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진·답사기/성북구·강북구

도봉산고양이 2020. 6. 30. 09:20

 

1. 흥천사 지장시왕도

이 그림은 1867년에 의운자우가 그렸다. 푸른 두광과 연두색 신광을 지닌 지장보살을 가운데 두고 그 좌우로 시왕과 명부
(저승)의 주요
식구들이 빼곡히 담겨져 있다.
19세기 후반 서울 지역 지장시왕도의 새로운 형식을 열었다는 그림으로 지장보살이 두 손으로 보주를 들고 있는 점, 그 밑
에 선악동자 2명이 지장보살의 석장을 대신 들고 있
는 점이 기존의 지장시왕도와 다르다. 개운사 지장시왕도(1870년), 봉
국사
장시왕도(1885년) 등이 바로 이것을 참조했으며, 점차 확대되어 19세기 후반 서울, 경기, 경상도에서 널리 유행했다.
안정된 구도와 홍색을 기반으로 녹색과 청색이 대비를 이루는 색채의 구사력, 세부 문양에서 볼 수 있는 섬세한 표현 등이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새로
운 양식을 연 지장시왕도로 그 가치가 높아 늦게나마 지방문화재의 지위를 누리게 되었다.

2. 현왕도

현왕도는 현왕(염라대왕)이 여러 권속을 거느리고 망자를 심판하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1867년에 조성되었다. 화기는 남
아있지 않으나, 18세기 후반~19세기 전반 경상북도 사불산파의 화승 신겸의 영향이 보이며, 도상적으로는 19세기 후반 경
서울, 경기도, 경상북도 지역에서 유행한 현왕도의 형식을 따르고 있어 당시 서울 경기지역과 경상북도 화승들 간의 교류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3. 영친왕이 4살 때 남겼다는 현판

친왕(英王, 1897~1970)은 고종의 7번째 아들로 1901년 흥천사를 방문해 글씨 하나를 남겼다. 현판에는 '王孝 天地玄黃
金雨孝王海史. 英親王殿下五歲書, 大韓光武五年~~'이라 쓰여 있으며,
그 글씨 중 '王孝天地玄黃金雨孝王海史' 만 영친왕
의 필적이다.

제왕의 아들이 쓴 글씨긴 하나 4살 어린이가 쓴 글씨답게 천진난만함이 가득 묻어나오며 글씨가 다소 흐트러져 보이긴 하
지만 그 나이에 벌써 저 정도의 글씨를 썼을 정도면 나름 총기와 글재주가 있었던 모양이다.

4. 극락보전 신중도

가로로 긴 크기의 화면을 상하로 나눠 상단에는 제석, 범천을 위시한 천부세계를 표현하고, 하단에는 위태천을 중심으로 각
종 무기로 무장한 천룡부를 표현했다.

둥근 두광과 장방형 신방을 지닌 제석천은 궁중복식 모양의 법의를 착용한 채 두 손으로는 흰색 연꽃가지를 받쳐 들고 있으
며, 제석천과 대칭하여 위치한 범천도 제석천과 비슷한 모습에 백색 모란화 가지를 들고 있다. 제석과 범천 주위로는 중앙을

향해 두 손을 모아 홀을 들고 있는 일월대신 및 일궁천자와 월궁천자를 비롯해 중앙 쪽에는 향로와 과일을 받쳐 든 천녀와
생황, 피리, 현악기 등을 연주하는 주악 동남 동녀를 그렸다. 그리고 제석 범천 좌우 바깥쪽으로는 산개와 당번, 당과 선을

천녀 등이 빽빽하게 배치되었고 맨 위쪽 상단에는 하늘 공간을 표현했다.

턱이 둥근 모양의 얼굴을 한 제석천과 범천을 위시해녀, 동남․ 동녀 등의 경우 정교한 세필을 사용하여 상호를 표현하고

피부색을 밝게 처리했다. 하단부에는 깃털 모양의 장식이 있는 투구를 쓴 무장 모습의 위태천을 중심으로 좌우로 천룡부 상

들이 배치되어 있다. 배를 약간 내민 채 몸을 틀고 서서 두 손으로 삼지창을 짚고 있다.

