇴한다. 1척의 순양함은 좌초하여 스스로 파괴한다. 일본군은 청군의 운수함을 격침시켜, 950명 중에서 겨우 200여명만 생환한다. 나머지는 모두 순국한다.

 

이 전투는 풍도해전이라 부른다. 누가 먼저 공격했는지는 논쟁이 있다. 먼저 공격한 측이 전쟁을 일으킨 측이다. 청정부는 비록 병력을 조선으로 보냈지만, 전투는 회피하는 경향이었고, 실제전쟁준비도 부족했다. 풍도해전후 6일이 지난, 1894년 8월 1일, 청정부는 대일선전포고를 하고, 청일전쟁이 개시된다.

 

그후 북양함대는 황해에서 패전한다. 1894년은 갑오년이므로 갑오해전이라고 부른다. 일본군은 육전에서도 마찬가지로 장비와 전술의 우세로 조선을 점령한 후, 동북으로 진입하여 대련여순항을 차지한다. 일본군은 다시 위해로 진격하고, 청군은 다시 패전한다. 북양함대는 항구내에서 전멸한다.

 

1895년 4월 17일, 청나라는 일본과 시모노세키조약을 체결한다. 청정부는 배상금을 지급하는 외에 대만, 팽호를 할양한다. 청나라는 동시에 요동반도도 할양했다. 그러나, 프랑스, 러시아, 독일의 압력으로 일본은 요동반도를 돌려주고, 그후 러시아가 점령한다.

 

개전초기, 대청제국의 이름때문에 일왕은 개전을 주저했다. 그러나 첩보가 이어지자 일본군국주의자들이 일본조정내에서 우세를 점하기 시작한다.

 

청일전쟁은 청나라군대의 세력을 크게 약화시킨다. 1898년 무술변법이 실패하면서, 청나라는 변혁의 기회도 잃어버린다. 1912년 청나라는 멸망한다.

 

오늘날에 주는 교훈

 

청일전쟁은 굴욕의 전쟁이다. 이성적으로 말해서, 청일전쟁은 청나라의 몰락기때 분명히 실력부족을 알면서, 여전히 강국으로 자처하다가 일으킨 잘못된 전쟁이다. 그리하여 거꾸로 청나라의 몰락을 가속화시킨다.

 

청나라는 변혁을 거부했고, 황권을 지키기 위해, 중국을 더욱 많은 재난으로 끌어들인다. 중공정권은 우한폐렴을 은폐하고, 국제적으로 고립을 자처하며, 중공은 정권을 지키기 위해 개인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전랑식외교를 펼치고, 군사적으로 빈번하게 도발한다. 오늘날의 중공정권은 청왕조와 비교해도 더욱 부패하고, 더욱 권위적이다.

 

100여년전의 청왕조와 비교하여, 중공군의 실력은 그다지 강하지 않다. 지금까지 중국근대사상 최대의 해전은 여전히 청일전쟁이다. 1950년에서 1953년까지, 중공육군은 한국전쟁에서 한국을 통일시키고자 했으나 미군과 유엔군에 제지당했다. 1962년 인도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으나 스스로 물러난다. 1979년 베트남과의 전쟁에서 거대한 손실을 입었고, 실질적인 이익을 얻지 못한다.

 

이 세 번의 전쟁은 모두 민족이익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개인적인 명망때문에 싸운 것이다. 모두 육군작전이다. 지금 중공은 경험있는 해군, 공군이 없으면서도 전쟁을 시도하고 있다. 100여년전보다도 논리가 결핍되어 있는 것이다.

 

식민주의와 2차에 걸친 세계대전을 거친 후, 오늘날 세계각국은 더욱 평화를 아낀다. 이는 중국의 평화로운 발전에 좋은 기회였다. 70년전과 마찬가지로 그저 방어만 하면, 중국은 기본적으로 전쟁의 리스크가 없다. 다만 중공정권은 확장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어, 불가피하게 70년전의 한국전쟁을 일으켰고, 또한 오늘날이 군사도발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내외적으로 곤경에 처한 중공고위층은 정권을 지키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황당하게도 도발을 계속한다. 이를 통해 주변각국의 우려와 반감을 더욱 강화시킨다. 100여년전과 비교하여, 70년전과 비교하여, 오늘의 국제환경은 원래 상대적으로 평화롭다. 다만 중공정권은 미련하게도 이런 분위기를 깨트린다. 현재 각국은 신속히 연합하여, 일단 총성이 나면 전쟁은 통제불능이 될 것이다. 또 한번의 참혹한 청일전쟁이 발생하게 될 것이고, 중화민족은 위기국면에 빠질 것이다.

 

오늘의 중일해군

 

매체는 중국의 군용기, 군함이 대만을 도발하는 것, 혹은 미중대항에 에 관심을 가지고, 중공이 동해에서 계속 일본을 도발하는 것에 대하여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일본방위청의 통계에 따르면, 금년 4월부터 6월까지 동해에서, 일본항공자위대는 중공군용기를 막기 위하여 90일동안 177차례나 출동했다. 거의 하루에 두 번이다. 2019년 4월에서 2020년 3월까지는 총 675차례 출동하여 중공군용기를 막았다. 2018년에는 638차례이고, 2017년에는 500차례, 2016년에는 851차례이다. 

