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진·답사기/송파구·강동구

도봉산고양이 2019. 10. 29. 01:26



~~~ 을축년 대홍수 기념비(왼쪽)와 암행어사 이건창 영세불망비(오른쪽) ~~~
지하철 8/9호선 석촌역 3번 출구에서 200여m 정도 가면 을축년대홍수기념비와 암행어사 이건창 영세불망비 등 2기의 오
래된 비석을 만날 수 있다.
이건창 영세불망비는 조선 후기에 활동했던 이건창(1852~1898)를 기리고자 세운 불망비이다. 그는 최연소 과거급제자로
겨우 14살에 별시 문과에 급제했는데, 나이가 너무 어려서 4년 뒤에 관직에 기용되었다.
그는 경기도 암행어사(행어사)를 지낸 적이 있는데, 그때 자신의 신분을 속인 채, 송파나루터를 찾아 장터 장사꾼과 백성들
과 이야기를 하면서 그들의 고충을 들어주고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백성들은 그가 떠난 이후에야 그의 정체를 알게 되었고,
그의 입담에 감동한 지역 백성들이 그의 공덕과 행적을 기리고자 1883년 5월, 그가 머물렀던 장터입구에 영세불망비를 세
웠다.
1925년 서울 한강변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을축년 대홍수 때 사라졌다가 1979년 지역 향토사학자에 의해 발견되어 현재

의 위치에 안착했다.
없는 것이 없다는 천하 제일의 대도시, 서울이지만 선정비와 영세불망비는 가양동 양천향교와 가락동 비석거리어린이공원,
그리고 이곳에만 전하고 있어 희소성이 크다. 부근에 석촌동고분군과 방이동고분군은 여러 번 인연을 지었으나 이들 비석
은 이번에 비로소 인연을 지었다.


1. 암행어사(행어사) 이건창 영세불망비

비신에는 '행어사 이공 건창 영세불망비'라 쓰여 있다. 19세기 말 비석이지만 서울에 흔치 않은 선정관 영세불망비로 지방

문화재의 자격이 충분하다 여겨진다.


2. 을축년 대홍수 기념비
1925년(을축년) 7월, 수도권을 덮쳤던 태풍은 임진강과 한강에 폭탄비를 투하했다. 7월 16일부터 18일까지 659mm가 내렸
으며, 이 폭우로 한강과 임진강이 범람했다. 특히 한강변의 이촌동, 뚝섬, 송파, 잠실, 풍납동, 구천면(강동구) 지역이 피해
가 제일 컸으며, 서울역 부근까지 물이 밀려왔다.

송파나루터 일대는 피해가 극심해 송파장터 마을이 모두 떠내려갔고, 마을 주민들은 송파동 119번지(송파1동 한양아파트)

일대로 이주했다. (가옥 유실 273호) 홍수의 무서움을 체험한 송파 지역 사람들은 다시는 이런 재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후

세에 경각심을 주고자 1926년 7월 15일 송파리에 있던 광주군 중대면사무소(현재 송파동 95번지)에 기념비를 세웠다.
6.25 때는 무심한 총탄에 의해 비석 옆부분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상처를 입었으며, 송파동사무소(현재 송파1동사무소)가
송파동 113번지로 이전되면서 비석 역시 그를 따라 이곳에 안착하게 되었다.
비석 피부에는 '을축(7월18일)대홍수 기념'이라 쓰여있어 그의 정체를 알려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