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문예연구/문예연구 본문

신아미디어 2012. 7. 23. 11:06

『문예연구』 여름호에서 기획특집으로 한국사회와 다문화를 조명하고 있습니다.

다문화.. 융합에서 독자성을 인정하는 공존의 시대..   모든 사람들과 고민하고 의견을 교환하고자 시도해봅니다.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한국인과 외국인의 본격 동거시대
      - 2000년대 다문화 소설에 대해

 

1. 아시아 노동자는 왜 ‘알리’일까?
   한국은 20세기에 일제의 식민 지배, 강대국의 냉전체제 속에 한국전
쟁을 경험했다. 이러한 격동의 역사적 사건은 한민족에게 힘이 없는 나
라와 민족은 끊임없는 차별과 배제를 받는다는 역사적 교훈을 주었다.
적자생존의 세계에서 역사의 희생양으로 전락했던 한민족은 서구에 대
한 동경 속에 강자를 꿈꾸었다. 부국강병의 조국근대화는 강자가 되기
위한 필수 입문 코스였다. 한국인들은 20세기에 약자와 피지배자라는
이름으로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강자와 지배자에게 약하고, 약자와 피
지배자에게 강한 천박한 서열주의를 내면화했다. 1990년을 전후해서
현실 사회주의권과 계몽적 거대담론의 몰락, 전 지구적 자본주의화는
군사력보다 자본의 유무를 통해 강자와 약자가 결정되는 새로운 질서
의 탄생을 의미했다. 그 후 한국인들은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해 ‘강자
/약자, 지배자/피지배자’를 나눠 차별 대우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과 1996년 OECD 가입은 그동안 강자와 지배자로 올라서기를 뜨겁게
염원했던 한민족의 욕망이 객관적으로 인정받는 증거로 활용되었다.
한국의 개별 민족 구성원들은 자유화된 해외여행을 통해 자신들의 강
자와 지배자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1990년대 이후 아시아 출신 이주 노동자들이 한국에 대거 몰려오기
시작했다. 전 지구적 자본주의화, 국제분업 체계 속에 한국은 아시아
의 이주 노동자들을 저임금의 고리로 받아들여 경제발전을 계속 유지
하려고 했던 것이다. 한국에 온 이주 노동자들은 한국인들이 싫어하는
3D 직종에 주로 취직했고, 한국인보다 낮은 임금을 받고 장시간 노동
을 해야 했다. 한국에 온 아시아 이주 노동자들의 모습은 과거 한국인
들이 돈 벌기 위해 서구나 중동으로 나갔던 우리들의 서글픈 자화상이
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이주 노동자들을 동격의 존재로 대우하
지 않고 자신들이 과거 외국에서 받았던 차별과 트라우마를 그대로 투
사했다. 한국은 아시아 이주 노동자를 선진국의 국민으로 승격한 자신
의 신분 상승을 확인시켜주는 새로운 노예로 취급했다. 한국은 과거의
아픈 역사에서 성찰적 교훈 대신에 강자의 지배적 욕망을 모방했던 것
이다.
   한국에서 제3세계 외국인에 대한 정책이 일부 변하기 시작한 것은
국제결혼을 통한 아시아 여성이 본격 유입되면서부터이다. 한국의 농
촌 노총각과 도시의 빈곤층 남성은 남녀 성비율의 불균형 속에 결혼을
제때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했다. 특히 농촌 총각들은 자신보
다 못사는 아시아의 여성과 국제결혼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이주 노동자와 달리 결혼 이민자는 한국에 영구 거주할 뿐만 아
니라 혼혈의 자식을 낳아 기존의 민족 구성비에 변화를 준다. 단일민
족의 신화에 기반한 기존 정책만으로는 결혼 이민자의 문제를 해결하
기 곤란했다. 그래서 한국 정부는 2005년부터 결혼 이민자를 중심으
로 한 다문화 정책을 본격 시행했다. 현재 한국에는 140만 명 이상의
외국인이 살고 있다. 한국의 인구가 4,800만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한국은 이제 단일민족 국가가 아니라 다민족, 다인종 국가로 변하는
와중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2000년대 이후 한국의 작가들은 다민족,
다인종 사회로 변하는 한국사회의 변화를 소설 텍스트에 반영했다. 다
문화 소설은 탈북자나 연변 조선족, 혼혈인, 아시아 출신 이주 노동자,
결혼 이민자를 소재나 주제로 채택해 이질적 문화의 접촉과 충돌이라
는 다양한 문제를 형상화한다. 이러한 다문화 소설은 다문화주의와 깊
은 연관성이 있다. 다문화주의는 한 사회 내부의 다양한 민족, 언어,
문화, 계층 등이 하나의 문화로 강제 통합되지 않고, 다원적 입장에서
각자의 독자성을 존중하면서 서로 다른 문화를 인정하여 공존하는 것
을 말한다.
   한국의 다문화 소설에 등장하는 이주 노동자들은 종교적으로 이슬
람교도였고, 이름이 ‘알리’인 경우가 많았다. 과거 한국의 초등학교 학
생의 이름이 철수와 영희로 불렸듯이 아시아 이주 노동자들의 이름은
알리라는 기호로 흔히 유통되었던 것이다. 아시아 이주 노동자들은 다
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작가들은 알리라는 이름을 왜
선호해 애용했을까. 과거에 유명했던 무하마드 알리라는 권투 선수에
게서 영향받은 것도 있겠지만 아시아 이주 노동자를 자세하게 알지 못
하는 상황이 낳은 부산물이다. 최근에 창작된 다문화 소설에서 알리라
는 이름 대신에 좀더 다양한 이름들이 등장하는 것은 한국인이 다른 문
화에 대해 좀더 진전된 이해가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제 아시아
이주 노동자들은 알리 이외에 고유한 이름으로 불려지기를 욕망한다.
   알리, 알리. 제발 졸지 말고 이 글 끝까지 읽어! 나, 알리 아닌데…….
그럼, 뭐지? 독자들이 이렇게 의문을 품은 데에서 다문화 소설의 여행
은 시작된다.


