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2020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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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청 후기) 청나라말기 "미국유학아동"들은 얼마나 우수했을까?

글: 장금(張嶔) 증국번(曾國藩)이 관료사회에서 종횡하며 부침을 거듭했지만, "유미유동계획(留美幼童計劃)"은 그의 일생에서 최후의 큰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1872년 8월 11일, 즉 증국번이 사망하기 5개월전에, 이 '중화창시지거(中華創始之擧)'라 불리는 계획을 힘들게 싸워서 성사시켰다. 120명의 '유미유동'은 4차에 나누어 3만2천리를 건너 미국으로 유학간다. '서도자강(徐圖自强, 천천히 스스로 강해지기를 도모한다)'의 국가사명을 어깨에 지고 떠난 것이다. 증국번의 생전에 오른팔이며, '유미유동계획'의 집행자인 용굉(容閎)은 흥분하여 외쳤다: "나는 야응(夜鷹, 쏙독새)이 눈을 뜬 것같았다." 막 나라의 대문을 열었던 시대에, '서양유학'은 대다수의 중국인들에 있어서, 머리깨지면서 앞다투어 가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