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2020년 11월

02

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문혁전) 이예(李銳): 3차례나 숙정당한 모택동의 비서

글; 왕우군(王友群) 일찌기 모택동의 비서를 지냈던 이예는 일생동안 3번에 걸쳐 숙정을 당하고, 고생을 많이 했다. 그러나 수명은 길어서, 102살까지 살았다. 이예, 1917년 4월 13일생, 베이징 출생. 조적은 호남(湖南) 평강(平江)이며, 무한대학을 졸업했다. 일찌기 중공중앙위원, 중앙조직부 상무부부장, 수전부 부부장, 모택옹의 겸임비서를 지낸다. 이예는 삼협공정을 반대한 대표적 인물중 하나이다. 그러나 그의 의견은 당시 중공지도자 장쩌민에 의해 묵살된다. 이예의 제1차 숙정 1943년 4월에서 1944년 9월까지, 중공의 연안정풍(延安整風) 후기의 '창구운동(搶救運動)'중 이예는 1년2개월간 구금된다. 당시는 항일전쟁이 가장 힘든 시기였는데, 중화민국 임시수도 중경은 자주 일본군 비행기의 공습을..

25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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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한국/한중관계 한국전쟁: 미,러,중,남,북의 5개국 교과서는 어떻게 서로 다르게 쓰고 있는가?

글: 현혁당(炫赫堂)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한다. 중국, 미국, 북한, 남한, 여기에 소련의 일부 군대가 한반도에서 3년간 격렬한 전투를 벌인다. 백만의 생령이 도탄에 빠지며 결국 다시 북위38도선으로 되돌아와 지금까지 대치하고 있다. 각 나라 국민의 기억 속에서 60여년전의 그 전쟁은 각국이 서로 다른 명칭인 "항미원조" "625전쟁" "한국전쟁"과 "조선조국해방전생"으로 불리고 있다. 이것만 보더라도 한반도가 평화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다. 오늘, 그 세계를 뒤흔든 전쟁에 대하여 각자의 역사기술은 전쟁사 및 이데올로기에 대한 대결이 깊이 관련되어 있다. 여러 쪽의 얘기를 듣게 되면 사실을 더욱 분명히 알 수 있다. 중국, 미국, 러시아, 북한, 남한은 각각의..

20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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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임표) 임표의 "평형관대첩"에서 일본군을 몇명이나 섬멸했을까?

글: 상청(常靑) 중국 대륙의 전통적인 교육과 선전에 나오는 "평형관대첩"은 임표가 지휘한 팔로군 115사단 3개단이 1937년 9월 25일 평형관에서 일본제5사단 21여단 수송부대를 기습하여 1000여명을 섬멸한 전투이라고 하며, 그것은 중국이 개전이래 최초의 섬멸전이고, 중국인민의 사기를 고무시켰으며, '일본군 불패'신화를 철저히 깨트렸다고 한다. 그렇다면 역사도 과연 그러할까? 아래에서는 필자가 여러 각도에서 사건의 진상을 분석하고자 한다. 팔로군이 당시에 일본군을 몇명이나 죽였는지, 평형관에서 발생한 이 전투를 과연 "대첩"이라 부를 수 있는지 살펴보도록 한다. 이 전투는 임표의 최초 판본인 전보(電報)의 내용은 적 수송부대 1개대대를 섬멸했다는 것이다. 정상적인 편제라면, 일본군의 1개 대대는 ..

10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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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문혁전) 주소주(周小舟)와 왕조국(王兆國)

글: 장효웅(張效雄) 관료사회의 승진과 좌천, 환해침부(宦海沉浮)는 어떤 때는 중대한 역사의 전환점에 나타나기도 하고, 어떤 때는 그저 작은 일때문이기도 하다. 어떤 때는 부득이해서이다. 왜냐하면 '형세는 사람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스스로 자초한다. 왜냐하면 한 사람의 성격이 그의 운명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주소주와 왕조국의 이야기는 바로 이런 점을 잘 설명해준다. 1959년 여산회의에서, 팽덕회는 모택동에게 "의견서"를 써서 제출한다. 그러다가 '반당집단'의 수령으로 타도당한다. 그 전에, 팽덕회는 호남으로 가서 조사연구할 때, 당시 호남성위 제1서기이던 주소주가 배동했다. 여러 문제에 대해 두 사람은 많은 부분을 공감한다. 모택동은 '팽대장군'과 결렬한 후, 주소주를 자기 편으로 회유하고..

03 2020년 10월

03

중국과 한국/한중관계 한국의 중공군유해송환으로 본 한국전쟁의 진실

글: 심주(沈舟) 2020년 9월 27일, 중국의 당매체는 크게 보도했다. 한국에서 제7차로 117명의 중공군인유해를 송환받았다고. 중공의 선전은 의문을 불러 일으키게 한다. 한국전쟁이 끝난지 67년이 지났는데, 왜 지금에서야 비로소 중공군인의 유해를 송환받게 된 것일까? 당매체의 묘사에 따르면, 중공군인의 유해는 한국에서 송환받았다고 한다. 북한이 아니라. 왜 한국에서 송환되어 오는 것일까? 중공은 지금까지 '항미원조(抗美援朝)'라고 선전했다. 미국이 공격하는 것을 방어하고, 북한을 지원했다. 그런데 중국군인의 유해가 왜 한국에 있는 것일까? 여기에서 역사의 비밀이 드러난다. 다시 한번 중공의 거짓말이 들통나버린 것이다. 당매체는 이렇게 보도한 바 있다. 한국전쟁기간동안, 중국의 사망군인은 사망현장부근..

13 2020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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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2020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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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2019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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