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진·답사기/동대문구·중랑구

도봉산고양이 2020. 5. 16. 01:48



1. 연화사 일주문
경희대학교병원 서쪽에는 연화사란 조그만 절이 있다. 지금은 경희대에 완전히 포위된 외로운 공간이 되었지만
1950년대까지만 해도 소나무가 무성한 한적한 숲속이었다. 그때는 청량리 북쪽 영휘원에서 오솔길을 따라 절로
들어섰으며, 절 북쪽에는 천장산(141m)이 자리해 연화사와 의릉<조선 20대 군주인 경종의 능>을 감쌌다. 그래서
연화사는 자연히 '천장산 연화사'를 칭하게 된 것이다.
허나 1955년에 종로1가에 있던 경희대(옛 신흥대학)가 이곳으로 오면서 절 바로 옆에 학교 건물이 들어서게 되
었고, 덩달아 주거지까지 조성되면서 절 주변 풍경은 강제로 180도 달라지게 되었다. 하여 연화사를 품었던 천
장산은 경희대로 인해 서로 끊어졌고, 절 사방으로 경희대(경희여중고, 경희대병원)에 완전히 감싸여 외부에서
는 거의 보이지도 않게 되었다.

조계종 소속인 연화사는 1499년 폐비윤씨의 묘역인 회묘의 원찰로 창건되었다고 전한다. 회묘는 원래 경희대병

원 자리에 있었는데, 억울하게 죽은 어미를 위해 연산군은 1504년 회묘를 회릉으로 높여 석물을 심고 회묘를 지
키는 절을 세웠다. 허나 아쉽게도 연화사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는 그 원찰의 이름은 아쉽게도 전하지 않는다.
1506년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이 폐위되자 회릉은 회묘로 격하되어 방치되었고, 연화사도 이때 풍비박산이 난 것
으로 보인다. 반정파들은 연산군과 관련된 모든 것을 철저히 깔아뭉개버렸기 때문이다.

이후 터만 아련히 전해오다가 경종(재위 1720~1724)의 능인 의릉이 인근 석관동에 들어서자 다시 존재감을 드러
낸다. 영조가 1725년 절을 지어 의릉의 원찰로 삼은 것이다. 허나 그 원찰의 이름도 전하지 않는다.
1870년대에 이르러 승려 묘련이 절을 중수했는데 그는 성품이 좋아 인기가 대단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이
름을 따 절을 묘련사(또는 묘련암)라 부르니 이때부터 절의 이름이 역사에 나타난다.
1882년 임오군란 때 파괴된 것을 1883년에 승려 정담이 남화, 완허의 도움으로
다시 일으켰으며, 이때 궁인 박
씨와 상궁 최씨, 김씨 등이 시주하여 여러 불
화를 제작했다. 그렇게 중건이 마무리 되자 1884년 10월 '천장산
묘련사 중건기'를 남겼다.
이후 절은 연화사로 이름이 갈렸는데, 그 시기가 정확하지 않다. 다만 1993년 자음이 지은 '천장산 연화사 삼성
각 상량문'에는 '부처의 청정법신이 머무는 곳이 연화장 세계이고, 중생의 근본적 자성이 진흙 속에서 피어나는

청정한 연꽃과 같아 절 이름을 연화사라 했다'고 적고 있어 연화장 세계에서 절 이름을 따왔음을 귀띔해준다.

1950년대까지 절 주변은 자연에 묻힌 싱그러운 곳이었으나 경희대가 절 옆에 터를 닦으면서 도심 속의 절이 되
어버렸으며, 연화사의 첫 후광이던 회묘는 1969년 경희대에 밀려 서삼릉으로 강제 이전되었다.
1990년대까지 법당인 극락보전과 미륵전, 대방, 종각 등의 기와집이 경내를 이루었으며 극락보전 앞에는 뜨락이

닦여있었고, 경내 뒤에는 약간의 소나무가 운치를 이루었다. 허나 건물이 낡고 터가 좁아 1993년부터 크게 중수
를 벌여 기존의 건물을 부시고 집약적인 공간인 2층짜리 대웅보전과 삼성각 등을 새로 지었으며, 그 과정에서 '
미륵전 상 량문'과 '묘련암 중수기(1875년)'가 발견되어 절의 숨겨진 역사 일부가 속살을 드러냈다.

