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진·답사기/국립현충원·서달산

도봉산고양이 2020. 2. 24. 10:51



1. 호국지장사 대웅전 목조여래좌상과 아미타불도 (석가여래3존상)

대웅전에 봉안된 목조여래좌상(가운데 금동불상)은 호국지장사에서 보유하 있는 10여 점의 지방문화재 중에 가장 최
(2018년 8월)에 지정된 것이다.
2006년에 목조여래좌상을 개금했는데, 그의 뱃속에서 후령통과 저고리 등이 나왔다. (복장발원문은 없음) 후령통은 1639
에 조성된 수덕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뱃속에서 나온 은제 후령통과 많이 비슷하여 1639전후 것으로 여겨지며,
또한 그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불상 뒤에 걸린 후불탱은 아미타불도로 19세기 말에 제작되었다. 비단 바탕에 그려진 가로 223.5㎝, 세로 138㎝ 크기로 그
중앙에 아미타불을 두고 그 좌우로 여러 권속들을 배치했는데, 형태가 풍만하고 정교하며 무늬가 곱다. 5가지 색깔의 광
배를 지니고 있으며, 옷의 묘사는 도식화되었고, 적색과 녹색의 색상은 다소 탁하며 코발트 빛깔의 짙은 청색은 19세기 말
불화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예전에는 능인보전에 있었으나 그새 대웅전으로 넘어와 대웅전 석가3존상의 든든한 후불탱이 되었다. (호국지장사는 지방

문화재 탱화의 거처를 자주 옮김)



2. 대웅전 석가여래3존상과 아미타불도
가운데 앉은 불상이 지방문화재인 목조여래좌상이고 그 좌우로 근래 조성된 지장보살과 관세음보살이 협시하고 있다. 다들

산뜻하게 개금을 입혀서 나이가 모두 비슷해 보이며, 그 뒤에는 능인보전에서 넘어온 아미타불도를 걸어두었는데, 그 자리
에는 화려하게 새겨진 목각후불
탱이 있었다.


3. 대웅전 팔상도

팔상도는 부처의 일대기를 8개의 장면으로 그린 것으로 1893년 한곡돈법이 그렸다. 이곳 팔상도는 부처의 생애 중
가장 극적인 장면만을 묘사했다고 하며, 형식적인 형태와 탁한 색조는 19세기 후반 불화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4. 대웅전 감로도

감로도는 1893년 금호약효 등 화승 3명이 그린 것이다. 그림은 상부에 아미타여래 일행이 지옥에서 온 중생을 맞
이하러 가는 장면을 그렸고, 중앙에는 성반의식(
우란분경에서 7월 15일 승려 및 십방제불에게 백미를 올리고 발원
하는 의식)
을 하는 모습을, 그 주변에는 아귀의 모습을 담았다.
그리고 하단부에는 고통에 신음하는 중생들로 가득한 지옥과 현실의 모습을 그렸는데, 7여래의 장엄하면서도 원만
한 얼굴과 옆을 바라보고 있는 자세, 성반의식을 하는 승려의 모습과 산수의 표현 등은 19세기 초의 양식을 잘 보
여주며, 나뭇잎 선의 처리와 산수의 음영처리 등에서 19세기 후반 불화 양식이 잘 드러나고 있다.



5. 화장사 현판의 위엄

화장사는 호국지장사(지장사)의 예전 이름이다.


6. 공양간에 걸린 현왕도

현왕도는 1893년에 금호약효 등 3명이 그렸다. 현왕이란 염라대왕을 일컫는 것으로 죽어서 3일만에 그에게 심판을
받는 장면을 담았다.
화면은 
둥근 구조 안에 그의 심판 장면을 그렸는데, 현왕의 우람한 체구와 세밀한 얼굴묘사에서 비교적 예스러운
양식이 나타난다. 얼굴과 옷주름을 획일적으로 묘사했고 꽃무늬와 구름을 단색으
로 처리해 19세기 말 불화의 경향
을 보여주고 있다.

현왕도는 보통 대웅전 등 법당에 걸기 마련인데, 지장사는 특이하게도 밥을 먹는 공양간에 걸어두었다. 공양간은

근래 새로 지은 요사 건물로 최근에 공양간으로 역할이 바뀌었다.



7. 대웅전 뜨락에 마련된 관불의식의 현장

이 날은 석가탄신일이 아닌 현충일(2019년 현충일)이었다. 호국지장사는 국립현충원의 원찰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석가

탄신일 못지 않게 현충일을 중요한 날로 챙기고 있는데, 대웅전과 극락전을 손질한 기념으로 대웅전 앞에 아기부처를 비롯
한 관불의식의 현장을 새로 만들었다. 단 임시로 만든 것이 아닌 돌로 석조를 다지고 그 위에 석조 아기부처를 만들어 오랫
동안 사용이 가능하다.



8. 초여름 햇살이 내려앉고 있는 호국지장사 경내 (대웅전 주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