2. 혼혈인과 단일민족의 신화
   한국은 1945년 해방과 함께 진주한 미군과의 만남을 통해 이질적인
서구문화와 대규모적으로 키스했다. 한국전쟁과 종전, 그리고 이어지
는 미군의 장기 주둔은 서구문화가 홍수처럼 밀려오는 결정적 계기를
제공했다. 양키문화로 대변되는 서구문화의 유입은 전통적 질서의 동
요와 서구문화의 본격 유통을 의미했다. 한국문화와 미국문화의 급작
스러운 동거시대를 육체적으로 각인시켜 보여준 것은 바로 혼혈인의
출현이다. 한국은 혼혈인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전략을 통해 단일민족
의 신화를 사수하고자 했다. 그 결과 한국 여성과 미군 사이에서 태어
난 혼혈인은 한국사회에서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유령이 되었
다. 그런데 1990년대 이후 한국의 농촌 노총각은 결혼할 여성이 부족
해 제때에 결혼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농촌 노총각은 어쩔
수 없이 조선족 여성이나 아시아 여성과 국제결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의 경우 과거 양공주와 미군 사이에서 태
어난 혼혈인에 비해 배제와 차별의 강도가 상대적으로 약하다. 그럼에
도 불구하고 한국 남성과 아시아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도 정도
의 차이는 있지만 배제와 차별의 대상이 된다. 이것은 혼혈인의 문제가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임을 여전히 말해준다. 다문화 소설에서
혼혈인들이 주로 주거하는 공간은 동두천『( 거대한 뿌리』), 철거지역인
빈민촌『( 플루토의 지붕』,『 이슬람 정육점』), 변두리 공장 지대「( 코끼
리」)로 등장한다. 이것은 혼혈인의 문제가 사회적 현상만이 아니라 경
제적 문제와 결부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김중미의 장편『거대한 뿌리』(2006)는 현재의 이주 노동자 문제와
혼혈인 문제를 함께 다룬 문제작이다. 소설의 주인공 김정원은 인천 변
두리 지역에서 놀이방을 하며 이주노동자의 문제와 접하게 된다. 김정
원은 이웃에서 살던 빈곤층의 정아가 네팔 노동자 자히드와 사랑해서
아기를 가지는 사건을 상담하면서 과거의 기억과 조우하게 된다. 김정
원은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살았던 동두천을 회상하면서 소설의 서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동두천은 한국문화와 이질적인 미국문화가 뒤
섞인 잠뽕 지대이다. 한국전쟁 이후 동두천 사람들은 미군을 상대로 몸
을 팔거나 상품을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동두천은 한국이 지배하는 영
토였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권력보다 미군의 권력이 지배하는 공간이
다. 김정원은 미군의 양녀가 되어 미국으로 떠난 초등학생 반 짝궁 임
경숙, 미군 흑인 병사와 결혼해 혼혈아 제이콥을 낳은 육촌 언니 윤희,
정원의 첫사랑 상대인 혼혈아 이재민, 다양한 양공주와 미군의 폭행 등
의 사건을 떠올린다. 특히 동두천의 상징인 양공주와 혼혈아들은 한국
사회의 차별과 냉대 속에 빈곤층을 벗어나지 못한 채 대개 불행한 삶을
살았다. 동두천의 혼혈인은 한국인의 피가 섞였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인으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채 주변부의 삶을 살아야 했다.
   김재영의 단편「코끼리」(2004)에서 열세 살의 주인공 소년 아카스는
네팔 아버지와 조선족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이다. 아카스는
한국사회에서 인정받는 혼혈인의 경우가 아니다. 아카스는 가부장적
순혈주의에 따르면 한국인이 아니라 네팔인이다. 네팔 아버지와 아카
스는 십여 년 전까지 돼지축사로 쓰였다는 낡은 건물에서 살고 있다.
이들의 주거지가 과거 돼지축사였던 곳으로 설정된 것은 한국사회에서
이주 노동자와 혼혈인이 인간 대접을 못 받고 짐승처럼 차별받으며 살
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소년은 한국에 네팔 대사관이 없어 아버지가
혼인 신고를 못했다. 그래서 소년은 호적도 없고 국적도 없다. 한국의
초등학교에 다니지만 정식 학생 신분이 아니라 청강생 신분이다. 아카
스는 초등학교 짝인 소영이의 손등에 우연히 손을 접촉했다고 소영이
오빠에게 폭행을 당한다. 소년의 아버지는 한국 아이가 때리거든 피하
지 말고 맞아주라고 이야기한다. 아버지는 다수자가 강압적 지배를 하
는 한국사회에서 맞서 싸우는 것이 오히려 손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소년은 아버지의 말을 거부하고 부당한 처사에 맞서 싸우겠다
고 말한다.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아카스는 백인처럼 피부가 하얘지
기를, 최소한 한국인처럼 되기를 열망했다. 아카스는 백인이라고 하면
한국인들이 차별하지 않고 동경의 시선을 보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
문이다. 한국사회에서 작동하는 인종적 차별주의는 어린 아카스에게
지울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주었던 것이다. 아카스가 슈퍼에서 물건을
훔치면서 죄의식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은 배타적 한국사회가 혼혈
인을 반사회적 타자로 만들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한국 사람들은 단일민족이라 외국인한테 거부감을 갖는다고?
그래서 이주 노동자들한테 불친절한 거라고? 웃기는 소리 마. 미국
사람 앞에서는 안 그래. 친절하다 못해 비굴할 정도지. 너도 얼굴
만 좀 하얗다면 미국 사람처럼 보일 텐데…….”
   그 뒤로 나는 저녁마다 물에 탈색제 한 알을 풀어 세수했고 저녁
이면 내가 얼마나 하얘졌나 보려고 거울 앞으로 달려갔다. 푸른 새
벽 공기 속에서 하얗게 각질이 일어난 내 얼굴을 볼 때면 가슴이
설레었다. 「( 코끼리」, 17쪽)


