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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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장거정) 장거정(張居正)과 이태후(李太后), 풍보(馮保)의 관계는......?

글: 소가노대(蕭家老大) 고대인들은 재상의 역할을 8글자로 개괄했다: "좌이론도(坐而論道), 협리음양(協理陰陽)". 앉아서 도리를 얘기한다는 것은 오늘날의 말로 표현하자면 방침과 정책을 제정한다는 것이다; 음양을 협리한다는 것은 거시적으로 각 방면의 관계의 평형을 맞춘다는 것이다. 재상이 만일 지나치게 구체적인 사무에 집중하면 전체국면을 통할하는 능력을 약화된다.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재상은 사람을 잘 써야 하고, 일을 잘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능력있는 인물에게 일처리를 하게 하고, 자신은 일처리 잘하는 사람을 관리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양호한 상호작용이 이루어진다. 장거정의 용인술에 대하여 얘기하자면, 주로 그가 어떻게 개혁의 엘리트집단을 양성하여 강력한 지도계층을 형성했는지 봐야 한다. ..

16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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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청 중기) 구자탈적(九子奪嫡)때, 혜비(惠妃)는 왜 친아들인 황장자(皇長子)가 아닌 황팔자(皇八子)를 지지했을까?

글: 취간역사(趣看歷史) 황장자 윤제(胤禔)는 그의 부친 강희제가 말한 것처럼 어리석은 인물(蠢材)이었다. 발전가능성이 없는 멍청한 자. 그래서 생모인 헤비도 구자탈적중 할 수 없이 자신이 기른 황팔자 윤사(胤禩)를 지지한 것이다. 황장자 윤제는 구자탈적중 유일하게 옹정제나 건륭제로부터 용서받지 못한 황자이다. 윤제는 생모인 혜비도 좋아하지 않았을 뿐아니라, 황실내에서 그를 좋아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윤제는 '구자탈적'중 사후에 유일하게 황제로부터 용서받지 못한 황자이다. 강희제때 '구자탈적'에 참여한 9명의 황자는 각각 황장자 윤제, 황이자(皇二子)인 폐태자(廢太子) 윤잉(胤礽), 황삼자(皇三子) 윤지(胤祉), 황사자(皇四子) 윤진(胤禛) 즉 나중의 옹정제(雍正帝)이고, 황팔자 윤사, 황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