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隨筆】

하늘 2019. 11. 4. 06:30



 신영의 세상 스케치 617회

 40년 만에 만난 '초등 친구들'과 함께...

 


보스톤코리아  2017-10-16, 13:08:30 






 

 
"반갑다, 친구야!^^"
경기 북부 시골 작은 마을에 살던 '촌 아이들'이 모였다. 만나자마자 화들짝 웃으며 서로를 반갑게 안아주는 해맑은 친구들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40년이 되어서야 어릴 적 친구들을 만났다. 한 친구는 '시카고'에 살고 나는 '보스톤'에 살고 다른 한 친구는 '노스캐롤라이나'에 살고 있다. 미국에 사는 세 친구가 이번 가을에 모두 한국 방문 중이다.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온 친구는 다른 약속으로 오질 못해 못내 서운했다. 참으로 반가운 얼굴들 어른이 되어서 만난 모습이지만, 그래도 조금씩 어릴 적 귀여운 얼굴이 남아 있어 서로 알아볼 수 있었다. 

"왜 이렇게 살이 많이 쪘니?"
"나 주름이 많지?"
등등~~ 그 어떤 물음이나 질문도 어색하지 않은 그런 우리들이다. 그렇게 깔깔거리며 화들짝 거리던 '초등학교 아이들'로 돌아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40년 세월이 무색하리만치 어린 시절로 돌아가니 정말 아이처럼 천진스럽고 해맑은 영혼이 되고 말았다. 모두의 공통분모가 있으니 더 많은 것들을 읽어낼 일도 찾아낼 일도 없으니 참으로 편안해서 좋았다. 이래서 다른 이들이 얘기하는 것처럼 초등 친구들이 좋다고들 하는가 싶었다.
이렇게 서로 어릴 적 기억을 한둘 떠올리며 이야기는 무르익어갔다.

"혜숙아, 너는 착하고 눈물이 참 많았던 아이였어!"
"영선아, 너는 키가 작고 조용한 아이였는데..."
"영자야, 너는 야무지고 공부를 잘했던 우리 반 부반장이었지!"
"병란아, 너는 키가 크고 눈이 큰 넉넉하고 점잖은 아이였어!"
"남예야, 너는 소리 없이 조용하고 자기 일을 하는 아이였지!"
"우연아, 너는 우리 반에서 참 예쁘고 귀여운 아이였어!"

친구들이 예쁘고 귀여웠다던 우연이는 바로 나였다. 이 우연이란 이름에는 사연이 있었다.
1971년도에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했으니 졸업은 1977년 2월쯤 했다는 어렴풋한 생각이 든다. 이 친구들과 인연이 없었을 듯싶은 '우연'의 내 이름에는 '운명의 인연'이 이미 들어 있었다. 시골 마을에 몇 안 되는 친구들이 초등학교 입학 통지서를 받아 좋아했던 시절에 내게는 그 통지서가 전달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 이유는 한 살 터울 위의 오빠가 있었는데 낳자마자 잃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빠를 잃고서 우연히 생겼다고 엄마 해산관을 오셨던 큰이모가 내 이름을 '우연'이라고 지어주셨다고 들었었다. 그리고 호적에 다른 이름을 올리고 집에서는 '우연'이라 불리었다.

물론, 초등학교 6년을 '우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학교를 다녔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그 시절 시골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 아니던가. 그렇다, 한 살 터울의 오빠를 잃고 걱정이 되셨을 부모님께서 그해에 호적에 올리지 않고 한 해 늦춰 올리셨던 것이다. 그래서 통지서를 받지 못해 함께 뛰어놀던 동네 친구들은 가슴에 하얀 콧수건을 옷핀으로 꼽고 초등학교에 입학했는데 나는 입학 통지서가 없어 학교에 못 가니 그 답답한 가슴을 누가 알기나 했을까 말이다. 며칠을 울고 매달리니 엄마가 내 손을 잡고 교장 선생님을 찾았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우리 집에서는 부모님과 형제·자매들도 모두 '우연'이란 이름으로 불러준다. 물론, 중학교에 입학해서 두 달은 바뀐 이름으로 많이 혼동됐던 기억이 있다. 40년이란 세월이 흘렀어도 여전히 '우연'이란 이름으로 불러주는 친구들이 바로 초등학교 친구들이다. 친구 하나는 시카고에 살고 있고 남편이 그곳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또 한 친구는 노스캐롤라이나에 사는데 비지니스를 한다고 한다. 40년 만에 처음 만난 한국에 있는 친구들도 간호사가 있고 스킨케어 강사 그리고 청바지 공장을 크게 하는 친구와 직장에 다니는 친구가 있었다. 

모두가 각자의 길에서 열심히 사는 모습이 참으로 좋았다. 친구들과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다 보니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 선생님 얘기를 하게 되었다. 5, 6학년 담임을 하셨는데 우리들에게는 아주 특별한 수업을 해주셨던 기억이다. 그 어린 시절에 교실 밖에서의 수업을 많이 해주셨으며 자연과 함께하는 법과 철학을 그때부터 일러주셨다는 생각을 우리는 서로 나누게 된 것이다. 그 누구보다도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주셨던 '우리의 선생님'이셨다. 그 선생님과 친구들과 함께 도봉산 산행을 하기로 했다. 선생님과 40년 만의 해후를 기다리며...



[보스톤코리아 /여성칼럼 2017년 10월 13일]

 

작성자
신영의 세상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