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진·답사기/송파구·강동구

도봉산고양이 2019. 10. 30. 01:08



~~~ 방이동고분군 ~~~

서울 송파구에는 2개의 고분군이 남아있다. 하나는 앞서 언급한 석촌동고분군이고 다른 하나는 이번에 다룰 방이동고분군

이다. 이들 외에도 가락동고분군 등 300기가 넘는 백제와 신라 고분이 송파 일대에 가득했으나 천박한 개발의 칼질로 거의
사라졌고, 강남구와 한강변의 고구려, 백제, 신라 유적들도 대부분 강제 퇴장을 당하고 말았다.


방이동고분군은 방이동 지역의 낮은 능선을 따라 늘어선 옛 무덤으로 1975년부터 발굴조사를 벌여 1983년에 고분공원으로
산듯하게 정비되었다. 현재 남아있는 무덤은 8기로 서쪽에 4기, 동쪽에 4기가 전하고 있다.

제1호분과 제4호분, 제6호분 등은 깬돌로 닦은 궁륭식 천장의 굴식돌방무덤(석실고분)으로 백제 고분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제5호분은 구덩식 돌덧널무덤으로 확인되었다. 도시 개발로 사라진 제4호분, 제5호분을 포함해 1,4,5,6호분만 조사가 되었

며, 나머지 무덤(2,3,7~10호분은)은 아직 속살까지 손을 대지 않아 자세한 구조는 모른다.
1975년 발굴조사하기 이전에 이미 도굴된 상태라 유물은 별로 나오지 않았으며, 제6호분에서 회청색 굽다리접시 등 신라 토

기들이 여럿 출토되어 신라 무덤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예전에는 방이동백제고분군이라 불렸으나 신라 유물이 출토되면서

그냥 백제는 빠지고 방이동고분군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허나 서울과 수도권에 백제식 굴식돌방무덤이 많이 나오고 있어 백
제 무덤으로 크게 무게가 쏠리고 있으며, 백제와 신라 무덤이 공존하는 현장으로 보기도 한다.
즉 한성백제시대 시절의 귀족과 왕족들 묘역이 먼저 들어섰고, 6세기 이후 이 일대가 신라 땅이 되면서 이곳을 다스리던 신
라 관리나 왕족, 원래 백제 관리나 귀족이었으나 신라로 넘어간 이들의 무덤이 쓰였던 것이다.



1. 늦가을이 깃든 제1호분 앞 산책로


2. 다시 조사를 받고 있는 제3호분
제3호분은 1975년 이후에 조사를 벌였으나 아직 내부 조사는 벌이지 못했다. 하여 이번에 그 뚜껑을 열고 제3호분의 비밀을
다시 풀고 있다. (2018년 11월)


3. 방이동 제1호분
이 무덤은 굴식돌방무덤으로 구릉 비탈을 살짝 파고 깬돌로 네모난 널방(석실)을 만들었다. 석실 네 벽이 위로 올라갈수록

모두 안쪽으로 기울어지게 쌓아 폭을 좁힌 다음, 맨 위에 큰 돌을 올려 천장을 만든 궁륭형 스타일이다. 널방은 남북 길이

3.1m, 동서 너비 2.5m, 높이 2.15m이며, 남벽 서쪽에 널길(현도)이 있으며, 벽면에는 석회나 진흙을 바르고 바닥에는 깬돌
자갈을 닦았다.

무덤의 조성시기는 아직 정확치가 않으나 웅진백제 시절에 조성된 공주 송산리고분군 제5호분과 구조와 형식이 비슷해 방

이동 고분군의 무덤 스타일이 공주로 이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1983년 고분공을 닦으면서 무덤 널길 입구를 화강암 장대석으로 덧쌓아 흙과 돌이 무너지지 않게 했으며, 2011년에 돌방을

비롯해 봉분 전체를 손질했다. 방이동 고분 형제 중 유일하게 속살을 개방하고 있는 무덤으로 속살 접근은 통제되어 있다.



4. 돌로 차곡차곡 다져진 방이동 제1호분 널길(현도)과 돌방(석실)
돌방(석실)은 무덤 주인의 시신과 부장품을 두는 공간이며, 널길(현도)은 바깥과 석실을 이어주는 통로이다. 이곳에 가득했
을 부장품은 옛날에 도굴꾼들에게 거의 털렸다.



5. 방이동 제1호분의 옆 모습


6. 방이동 제3호분 재조사 안내문
석촌동고분군도 2015년부터 일부 무덤에 재조사가 들어갔고, 방이동도 제3호분이 재조사 대상이 되었다. 이번 조사로 방이

동고분군에 숨겨진 옛 이야기가 싹 풀렸으면 좋겠다.


7. 방이동 제3호분 철책에 설치된 여러 안내문들





8. 방이동 제2호분 (제1호분 뒷쪽에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