   김려령의 장편『완득이』(2008)에서 주인공인 고등학생 완득이는 난
쟁이 한국인 아버지와 베트남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이다. 엄마
의 가출 속에 난쟁이 아버지는 카바레에서 춤추는 쇼를 하며 완득이를
어렵게 키운다. 완득이는 한국인과 비슷한 외모를 지녔지만 주변 사람
들과 제대로 소통하지 못한 채 자폐적 세계에 갇혀버린다. 고등학교 1
학년 담임을 맡은 동주는 시니컬한 언어를 통해 자폐적 세계에 머물러
있는 완득이를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한다. 난쟁이 아버지가 완득에게 육
체적 생명을 주었다면, 욕쟁이 동주 선생은 완득이에게 사회적 생명을
주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동주의 부추김 속에 완득이는 베트남 친엄마
를 만나고, 여자친구를 사귀고, 킥복싱을 배우면서 사회적 질서를 받아
들인다. 완득이와 완득이 아버지는 각자가 좋아하는 킥복싱과 춤을 인
정하는 다양성의 공존을 보여준다. 아버지와 완득이는 열등콤플렉스
를 지녔다는 점에서 상호 닯아 있다. 완득이 주변에는 사회의 기준으로
보아 무엇인가 결핍된 존재들이 모여 있다. 이 결핍된 존재들은 서사의
진행 속에 상대방을 배려하면서 다름을 인정하는 다문화주의 단계로
나아간다. 혼혈인을 형상화한 기존의 소설에서 혼혈인들은 차별과 배
제의 고통 속에 불행한 삶을 고통스럽게 살아갔다. 그런데 완득이는 교
사인 동주와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통해 희망을 꿈꾸며 성장한다. 『완
득이』는 이주 노동자와 혼혈인에게 절망보다 희망을 떠올리게 하는 텍
스트이다. 이것은 그만큼 다문화적인 생각이 한국사회에 퍼져나가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동안 한국소설에서 혼혈인들은 성장한 ‘어른’보다 ‘혼혈아’의 형
태로 등장했다. 김재영의「코끼리」에서 아카스, 한수영의『플루토의
지붕』에서 민수, 김중미의『거대한 뿌리』에서 조재민, 김려령의『완득
이』에서 완득이는 초등학생이거나 중고등학생의 연령대로 등장한다.
이들 혼혈인들은 아직 다 성장하지 못했기에 당대 한국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객관적으로 파악해 구체적으로 투쟁하기 곤란하다. 현재의 다
문화소설이 좀더 풍성해지려면 ‘혼혈아’가 아니라 다 큰 ‘혼혈인 어
른’이 중심적으로 활동하는 소설이 나와야 한다. 소설의 시점에 있어
서도 주변 사람의 눈에 비친 혼혈인이 아니라 혼혈인이 주인공인 1인
칭 주인공 시점이나 사회를 총체적으로 제기할 수 있는 3인칭 전지적
시점이 채택되어야 한다.


