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사진·답사기/경북 문경·상주·김천·구미

도봉산고양이 2019. 11. 28. 21:17



1. 사명대사가 앉았다는 바위 (윗쪽에 돌탑이 얹혀진 바위)
임진왜란 때 크게 활약했던 큰 승려 사명대사는 14살에 어미를 여의었고 15살에 아비까지 여의면서 힘든 마음을 극복하
못해방황을 하였다. 

나이 16살에 이르던 어느 날, 김천 직지사를 찾았는데, 너무 피곤했는지 천왕문 앞 은행나무 그늘에 있는 넓직한 바
러덩 누워 잠을 청했다. 그때 직지사 주지승인 신묵화상(신묵대사)은 백안당에서 참선을 하고 있었는데, 천왕앞에서 황
룡이
승천하는 이상한 환영을 보고너무 놀라 혹시나 싶어 천왕문 앞으로 나가보았더니 한 아이가 바위 위에서 잠자고
다.

신묵은 그가 환영으로 보았던 황룡임을 강하게 직감하고 그 자리에서 흔쾌히 제자로 거두어 기르면서 사명은 그렇게 승려
로 첫 데뷔를 하게 되었다. 
그는 17세에 승과에 장원으로 급제했으며, 1573년에는 직지사 주지승까지 되었으니 바위에서 잠시 잠을 청한 인연이 그의
인생을 180도 바꿔놓은 것이다. 이래서 인생은 아무도 모른다.


2. 어린 사명대사가 잠을 잤다는 그 바위
그 사연으로 이 바위는 직지사에서 일약 유명한 바위가 되었다. 바위에는 지나가는 중생들이 소망을 첨부해 만든 조그만 돌
탑들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3, 천왕문의 주인인 사천왕상의 위엄



4. 천왕문을 지나면 만나게 되는 만세루

만세루는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누각으로 직지사 중심부를 가리고 있다. 그의 밑도리를 지나면 대웅전을 비롯한

경내 중심부가 흔쾌히 펼쳐진다.


5. 만세루 옆에 얼어붙은 연못


6. 직지사 대웅전

이 건물은 직지사의 법당으로 원래는 2층 5칸짜리 건물로 전해지고 있다. 광명전이라 불렸으며, 임진왜란 시절에 파괴된 것
을 1602년에 인
수, 명례 등이 중건했다.
1735년에 주지 수변과 전 주지 설운 종익, 태감화상이 중건을 했는데, 이때 목수 20여 명과 기술자 50여 명이 참여했고 900
여 명의 신자들이 돈을 대었다. 그 명단은 1969~1970년에 연목 교체와 기와를 번와했을 때 나온 중창상량문에 자세히 나와

있다.
이 건물은 경북 지방유형문화재 215호였으나 2008년 9월 3일 국가 보물 제1576호로 특진되었다. 건물 내부에는 국가 보물

로 지정된 삼존불탱화와 수미단이 있는데, 대웅전 내부 촬영을 통제하고 있어 대놓고 사진에 담지는 않았다.



7. 도천사지 동,서3층석탑 (동탑)

대웅전 뜨락에는 아주 잘생긴 3층석탑 2기가 자리해 있다. 그들은 원래 직지사 탑이 아닌 문경 도천사터에 있던 것으로 그

곳에 쓰러져 방치되어 있던 것을 이곳으로 가져와 복원했다.
바닥돌과 1층 기단, 3층 탑신, 머리장식을 지니고 있는데, 여러 장의 넓적한 돌로 짜인 기단은 4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
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으며, 탑신의 각 층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각 몸돌에는 모서리마
다 뚜렷한 기둥 모양의 조각이 새겨져 있다.
얇고 평평한 지붕돌의 밑면 받침으로 1/2층은 5단, 3층은 4단을 두었고, 수평을 이루던 처마는 네 귀퉁이에서 경쾌하게 들
려 있다. 꼭대기에 올려진 머리장식은 1976년 탑을 옮겨 세울 때 새로 만들어 붙인 것이라 원래 것은 아니다.


탑신의 1층 몸돌 높이가 지나치게 높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품격이 있으며, 기단이 1단이고, 지붕돌의 들린 정도 등으로 보
아 신라 후기 것으로 여겨진다.


7-1. 도천사지 동,서3층석탑 (서탑)


8. 대웅전 뜨락에 박혀있는 화려한 무늬의 돌덩어리
저건 무엇일까? 바깥에서 대웅전 불상을 향해 예를 올리는 공간으로 닦여진 것은 아닐까?


9. 대웅전 뜨락에 세워진 석등

아랫도리와 기둥, 윗도리는 옛날 것이고 화사창 부분은 새로 붙인 것이다. 고려 때 것으로 여겨지며, 파괴되어 쓰러져 있던

것을 다시 세웠다.


10. 석등 기둥에 새겨진 세호 (맞나?)

꼬랑지가 긴 세호는 무덤 망주석에 새겨놓는 동물로 사찰 석등 기둥에서는 처음 본다. 이들에게는 과연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11, 대웅전 뜨락 동쪽에 자리한 심검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