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칠망(五姓七望)": 중국역사상의 명문집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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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분석/중국역사의 기록

2020. 11. 30.

글: 천애간점역사(天涯看點歷史)

 

성씨(姓氏)는 우리들 모두의 일생을 따라다니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운 성씨도 적지 않게 탄생하고, 적지 않은 복성(複姓)은 단성(單姓)으로 바뀌었다. 지금 통계를 내보면, 단자성과 쌍자성을 합치면 수량이 1만개에 이른다.

 

현재의 성씨는 이미 고대의 계급제도는 없다. 왜냐하면 고대에는 '오성칠망'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들 성씨를 가진 사람은 고대의 명문망족이었다. 이는 상류사회의 명함을 하나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나 같다. 고대의 황실조차도 '오성칠망'에 속하는 사람과 결혼할 자격이 없었다. 그렇게 보면 정말 이들 일족으로 태어나는 것은 하나의 특권이라 할 수 있다.

 

그중 "오성(五姓)"은 이(李), 최(崔), 노(盧), 정(鄭), 왕(王)을 가리킨다. "칠망(七望)"은 농서(隴西), 조군(趙郡), 청하(淸河), 범양(范陽), 박릉(博陵), 형양(滎陽), 태원(太原)이다. 간단히 말해서 '칠망'은 7개의 가족을 가리킨다.

 

첫째, 이씨는 '농서이씨'와 '조군이씨'이다.

 

400년의 동진시기에, "이"성은 처음에 '리(理)'였으나, 천천히 바뀌어서 '이(李)'로 바뀐다.

 

그중 농서이씨중 가장 유명한 인물중 하나는 바로 당나라때의 저명한 시인인 이상은(李商隱)이다. 그가 쓴 <무제>는 사랑을 읊은 시중에서 대표적이다:

 

상견시난별역난(相見時難別亦難)   서로 만나기도 어렵지만 헤어지는 것도 어렵구나

동풍무력백화잔(東風無力百花殘)   봄바람이 힘을 잃으니 꽃들이 모두 지누나

춘잠도사사방진(春蠶到死絲方盡)   누에는 죽을 때까지 실을 뽑아내고

납거성회루시건(蠟炬成灰淚始乾)   초는 재가 되어야 눈물이 마른다.

 

조군이씨중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은 당나라때 저명한 음악가 이구년(李龜年)이다. 시성 두보는 <강남봉이구년>이라는 시를 지은 바 있다. 이를 보면 이구년은 당나라때 시인들이 무수히 배출되는 시대에 역시 스타와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최씨를 보자. 최씨는 동한에서 시작한다. 삼국시대 이전의 그 동한이다.

 

최씨라는 성은 지금은 그렇게 많이 볼 수 있는 성씨가 아니지만, 유명한 인물을 많이 배출했다. 모두 12명의 재상을 배출했고, 그 중에는 당태종때의 재상인 최인사(崔仁師)가 있다.

 

태원왕씨. 인구조사에 따르면, 왕씨는 중국인구중 가장 많은 성씨중 하나이다. 그러나 고대에 왕이라는 성씨는 정말 일반적이지 않았다. 부유한 가정이고, 명문귀족이었다. 이 성씨는 그 글자가 의미하는 바와 마찬가지로, '왕자(王者)'의 기질이 있었다.

 

동한시기의 왕윤은 바로 태원왕씨이다.

 

그후에 동진에서 3명의 황후를 배출한다. 효무제의 황후 왕법혜(王法慧), 간문제의 황후 왕간희(王簡姬), 진애제의 황후 왕목지(王穆之). '5성7망'중에서 황후를 가장 많이 배출한 성씨이다.

 

범양노씨. 가장 유명한 인물은 '초당사걸'중 하나인 노조린(盧照隣)이다. 그외에 10명의 재상을 배출한다. 당나라때만 8명이다. 당나라때 재상은 노씨들이 싹슬이했다고 말해도 될 정도이다.

 

형양정씨. 서한시기의 성씨이다. 마찬가지로 10명의 재상을 배출한다.

 

시대가 바뀌면서, 성씨는 한 사람의 부호가 되어 버린다. 더 이상 신분의 상징은 아니게 되었다. 전체적으로 말하자면 이는 하나의 진보이다. 어쨌든 중국은 현재 새로운 시대에 처해 있고, 등급이 분명한 봉건사회는 이미 역사가 되었다.

 

아무도 이런 시대가 나쁘다고 여기지는 않을 것이다. 누구든지 노력만 하면 자신이 세운 목표를 실현할 수 있고, 자신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정상적이고 건강한 사회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