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진·답사기/국립현충원·서달산

도봉산고양이 2018. 1. 29. 14:40



* 국립현충원 서달산 호국지장사 (화장사)

국립서울현충원의 진산인 공작봉(서달산) 자락에 포근히 둥지를 튼 호국지장사는 도선대사가 세웠다고 전한다. 절에서
우기길 670년에 도선이 창건했다고 하나 도선은 신라 후기 사람이므로 시기부터가 틀려먹었다.
그가 이곳에 이르니 칡
덩굴이 엉켜있고 약수가 나오고 있으므로 절을 세우고 갈궁사라 했다고 한다.
이후 공민왕 시절 보인이 폐허가 된 절을
중창하여 그 이름을 화장암으로 갈았다고 한다.


1577년 선조의 친할머니인 창빈안씨의 묘가 절 밑에 조성되면서 화장암은 자연히 그 묘를 지키는 원찰이 되었고
절 이
름을 화장사로 바꾸었다. 허나 '봉은본말사지'에는 1577년에 절을 창건하고 원찰로 삼았다고 나와
그 시절에 창건된 것
으로 보기도 한다.

1663년 절을 중수했으며, 1862년 운담과 정해가 중건했다. 1878년에는 주지 서월이 대방 등을 수리했으며 1896년 칠성
각을 새로 짓고 1920년에는 주지 원옹과 명진이 큰방을 수리했으며, 1936년 주지 유영송이
능인전을 중수했다.


1954년 이후 절 밑으로 국립묘지(국립현충원)가 닦이면서 호국신의 극락왕생을 책임지는 지장도량이 되었고 1983년에는
이곳 성격에 어울리게 호국지장사로 이름을 갈아 지금에 이른다. 절이 들어앉은 위치가 아주
좋아 이곳을 찾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 '만일 이곳에 절이 없었다면 내가 묻히고 싶은 곳이다' 아주 군침을
흘렸다고 전한다.


1. 국립현충원 호국지장사 입구

국립서울현충원 서남쪽 산자락에는 현충원에 잠든 호국신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호국지장사가 있다. 호국지장사는 현충
에서 접근해도 되고 현충원 후문의 하나인 상도출입문을 통해 접근해도 된다. 하지만 현충원 내부에 있는 관계로 현충원
입장 시간에만 들어갈 수 있다. (
6시부터 18시까지, 겨울은 7~17시까지)


2. 호국지장사로 인도하는 가파른 오르막길에서 바라본 현충원 내부 - 현충원 너머로 이촌동과 한강 등이 보너스로
시야에 들어온다. 현충원에서 절로 인도하는 길은 제법 각박한 오르막길로 그 길의 끝에 호국지장사가 고즈넉하게 자리해
있다.


3. 호국지장사 느티나무 (서울시 보호수 20-5호)

경내 직전에 350년 정도 묵은 오래된 느티나무가 고품질의 그늘을 드리운다. 보호수로 지정될 당시(1985년) 추정 나이가 약
315년이라고 하니 그새 32년 이상에 더해져 350년 정도 된다. 높이는
15m, 나무둘레 4.5m로 호국지장사에서 가장 오래된 존
재라고 봐야 된다. (경내에 느티나무 이상으로
오래된 문화유산이 여럿 있으나 대부분 다른 곳에서 넘어온 것임)



4. 간만에 발을 들인 호국지장사 경내 직전


5. 석등을 중간에 띄운 네모난 연못 - 진한 녹색 같은 연못에는 여러 물고기들이 살아가고 있다.



6. 옛 약수터 자리에 새로 닦여진 동그란 석조와 아기부처상 - 이곳에는 호국지장사의 명물인 약수터가 있었다. 그
약수터는 상도출입문 쪽으로 옮겨서 계속 물을 내뿜고 있고
약수터를 밀어낸 자리에는 이렇게 석조와 아기부처상을 닦아
놓았는데 그 좌우에는 왜식 석등이 멀뚱히
서있어 다소 어색함을 준다. (우리식 석등을 세웠으면 더 좋았을 것을, 절 관계
자들이
참 생각이 없는듯 함)


7. 드디어 도착한 호국지장사 경내 (정면에 보이는 것은 지장보살상)



8. 호국지장사 능인보전 - 정면과 측면이 달랑 1칸에 불과한 조그만 맞배지붕 건물로 겉보기에는 작은 건물이라 지나치기
쉽지만
저 작은 공간에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존재들이 여럿 안겨져 있으니 꼭 훑어보기 바란다.


9. 능인보전 신중도 - 1906년에 그려진 것으로 그림은 수평 3단의 정연한 구도를 보이며, 범천, 제석, 위태천
중탱의 대표적인 존재들이 모두 묘사되어 있다. 균형이 잡히지 않은 인체나 경직된 자세, 무겁고 탁한
색채 등
은 전체적으로 불화의 품격이 떨어지던 20세기 초에 많이 나타난다.


10. 능인보전 지장시왕도

이 그림은 원래 대웅전에 쭉 있던 것으로 근래 능인보전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림의 위치는 절의 사정상 변경될 수
있음)
1893년 금호약효 등 14명의 화승이 그린 것으로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권속들을 계단식으로 배치했고, 화폭 상
단으로 갈수록 존상을 작게 묘사하여 원근법의 효과를 살렸
다.
원만한 인물의 형태는 18세기 후반 양식이지만, 오색 광선으로 표현한 광배, 도식적
인 천의, 단조로운 구름의 묘사는
19세기 불화양식으로 전반적으로 많이 변색되긴 했지만
일부 적색과 녹색은 비교적 밝게 채색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