3. 국제결혼, 결핍된 사랑의 판타지
   현대인의 사랑은 국경과 계급을 초월한다는 낭만적 판타지를 신봉
한다. 우리는 영화나 소설에서 쉽게 이루어질 수 없는 남녀가 만나 애
절한 사랑을 나눌 때 감동하면서 눈물을 흘린다.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타이타닉」(1997)은 이러한 사랑의 판타지를 탁월하게 보여주었다. 하
지만 현실에서 국경과 계급을 초월한 사랑은 쉽지 않다. 낭만적 사랑은
현실적 입장에서 위험한 사랑이다. 그래서 우리는 현실에서 안전한 사
랑을 대개 선호한다. 같은 민족 구성원과 비슷한 계층의 배우자가 선택
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그런데 한국 여성의 농촌 기피 현상과
결혼 적령기 여성의 부족은 농촌 노총각의 국제결혼을 부추겼다. 황병
국 감독의「나의 결혼 원정기」(2005)는 38세의 노총각 홍만택이 우즈
베키스탄 색시를 맞이하기 위해 우즈베키스탄으로 결혼 원정을 떠나
겪는 다양한 사건을 그린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 노총각 홍만택은 맞선
대상보다 통역관인 북한 출신의 김라라에게 사랑을 느낀다. 이 둘의 사
랑은 탈북자 대열에 김라라가 동참하여 한국으로 넘어오면서 행복한
결실을 맺는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처럼 애절한 사연의 사랑은 쉽게 발
생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한 남성과 여성의 운명적 만남과 연애, 그리고
결혼은 현대판 사랑의 메뉴얼이다. 하지만 한국의 노총각과 아시아 여
성 사이에서의 결혼은 이런 낭만적 사랑의 공식을 따르지 않는다. 이들
남녀의 결혼은 사랑이 아닌 조건 대 조건의 만남이다. 한국의 노총각들
은 아시아 여성을 배우자로 삼기 위해 중매비로 일정한 돈을 지불한다.
아시아 여성들은 자국보다 잘사는 한국에 시집가기 위해 배우자 남편
이 열악한 조건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결혼한다. 국제결혼이 남녀간
의 애정이 전제된 것이 아니기에 결혼 이후에 많은 갈등을 겪을 가능성
이 높다. 문화적 차이, 원활하지 않은 언어 소통, 연령 차이 등은 국제
결혼한 부부를 위기로 빠뜨리게 하는 대표적 함정들이다. 다문화 소설
에서 2000년대 전반까지는 주로 조선족 여성과 결혼이, 2000년대 후
반부터는 베트남과 필리핀 여성으로 대표되는 아시아 여성들과 결혼이
많이 등장했다. 이것은 조선족 여성보다 아시아 여성과 결혼하는 한국
인들이 점차 많이 늘게 된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한국인이 국제결혼의 배우자로서 먼저 선호했던 것은 같은 한국어
를 쓰는 조선족이었다. 피의 동질성과 의사소통의 자유로움이 조선족
선호 현상을 낳았던 것이다. 한국의 남성과 조선족 여성의 국제결혼이
등장하는 소설은 김인숙의「바다와 나비」, 천운영의『잘 가라, 서커
스』, 공선옥의『유랑가족』이다. 김인숙의「바다와 나비」(2002)에서 25
세의 조선족 이채금은 마흔 살이 넘은 한국인 야채업자와 선을 보고 결
혼해 한국으로 온다. 열다섯 살 이상의 연령 차이가 발생하는 이들 부
부가 제대로 된 의사소통을 하며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을까. 한
국에서 식당의 종업원으로 일하는 이채금의 엄마가 자신의 딸을 중년
남자와 결혼시키려고 하는 것은 딸에게 한국 국적을 취득시켜 자신이
불법 체류자라는 신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이다. 이 소설에서 결혼의
조건은 민족적 동질성이 아니라 돈의 유무이다. 천운영의 장편『잘가
라, 서커스』(2005)에서 중국 조선족 림해화는 발해를 연구하는 자신의
남자친구가 한국으로 떠나서 오랫동안 소식이 없자 그와 좀더 가까워
지고 싶다는 이유로 중매를 통해 낯선 한국 남성과 결혼한다. 림해화의
배우자인 한국 남성 이인호는 젊은 시절에 서커스 연습을 하다가 사고
를 당해 목소리를 잃은 지적 장애인이다. 림해화는 조선족이기에 한국
인들과 의사소통하는 데에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문제는 남편이 지
적 장애인이기에 림해화와 제대로 된 의사소통을 하기 어렵다. 당뇨병
을 앓던 시어미가 죽고, 정신지체 남편은 림해화에게 더욱 집착하는 행
태를 보인다. 이 폭력적인 집착을 견디지 못하고 림해화는 가출하고 만
다. 이인호의 자살과 림해화의 유산은 불행한 결혼의 결과물이다. 공선
옥의 연작소설인『유랑가족』(2005)에서 중국 조선인족 장명화는 바람
을 피운 남편 용철이에 대한 배신감과 간암에 걸린 오빠 치료비 때문에
한국의 농촌 노총각 기석과 사기 결혼한다. 장명화는 돈을 더 벌기 위
해 가출을 하고, 가리봉동에서 노래방 가수로 일하다가 강도에게 타살
된다.
   서성란의 단편「파프리카」(2007)와 이시백의 연작소설인『누가 말
을 죽였을까』(2008)는 조선족 여성이 아니라 아시아 여성과 결혼한 부
부를 등장시킨다. 이시백의「새끼야 슈퍼」『( 누가 말을 죽였을까』)에서
