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진·답사기/도봉구·도봉산(무수골)

도봉산고양이 2014. 8. 9. 20:17

 
* 도봉산에 숨겨진 비경, 무수골
무수골 느티나무는 서울시 보호수 10-3호로 추정 나이는 약 250여 년이다.
<보호수 지정 당시(1981년) 추정 나이는 215년>

나무의 높이는 약 22m, 둘레는 3.7m로 전주이씨 영해군 후손들이 관리한다.

 

 

 

 

 

 

 

 

 

* 호안공 이등과 의령옹주 묘역으로 인도하는 길
호안공 이등(1379~1457)은 개성이씨의 시조인 이개의 아들로 태조 이성계의 사위이다.
태조의 딸인 의령옹주와 혼인하여 계천위가 되었고, 호안공이란 시호를 받았다.
그의 묘역은 도봉구에서 가장 오래된 무덤으로 묘역으로 가는 길에 그의

후손들의 집이 있다. 집 앞에는 멍멍이들이 있는데, 그들의 호된

멍멍 소리로 묘역까지 들어가지 못하고 철수하고 말았다. (그래서 묘역 답사는 실패)

 

* 영해군파묘역 입구 (등산객/나들이객 휴식 시설과 논두렁이 펼쳐져 있음)

 

 

 

* 영해군파묘역으로 가는 숲길

 

 

 

* 영해군파묘역 안내문

 

* 무수골 안쪽에 자리한 영해군파묘역
영해군 이당(1435~1477)은 세종의 9번째 아들로 그가 이곳에 묻히자 무수골은 그의 후손들의 터전이 되었다.
영해군묘역에는 그의 장인인 신윤동을 비롯해 차남 이의, 손자 완천군 이희, 강녕군 이기,
증손 평성수 이질, 충노 김동(금동)의 무덤이 있다.
또한 서쪽 능선에는 따로 영해군의 장남 영춘군 이인, 증손 부원정 이이묘역이 있다.
이들 묘역은 15세기 왕족 묘역의 묘제와 석물의 변천과정을 알려주는 소중한 존재로
특히 근래에 새로 만든 석물이나 시설이 없어 당시의 무덤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 묘역 제일 밑에 자리한 충노 금동(김동)의 묘
김동은 강녕부정 이기의 노비이다. 연산군 시절 흥청에 속해있던 세은가이가 왕의 총애를 받자

그의 아비가 그 권세로 이기의 집을 빼앗은 일이 있었다. 그것으로도 모잘라 이기의 소실을

빼앗고자 이기가 종을 시켜서 자신을 욕한다고 거짓 호소를 하니 연산군이 크게 노해

이기와 그의 종 김동을 가두고 신문했다. 김동은 자신이 혼자 한 것일뿐, 주인은

모르는 일이라고 진술했는데, 6차례나 고문을 받았으나 말을 바꾸지 않았다.

결국 김동은 극형으로 처단되고 이기는 김동 덕부에 목숨을 부지했다.

1508년 김동을 표창하는 문려를 동네 어귀에 세우고 그의 자손들의 요역을 면제해 주었다.

그리고 3년 뒤에 집 앞에 정문을 세웠다.
이기는 자신을 구한 김동을 기리고자 묘역에 조촐하게나마 그의 묘자리를 마련해주었으며,
노비의 무덤으로 묘비까지 갖추고 있는 이 땅에 몇안되는 무덤으로 가치가 높다.

 

 

 

 

나는도봉산을 수도 없이 다녔지만,영해군의 묘 가 있다는것은,근간에 알았다,도봉 초등학교 앞에는,17번째 아들,
영해군 묘역 앞에는, 9번째 아들,어떤것이맞는겼인지 궁금 합니다.2020.10.05일 방문 함.
자세한건 아래 글을 참고해주세요

http://blog.daum.net/snowlove78/13759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