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진·답사기/도봉구·도봉산(무수골)

도봉산고양이 2020. 5. 14. 23:20



* 쌍문동 함석헌기념관

주택과 빌라로 가득한 쌍문2동 한복판에 도봉구의 새로운 명소로 아주 조금씩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함석헌기념관이 숨

겨져 있다.
집의 주인이었던 함석헌(1901~1989)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인권운동가이자 기독교 종교지도자, 시인, 언론인, 역사가로 
평안북도 용천군 부라면 원성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에 참여했으며, 걷는 습관을 '빠르나 급하지 않게' 방식으로
바꾸었다. 

1921년 오산학교에 편입했으며, 1924년에 왜열도로 건너가 동경고등사범학교에 입학, 재일본조선교육연구회 창립 회원이
되었다. 1927년 신앙 동지들과 '성서조선'을 창간했고, 1928년 동경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여 자신이 나왔던 오산고등보통
학교에 들어가 역사를 가르쳤다. 1934년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를 발표했으며, 1942년 성서조선 사건으로 인해

대문형무소에 수감되는 고통을 겪는다.

1945년 해방 이후, 평안북도 자치위원회 문교부장으로 재임했으나 소련군에게 수감되었으며, 1947년에 월남하여 '그 사람
을 가졌는가'를 썼다.

1954년 개인 잡지 '말씀'을 창간했으며, 1956년에 '한국 기독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발표했다. 1958년 '생각하는 백성

이라야 산다'는 글을 발표했는데, 그것 때문에 서대문형무소에 다시 수감되는 고통을 겪는다.


1961년 5.16이 터지자 '5.16을 어떻게 볼 것인가','인간혁명'을 발표했으며, 1964년 한일협정 반대 운동에 참여했다. 이때 '
뜻으본 한국역사'를 출간했다.
1970년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씨알의 소리'를 창간했으며 1974년 유신체제 철폐를 위한 민주회복국민회 공동대표가 되

었다. 그리고 1976년 3.1민주구국선언에 참여했으나 체포되어 군법회의에서 징역 8년을 선고 받았디.
1979년에 우리나라 최로 노벨평화상 후보까지 올랐는데, 심사위원들이 보는 눈이 없어서 떨어졌으며, 1980년에 '씨알의

리'가 전두환 계엄당국에 의해 폐간되는 수모를 겪는다.

1987년 제1회 인촌상을 수상했으며, 1988년 서울올림픽 평화대회 위원장으로 '서울평화선언'을 제청했다. 이때 '씨알의 소
리'가 다시 복간되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89년 2월 4일, 88세란 적지 않은 나이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2002년 김대중 정부에 의해 국가유공자로 지정되었으며, 처음에 연천 전곡읍 간파리에 무덤을 썼으나 2006년에 대전 현충
원으로 이장되었다.



1. 함석헌기념관 외경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함석헌기념관은 20세기 후반에 지어진 양옥으로 지상 1층, 지하 1층의 대지 면적 331, 연면적

248.67 규모이다.

이곳은 그의 아들인 함우용의 집으로 함석헌은 원효로4가 70번지에서 1956년부터 살다가 1983년 이곳으로 들어와 말년을
보냈는데, 그는 
새벽에 일어나 독서와 공부를 했고 온실에서 여러 종류의 식물을 키우는 등, 늘 바쁘게 몸을 움직였다.
도봉구에서 이 집을 매입해 2013년에 손질에 들어가 2015년 9월 3일 속세에 문을 열었으며 함석헌이 생활했던 1층은 그의
유물을 전시한 전시실과 수장고로, 창고로 쓰였던 지하 1층은 온실과 세미나실. 게스트룸, 도서열람실 등으로 쓰이고 있다.

관람시간은 9~18시이고, 매주 월요일은 휴관하며 입장료는 없다. 1층과 온실, 지하1층, 뜨락을 둘러보면 되며 운이 좋으면 
기념관을 관리하는 직원이 커피나 음료수를 타서 제공하기도 한다.


2. 활짝 열린 함석헌기념관 정문

우리집에서 도보 30분 거리로 가까움에도 이제서야 이곳을 찾았다. (2019년 7월)


3. 함석헌기념관 뜨락

뜨락에는 박석이 입혀져 있고, 나무와 꽃들이 가득해 정원이 딸린 상류층 주택의 면모를 보여준다.



4. 함석헌기념관으로 쓰이는 양옥 주택

지상 1층, 지하 1층 규모로 1층은 전시실, 지하 1층은 세미나실, 도서열람실 등으로 쓰인다. 1층으로 들어설 때는 신발을 벗
고 실내화로 갈아타야 된다.


5. 서쪽에서 바라본 뜨락과 대문 방향


6. 뜨락에 자라고 있는 오가피나무

푸른 잎으로 가득한 오가피나무로 함석헌이 심었다고 전한다.


7. 함석헌기념관 안내도


8. 함석헌의 옛 묘비

함석헌 묘는 처음에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연천군 전곡읍 간파리에 있었다. 2006년 그의 묘를 대전현충원으로 이전했는데,

책장처럼 생긴 그의 묘비는 이곳으로 가져와 함석헌기념관의 휼륭한 수식물로 삼았다.


9. 1층 전시실에 있는 함석헌의 빛바랜 사진들


10. 1층 전시실에 있는 그의 유품과 그가 앉았던 의자


11. 함석헌이 독서를 하거나 집필 활동을 했던 1층 전시실


12. 국가유공자증서

2002년에 김대중 정부가 그를 국가유공자로 지정하면서 올린 국가유공자 증서이다.


13. 함석헌 사진

함석헌은 수북한 하얀 수염과 백발로 세상에 많이 등장했다. (그런 이미지가 너무 강함)


14. 함석헌의 체취가 담긴 그의 원고

함석헌의 글씨는 저렇게 생겼다. 옛날에 저런 원고로 독후감을 쓰거나 책을 쓰거나 했는데 이제는 모두 옛날 일이 되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