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진·답사기/국립현충원·서달산

도봉산고양이 2020. 2. 21. 08:52



~~~ 국립현충원 서달산 호국지장사 (옛 화장사) ~~~

호국신의 영혼터인 국립현충원, 그 꼬리 부분인 공작봉(서달산) 북쪽 자락에는 수백 년 묵은 호국지장사가 포근

하게 둥지를 틀고 있다.

호국지장사(이하 지장사)는 신라 후기에 도선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도선은 북쪽으로 하염없이 가다가 한강
덕에 이르러 사방을 둘러보니 어디선가 서기가 흘러나와 자신을 유혹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서기를 추적하니
그 기운이 나오는 곳에 칡덩굴이 엉켜지고 약수가 나오고 있었다. 그래서 자리를 살펴보니 아주 기가 막힌 명당
자리인지라 그곳에 토굴을 짓고 갈궁사라 했다고 한다.
허나 이는 어디까지나 지장사에서 우기고 있는 믿거나 말거나 설화일 뿐이다. 봉은사에서 작성한 '봉은본말사지
'에는
'1577년 선조가 창빈묘역 부근 산기슭에 절을 창건하고 원찰을 삼으니 갈궁사가 바로 이 절이다~' 내용이
있어 그 시기에 창건된 것으로 보기도 하며, 고려 공민왕 때 보인이 중창<또는 창건>하고 화장암이라 했다는 이
야기도 덧붙여 전해오고 있다. 이곳의 조선 초기 이전의 역사를 속시원히 밝혀줄 역사 기록과 유물이 하나도 없
기 때문에 쓸데없이 말만 무성한 것이다.


절의 내력이 구체적으로 윤곽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16세기 말이다. 명종 때 창빈안씨묘역이 절 부근으로 이장
되었는데, 1577년 선조가 친할머니인 창빈의 묘역을 동작릉으로 높이면서 화장암을 창빈묘역을 지키는 원찰로

삼았다. 이때 화장사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하며 그 인연으로 오랫동안 왕실의 지원을 받았다. 또한 오성과 한음
으로 유명한 이항복과 이덕형이 10대 시절에 공부를 했던 곳으로도 전해진다.
1663년 절을 중수했으며, 영조 시절에 신경준이 작성한 '가람고'에 '동작리에 화장암이 있다'는 내용이 있어 그
때까지도 꾸준히 법등을 지키고 있었음을 알려준다.

1862년 운담과 경해가 중건했으며, 1870년에 경파루를 지었고 1878년에는 주지 서월과 경해가 대방을 수리했다.
1893년에는 경운, 계향이 불상을 개금하고 구품탱과 지장탱, 현왕탱, 독성탱, 산신탱을 봉안했으며 1896년 칠성
각을 새로 지었다. 1906년에는 풍곡이 약사전의 불상을 개금 단청하고 후불탱과 신중탱, 감로탱, 신중탱, 칠성

탱 등을 봉안했다.
1911년에는 왜정의 사찰령으로 봉은사의 말사가 되었고 1920년에 대방을 수리했으며 1936년에 주지 유영송이
인전을 중수했다.

1954년 이후 절 밑에 국립묘지가 들어서면서 자연히 그곳에 안장된 호국신을 책임지는 사찰이 되었다. 하여
장도량을 칭하게 되었는데 1983년에 혜성은 호국신들이 지장보살의 원력으로 모두 극락왕생이 되도록 기원하
뜻에서 화장사에서 호국지장사<줄여서 '지장사'라고도 함>로 이름을 갈았다. 그야말로 현충원과 호국신에게
주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경내에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능인보전, 삼성각, 극락전, 지장전, 심우당, 청심당 등 10동 가까운 건물이 있으며
경내 남쪽에는 약수가 나와 주민들이 많이 물을 뜨러 온다. 그리고 지장보살입상을 중심으로 3,000좌의 조그만
지장보살을 봉안하고 있어 절 이름 값을 톡톡히 한다.
소장문화유산으로는 철불좌상과 괘불도, 극락9품도, 독성도, 약사불도 등 지방문화재 10여 점을 지니고 있으며, 

그 외에 멀리 경주에서 왔다는 신라 후기 3층석탑이 1기 있는데 그것이 경내에서 가장 오래된 존재이다.


1. 호국지장사 능인보전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겉으로 보면 그저 작은 건물로 지나칠 수 있지만 저 안에 철불좌상과 약
사후불탱, 신중탱 등의 문화유산이 들어있으니 꼭 둘러보기 바란다.


2. 능인보전 신중도

1906년에 조성된 것으로 그림은 수평 3단의 정연한 구도를 보이고 있는데, 범천, 제석, 위태천 등 신중탱의 대표
적인 존재들이 모두 묘사되어 있다. 균형이 잡히지 않은 인체나 경직된 자세, 무겁고 탁한 색채 등은 전체적으로
불화의 품격이 떨어지던 20세기 초에 많이 나타난다.



