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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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여포) 여포가 죽은 후 방천화극(方天畵戟)은 어디로 갔을까?

글: 계설필담(溪說筆談) 여포가 조조에게 죽임을 당한 후, 적토마는 조조에 의해 관우에게 하사된다. 그렇다면, 그의 병기인 방천화극은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 이 문제에 대하여, 어떤 사람은 이렇게 생각한다. 이런 무기는 사용하는 사람이 원래 많지 않다. 방천화극을 주병기로 사용할 수 있는 무장은 더욱 적다. 대장은 일반적으로 자신의 손에 익은 무기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무명소졸은 여포의 병기를 쓸만한 자격이 없다. 그래서 조조가 누구에게 하사하고 싶어도 줄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방천화극은 여포의 상징이 되었고, 아마도 전리품으로 조조가 소장했을 것이다. 기실 이 문제는 소설의 후반부에 언급되어 있다. 조비(曹丕)가 칭제하기 전에, 그의 동생인 황수아(黃鬚兒) 조창(曹彰)이 불복하여 병력을 이..

21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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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삼국) 초선(貂蟬)의 아들이 선비(鮮卑)의 10만철기를 대파했다?

글: 문재봉(文裁縫) 먼저 얘기할 것은 "초선(貂蟬)"이 원래 인명(人名)이 아니라, 한나라때 시종관원(侍從官員)이 쓰는 관모(官帽)의 장식품을 가리키는 말이다. 검으면서 얇고, 얇으면서 가볍고, 가벼우면서 뚤려 있어 아주 아름다웠다. 후궁에 모자를 관리하는 관직을 별도로 설치했는데, 사람들은 '초선'이라는 말로 이런 모자를 관리하는 여관(女官)을 지칭했다. 나중에는 미녀를 가리키는 말로 바뀌어 쓰이게 된다. 다음으로, 에는 초선에 관한 여하한 기록도 없다. 가장 먼저 초선이라는 인물이 나타난 것은 라는 책이다. 책에 따르면 초선의 성은 임(任)이고, 원래 여포(呂布)의 처였다. 임도(臨洮)의 전란중에 여포와 헤어져서 나중에 왕윤(王允)의 집으로 흘러들어간다. 초선이 향을 사르고 달에 제사를 지내는 것을..

19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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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여포) 여포: 겨우 무명장수 2명을 죽였을 뿐인데, 왜 '삼국제일맹장'이 되었을까?

글: 취간역사(趣看歷史) 중국역사상 여포는 유명한 인물이다. 근 2천년동안 그는 '삼국제일맹장'으로 떠받들어진다. 당연히 엄격히 말하자면, 그는 '동한말기제1명장'이라 할 수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그는 일찌감치 조조에게 죽임을 당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포의 용맹은 유명하다. 그는 "비장(飛將)"이라고 불릴 뿐아니라, 에서 무한히 떠받들어져서 심지어 '유비,관우,장비' 세명과 혼자 싸우는 수준에 이르게 된다. 다만, 역사상 진정한 여포는 그렇게 대단한 전적을 남기지는 못했다. 기록에 따르면, 그는 출도한 이래 단지 2명의 무명장수를 베었을 뿐이다. 호뢰관전투에서 여포는 병사를 이끌고 출전하였다: 그는 "5합도 겨루기 전에 방열(方悅)을 참하고, 손으로 극을 들어 목순(穆順)을 주살했다." 너무나 ..

20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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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유비) 유비는 왜 항상 다른 제후들과의 합작을 끝까지 유지하지 않았을까?

글: 장공성조(長空星照) 유비는 평원상(平原相)이 된 후, 자립의 기본적인 조건을 갖추게 된다. 그러나, 실력과 당시 천하형세로 인하여, 제후들은 부득이 다른 제후와의 합작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 통해 갈등이 첨예한 적을 상대하고, 다른 제후들에게 병합되지 않을 수 있었다. 제후들이 유비와 합작한 경우는 적지 않다. 그러나 유비는 시종 다른 제후들과의 합작을 끝까지 유지하지 못했다. 도대체 무슨 이유에서일까? 유비가 평원상이 된 것은 공손찬때문이다. 공손찬이 원소와 싸우기 때문에, 유비와 청주자사 전해(田楷)는 제(齊)의 딸에 주둔했다. 조조는 서주를 공격했고, 서주자사 도겸이 도와달라고 한다. 전해와 유비는 함께 가서 그를 도와준다. 이때 유비에게는 1천여명의 병사가 있었다. 그리고 유주의 일부 소..

21 2020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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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여포) 여포의 부하장수들....

글: 취담역사(趣談歷史) 여포의 일생은 기복이 심하다. 원래 병주자사(幷州刺史) 정원(丁原) 휘하의 주부(主簿)였다. 그런데 정원을 죽인 후 동탁(董卓)의 부하가 되고, 다시 동탁을 죽인다. 이각(李傕), 곽사(郭汜)에 의해 장안에서 쫓겨난 후, 연주(䆓州)를 기습하여 조조의 본거지를 거의 박살낸다. 다시 조조에 쫓겨난 후 유비가 그를 거둔다. 그 결과 유비는 양호위환(養虎爲患)하게 된다. 유비가 원술(袁術)을 토벌하러 나섰을 때, 여포가 서주를 기습한다. 그리하여 여포는 서주의 주인이 된다. 여포가 이렇게 활약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신의 무공이 고강한 점도 있지만 그의 부하들 중에서 잘 싸우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중 가장 용맹한 사대호장(四大虎將)을 꼽자면, 모두 잘 알고 있는 고순(高順), ..

03 2020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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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2020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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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2019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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