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역사의 비극: 깡패가 영웅을 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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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유방)

2020. 11. 21.

글: 두우관주(斗牛關注)

 

나는 진한(秦漢)의 역사를 마음 속으로 자세히 생각해 보아왔다. 관련서적도 많이 읽으면서, 느낌 점이 많았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이는 중화민족 역사의 길에서의 중요한 전환점중 하나이다. 많은 사람들은 "범아강한자수원필주(犯我强漢者雖遠必誅, 강한 우리 한나라를 침범하면 아무리 멀리 있더라도 반드시 주살해 버리겠다)"이런 호연지기를 펼치는 말에 심취하고있을 때, 왕왕 소위 '강한(强漢)'의 배후에 천년간 이어지는 민족의 재난이 있다는 것을 보지 못한다. 항우의 죽음은 중국인들에게 "성왕패구(成王敗寇, 이기면 왕이고, 지면 도적이다)"를 기억시켰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겨라"는 것을 배웠다. 그리하여 존엄이라고는 없는 생활이 인정받게 된 것이다.

 

유방의 성공은 후세에 가장 나쁜 모범을 보였다. 정도 없고 의리도 없으며 양면삼도(兩面三刀)의 인물로 이기적이며 음독하고, 배신을 거듭하면서도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주공(主公)인데, 천고일제(千古一帝)로 떠받들어진다. 팽성전투에서, 유방은 오십여만의 군대를 이끌고 항우의 삼만 정예병에게 대패한다. 도망치는 도중에 유방은 그의 아들과 딸을 만난다. 도망속도를 빠르게 하기 위해, 유방은 아들과 딸을 수레 밖으로 밀었다. 그것도 여러번이나. 유방의 호위대장 겸 수레를 몰던 하후영은 도저히 가만 있을 수 없어, 유방에게 이렇게 박정해서야 어찌 천하의 공주(共主)가 될 수 있겠느냐고 비난한다. 유방은 그제서야 할 수 없이 자녀를 싣고 함께 도망친다. 이런 우수한 유전자는 나중에 유비가 계승하여 역시 "처자식을 버리는" 장면을 연출하게 된다.

 

"영웅"을 얘기하면 그들에게는 공통된 비정한 특색이 있다: 도의를 중시하고, 존엄이 있고, 자신감이 있고, 강한 것을 믿고 약자를 괴롭히지 않으며, 약한 사람을 보호하고, 솔직하고 직설적이다. 이는 춘추시기의 고박(古朴)한 '귀족정신'이다. 항우는 바로 그 대표적 인물이다.

 

부인할 수 없는 것은 항우가 뛰어난 전략가는 아니라는 것이다. 사료를 보면, 그는 EQ가 아주 낮은 인물이다. 또한 부인할 수 없는 것은 그에게서 귀족정신이 발휘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가치는 심지어 항우의 "백전백승"의 군사적 재능보다도 높다. 그 시기에 귀족정신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공자는 '군자'를 예찬하고, '소인'을 멸시했다. 그는 군자가 되는 것이 무슨 유리한 점이 있어서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만일 공리를 위하여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위군자(僞君子)라는 것이다. 군자가 되는 것은 일종의 신앙이다. 시대의 각도로 이해하자면, 공자가 말하는 '군자'의 본뜻은 귀족을 가리킨다, '소인'은 하층민중을 가리킨다. 그래서 군자정신은 실질적으로 귀족정신이다. 영웅주의도 귀족정신의 일종의 형식이다. 초나라의 대장의 후손인 항우(<항우본기>에 따르면 항씨는 대대도 초나라 장수였고, 항(項)에 봉해졌다. 그래서 항을 씨로 삼는다)는 이런 '군자'의 귀족정신을 대표한다. 진정한 귀족정신은 부유함과 지위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고귀한 인격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귀족정신은 공리적인 생활태도가 아니고, 고상한 인격에 대한 신앙이다.

