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진·답사기/성북구·강북구

도봉산고양이 2018. 10. 17. 22:50



* 조선 최초의 능, 정릉

정릉동 남쪽 골짜기에 신덕왕후(신덕고황후) 강씨의 능인 정릉이 있다. 이곳은 서울의 휼륭한 진산인 북한산(삼각산)과 서울

의 영원한 북현무, 북악산(백악산)의 경계선으로 북한산의 영역으로 봐도 되고 북악산의 영역으로 봐도 된다. (능 남쪽에 북

악산길이 지나감)


정릉의 주인인 신덕왕후 강씨(?~1396)는 태조 이성계의 2번째 부인으로 상산부군 강윤성의 딸이다. 태조는 함흥에 본처인

한씨(신의왕후)가 있었고, 개경에는 고려 조정에 진출하면서 맞이한 후처, 강씨가 있었다.

강씨는 태조가 조정에 진출해 세력을 구축하고 나중에 조선을 개국하는데 크게 역할을 했다. 1391년 한씨가 죽자, 이듬해 조선

건국으로 왕후(현비)가 되었으며, 태조와 금슬이 좋아 이방석(의안대군), 이방번(무안대군) 형제와 경순공주 등 2남1녀를 두었

는데 이들에 대한 태조의 총애가 대단했다.

정도전의 도움을 받아 한씨 소생의 형제를 제치고 이방석을 세자 위에 앉히게 했는데 이는 이방원, 이방간 형제에게 크게 반감

을 샀다.


1396년 강씨가 세상을 뜨자 태조는 크게 애통해하며 도성 한복판에 능을 써 정릉이라 했으며, 부근에 원찰인 흥천사를 세워 강

씨의 명복을 빌었다. 정릉의 위치는 덕수궁 북쪽으로 여겨지는데 정릉으로 인해 정동이란 지명이 생겼다.

정안대군 이방원은 1398년, 1400년 2차례의 왕자의 난으로 권력을 잡고 왕이 되었다. (이가 곧 태종임~) 태조가 살아있을 때는
릉을 건드리지 않았으나 1408년 태조가 승하한 이후, 바로 이빨을 드러내며 의붓어머니 강씨에 대해 노골적인 분노를 표출
했다.
도성 한복판에 있던 정릉을 현 정릉동으로 추방했으며, 정자각과 석물을 태평관과 광통교 공사에 투입했다. 봉분은 갈아버려

람들이 능임을 알아볼수 없게 하였고, 석인은 묻어버렸다. 또한 왕비의 제례는 폐했으며, 봄,가을 중월제로 격하시켰고, 종묘에

배향조차 하지 않아 왕후의 대접도 못받게 했다.


1581년 11월 삼사에서 강씨의 시호와 존호를 회복시키고 정릉을 회복하자는 논의가 있었으나 무산되었으며, 현종 시절에 이르

러 송시열 등이 정릉과 흥천사기문이 갖추어 있음을 지적하며 강씨를 종묘에 배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여 1669년 9월 강씨

의 기신제가 성대하게 열렸는데 이때 정릉 일대에 비가 크게 내리니 사람들은 '신덕왕후의 원한을 씻어주는 비'라고 하였다.
(우연히 내린 비일까? 아니면 200여 년만에 한이 풀린 강씨의 눈물이 비가 된 것일까?)
현종은 순원현경신덕왕후란 시호를 올렸고, 능호를 정릉으로 회복했으며, 능을 복원했다. 1899년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가 되자 신덕고황후로 높였다. (태조는 태조고황제, 신의왕후 한씨는 신의고황후로 높임)


정릉은 지금까지 3~4번 정도 인연을 지었는데 완전 산속에 묻힌 탓에 계곡도 괜찮고 숲도 짙다. 심지어 약수터도 있다. 정릉 주
위로 둘레길이 닦여져 산책코스로도 아주 좋으며, 봄과 가을 풍경이 아름답다. 참고로 정릉동의 지명유래는 바로 정릉에서 비롯

된 것이다. (정릉 때문에 정동, 정릉동 2개의 지명이 생긴 것임)


1. 정릉 금천교 - 정릉 계곡 위에 걸린 다리로 조선 현종 때 가설되었다. 금천교는 속세와 능 성역의 경계 역할을 하며 반듯하

게 눕혀진 다리 석재에는 고색의 때가 끼어있다.


2. 금천교와 계곡(금천)


3. 정릉을 가로질러 흐르는 계곡(금천) - 조선 왕릉에는 금천의 역할을 하는 계곡이나 물줄기가 있다. 그중 정릉과 동구릉

계곡이 볼만한데 이곳 계곡은 북악산길 북쪽에서 발원한 물로 정릉천으로 흘러간다.


4. 정릉 안내도 - 정릉은 2.5km의 숲길이 아주 일품이다.


5. 정릉 느티나무와 재실

재실 앞에 우뚝 솟아난 느티나무는 서울시 보호수로 추정 나이 약 380년, 높이 21m, 둘레 3.6m이다. 정릉은 다른 왕릉과 달리

오래된 보호수 2그루를 간직하고 있다.



6. 정릉 재실 - 정릉을 지키고 관리하는 능참봉과 하인들이 머무는 공간으로 제사 도구를 보관하고 제례 준비를 했던 곳이다.
옛날에 불에 타서 사라진 것을 2012년에 발굴조사하여 2014년에 복원했다.


7. 재실 내로 인도하는 기와문


8. 행랑 - 대문, 하인방, 마구간, 창고, 집사방 등이 있다.


9. 제기고 - 제사 도구를 보관하던 창고다.


10. 팔작지붕을 지닌 재실 본채
-
왕릉을 지키는 영과 능참봉의 생활공간으로 여기서 제향을 준비했다.



11. 정릉 재실 다례체험 교육 안내문 - 2014년에 복원된 재실을 놀려두기 뭐하여 다례체험과 여러 교육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자세한 것은 정릉에 문의 요망 ☎ 02-914-5133)


12. 한참 봄이 피어나고 있는 정릉 (이때가 4월 한복판임)



13. 정릉 북쪽 산책로 - 계곡(금천)을 따라 서쪽으로 이어진다. 이 길을 따라가면 약수터와 정릉 둘레길로 이어지며, 계곡

너머에는 정자각과 비각, 정릉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