동산슈퍼의 주인인 평식은 가구공장에 근무하는 이주 노동자들이 가게
에 올 때마다‘새끼야’라는 욕을 썼다. 농촌에 사는 평식은 외국인 이
주 노동자 때문에 가게도 잘되고 필리핀인 안젤라를 아내로 맞이하기
도 한다. 평식은 아시아 이주 노동자들에게 일상적으로 욕을 하는 근거
없는 우월주의에 빠진 존재이다. 아내 안젤라는 정신적, 물질적 폭력을
행사하는 평식에게 염증을 느끼고 도망간다. 서성란의 단편「파프리
카」는 베트남 여성인 츄옌(한국명 수연)과 마흔 살이 넘은 한국의 농촌
노총각 중일이 국제결혼을 하여 사는 모습을 리얼리티 있게 보여준다.
츄옌은 한국의 농촌에 온 지 1년 반이나 되었지만 아직도 한국문화에
서툴다. 작가 서성란은 온실 안에서 정성을 들여 키워야만 잘 자랄 수
있는 파프리카라는 작물을 일종에 베트남 여성 츄옌과 등가물로 만든
다. 츄옌은 아는 사람도 많지 않고, 한국 음식도 잘 못하고, 시어머니와
의 관계도 여전히 원만하지 않다. 중일은 츄옌이 다리를 다친 것을 알
고 지극정성으로 간호하는 모습을 통해 다름을 넘어 소통하려는 진정
성을 보여준다. 이 소설에서 츄옌의 임신이 늦어지는 것은 이 부부가
아직 제대로 소통하지 못한 절름발이 관계임을 알려주는 복선이다. 츄
옌은 한국어를 배우면서 한국문화의 동일성을 학습했다. 하지만 반면
에 중일은 베트남 언어와 문화를 공부한 적이 없다. 여기에서 중일의
사랑은 민족적 동일성에 기반한 가부장적 틀을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
여준다.
   한국의 국제결혼에서 나이 많은 한국 남성과 나이 어린 아시아 여성
의 중매 결혼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박범신의 장편『나마스테』
(2005)는 이것과 반대로 전개된다. 이 소설에서 한국 여성인 서른 살의
신우는 실연당해 앓아 누운 스물다섯 살의 네팔 청년 카밀을 간호하면
서 사랑을 느끼게 된다. 기존의 다문화 소설이 조건 대 조건의 만남에
서 성립되었다면『나마스테』에서는 남녀간의 열정적 사랑에 기초해 있
다. 신우와 카밀의 만남과 사랑의 전개는 현실적 개연성보다 이주노동
자의 문제를 국제결혼과 결부시켜 이야기하려는 작가 박범신의 개입
속에 이루어진다. 『나마스테』는 이주 노동자의 문제를 미국의 인종차
별주의, 한국의 단일민족주의와 연관시켜 서사를 총체적으로 전개한
다. 신우 집안은 예전에 미국으로 이민을 가 흑인 거주 지역인 사우스
센트럴에서 살았다. 1992년 로드니 킹 사건에 의해 촉발된 흑인 폭동
속에 아버지는 마켓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들었고, 막내 오빠는 총을 맞
아 즉사했고, 둘째 오빠는 중상을 입었다. 살아난 둘째 오빠는 “흑인,
백인, 멕시칸, 중남미계뿐만 아니라 타민족에 대해 무조건적인 증오감
과 불신”을 갖게 된다. 신우네 가족은 백인 중심의 미국 사회에서 폭력
의 희생양이 되었던 것이다. 신우가 카밀에 대해 친밀감을 가졌던 것도
같은 소수자로서의 체험을 공유한 동병상련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김
중미의 장편『거대한 뿌리』에서 아버지에게 폭행을 당하며 성장한 한
국 여성 정아와 한국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손가락마저 잘린 네팔
청년 자히드가 서로 사랑하게 된 것도 유사한 처지라는 동질감에서 기
인한다.
  『나마스테』에서 신우는 카밀의 아기를 우연히 임신하게 되고, 카밀
은 신우와 함께 살게 된다. 카밀은 불법 체류 노동자를 탄압하는 한국
정부에 맞서 투쟁하게 되고, 신우의 집은 불법 체류 노동자의 임시 대
피소가 된다. 카밀은 이주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지만 한국 정부는 이
것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농성 중인 이주 노동자들을 탄압한다. 카
밀은 소설의 결말 부분에서 옥상 위에서 분신해 투신함으로써 자신이
말한 말의 무게를 지키려고 한다. 이 장면은 노동자 전태일의 분신사건
을 연상시킨다. 신우는 옥상에서 불꽃이 되어 떨어지는 남편 카밀을 붙
잡으려고 하다가 뇌에 손상을 입고 10년 동안 식물인간의 상태였다가
숨진다. 옥상에서 분신해 떨어지는 남편과 이것을 잡으려고 온몸을 던
진 아내 신우의 모습은 극적인 사랑의 장면이다. 이처럼 이 소설에서
극적인 장면은 여러 번 나온다. 작가 박범신은 극적 사건의 연속을 통
해 이주 노동자의 문제를 환기시키는 서사 전략을 보여주었다. 신우와
카밀은 비록 죽었지만 이들의 피를 이어받은 자식인 애린이 성장하는
장면의 삽입은 통속소설에서 흔히 보여주는 패턴이다. 박범신은『나마
스테』에서 기존의 다문화 소설에서 보여주지 못한 낭만적 사랑의 판타
지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사랑의 운명적인 판타지를 위해 카밀을 지나
치게 신비화하거나 극적 사건을 연이어 배치한 것은 소설의 리얼리티
를 손상시켰다. 카밀이 분신해 투신하는 장면에서 미학적 감동이 약화
된 것도 소설적 리얼리티와 자연스러운 형상화가 미흡했기 때문이다.