 

많은 사람들은 초한간의 전투에서 항우가 패배한 것은 그 자신이 우둔하고, 스스로를 과신하며, 두뇌가 단순하였기 때문이라고 본다. 다만 깊이 생각하는 소수의 사람들은 승리자인 유방의 후안무치, 기망, 궤사(詭詐)를 되돌아본다. 만일 항우가 정말 우둔하고, 스스로를 과신하며, 두뇌가 단순한 사람이었다면, 그가 어찌 계속하여 소수의 병력으로 다수의 적군을 이기고, 진나라의 주력에 최종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었을까?  오히려 유방을 보면 항우를 크게 속인 것만도 3번에 이른다(자잘하게 속인 것은 계산에 넣지도 않았다). 이를 통해 그 자신이 살아남았을 뿐아니라, 천하도 성공적으로 찬탈한다. 이 3번은 각각 홍문연, 팽성지전, 홍구의화(鴻溝議和)이다. 항상 규칙을 중시하던 항우는 규칙을 파괴하는데 익숙한 유방을 만났을 때, 이는 완전히 깡패정신의 귀족정신에 대한 교살이라 할 수 있다.

 

홍문연에서 유방을 보내준다. 항우가 보깅, 만일 충분한 도의적인 이유가 없다면, 단순히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하여 유방을 죽이는 것은 해서 안되는 일이다. 서방의 법치사회처럼 만일 법률적으로 인정되는 증거가 없다면 마음 속으로 분명히 그가 범인이라고 여겨지더라도, 그를 감옥에 넣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이것은 원칙이다.

 

나중에 유방과 천하를 다툴 때, 항우는 백성들이 전쟁의 고난을 겪는 것에 연민을 표시한다. "천하가 몇년동안 흉흉한 것은 모두 우리 둘 때문이다. 한왕과 결전을 벌여 자웅을 결정하겠다. 그렇게 하는 것은 천하의 백성들이 괴로움을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유방의 부하들조차도 '항우는 어질고 백성을 사랑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러나, 유방은 여러번 항우와의 대결에서 패배한 후, 마침내 후세 천백년간 영향을 끼치는 대단한 전술을 만들어 낸다. 바로 "유격전"이다. 유방은 '적후방의 공작수단"을 통해 팽성이 항우를 배반하게 만든다. 그후 소수의 인마로 항우의 배후에서 기습을 전개한다. '적이 쳐들어오면 나는 물러나고, 적이 물러나면 나는 쳐들어가고, 적이 가만히 있으면 내가 교란시키고, 적이 피로하면 내가 친다.'는 방침에 따라, 항우에게 정정당당하게 전투를 벌일 기회를 주지 않는다. 이는 유방의 '총명'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총명'은 대대로 전해져 내려온다. 그리고 전쟁규칙을 지키고자 했던 항우는 비정영웅이 될 수밖에 없었다.

 

무릇, 정신을 굳게 지키는 사람은 항상 빨리 죽는다. 항우는 차라리 자살을 할지언정 오강을 건너지는 않으려 했다. 왜냐하면 항우와 같은 개세영웅에 있어서, 유방과 같이 다른 사람의 사활은 돌보지 않는 망명도의 생활을 지내느니 차라리 통쾌하게 죽는 편이 나은 것이다. 이는 일종의 '희생'정신이다. 귀족에게는 태어나면서부터 가진 자랑이다. 이런 자랑은 후대로 내려갈수록 '명철보신(明哲保身)'으로 점점 더 대체되어 버린다. 소위 규칙은 갈수록 쉽게 파괴된다. 심지어 규칙을 제정하는 목적도 규칙을 위반하기 위해서이다. 유방과 항우의 전쟁에서, 승리한 유방은 사람들에게 숭배받는 대상이 된다. 우리는 성공하려면 규칙을 지키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자신의 존엄도 포기하는 것도 허용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성공의 길에서 잠시 존엄을 포기한 사람도 성공한 이후에는 다른 사람을 모욕함으로써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이는 실제로 심리변태의 표현이다. 그들은 존엄을 포기했으므로, 자학심리가 생성된다. 그들은 이런 자학을 다른 사람에게 푼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모욕하는 것이다. 그리고 모욕받은 다른 사람이 만일 미래의 '장기적인 이익'을 위하여 잠시 존엄을 포기하는 것을 선택한다면, 그것은 악순환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유방이 강산을 얻은 후, 뒤를 이은 한무제 유철은 마침내 중국역사를 잘못된 길로 몰고 간다. 이 시기에, 그는 동중서, 급암, 주보언, 장탕, 상홍양, 공손홍, 아관, 왕온서등을 중용한다. '국영기업'이 당당하게 역사무대에 등장하게 만들었을 뿐아니라, '외유내법(外儒內法)'의 치국방침이 나타난다. 그리고 일대일대 전승된다. 이들은 뛰어난 지혜와 황제에 대한 절대충성을 나타낸다. 이는 중화민족에게 깨트릴 수 없는 정신적 질곡을 형성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