경내에는 법당인 대웅보전을 비롯해 삼성각과 무애당, 관음전 등 4~5동의 건물이 있으며, 소장문화유산으로는

2013년에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칠성도, 천수관음도, 신중도, 지장시왕도, 산신도, 아미타괘불도 등이 있다.
이중 아미타괘불도는 1901년 10월 28일에 제작해 다음달 11월 20일에 점안된 것으로 대은 돈희
를 중심으로 계
은 봉법, 한봉 응작, 보암 긍법 등이 참여해 조성했다. 아미타3존불을 비롯해 가섭존자, 아난존자, 사자와 코

리를 탄 문수/보현동자상까지 등장시켰는데, 이는 19세기 중반 서울, 경기 지역에서 유행했던 괘불 양식이다.

그밖에 1880년에 제작된 독성도가 있으며, 지방문화재 불화들은 괘불을 제외하고 상당수 삼성각과 대웅보전 1

층, 새로 장만한 관음전에 포진해 있으니 잘찾아보기 바란다. (위치는 변경될 수 있음)


2. 높이 솟은 연화사 일주문


3. 연화사 삼성각

경내 뒤쪽에 자리한 삼성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산신과 독성, 칠성의 거처이다. 이곳에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칠성도와 산신도가 있다.


4. 연화사 독성도

독성도는 천태산에서 몸을 일으킨 나반존자(독성)를 담은 탱화로 아줌마 자세로 편하게 앉은 백발의 독성 할배와
그의 활동무대인 천태산이 그려져 있다. 비단 바탕에 채색된 것으로 1880년에 제작되었으며 삼성각에 깃든 3개의
탱화 중 가장 늙었으나 산신도, 칠성도와 달리 지방문화재의 지위를 얻지 못했다.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5. 연화사 칠성도와 금동석가여래상

삼성각 중앙에는 금동석가여래상과 고색이 역력한 칠성도가 자리해 있다. 칠성도에는 치성광여래를 중심으로 일광
살, 월광보살, 칠성
불, 칠원성군, 노인성, 삼성 등 칠성의 주요 식구들이 복잡하게 담겨져 있다.

연화좌 위에 결가부좌로 앉아있는 칠성도의 주인, 치성광여래는 금륜을 들고 있는데, 양어깨를 덮은 통견의를 입

고 있으며 좌우 협시보살은 연화좌 위에 반가좌 형태로 앉아 본존불을 향해 합장인을 선보인다. 그리고 머리에 쓴

에는 해와 달을 상징하는 붉은 원과 하얀 원이 그려져 있고, 치성광여래 주위로 좌우 대칭되게 배치된 칠성불은

합장한 채 본존불 쪽으로 몸을 향해 있으며, 칠원성군은 각기 홀을 들거나 합장한 채 치성광여래를 향해 서 있다.

이 그림은 구한말에 서울, 경기 지역에서 활약한 한곡 돈법을 중심으로 한명 환조, 두삼, 태호, 창호 등이 동참하

여 1901년에 그린 것으로 이때 아미타괘불도와 지장시왕도, 신중도, 천수관음도가 같이 제작되었다.


6. 연화사 산신도

칠성도 우측에는 산신과 호랑이, 동자 등 산신 가족을 머금은 산신도가 자리해 있다. 언제 제작되었는지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으나 1923년에 문성이 산신각을 짓고 봉안했다는 기록이 있어 이르면 1880년대 후반, 적어도 칠성도
와 비슷한 시기로 여겨진다.
그림을 살펴보면 중앙에 붉은 옷을 걸친 산신 할배가 크게 표현되어 있는데, 머리에 모자 모양의 두건을 쓰고 있

고, 까무잡잡한 얼굴은 둥근 넓적해 포근한 표정으로 정면을 바라본다. 왼손에는 깃털로 된 부채를 들고 있고
으며 오른손으로 그의 수염을 쓰다듬고 있다.
산신 오른쪽에는 그의 비서인 동자 2명이 그려져 있는데, 모두 기물을 들고 서 있으며, 왼쪽에는 그의 심부름꾼인

호랑이가 민화(속화)풍으로 익살스럽게 그려져 있어 눈길을 끈다. 그런데 시중에 돌고 있는 어느 유명한 민화의

호랑이와도 많이 닮아있어 혹 그를 참조하여 그린 것이 아닐까 싶다. 하여튼 옛 사람들은 호환이라 하여 두려움의

대상인 호랑이를 고양이처럼 친근하게 표현하는 경향이 짙었다.

