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사진·답사기/경기 안양·과천·군포·의왕

도봉산고양이 2020. 6. 12. 05:00


1. 안양 망해암으로 인도하는 길

비산1동 임곡주공아파트 종점(안양마을버스 3-1, 7번 종점)에서 구불구불한 오르막길을 30분 정도 오르면 해발 200m 고지

에 둥지를 튼 망해암이 활짝 모습을 비춘다.

이곳은 안양예술공원 남쪽 산줄기로 삼성산과 관악산의 일원인 비봉산(295m) 서쪽 자락이다. 안양시내가 바라보이는 서쪽

가파른 곳에 둥지를 틀고 있는데, 북쪽으로 안양예술공원과 삼성산이 보이고, 완전히 확 트인 서쪽으로 안양시내와 수리산

이 훤히 조망되어 조망 하나는 일품이다. 그러다보니 날씨가 좋으면 멀리 서해바다까지 거뜬히 시야에 들어오며 그로 인해

절 이름이 바다를 바라보는 암자란 뜻에 망해암이 되었다. 특히 여기서 바라보는 일몰 풍경이 아름다워 안양8경의 제1경으

로 격하게 찬양을 받고 있다.


망해암은 조계종 소속으로 화성 용주사의 말사이다. 절에서는 신라 문무왕 시절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내세우고 있지만

신빙성은 없으며, 경내에 1479년에 조성된 늙은 석불입상이 있어 적어도 조선 초에 창건된 것으로 여겨진다.

1407년에 한양(서울)을 위협하는 관악산의 산천기맥을 누르고자 왕명으로 서울 서남부 지역 절을 대거 중창했을 때, 중건했

다고 전하며, 1803년에 정조의 모후인 헌경왕후 홍씨(혜경궁홍씨)의 시주로 중창했고, 1863년 대연화상이 중수했다. 그리고

6.25전쟁 때 파괴된 것을 중수하여 지금에 이른다.

 

조촐한 경내에는 법당인 용화전을 비롯해 삼성각, 천불전, 치장전, 종무소 등 6~7동 정도의 건물이 있으며, 소장문화유산으

로는 이곳의 오랜 명물인 석불입상이 있다. 그는 용화전에 봉안되어 있는데, 보개 하단에 '성화15년4월일 조성'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어 1479년 4월에 조성되었음을 알려준다. 이렇게 탄생시기를 머금은 문신까지 지니고 있으나 석불이 20세기 이후

조금 변형된 탓인지 아직까지 그 흔한 지방문화재의 지위도 얻지 못했다.

 

망해암과 관련해서 전설이 하나 전해오고 있으니 내용은 대략 이렇다. 조선 세종 시절에 조세를 운반하던 어느 배가 월미도

부근을 지날 무렵, 심한 풍랑으로 전복된 위기에 처했다. 선원들은 크게 당황하여 우왕좌왕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뱃머리에

서 어떤 승려가 나타나 선원들을 진정시켜 무사히 위기를 넘겼다. 풍랑이 가라앉자 선원들은 그에게 어느 절에서 왔는지를
물었고 이에 승려는 관악산 망해암에 있다고 답하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선원들이 한양에 도착해 조세 수송 임무를 완수하고 그 승려에게 고마움을 표하고자 망해암을 찾았으나 승려는 없고, 그와

비슷하게 생긴 석불만 법당에 덩그러니 있었다. 그들은 깨달은 바가 있어 나라에 상소를 올려 이 사실을 고하니 이를 가상히

여긴 세종이 매년 공양미 1섬씩 석불에게 올렸고, 조선 후기까지 계속 공양을 올렸다고 전한다. 

2. 망해암으로 인도하는 길

절까지 계속 오르막과 구불구불의 연속이나 경사는 그리 각박하지는 않다.

3. 망해암 천불전과 지장전

2층 건물을 닦아서 윗층은 천불전, 아랫층은 지장전으로 삼았다. 

4. 지장전에 봉안된 석조지장보살좌상

5. 망해암 용화전

용화전 안에 이곳의 보물이자 꿀단지인 석불입상이 봉안되어 있다. 용화전 밑에는 2층 건물을 두어 요사와 선방 등으로 사

용하고 있다.

6. 바위에 새겨진 '佛'과 '石斗' 바위글씨

7. 용화전 밑 바위 틈에 살짝 깃든 샘터

8. 망해암 삼성각

망해암 경내에서 가장 하늘과 가까운 건물로 산신과 칠성, 독성의 거처이다.

9. 용화전 석불입상

망해암에서 제일 늙은 존재이자 대표 꿀단지로 용화전에 소중히 봉안되어 있다. 이렇게 보면 어깨와 얼굴, 모자(보개)만 있

는 것처럼 보이나 불단 때문에 가려진 것일 뿐, 나머지 부분은 잘 남아있으며, 옆에서 보면 석불의 옆구리와 아랫도리 모두

확인할 수 있다.


이 석불은 앞서 언급한 보개 밑에 쓰인 명문을 통해 성화 15년 4월, 즉 1479년 4월에 조성된 것이다. 머리에는 원형 보개가

씌워져 있는데, 머리와 보개에 검은색을 칠했으나 지금은 많이 지워졌으며, 상호와 신체부는 흰색으로 도색되었다. 머리는

마모되었으나 나발을 갖추고 있으며, 머리 위에는 육계(무견정상)가 솟아있고, 그 위에 보개가 있다. 머리 정면 중앙에는 계

주가 표현되었으며, 눈꼬리가 치켜 올라간 양 눈은 반쯤 떠서 아래를 보고 있고, 코와 입은 두툼하게 조각되었다. 양쪽 귀는

크게 지어졌으며, 법의는 통견으로 두껍게 처리하여 신체의 곡선미를 볼 수 없다. 왼손은 가슴 앞으로 올려 엄지와 검지를

맞대고 있으며, 오른손은 오른쪽 다리로 내렸다. 조금 변형되긴 했으나 상태는 괜찮은 편으로 조선 초기 석불 연구에 좋은

자료로 평가를 받고 있으나 아직까지도 비지정문화재에 머물러 있다.

10. 용화전에 봉안된 하얀 피부의 석불좌상

귀엽게 표현된 마애불식 석불로 근래 조성되었다.

11. 옆에서 바라본 석불입상

석불 앞에 불단을 만들다보니 어깨 밑 부분이 가려졌다. 하여 그의 온전한 모습을 보고 싶다면 옆에서 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