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진·답사기/국립현충원·서달산

도봉산고양이 2018. 1. 25. 16:29



* 국립서울현충원의 옛 주인, 창빈안씨묘역

국립현충원의 배꼽 부분에는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으로 명암이 너무 엇갈리는 이승만의 묘역이 있다. 바로 그 옆 소나무숲에
국립현충원의 옛 주인인 창빈안씨의 묘역이 있으니 꼭
둘러보기 바란다. 지금은 이정표가 그런데로 되어있지만 예전에는 그
의 묘역을 알리는 이정표 조차
 없었다. 심지어 현충원 안내도에도 그의 존재가 누락되어 있었지. 20세기 중반까지 현충원의
대부분을 누렸던 왕족의 묘역이지만 
1954년 이후 현충원이 조성되면서 묘역이 크게 줄어들었고 거기에 이승만과 김대중 대
통령의 묘역이 주변에 닦이면서 이제는 한뼘
정도의 크기만 남은 거의 잉여로운 신세가 되었다.


창빈안씨(1499~1549)는 조선 11대 군주인 중종의 후궁으로 시흥에 살던 안탄대의 딸이다. 집안이 어려워
1507년 궁녀로 입
궁했으며 20살에 중종의 총애를 받고 22세에 상궁으로 승진되었다. 그녀는 용모가 아리땁고
행동이 단정하고 정숙했으며 자
비로운 성품과 근검절약하는 생활태도로 덕망이 매우 높았다. 그래서
중종의 모후인 정현왕후 윤씨의 사랑을 받았고 그 후원
에 힘입어 숙원<내명부 종4품>으로 얼마 뒤, 숙용<내명부
종3품>으로 올랐다. 중종과의 사이에서 영양군, 덕흥군, 정신옹주
등 2남1녀를 두었는데, 그중 덕흥군은
조선 14대 군주인 선조의 아버지로 조선 최초의 대원군이 된다.

1549년 5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으며 처음에는 양주 장흥에 묻혔으나 이듬해 3월 현재 자리로 이전되었다.

운이 좋게 왕이 된 선조는 아버지와 친할머니를 높이는데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막대한 공을 들인다. 하여 할머니에게 창빈이
란 시호를 올렸으며, 무덤의 격을 능으로 높여 지역 이름을 따서
동작릉이라 하는 한편, 묘역을 현재 현충원 일대로 확장시켰
다.
허나 선조가 1608년 골로 간 이후, 다시 창빈안씨묘역으로 등급이 떨어졌다. 허나 따지고 보면 원래 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그녀의 성격상 동작릉이란 이름에 꽤
 부담을 가지며 바보 같은 손자를 원망했을지도 모른다.


1. 창빈안씨 신도비

묘역 밑에는 창빈안씨의 길쭉한 신도비가 있다. 1683년 왕명에 따라 세워진 것으로 비문은 예조판서를 지낸 신정이 짓고 글씨는
돈령부지사인 왕족 이정영이 썼다. 비석 높이는 3m로 네모난 바닥돌 위에 기단석을
얹히고 그 위에 곧게 솟은 네모난 비신을 심
었으며, 그 꼭대기에 지붕돌을 얹힌 특이한 형태이다.







2. 현충원 한복판에 자리한 창빈안씨묘역 - 호석을 두룬 봉분과 묘비(묘표), 상석, 장명등, 망주석, 문인석, 곡장을

갖추었다.




3. 세월의 검은 때가 가득 낀 창빈안씨묘비(묘표) - 비신에는 창빈안산안씨지묘라 쓰여 있다. (그의 집안이 안산 안씨임)


4. 창빈안씨묘표 이수 - 이수에는 소용돌이 치는 듯한 구름 사이로 꿈틀거리는 용이 현란하게 조각되어 있다.


5. 창빈안씨묘역 봉분의 두툼한 뒷모습



6. 창비안씨묘역 앞 석물들 (묘표, 상석, 장명등, 망주석, 문인석 등)


7. 홀을 꽉 쥐어든 문인석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