위태천 좌우로는 탕건을 쓰고 깃털부채를 든 상(산신)과 어깨에 책을 걸쳐 든 상(조왕신), 갑옷을 입고 청룡언월도와 죽절

형 무기와 검 등으로 무장한 천룡부 신중상들이 배치되어 있다. 흥미로운 점은 위태천 좌측(향우측) 위쪽으로 붉고 푸른 머

리칼에 입을 벌린 채 이를 드러내고 눈을 부라린 근육질형 상이 보이는데, 예적금강 같은 모습을 하였다. 천룡부의 상들은
대개 상단 천부계의 상들과는 다르게 피부 빛깔이 갈색조를 띠고 부라린 눈에 턱수염과 구레나룻이 덥수룩하며 갑옷에 무

장을 하였다.

채색은 적색과 녹색이 주조색을 이루는 가운데 하늘색 계열의 밝은 청색이 사용되었으며, 위태천의 투구 및 갑옷과 삼지창,

검과 각종 기물 등에 고분법을 적용하고 금(색)을 올렸다.
그림 하단부에 화기가 있는데, 많은 부분이 훼손되었으나 대충 1885년에 조성되었음을 알려주고 있으며, 상궁 김씨와 홍씨

가 그림 제작에 돈을 대어 제왕 내외의 안녕을 기원하는 왕실방원 불화로 여겨진다.

5. 천룡도

천룡도는 신중도 형식의 일원으로 위태천과 천룡팔부를 함께 그렸다. 천룡팔부는 보통 불법을 수호하는 팔부중을 말하나

제석천이나 범천 등은 넣지 않고 위태천을 중심으로 무장한 신장들이 그려진 신중도 형식을 말한다.

화면 중앙에는 위태천이 합장하고 서 있으며 주위에는 천녀와 일월천자 및 여러 신중들이 배치되었다. 위태천은 녹색 두광

을 지니고 새 날개깃으로 장식된 화려한 투구를 쓰고 합장한 두 손 위로 삼고저 같은 것을 받들고 있는데 투구장식 및 견갑
을 금박으로 처리해 화려한 느낌을 준다. 천녀는 꽃으로 장식된 모자를 쓰고 두 손으로 향로와 과일이 든 쟁반을 들고 있다.

천녀 옆에는 관복을 입고 홀을 든 인물이 서있는데, 향우측 인물은 흰색의 달이 그려진 관을 쓰고 북두칠성이 그려진 홀을

들고 있어 월궁천자로 여겨지며, 책관을 쓰고 홀을 든 향좌측 인물은 상주 남장사 신중도(1824년)의 일궁천자와 동일한 모
습이라 일궁천자로 여겨진다.


화면 하단 중앙에는 상투머리에 검은색 투명두건을 쓰고 오른손에 백익선, 왼손에 영지버섯이 든 바구니를 들고 있는 산신

금문양으로 장식된 검은 두건을 쓰고 서책을 들고 있는 조왕신이 배치되었으며, 이들 옆으로는 활과 화살 및 칼, 화염보

주 등을 들고 서있는 신중이 배치되었다.
인물표현은 음영법을 사용하여 입체감을 강조했으며 채색은 전체적으로 붉은색이 많이 사용되었고, 기물과 복식 일부에 화

려한 금박이 사용되었다. 이와 같은 채색법은 19세기 서울 경기지역 불화의 특색이기도 하다. 화기에 의하면 1898년에 용담

초본을 그렸다고 했으나 편수 다음에는 화승의 이름이 지워져 있어 불화조성 화원은 확인할 수 없다.
어쨌든 위태천과 천룡팔부를 간단하게 그린 천룡도로서 1898년에 용담이 초본을 제작했으며, 일반적인 천룡도와 달리 위태
천이 크게 부각되지 않고 하단의 산신과 조왕신 및 기타 신중이 부각되는 구도를 취하고 있고, 의복 및 기물 등에 금박을 사
용하여 채색이 돋보인다. 인물 묘사에는 섬세한 바림질과 세칠의 묘사로 인해 입체감이 돋보이며, 간략하게 표현한 옷주름
에도 활달한 필력이 엿보인다. 신중도 중 천룡도 형식은 유례가 많지 않으며 특히 서울 지역에는 천룡도가 별로 남아있지 않
다.