4. 이주 노동자와 배타적 차별
   다문화 소설에서 이주 노동자는 한국인에 의해 일방적으로 피해를
받는 약자로 자주 등장한다. 이주 노동자를 탄압하거나 차별하는 한국
인은 단일민족 신화의 맹신자이거나 근거 없는 우월감에 사로잡힌 폭
력적 가해자이자 지배자이다. 한국은 1990년대 이후 제3세계 아시아
노동자들을 대거 받아들였다. 일부 한국의 중소기업주들은 자신보다
못 사는 나라에서 온 이주 노동자를 인간 대접을 제대로 해주지 않았
고, 부당 해고와 임금 체불 등을 공공연하게 했다. 이주 노동자가 불법
체류자의 신분일 경우 이것을 악용하여 이주 노동자를 착취한 한국인
악덕 기업주도 있었다. 악덕 기업주들은 아시아 노동자의 임금을 착취
하여 발생한 잉여를 통해 더욱 많은 이윤을 획득했다. 육상효 감독의
<방가? 방가!>(2010)에서 주인공 방태식은 취업에 연속으로 실패하고
난 이후 부탄인으로 변신해 취업에 성공한다. 한국인이면서 부탄인 행
세를 하는 방가의 눈에 이주 노동자가 처한 열악한 현실이 코믹하게
펼쳐진다. 이 영화는 88만 원 세대의 실업과 이주 노동자의 문제를 함
께 제시한 문제작이었다.
   한국은 이주 노동자를 인간이라기보다 교환가치의 기계 부품으로
생각했다. 한국은 아시아 이주 노동자를 단기간에 부려먹고 용도가 다
하면 방출할 생각이었다. 한국 정부는 아시아의 다른 인종과 국민이 한
국에 장기간 근무하면서 생길 수 있는 다양한 문제를 떠안기 싫어했다.
코리안드림을 꿈꾸고 많은 돈을 들여서 한국에 온 이주 노동자들은 단
기간만 일하고 떠나기는 힘들었다. 여기에서 불법 체류 노동자가 필연
적으로 생겼다. 한국의 중소기업 입장에서도 저임금의 숙련된 노동자
가 얼마 못 가 자국으로 돌아가는 것은 이윤의 마이너스였다. 그래서
한국의 중소기업들은 불법 체류 노동자를 고용했다. 이주 노동자가 한
국에 장기간 체류하면서 본국보다 한국에 정착하려는 이주 노동자도
생겼다. 이것은 아시아 노동자를 단기간 활용하여 귀국시키려는 한국
의 정책과 정면 배치되는 것이었다. 불법 체류자의 양산, 단속과 추방
은 연례적인 행사가 되었다.
   다문화 소설은 이주노동자를 서사에 부분적으로 등장시켜 탐문하는
것에서 출발했다. 강영숙의 단편「갈색 눈물방울」(2004)에서는 실연한
젊은 한국 여성이 치질을 앓고 있는 이웃집 스리랑카 출신의 외국인 여
성을 도와주는 장면이 나온다. 이 소설은 한국의 젊은 여성의 눈에 비
친 이야기를 그리는 1인칭 주인공 시점이다. 1인칭 주인공 시점은 주인
공이 경험한 것만 알 수 있다.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애용은 작가가 한
국인을 중심으로 서사를 전개한 탓도 있지만 아시아 노동자에 대해 자
세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3인칭 전지적 시점의 경우 작가가 외국인
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면 쓰기 어렵다.
   박범신의『나마스테』는 한국 여성의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서사가
전개된다. 이 소설은 한국 여성과 네팔 남성의 사랑만이 아니라 이주
노동자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카밀은 이주 노동자인 애인
사비나를 찾으러 한국에 왔다가 이주 노동자가 된다. 아시아 이주 노동
자들은 임금 체불, 성폭행, 불법 체류자로 내몰린 채 한국사회의 차별
과 배제를 체험한다. 『 나마스테』는 기존의 다문화 소설에 비해 이주
노동자들의 열악한 상황을 상당 부분 전달하고 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중요 등장인물인 카밀이 20대의 성인으로 자신이 직면한 현실을
깨닫고, 이것과 맞서 구체적으로 싸울 수 있는 연령대이기 때문이다.
카밀은 그 자신이 다양한 한국의 공장을 전전하면서 외국인 노동자가
처한 열악한 현실을 직접 체험한 존재이다. 그래서 그는 한국사회의 구
조적 모순을 발견할 수 있었고, 시위와 농성 더 나아 분신과 투신으로
맞서 싸울 수 있었던 것이다. 카밀이 말하는 다음과 같은 모순은 한국
이 이주 노동자를 어떻게 대우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한국에는 법, 없어요.
   한국 사람 지켜주는 법만 있어요. 미국 사람, 프랑스 사람, 영국
사람, 지켜주는 법 있어요. 그러나 네팔 사람, 스리랑카 사람, 필리
핀 사람, 방글라데시 사람 지켜주는 법 없어요. 관리회사도 마찬가
지고 중기협도 마찬가지고 노동부도 마찬가지예요. 자기들도 아시
아 사람인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학바가 울면서 하던 말이 생
각나요. 개나 고양이만도 못하다면서요. 학바의 아버지는 공무원
이고 학바는 2년짜리 대학에서 컴퓨터 배웠어요. 영어도 잘하고 자
격증 두 개나 있어요. 그렇지만 한국 사람들, 학바를 사람이 아니
라 짐승이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네팔 사람이니까요. 자기들하
고 다른 종자니까요. 다른 종자를 보면 괜히 화가 난대요. 학바 회
사관리부장이한말이에요. (박범신,『 나마스테』, 84쪽)