산신 뒤에는 그의 활동무대인 산이 있는데, 노송과 길게 떨어지는 폭포를 그려 심산유곡의 분위기를 자아냈다.



7. 2층 규모의 대웅보전

지상 2층, 지하 1층 규모의 대웅보전(대웅전)은 연화사의 법당으로 1993년에 지어졌다. 지하는 선방과 공양간, 1

층은 강당, 2층은 대웅보전 법당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절이 작다보니 이렇게 집약적인 건물을 지은 것이다.


8. 연화사 신중도

신중도는 호법신의 무리를 담은 것으로 등장 인물이 너무 과다해 정신을 쏙 빼놓는다. 주로 법당을 지키는 용도로
신중도(신중탱)를 많이 거는데, 제석천과 범천, 위태천을 중심으로 그의 식구들이 그려져 있다.
그림 좌우측에 대칭으로 자리한 제석천과 범천은 동그란 두광과 신광을 뒤에 두루며 머리에 보관을 쓴 채, 두 손

으로 꽃을 들고 있으며, 그림 하단에는 위태천을 중심으로 칼로 무장한 팔부중이 있고, 제석천과 범천 주위로 일

월대신 등의 천신과 산개 등을 받쳐든 천동, 악기를 연주하는 천녀 등이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은 1901년에 수화원 한봉 응작을 비롯해 대은 돈희와 계은 봉법, 보산 복주, 보암 긍법, 재겸 등 12명의
화승 그린 것으로 이중 계은 봉법, 보암 긍법, 돈법, 두삼 등은 20세기 초 경기도 지역에서 활약한 경선당 응

석과 교류를 가진 화승들이다.
그림의 구도와 형태, 필선, 채색 등이 깔끔하게 처리되었으며, 세부묘사가 정교해 19세기 중반 이후 화풍 흐름을

잘 보여준다.



9. 연화사 지장시왕도

신중도 옆에 자리한 지장시왕도는 가운데 지장보살을 비롯하여 무독귀왕, 도명존자, 시왕 등 명부(저승)의 식구들

이 담겨져 있다. 신중도 만큼이나 정신없어 보이는 이 그림은 언제 그려졌는지는 기록이 없으나 연화사 불화가 대
거 조성되던 1901년에 
제작된 것이 아닐까 여겨진다.

그림을 살펴보면 지장보살은 수미단 위에 마련된 연화좌에 결가부좌로 앉아있으며, 투
명한 흑색두건을 쓰고 오른

손에 보주, 왼손에 육환장을 들고 있다. 그 좌우로 무독귀왕과 도명존자가 합장인을 선보이며 지장보살을 향해 서

있고, 지장보살의 신광 좌우로는 온갖 모습의 시왕이 지장보살을 향해 서 있는데 시왕 뒤에는 8곡병이 들러져 

으며 광배는 금박을 붙여 장식했다.

이렇게 광배를 금색으로 처리한 수법은 구한말에 서울, 경기 지역에서 유행하던 것으로 그림의 인물 표현에서 특

히 주목되는 것은 우두옥졸과 마두옥졸 등 인물의 상호에 표현된 음영법이다. 이 음영법 역시 19세기 이후 서울,

경기 지역 불화에서 많이 보인다.

이 그림은 1867년에 경선당 응석이 그린 낙산 보문사
의 지장시왕도를 바탕으로 제작된 것으로 서울 청룡사 지장

시왕도와 유사하며, 구한말에 서울, 경기 지역 지장시왕도의 도상을 충실히 계승하고 있는 작품으로 채색 및 인

물 표현에서도 19세기 양식이 잘 반영되어 있다. 하여 이를 통해 서울 지역 불화유파의 사승 관계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