6. 흥천사 제일의 보물, 금동천수관음보살좌상

이곳 금동천수관음상은 이 땅에서 매우 희귀한 42수 천수관음상으로 1894년에 작성된 '삼각산 흥천사 42수 관세음보살 불

량시주' 현판 기록을 통해 19세기부터 흥천사에 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성시기는 알 수 없으나 얼굴 모습이나 비례, 잘록한 허리 등의 형식과 양식적인 특징에서 고려에서 조선 초에 제작된 것

으로 여겨진다.
천수관세음은 많은 손과 다양한 지물을 이용해 모든 중생을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하고 편안한 생활로 흔쾌히 인도해주며
호국적인 성격이 강한 보살상으로 이 땅의 천수관음신앙은 신라 후기에 관련 경전이 들어온 이후 유행했다. 허나 정작 천

수관세음상은 거의 남아있지 않으며, 흥천사 천수관음상은 고려~조선 초에 제작된 흔치 않은 것으로 그 가치가 인정되어

국가 보물의 지위를 부여받았다. 현재 흥천사에서 유일한 국가 지정 보물이다.

7. 옆에서 바라본 금동천수관음보살좌상의 위엄

앞에 두 손으로 합장인을 선보이고 있고, 나머지 손은 각자의 방향에서 춤을 추고 있다. 저렇게 손이 많으면 편하기는 하겠

으나 손과 팔 동작, 관리는 쉽지 않을 듯 싶다.

8. 꽃을 든 극락보전 목조보살좌상

왼쪽에 꽃을 든 목조보살좌상(관세음보살상)은 101.5cm의 보살상으로 나무로 만들어 도금을 입힌 것이다. 머리에 쓴 보관

은 정면을 향해 날고 있는 2마리의 봉황이 좌우 대칭을 이루며, 화문과 연화문 장식 등이 붙어 있고, 상단에 5개의 화염문과
측면 좌우로 관대가 매달려 있다. 보관 겉면에 몇 개의 작은 구멍이 뚫려 있어 장식 일부가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머리 정상에 높은 보계(상투)가 있고, 보관 밑 이마에 머리카락이 단정히 처리되어 있으며, 보살의 머리카락이 귀를 타고 내

려와 어깨 위에 3가닥으로 늘어져 있다. 얼굴은 조선 후기 제작된 불상에 비하여 역삼각형에 가까운 갸름하다. 머리는 어깨
에 비해 큰 편이나, 상반신이 길고 하반신이 넓어 안정된 신체 비율을 보인다. 이목구비가 단정한 편이고, 선정을 하듯이 가

늘게 뜬 눈의 눈꼬리가 많이 올라가 있고, 코는 뾰족하고 콧등은 짧아 조선 후기에 제작된 불상에서 볼 수 있는 정형화 된 인
상과 다르다. 미간 사이에는 얼굴에 비해 큰 백호가 있다.
양 손은 모두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으며, 무릎에 놓인 오른손과 어깨까지 치켜든 왼손에 연봉오리가 달린 줄기를 자연스

럽게 들고 있다. 대의 안쪽에 편삼을 걸치고, 오른쪽 어깨에 걸친 대의자락이 복부를 지나 왼쪽 어깨로 넘어가고, 끝자락이

엉덩이까지 길게 늘어져 있다. 대의 안쪽에 가슴을 덮은 승각기는 상단이 자연스럽게 접혀 있어 연판형으로 처리된 17세기

중반 이후에 제작된 보살상과 차이가 난다.
이 보살상은 복장물도 없고, 조성 연대를 밝혀주는 발원문도 없어 정확한 조성 시기는 알 수 없으나. 16세기에 조성된 것으

로 여겨지며, 원래 다른 곳에 있다가 이곳으로 들어온 것으로 여겨진다.

9. 극락보전 불단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목조보살좌상, 목조여래좌상, 금동천수관음보살좌상, 아미타불도

10. 흥천사 극락구품도

극락구품도는 불교의 이상 세계라는 극락 세계를 9등분하여 그린 것으로 1885년에 제작되었다. 고양 흥국사의 극락구품도

와 같은 모본을 사용했으며, 화법 또한 유사해 수락산 흥국사에서 활동했던 금곡당 영난의 유파가 그린 것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