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진·답사기/북한산(서울 은평·종로·강북 구역)

도봉산고양이 2016. 1. 26. 11:56



★ 북한산(삼각산) 화계사 석가탄신일 야경 ★

북한산 동쪽에 자리한 화계사는 1522년 신월선사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신월은 서평군 이공의

도움으로 부허동에 있던 보덕암 건물 50칸을 가져와 절을 세웠다.

1618년 화재로 절이 몽땅 잿더미가 되었으며, 덕흥대원군 집안의 도움을 받아 1619년 중건했다.

19세기 중반에는 흥선대원군의 부인인 부대부인민씨의 외가집 원찰로 민씨부인과 대원군의

발길이 잦았으며, 화계사 승려인 만인은 대원군에게 지금의 남연군 묘자리를 추천해
그의 야망을 실현시키는데 도움을 주었다.

대원군의 야망대로 그의 아들이 왕위(고종)에 오르자 대원군의 두둑한 지원으로 절은

탄탄대로를 달았고, 1874년 왕자(순종)가 태어나자 명성황후와 신정익황후조씨,

효정황후 홍씨가 발원해 관음상을 봉안했다. 그 관음상을 봉안하고자 관음전을

짓는데 장인들이 앞다투어 건립에 참여하여 불과 며칠 만에 뚝딱 완성되었다.

1933년 7월, 한글학회 주관으로 한글맞춤법 통일안 마련을 위한 모임이 이곳에서 열렸으며,

그때 논의된 통일안은 그해 10월 발표되었다.

6.25전쟁 때는 다행히 총탄이 비켜가 화를 면했으며, 20세기 중반 이후에도 계속

중건을 하여 지금에 이른다.

화계사는 외국인 승려가 많이 있는데, 숭산이 미국에서 양이를 대상으로 열심히 한국불교를 포교했다.
풍요롭지만 정신적으로 방황하던 양이들, 기독교에 아주 진절머리가 난 양이들이 그의 설법에 크게

감명을 받았고, 그가 해외에 있는 동안 5만이 넘는 양이가 그의 가르침을 받았다.

숭산이 해외에 세운 선원은 30개 나라 120곳이 넘으며, 그의 열성적인 해외 영업으로

화계사를 찾는 외국인 승려가 늘어나 국제선원 등 그들을 수용할 별도의 공간까지 갖추었다.

화계사 국제선원 출신 양이 승려 중 그 유명한 현각이 있다. 그는 돈 많은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하버드대에서 신학을 공부했는데, 우연히 숭산의 설법을 듣고 크게 깨달은 것이

있어 신학을 때려치우고 화계사로 넘어와 승려가 되었다.

소장문화유산으로는 보물로 지정된 동종과 명부전 지장보살상, 지방문화재인 대웅전이 있으며,

400년 이상 묵은 느티나무 보호수가 절의 오랜 내력을 대변해준다.


* 작년 석가탄신일 저녁에 찾아간 화계사의 초파일 아경 (보화루 앞)


* 대적광전에서 바라본 연등 풍경

나무와 허공에 오색 연등을 대롱대롱 둘러 초파일 분위기를 크게 고조시킨다.

* 범종각에 걸린 등 (카톡에 나오는 이모티콘 같음)

* 범종각에 걸린 귀여운 부엉이 등

* 범종각에 걸린 연등과 온갖 등

* 화계사 대웅전

1866년에 지어진 조선 후기 건물로 석수 30명, 목공 100명이 수 개월만에 완성시켰다.

* 대웅전 주변 연등 풍경


* 장엄등으로 재현된 윤장대

윤장대는 책을 넣어두는 서고로 손잡이로 그를 돌리면 경전을 모두 이해한 것과 같다고 여긴다.

그도 그럴 것이 불교 경전은 어렵고, 옛날에는 글자를 아는 이도 적었으니 글을 익히지

못한 백성들을 고려한 일종의 영업 전술이다.

윤장대는 예천 대장전의 윤장대를 제일로 쳐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