   김려령의『완득이』에서 중심인물은 완득이와 고등학교 선생인 동주
이다. 동주는 이 소설에서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을 인간 취급하지 않고
짐승처럼 취급하는 한국을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진보적 지식인이다.
동주의 아버지는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사장이다. 한국에서 동주는 남
부럽지 않게 살 수 있는 계층에 속한다. 그런데 동주는 베트남에서 온
티로 누나에 대한 아버지의 부당한 처사를 보고 분노한다. 공장 노동자
였던 티로 누나는 판금하다가 절단기에 손가락이 잘려 귀국을 당했다.
동주의 아버지는 티로를 제대로 치료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월급
도 안 주고 쫓아버렸다. 동주는 악덕 기업주인 아버지를 목격하면서 그
와 같은 삶을 살지 않기 위해 이주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데에 앞
장선다. 교사인 동주는 혼혈아 학생인 완득이가 올바른 삶을 살도록 유
도하고, 외국인이주노동자를위한쉼터를마련한다.『 완득이』가기존
의 다문화 소설과 차이가 나는 것은 이주 노동자를 위해 헌신적으로 노
력하는 양심적 한국인이 중심인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동주는 2000
년대 후반 이주 노동자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한국의 진보적
지식인을 상징한다. 동주는 파격적인 행동을 통해 기존의 틀을 깨부수
고 이주 노동자와 한국인이 연대하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박
범신의『나마스테』에서는 한국인과 이주 노동자의 연대가 추상적 형태
로제시되었는데,『 완득이』는 좀더 진전된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다문화 소설에서 이주 노동자들은 한국인에게서 일방적으로 피해를
받는 선량한 약자로 대개 등장한다. 그렇다면 아시아 외국인들은 모두
착한 마음만을 지닌 천사표들일까. 손홍규는「이무기 사냥꾼」(2005)에
서 기존의 아시아 외국인 노동자와 다른 알리라는 외국인을 등장시킨
다. 알리는 죽은 척을 기가 막히게 잘하는 특기(일종의 사기술)를 갖고
있다. 알리가 이런 특기를 갖게 된 것은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죽은 척
을 해서 죽을 위기에서 벗어난 전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알리는 이런
특기를 활용해 한국인 용태와 함께 임금 체불한 업주나 한국인에게 사
기를 쳐 보상비를 뜯어낸다. 용태는 알리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함께 번 돈을 혼자 독식하려고 계획한다. 하지만 영리한 알리는 용태
몰래 돈을 먼저 가지고 도망친다. 이런 알리의 약삭빠름은 약자의 생존
전략이다. 이 소설에서 알리는 더 이상 천사표가 아니다. 김재영의「코
끼리」도 이주노동자를 천사형 인물로 설정하는 도식적 패턴을 거부한
다. 이 소설에서는 돈 때문에 같은 이주 노동자의 돈을 훔치거나 강도
질을 하는 악인형의 인물도 등장한다.


