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진·답사기/강서구(가양동)·양천구

도봉산고양이 2019. 3. 24. 01:56



1. 궁산 산책로

궁산은 가양동의 진산으로 해발 74.3m의 야트막한 뫼이다. 한강변에 솟은 궁산은 파산, 성산, 관산, 진산 등의

별칭을 지니고 있으며, 한강 길목에 자리해 있어 삼국시대부터 전략적 요충지였다. 산 자락에 희미하게나마 백

제 또는 신라 때 지어진 성터(양천고성터)가 있으며, 임진왜란 때는 관군과 의병이 집결하여 왜군을 토벌했다.
18세기에는 겸재 정선이 가양동을 중심으로 했던 양천고을(양천현)의 현감으로 부임하여 궁산 주변 풍경을 그

림에 담았으며, 6.25때는 국군이 여기서 북한군을 격퇴했다.

궁산에는 양천고성터와 복원된 소악루, 관산성황당, 양천향교, 궁산땅굴 등의 명소가 있으며, 한강을 낀 조망

천하 일품이다. 강서구는 궁산을 근린공원으로 삼아 산책로와 운동시설, 조망터 등을 만들었으며, 산이

그만하여 산에 안긴 명소를 여유롭게 둘러보면 1~2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겸재정선미술관 제외) 특히 소악루
궁산 정상은 한강을 낀 야경 출사 장소로 명성이 높다.


2. 녹음이 짙은 궁산 산책로


3. 궁산의 상큼한 장식물, 소악루

궁산 동북쪽 절벽에 들어앉아 한강을 바라보고 선 소악루는 조선 영조 때 동복현감을 지낸 이유가 궁산 강변 악양

루터에 세운 것이다. 소악루란 이름은 이곳이 중원대륙 동정호에 있는 악양루의 경치에 버금간다하여 작은 악양

란 뜻에서 비롯되었다. 참고로 이유는 동정호의 악양루를 가본적이 없다.

소악루에서는 남산과 인왕산, 안산 등 서울 도심을 둘러싸고 있는 산과 멀리 관악산, 북한산(삼각산)이 시야에 들
어오며 가까이로 탑산과 선유봉, 한강 줄기가 이어져 예로부터 문인들의 발길이 잦았다. 겸재 정선도 소악루에 올
라 주변 풍경을 그림에 담았는데 그의 경교명승첩에 당시의 경관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소악루는 원래 이곳에 있지 않았다. 원래 위치는 가양동 산6-4번지 세숫대바위 근처로 여겨
지는데, 이미 아파트들이 첩첩하게 들어선 상태라 제자리에 세우지 못하고 1994년 현 자리에 세운 것이다. 정면 3
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누각으로 누각이라기보다는 공원에 지은 아담한 정자 같다. 게다가 흙이 아닌 보도블록
바닥에 뿌리를 내린 탓에 정취와 옛 명성이 많이 떨어져 보인다.



4. 소악루에서 바라본 한강과 난지도 하늘공원(월드컵공원)
하늘공원 너머로 안산, 인왕산, 북한산, 남산 등이 시야에 들어온다. 궁산 소악루는 비록 고색은 없지만 이런 조망을 보는 맛

에 찾는다.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5. 소악루에서 바라본 난지도 하늘공원과 상암동, 고양시 덕은동(대덕동) 지역
(저 멀리 바라보이는 커다란 뫼는 북한산)



6. 궁산 정상부 산책로 - 궁산은 소나무가 매우 많다.


7. 현대화된 모습의 관산성황당

궁산 정상부 남쪽 소나무숲에 관산성황당이 있다. 이곳은 가양동의 안녕을 기원하던 마을 당집으로 여기서 관산은
궁산의 옛 이름 중 하나이다. 보통 성황당의 한자는 '城隍堂'인데 반해 이곳은 '城' 대신 '成'을 쓰는 특이함
보인다.


이 당집은 '도당할머니'를 봉안하고 있는데, 도당할매는 서울 지역 당집에서 많이 봉안하는 존재이다. 조선 중종
때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성황사가 성산(궁산의 옛 이름)에 있다'는 기록이 있어 적어도 500년 이상 묵었
음을 보여준다.
성황당의 도당할매는 백성들의 번영과 행복을 도와주고 악귀를 몰아내주며, 재앙과 돌림병을 막아준다고 하여 매
년 음력 10월 초하루에 산신제를 올리고 굿을 벌인다. 당집이락된 것을 지금의 모습으로 정비했는데 덕분에 오
래된 당집 분위기가 싹 사라지고 그냥 창고 같은 분위기가 되었다.


8. 양천고성터의 흔적

소악루 서쪽 산자락에 아련히 남아있는 양천고성터는 궁산 정상부에 축조된 것으로 길이 220m, 면적 29,370㎡인 조
그만 산성이다, 백제 또는 신라 중기(6~7세기)에 축성된 것으로 
여겨지며 성 이름은 딱히 전해오는 것이 없어 고을
이름인 양천을 따 양천의 옛 성이란 뜻
의 양천고성이라 하였다. 한강과 접한 북쪽은 경사가 급하나 남쪽은 느긋하

다.

성과 관련된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여지도서','대동지지' 등에 전하며 성벽을 쌓을 때 안쪽에 심을 박아
쌓은 적심석과 성돌이 
몇몇 남아있고, 높이 2~3m 정도의 성곽 윤곽이 일부 남아 이곳에 산성이 있었음을 희미하게 
전할 따름이다.

임진왜란 시절에 권율 장군이 오산 독산성(세마대)에서 왜군을 때려잡고 이곳에 잠시 머물다가 한강을 건너 행주
산성에서 행주대첩을 일구어냈으며,
행주산성, 오두산성(파주 통일전망대에 있음) 등과 더불어 한강을 지키던 요
새였다
.



9. 관산성황당 부근 쉼터


10. 양천고성터(양천고성지) 발굴 조사 안내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