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진·답사기/동작구·관악구·금천구

도봉산고양이 2017. 1. 10. 01:40



☆ 남현동 
미당 서정주의 집 ★

한때 사당동의 일원이었으나 동작구와 관악구의 분리로 인해 사당동에서 떨어져나간 남현동,
그 동네 서쪽 예술인마을에는 우리 귀에 익히 익은 유명한 현대시인이자 한때 혼까지

팔아먹은 친일파 시인 겸 이승만과 박정희 등 독재자 찬양 전문 시인,
미당 서정주의 집이 있다.

미당 서정주(1915~2000)는 전북 고창 출신으로 중앙고보와 고창고보를 나왔다.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벽'이 당선되면서 시인으로 등판, 시동인지인 '시인부락'을 창간했다.
왜정 후기에는 혼을 팔아먹고 친일짓거리를 일삼아 크게 말썽을 일으켰다.
1945년 이후 조선청년문학가협회 결성에 앞장섰으며, 1949년 한국문인협회 창립을 주도했다.
1954년에는 예술원 종신회원으로 추대되었고, 계속 동국대학교에서 시문학을 강의했다. 
1956년에 간행된  '서정주시선'에서는 '풀리는 한강 가에서','상리과원' 등의 작품으로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한과 자연과의 화해를 읊었고, '학', '기도' 등의 작품에서

원숙한 자기 통찰과 달관을 보여주고 있다. 서정주의 시는 '신라초'에 이르면서

새로운 정신적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 그에게 있어 초월적인 비전의
신화적인 거점이 되고 있는 신라는 역사적인 실체라기보다는
인간과 자연이 완전히 하나가 된 상상의 고향과도 같다. 서정주는 신라초에서
불교사상에 기초를 둔 신라의 설화를 제재로 하여 영원회귀의 이념과
선()의 정서를 부활시켰다.

1969년에 나온 시집 '동천'에서는 불교의 상징세계에 대한 관심이 엿보인다. '질마재 신화'는 시인 자신의
유년기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질마재에 얽힌 사연들을 이야기하듯이 풀어내고 있다.
'떠돌이의 시'에서는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통과 슬픔 등에
공감하는 시인의 모습이 나타나 있다. 서정주는 생의 본질적 문제들을
탐구함으로써 존재의 영원성에 도달하고자 하였으며,
언어 미학의 완성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였다.
초기에는 대지적 존재로서 인간의 조건과 본능의 몸부림을 보들레르적 탐미주의로

승화시키려 했으나 그 한계를 깨닫고 곧 동양의 영원주의로 회귀한다. 중기 이후에
그가 몰두했던 신라 정신과 신화 혹은 설화적 세계는 바로 그의 이와 같은
정신편력을 보여주는 것들이라 말할 수 있다.

서정주의 시 세계는 전통적인 서정세계에 대한 관심에 바탕을 두고 토착적인 언어의
시적 세련을 달성하였다는 점, 시 형태의 균형과 질서가 내재된 율조로부터 자연스럽게
조성되고 있는 점등이 커다란 성과로 평가된다. 1972년 일지사에서 '서정주 문학 전집'
(전5권)을
간행하였으며, 1994년 민음사에서 '미당 시 전집'이 나왔다.

서정주의 시는 워낙 유명하고 중/고등학교 국어,문학 교과서에 아주 지겹도록 등장한다.

그에따라 수능시험에도 적지 않게 등장해 머리를 아프게 한다. 또한 그는 친일파

활동까지 벌였는데, 비록 친일 경력이 적다고 해도

그에 대한 비판과 욕은 충분히 있어야 된다.
서정주의 열성 제자였던 시인 고은이 서정주를 평가하며 쓴 '미당 담론'이란 글이 있다.
그 글에는 서정주의 부끄러운 삶이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왜정을 찬양하는 10여 편의

시와 소설, 비평문을 썼다. 또한 1945년 이후 독재자 이승만을 기리는 이승만 전기를

썼고, 박정희 정권 시절에는 월남전 파병을 촉구하는 시를 발표했다. 또한

전두환 시절에는 티비에 나와 그를 찬양하는 발언을 하는 등, 왜정과 권력자에

두루두루 아부를 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럼에도 현대 문학에 적지 않은 공로와 많은 시와 소설을 썼다는 이유로 그런 점이

크게 부각되지 않는 것이 다소 안타까우며, 그의 시가 학생들 교과서에 더럽게

많이 실리는 점도 참 유감스럽다.

* 미당 서정주의 집
서정주는 1970년부터 죽을 때까지 30년을 여기서 서식했다. 그가 2000년 85세의 나이로
골로 가자 서울시가 이 집을 인수하여 미래유산으로 삼아 속세에 개방했다.
집은 2층 규모로 정원에는 나무도 넉넉히 깔려 있으며, 그의 유물은
1층과 2층에 전시되어 있다.

* 반쯤 열린 서정주집 대문
왜정과 독재자에게 아부하여 승승장구했던 서정주는 이곳에 고래등 집을 장만해

여유로운 삶을 살았다. 하긴 그처럼 살아야 이 땅에서 출세를 할 수 있다.
그게 이 땅의 거지 같은 현실이 아니던가?

* 동쪽 담장 너머로 바라본 서정주집

* 서정주 집 대문 기둥에 걸린 서울미래유산 딱지

* 서정주집 대문에 걸린 주소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사당동 495번지. 예술인마을 A5의 15. 이것이 이곳의 예전 주소이다.

이후 동작구, 그리고 관악구로 사당동에서 남현동으로 주소가 파란만장하게 바뀌었다.

* 서정주는 자신의 집을 봉산산방이라 칭했다.
여기서 봉산이란 쑥과 마을을 뜻하는데, 이는 단군신화에서 따왔다고 한다.

* 활짝 열린 서정주집 현관문

현관문을 들어서 실내화로 갈아신고 내부로 들어서면 된다. (관람 무료)


* 서정주 집 평면도 - 서정주가 그렸다고 전한다.

* 서정주가 마지막으로 마셨다는 맥주캔

서정주집 1층 부엌 식탁에 그가 마지막으로 처묵처묵했던 맥주캔이 있다. 그런데 그가 마지막으로

마셨다는 맥주가 그렇게나 중요한 것일까? 그냥 고물상에 팔거나 내버리는 것이 좋을듯.



* 집 뜨락에서 찍은 서정주 부부의 사진

* 서정주가 냈던 방범비 영수증 (1978년 8월분)

* 서정주집 1층 부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