5. 다문화 소설과 공존의 윤리
   1990년대 이후 아시아 이주 노동자와 결혼 이민자가 한국에 많이 들
어오면서 다문화 소설이 창작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 창작
된 다문화 소설은 한국인인 주인공을 보조하는 조선족이나 이주 노동
자가 주변인물로 등장했다. 이 시기의 다문화 소설은 이웃 사람이나 구
경꾼의 입장에서 바라본 조선족이나 이주 노동자의 모습을 단편적으로
형상화했다. 이 소설들의 시점은 작중 주인공인 한국인의 눈을 통해 본
1인칭 주인공 시점이 대부분이었다. 소설의 내용을 보면 김인숙의「바
다와 나비」와 강영숙의「갈색 눈물방울」처럼 잘사는 한국인이 못사는
아시아 외국인을 동정과 연민으로 도와주는 형태였다. 따라서 한국인
과 외국인의 관계는 수평적 관계가 아니라 수직적 관계에 가까웠다. 이
것은 다문화주의에 입각한 진정한 다문화 소설이라고 볼 수 없다.
   제대로 된 다문화 소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중반부터이
다. 김재영의「코끼리」, 손홍규의「이무기 사냥꾼」, 박범신의『나마스
테』, 김중미의『거대한 뿌리』는 피상적 수준을 넘어 외국인의 문화를
심층적으로 보여주거나 외국인의 보편적 권리를 옹호하고 있다. 이들
소설에서 이주 노동자나 혼혈인은 주변인물이 아니라 중심인물로 등장
해 구체적인 진실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소설들은 이주 노동자 등을
긍정적으로 그리려는 작가의 입장이 지나치게 강하다 보니 작중인물을
지나치게 신비화하거나 천사형 인물을 등장시키는 도식성을 노출하기
도 했다. 물론 김재영의「코끼리」와 손홍규의「이무기 사냥꾼」은 이분
법적 구도에서 탈피해 좀더 다양한 세계를 보여준다. 2000년대 중반
에 나타난 다문화 소설은 다문화주의 시각에서 대상 텍스트를 그리려
는 의도를 보였지만 단편의 파편적 한계, 작가의 과도한 개입이라는 문
제점을 보여주었다. 2000년대 후반에 나온 김려령의『완득이』는 기존
의 다문화 소설이 보여준 한계를 뛰어넘어 연대와 다양성을 말하면서
미학적 완성도도 높다. 요즘의 다문화 소설은 한국인을 넘어 혼혈인의
시점에서 다문화적 환경을 바라보는 시선의 확장을 보여주고 있다.
   다문화에서 중심 대상은 아시아 이주 노동자, 탈북자인 새터민, 조
선족, 결혼 이민자, 혼혈인이다. 한국 정부는 탈북자인 새터민, 조선족,
아시아 출신 결혼 이민자, 혼혈인은 같은 피를 일정 부분 공유하고 있
다면서 기존의 민족 공동체로 수용하고자 한다. 한국어와 전통적 한국
문화의 교육은 민족 동일성의 자장으로 이들을 포섭하려는 전략이다.
하지만 이것은 진정한 다문화주의가 아니다. 다문화주의는 민족의 동
일성으로 수렴시키는 것이 아니라 각자 고유의 문화를 인정하면서 공
존하는 것이다. 다문화 연구자 김희정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결혼 이
민자와 혼혈인 등 한국인과 혈족 관계에 있는 외국인에 대해서는 다문
화 정책이라는 이름하에 적극적인 사회 통합 정책을 펼치면서, 화교와
이주노동자 등에 대해서는 차별 혹은 무관심의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한국 정부는 결혼 이민자에 있어서도 한국
남성과 아시아 여성의 결혼은 따스하게 감싸안으려 하지만, 한국 여성
과 아시아 남성 이주 노동자의 결혼은 무관심하게 방치한다. 이것은 기
존의 다문화 정책이 순혈주의에 기반한 가부장제와 결탁해 있음을 보
여준다. 기존의 다문화 소설에서도 박범신의『나마스테』와 김재영의
「코끼리」를 제외하고는 한국 남성 대 외국인 여성이라는 기존 구도를
반복해왔다. 이러한 구도의 재생산은 민족 동일성의 해체가 아니라 확
대 강화에 기여할 가능성이 높다.
  다문화 소설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소설의 시점, 작중인물의 연령대,
총체적 현실의 구현 등 다문화 소설이 해결하고 극복해야 할 과제가 많
다. 한국의 작가들은 조금 미흡하지만 진정한 다문화 소설의 창작을 위
해 오늘도 고투하고 있다. 그들의 작업은 개별 작가의 책임이기도 하지
만 다문화주의의 확산이라는 공통된 목표를 향해 시민단체와 연대할
필요성도 있다. 다문화주의는 보편적 민주주의의 인권 의식이 신장될
때 화려하게 꽃필 수 있다. 결국 다문화주의의 확산은 한 사회의 민주
주의 정도를 측정하는 리트머스 시험지이기도 하다. 다문화 소설은 우
리에게 외국인들과 어떻게 공존해 살아가야 할지를 질문한다. 이 질문
은 오늘만이 아니라 미래에도 계속될 질문일 것이다. 한국은 다민족,
다인종 국가로 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알리! 이주 노동자들은 알리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다문화 소
설을 읽으면서 그 사실을, 그 진실을 확인할 수 있다. 나마스테, 나마
스테!

 

 


최강민  ----------------------------------------------------------------------
2002 『조선일보』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
반연간『작가와비평』동인 역임.
평론집으로『문학 제국』,『 비공감의 미학』이 있음.
현재 경희대, 선문대 강사.

 

 

사업자 정보 표시
| | | 사업자 등록번호 : -- | TEL : -- | 사이버몰의 이용약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