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진·답사기/북악산 백사실(백석동천)

도봉산고양이 2020. 6. 8. 04:22


* 부암동 백석동천 별서터

나의 즐겨찾기의 하나인 북악산(백악산) 백사실에는 백석동천 별서터가 숨겨져 있다. 이곳은 예로부터 백사실, 백사실계
이라 불렸는데, 이를 두고 한음과 오성으로 유명한 오성 이항복의 별장이 있어서 그리 불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항복
다른 호가 '백사'이기 때문이다. 허나 그는 이곳에 머문 적이 없다.

그리고 다른 이름으로는 백석동천이 있는데, 여기서 백석은 북악산(백악산)에서 비롯된 것이다. 계곡은 작으나 하얀 반석
과 바위들이 많이 있으며, 숲이 짙고 경관이 아름다워 이곳을 찾는 단골들이 많았다. 그들이 아름다운 경관에 많이
붙이는

칭호인 '동천(동학)'을 붙이면서 백석동천이라 불리게 되었다.

백석동천 외에도 백석정, 백석실이라 불리기도 했으며, 나는 백사골이란 이름을 주로 쓴다.


백석동천 별서는 1830년경에 지어지거나 중건된 것으로 여겨지는 600평 규모의 별서이다. 누가 언제 지었는지는
북악산
산신도 모르나 월암 이광여(1720~1783)의 이참봉집에 '세검정과
탕춘대 계류 고간 세폭 위에 동천이 조성되어 있고 그곳
에 허씨의 모정이 있었으며 모정의 이름은 간정료였다'
는 내용이 있어 현재의 별서 이전(17~
18세기)부터 조그만 집이 이
미 둥지를 트고 있었음을 알려준다.

그러다가 2012년에 추사 김정희가 이곳을 매입하여 별장으로 삼았음이 밝혀지면서 백사실의 비밀이 다소 벗겨졌다. 추사
의 문집인 '완당전집 권9'에
'선인이 살던 백석정을 예전에 사들였다','나의 북서(북쪽 별서)에 백석정 옛터가
있다' 등의
내용이 있
고 그곳과 관련된 시가 여럿 발견되어 추사가 백석정 자리를 구입하여 크고 아름답게 다시
었음이 밝혀진 것
이다. 하여 지금까지 전해오던 1830년 창건설(또는 중건설)의 주인공은 바로 추사
로 여겨진다.

이곳에는 별서 주인이 머물던 사랑채와 안채를 비롯해 정자와 동그란 연못이 있었다. 안채는 4량(樑)집이고, 사랑채는
'ㄱ'
모양의 5량집으로 누마루가 높았다. 안채는 1917년에 집 한쪽이
기울어져 크게 수리를 했다고 전하며 1970년대
까지 살아
있었으나
사랑채와 함께 무너졌다. 사랑채는 그나마 주춧돌과 석축이 진하게 남아있으나 안채터는 땅 속에
묻혀있다.
동그런 연못은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데, 6.25전쟁 때 정자가 파괴되고 그 휴유증으로 연못마저 그 기능이 상실되
고 말았
다. 현재는 사랑채터와 안채터, 정자터, 연못, 담장의 흔적, 바
위글씨 2개만이 남아 백석동천의 옛 정취를 전해주고 있을 뿐
이다.

1. 연못에서 사랑채로 오르는 돌계단
별서터 연못에서 사랑채로 인도하는 돌계단이 2개가 있다. 하나는 바로 연못을 이어주며, 다른 하나는 서쪽에 있다.

2. 사랑채터 옆에 있는 네모난 연못터

3. 사랑채터에서 바라본 동그란 연못
비록 연못의 기능은 잃고 무늬만 남아있으나 봄이나 여름, 가을 때 비가 많이 내린 직후에는 연못의 기능을 잠시 회복하기도

한다. 빗물이 연못에 잔뜩 고이면서 연못이나 호수 티를 제법 내기 때문이다. 그때가 되면 수풀들도 덥수룩하게 자라나 연

못의 풍경을 크게 거둔다.

4. 안채터
사랑채터 옆에는 흙으로 뒤덮힌 안채터가 있다. 예전에는 체육시설이 있었으나 밀어버렸으며, 2010년 발굴조사 이후 흙으
로 모두 덮었다.

5. 윗쪽에서 바라본 안채터

6. 사랑채터 옆 돌담터

이곳 별서는 주위에 돌담을 둘렀는데, 지금은 사랑채와 안채터 옆 언덕에 돌담 밑도리가 일부 남아 있을 뿐이다.

7. 사랑채터

별서 주인의 생활공간으로 'ㄱ' 구조이다. 안채터는 터만 겨우 남아있고, 그 흔적도 보존을 위해 흙속에 넣어두었으나 사랑

채터는 주춧돌과 터 윤곽이 아주 진하게 남아있어 나름의 상상을 더해 사랑채의 왕년의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다.

8. 사랑채터 누마루

연못을 향하고 있는 누마루의 흔적으로 별서 주인은 여기서 연못을 바라보며 곡차 1잔, 시 1수의 풍류를 즐겼을 것이다.

9. 정자터와 연못
연못에 발을 담구었던 정자는 6각형 모습으로 정자를 받치던 주춧돌과 신발을 벗어두던 계단석만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