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2020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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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지방/홍콩; 마카오 "홍콩판 국가안보법": 중국은 무엇을 겁내고 있는가?

글: 진사민(陳思敏) 중국의 '홍콩판 국가안보법'은 소식이 나오고 비밀리에 통과되고, 빠르게 시행되기까지 1달이 걸리지 않았다. 2020년부터 앞으로 7월 1일은 '일국양제'의 기일, 재난일이다. 홍콩판 국가안보법의 전문이 나오면서 각계는 약속이나 한 듯이 해독해보고 바로 알아차린다. 제14조, 제33조, 제36조, 제38조, 제41조, 제42조, 제60조등 조문은 이것이 정상국가나 정부의 입법이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조폭조직의 조직내규라는 것을. 특히 제62조는 이 법률은 홍콩사법의 위에 있고, 제65조는 중국공산당이 이 법률보다 위에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만일 한 마디로 이 홍콩판 국가안보법을 평가하자면, "무법무천(無法無天)" 법도 하늘도 없다는 것이다. 중공은 국가안보법으로 홍콩을 진압하려..

02 2020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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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청 후기) 청나라 흑마장군(黑馬將軍) 탑제포(塔齊布)의 전설

글: 두약(杜若) "함풍(咸豊)연간, 청군은 흑마를 한 마리 얻는데, 이 말은 사람을 보면 발로 걷어차고, 물어버렸다. 오직 탑장군을 보자 고분고분해서 말을 잘 들었다. 적군의 추격을 받았을 때, 흑마는 땅구덩이에 몸을 숨기고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청나라말기 상군(湘軍)에 탑제포(1816-1855)라는 명장이 있었다. 자는 지정(智亭)이고, 만주 팔기 상황기(鑲黃旗)출신이다. 처음에 그는 화기영(火器營) 조총호군(護軍)에서 삼등어전시위로 발탁된다. 함풍제 초기, 그는 호남으로 파견된다. 그는 충성스럽고 용맹하여, 여러번 조정의 발탁을 받는다. 그는 제독(提督)에 오른 후, 왼팔에 네 글자 "충심보국(忠心報國)"을 새긴다. 탑장군에게는 한 마리의 전마(戰馬)가 있었는데 말 중에서 용구(龍駒)라 할..

02 2020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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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지방/홍콩; 마카오 홍콩판 국가안보법을 둘러싼 중국의 도박과 미국의 제재

글: 왕혁(王赫) 중공이 멸망하기 전에 몇 번의 싸움을 더 벌일 수 있을까? 홍콩의 '일국양제'존망의 전투도 그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6월 30일, 중국은 아주 빠르고 궤이하게 홍콩판 국가안보법을 내놓았다. 이는 홍콩인, 중국민중, 미국과 국제사회에 선전포고를 한 셈이다. 중공이 이렇게 천하의 금기를 어긴 것은 미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정교한 계산과 배팅이 들어 있다. 미국이 극단적인 조치를 취하여 홍콩의 국제금융중심의 지위를 상실하게 만들지 않을 것이라는. 홍콩이 국제금융중심의 지위를 유지하는 한 미국의 다른 어떤 제재조치도 중국의 살은 아프게 할지언정 뼈는 건드리지 않는 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저 한동안 아프지만 어쨌든 충분히 버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금방 증명되었다. 중공은 다..

02 2020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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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사회/중국의 도시 장안(長安)은 왜 서안(西安)으로 개명했는가?

글: 장금(張嶔) 중국고대도시발달사에서 하나의 큰 사건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장안개명(長安改名)'이다. 명나라 홍무2년(1369년), 명나라의 북벌군이 관중평원을 점령한다. 그해 삼월 명태조 주원장은 정식으로 조서를 내려, 천년이상의 수도역사를 지닌 고도 장안에 지금까지 사용되는 새 이름을 부여한다: 서안. 비록 이번 '개명'에 대하여 후세에는 여러 논쟁이 있고, 심지어 어떤 아마추어역사가는 불평불만을 쏟아내며 '고도장안'의 격을 떨어뜨리게 된 것이 이번 개명으로 인해서라고 하지만, 사실상, 반대로 이 고도가 다시 한번 화려한 변신을 이룬 것이 바로 이 개명으로 인해서이다: 파괴된 '구도(舊都)'에서 서북의 '중진(重鎭)'으로 변신한 것이다. 후세인들이 그리워하는 당나라의 장엄한 장안성은 당나라말기부터..

02 2020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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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명) 엄숭(嚴嵩)은 어떻게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내각수보(內閣首輔)에 올랐을까?

글: 소가노대(蕭家老大) 엄숭은 자가 유중(惟中), 호는 개계(介溪)이며, 강서 분의(分宜, 지금의 강서성 신여시 본의현)사람이다. 엄숭의 부친은 오랫동안 과거시험을 쳤으나 합격하지 못했다. 그러나 권력에 대한 미련이 컸으므로 모든 희망을 아들에게 걸었다. 그리하여 그는 아들을 세심하게 가르치고 길렀다. 엄숭은 5살때 엄씨사(嚴氏祠)에서 글을 배웠고, 9살때 현학(縣學)에 들어간다. 10세때 현시(縣試)를 통과하며, 19세때 거인(擧人)이 되고, 25세때 마침내 엄숭은 부친의 염원을 이룬다. 홍치18년(1505년), 엄숭은 을축과(乙丑科) 진사(進士)에 합격하여 서길사(庶吉士)로 뽑힌다. 나중에는 편수(編修)의 관직을 받았다. 나중에 엄숭은 큰 병이 들어, 할 수 없이 관직을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