3. 능인보전 지장시왕도

지장시왕도는 1893년 금호약효 등 14명의 화승이 그렸다.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권속들을 계단식으로 배치하였고,
화폭 상단으로 갈수록 존상을 작게 묘사하여 원근법의 효과를 살렸다. 원만한 인물의 형태는 18세기 후반 양식이
지만, 오색 광선으로 표현한 광배, 도식인 천의, 단조로운 구름의 묘사는 19세기 불화양식을 보여준다. 전반적

으로 많이 변색되긴 했으나 일부 적색과 녹색은 비교적 밝게 채색되어 있다.
(예전에는 대웅전에 있었으나 다시 가보니 능인보전으로 거처를 옮겼음)



4. 능인보전 철불좌상과 약사불도

늠름한 체격에 철불좌상은 능인보전의 주인이다. 그는 고려 초에 조성된 철불로 다른 곳에 있다가 넘어온 것인데,
다음과 같은 전설이 아련하게 전해온다.

호랑이가 담배 맛을 알기 이전인 어느 옛날, 한강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어느 어부의 꿈에 이 불상이 나타나 제발
빛 좀 보게 해달라며 자신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어부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곳으로 가 그물을 치니 녹슨 채로
버려진 불상이 걸려들었다. 하여 그를 수습하여 깨끗이 목욕을 시키고 집에 봉안했다.
그런데 그 이후로 이상하게도 고기도 잡히지 않고 나쁜 일만 연이어 생기는 것이다. 보통 이런 전설에선 고기가

잘 잡혀 부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로 끝을 맺는데, 불상이 좀 심성이 삐딱한지 그게 아닌 것이다. 하여 어부는 골
똘히 생각하다가 화장사(지장사)에 넘겼다고 하며 그 이후부터 비로소 잘 먹고 잘살았다고 한다.
이 전설을 통해 절이 파괴되거나 도난 등으로 강에 버려진 불상을 수습해왔음을 알 수 있는데, 그의 고향은 현재
로서는 알 도리가 없다. 또한 어부가 강이나 바다에서 불상을 발견하여 절을 만들거나 절에 기증했다는 전설들이

많은데 이는 불상을 옮기던 배가 가라앉거나 취급 부주의나 재해로 강에 떨어지거나 떠내려온 불상이 많았다는 이
야기가 된다.  

이 철불은 높이 98cm로 얼굴은 동그랗고 이목구비가 뚜렷하다. 눈이 유난히 길고 가는데, 보는 위치에 따라 날카
롭게 보이기도 하며, 머리는 꼽슬인 나발이다. 눈썹은 진하고 무지개처럼 살짝 구부러졌으며, 굳게 다문 입에는
엷게나마 미소가 드리워져 그의 전체적인 표정은 환하게 웃음짓는 표정 같다.
어깨는 꽤 단련을 한 듯 매우 당당하며,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우견편단으로 법의는 주름선이 선명하다. 또한 왼

손에는 약합이 들려져 있어 그가 약사여래임을 알 수 있다. 고려 초에 조성된 몇 안되는 철불약사불로 그 당시 약
사불 신앙에 중요한 자료로 판단되어 지방문화재의 지위를 누리게 되었다.

철불 뒷쪽에 걸린 약사불도는 1906년에 봉감, 정운, 긍법, 경조 등이 그린 것이다. 간략한 아미타존상의 형태와

음영법의 구사, 적색과 녹색의 탁한 색감이나 어두운 군청색을 많이 쓴 점, 불화의 횡적인 구도와 그림에 나타난
상을 간략하게 나타낸 점 등, 조선 후기 불화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5. 옆에서 본 철불좌상과 약사불도



6. 호국지장사 느티나무

호국지장사 입구에서 절로 인도하는 길은 경사가 다소 각박하다. 그 길을 오르면 커다란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시
원한 그늘을 베풀며 여기까지 올라온 나그네들을 격려한다.
그는 350년 정도(1985년 10월 보호수로 지정될 당시 추정 나이가 약 315년) 묵은 나무로 높이 15m, 둘레 4.5m에
이른다. 오랜 세월 지장사의 이정표 및 정자나무 역할을 했던 존재로 아무리 먹어도 마르지 않는 세월이란 양분
지장사의 보살핌으로 무럭무럭 자라나 현충원에서 가장 오래되고 장대한 자연물이 되었다
.


7. 석등을 띄워놓은 조그만 연못


8, 호국범종이 봉안된 범종각

1975년에 지어진 것으로 저 안에는 같은 해에 조성된 범종이 담겨져 있는데, 현충원과 절의 이름에 걸맞게 호국범

종이라 불린다.


9. 동그란 연꽃무늬 석조


10. 고색의 때가 깃든 네모난 돌판과 그 위를 소박하게 장식한 화분들
돌판 피부에 한문 여러 자가 새겨져 있으나 눈이 침침하여 무슨 글씨인지는 모르겠다.


11. 호국지장사 경내 (맞배지붕을 지닌 왼쪽 건물이 대웅전)



감사합니다
이렇게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