 

중공의 도발은 실력이 우세해서가 아니다. 그저 지금의 일본은 방어만 할 수 있고, 침략할 수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일본은 과격한 반응을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일본의 군사력이 약하다는 것은 아니다. 일본은 군국주의의 확장을 포기했다. 그렇다고 눈앞의 위협을 그냥 넘어가지는 않는다.

 

중공군대의 도발과 군비경쟁은 이미 악영향을 나타내고 있다. 일본은 2척의 이즈미급 헬기호위함을 개조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F-35B 스텔스전투기가 곧 배에 실린다. 일단 복역하면 전력은 중공의 항공모함을 넘어서게 된다. 배수량은 19.000톤이다.

 

중공의 구축함은 배수량이 12,500톤짜리 055형 1척이 막 진수했고, 7,500톤급의052D형이 15척이다. 이전에 러시아의 현대급구축함을 모방하여 만든 052, 052B, 052C급 구축함은 합계 10척인데, 모두 시제품으로 제대로 된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중공은 또한 2000년에 러시아에서 4척의 현대급 구축함을 수입했는데, 배수량은 8,480톤이다. 중공은 초기 시제품인 051B, 051C형 3척이 있는데, 이는 단지 탐색한 수준이라 할 것이다.

 

중공의 32척 구축함 중에서 15척 052D급이 주력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중거리,원거리미사일방어시스템이 없다. 

 

이와 비교하면 일본은 7척의 만톤급 구축함이 있고, 미군 버크급 구축함과 유사하고 또한 이지스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 미사일을 방어할 수 있다; 그리고 6,200톤-6,800톤급의 구축함 20척이 있다. 일본은 주요해상의 전함품질, 성능에서 다시 한번 중공해군을 넘어섰다. 이는 역사의 윤회라 할 수 있다.

 

중공은 비로 공격형 핵잠수함이 수 척 있지만, 기술이 낙후하여, 소음이 비교적 커서 쉽게 발견된다. 일본의 대잠능력은 미군과 같다. 일본의 20척의 상규핵잠수함은 이미 세계선진수준이다. 최신의 리튬전지기술로 소음제거효과는 아무도 따라올 수 없다. 중공의 상규핵잠수함은 아직도 러시아를 베끼는 수준이다.

 

일본해군은 미군의 선진기술에 의존하고, 미군과 공동훈련을 한다. 실제전투능력은 중공해군을 넘어선다. 최대의 차이는 바로 일본은 더 이상 전쟁하려 하지 않고, 현재 동맹의 수단으로 방어하고 있을 뿐이다. 중공해군은 일본보다 못한데 만일 계속 도발하다가는 또 한번의 청일전쟁이 재연되지 말란 법이 없다. 만일 미국, 호주까지 참전하면, 결과는 더더욱 불을 보듯이 뻔하다.

 

중공의 두번에 걸친 잘못된 선택

 

2차대전후, 미국은 중화민국을 유엔 창설국의 하나로 만들었다. 미국과 중국은 2차대전의 동맹이고, 일본은 패전국이다. 

 

서태평양에서, 중화민국은 미국의 천연적인 동맹국이다. 또한 전소련공산진영을 막아내는 조력자이다. 만일 당시의 미중관계가 계속되었더라면, 중국은 자연스럽게 아시아의 맹주가 되었을 것이다. 경제적으로도 일찌감치 미국의 지원을 받아, 금방 강대국이 되었을 것이다. 당연히 대만과 마찬가지로, 자유민주사회로 나아갔을 것이고, 오늘날 전혀 다른 모습이 되었을 것이다.

 

중공은 미국대사를 쫓아내고, 소련에 기댔다. 그리고 소련을 도와 한반도에서 대리전쟁을 벌인다. 미군 및 유엔군을 적으로 삼아 일찌감치 고립되어 버린다. 미국은 일본을 동맹국으로 선택했고, 제1도련방어선을 건립한다.

 

중공은 소련과 반목하며 훼멸될까 겁을 내서 1970년대에 공산진영을 배반하고 미국에 기댄다. 냉전후, 중공은 미국에 전면적으로 침투하며, 초한전을 발동한다. 최근 들어서는 드러내놓고 군비경쟁을 벌이며, 미국과 쟁패한다. 미국은 다시 제1도련을 정비하며 일본과 긴밀하게 협력하기 시작한다.

 

중공의 제1차 선택실패는 중국을 세계에 수십년간 뒤쳐지게 만들었다; 현재 중공은 다시 제2차 선택실패를 하여, 다시 고립되려 한다. 아시아각국은 중공에 대항하기 시작하고, 중공의 해군력은 아직 일본에도 미치지 못한다. 미국과의 차이는 더욱 크다. 중공은 그럼에도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여전히 계속 도발하고 있다.

 

중공정권은 계속하여 중화민족을 곤경에 빠트린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는 개별적인 지도자가 표면적으로 이기적이고, 무지하고, 무능하고 부패했기 때문이 아니라, 중공홍색확장유전자로 인한 것이다. 더더욱 공산주의가 인류를 훼멸하는 본질에 기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