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진·답사기/동작구·관악구·금천구

도봉산고양이 2020. 8. 5. 11:55


1. 관악산 관음사 일주문

관음사는 관악산 북쪽 자락 남현동에 자리한 산사로 절 이름 그대로 관음도량을 칭하고 있다. '남태령 관음사', '승방골
음사'라 불리기도 하며, 절을 끼고 흐르는 계곡을 절골이라 부른다.

895년에 도선국사가 관악산의 화기를 누르고자 비보사찰로 세웠다고 전하나 관련 유물과 사료는 전혀 없는 실정이며,

초기 인물인 변계량(1369~1430)이 쓴 '관음사 절경'이란 시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전하고 있어 적어도 고려 중/후기

창건된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18세기에 제작된 범우고와 가람고, 여지도서에도 관음사가 짧게 소개되어 있고, 1977년

극락전을 해체했을 때 나온 상량문에는 1716년 4월 21일 극락개축했다는 내용이 있다. 그리고 절 밑에 승방벌(

방뜰)이란 마을이 있어 절의 규모가 제법 있었음을 알려준다. 


1863년 8월 철종의 장인인 영은부원군 김문근의 시주로 절을 정비했으며, 1883년 봉은사 승려들이 절을 중수했다고 전하

나 확실하지는 않다.

1924년 승려 석주가 주지로 부임해 여러 신도의 도움으로 큰방 10칸을 지었고, 1925년에 요사를 지었다. 뒤를 이어 주지

 태선은 1929년 칠성각을 짓고, 1930년에 산신각을 지었으며, 1932년에 용화전을 세우고, 1942년 극락전을 보수했다.
허나 1950년 이후, 조계종과 태고종이 재산소유권 분쟁을 벌이면서 10여 년 간 지루한 송사에 휘말리게 된다. 그로 인하여

사세는 크게 기울고 건물은 거의 퇴락되는 등 위기를 겪다가 대법원이 조계종에 손을 들어주면서 1973년 진산당 박종하가

주지로 부임했다.

 

그는 절의 옛 영광을 되찾고자 대대적인 중창불사를 벌였는데, 절의 부지 상당수가 국유지, 시유지, 사유지가 뒤섞여 소유

권 분쟁이 계속 일어났고, 개발제한구역과 여러 규제들로 그 역시 쉽지 않았다. 다행히 그 난간을 극복하여 1977년 대웅전

을 지었고, 1980년 범종각을 세우고 삼성각과 용왕각을 보수했으며, 1992년에 대웅전 밑 지하에 대강당을 만들고 1천불을
안했다.

1997년 명부전과 요사, 9층석탑을 짓고, 2001년에 요사채를 신축, 용왕각 부근 지하 150m에서 수맥을 찾아 석조를 만들

수각으로 삼았다. 2002년 미타전과 관세음보살입상을 만들어 관음도량의 면모를 갖추었고, 2007년 4월 일주문을 세우

면서 34년걸친 중창불사는 그런데로 마무리가 되었다. 또한 재단법인 불교방송이 발원한 '불교방송개국기념대탑'을 

성해 절의 명성을 더욱 드높였다


조촐한 경내에는 법당인 대웅전을 비롯해 명부전, 용왕각, 삼성각, 요사 등 9~10동 정도의 건물이 있으며, 소장문화유산으

로는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석조보살좌상이 전하고 있다. 

2. 관음사 일주문의 뒷모습

2007년 4월에 세운 것으로 문의 높이가 상당해 꽤 장대하게 다가온다.  

3. 늦가을을 소리없이 흘려보내는 관음사 밑 계곡 (일주문과 관음사 경내 사이)

4. 관음사 스타일로 지어진 관음대장군과 관음여장군 장승

5. 관음사 명부전
명부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집으로 1997년에 지어졌다. 지장보살과 도명존자, 무독귀왕, 시왕 등 명부(저승)
의 식구들이 봉안되어 있으며, 건물 뒤쪽에는 대나무밭이 펼쳐져 있는데, 중간중간에 조그만 석불들이 자리를 폈다.

6. 명부전 앞에서 바라본 평화로운 관음사 경내

7. 관음사9층석탑 (불교방송개국기념대탑)

1997년에 지어진 것으로 높이가 거의 20m에 달하는 키다리 탑이다.

8. 관음사 범종각

9. 관세음보살상

대웅전 우측에 자리한 관세음보살상은 고운 자태를 드러내 보이며 왼손에 감로수가 든 정을 들고 시무외인의 제스쳐를
취하고 있다.
머리에 씌어진 보관은 하얀 돌이지만 보석이 박힌 금관처럼 눈을 부시게 하며 그의 눈빛과 유연한 몸매, 연꽃
으로 치장된 연화대좌까지 좀처
럼 눈과 마음이 떨어지질 않는다.
이 보살상은 관음도량의 품격을 갖추고자 2002년에 조성된 것으로 높이는 거의 10m에 이른다. 그 주변으로 기도를 올리는
장소와 주변을 두른 돌난간, 그리고 석등 2기가 자리한다.

10. 삼성각에 봉안된 고운 색채의 산신탱

삼성각은 산신과 칠성, 독성(나반존자)의 공간으로 1929년에 주지 태선이 칠성각으로 지었다. 1989년에 삼성각으로 개축했

으며, 관음사에서 그나마 가장 오래된 건물로 바로 이곳에 관음사의 유일한 지정문화재인 석조보살좌상이 들어있으니
살펴보
기 바란다.

11. 삼성각 내부를 가득 채운 500나한들 (실제로는 500기가 넘어 보임)

12. 삼성각에 봉안된 금동 피부의 석가후불탱

13. 관음사 석조보살좌상

삼성각에 깃든 석조보살좌상은 화강암으로 다진 44.2cm의 작은 보살상이다. 파리도 미끄러질 정도로 맨들맨들한 하얀

피부를 지닌 그의 바닥면에는 방형의 복장공이 뚤려있는데 복장유물이 있던 것으로 보이나 유물도 없고 내부도 텅 비어있

다.

2단의 단판 앙련 위에 결가부좌로 앉아있으며, 통견 법의 안에는 가슴을 가로지른 옷자락과 띠 매듭이 정교하게 표현되어
있다. 통견 법의 위에는 한 자락의 가사가 왼쪽 어깨 위와 팔뚝을 덮고 있고, 오른쪽 어깨 위에도 반달 모양의 옷자락이 살
짝 걸쳐져 있다.
수인은 오른손 바닥 위에 왼손 바닥을 겹쳐 얹고 엄지손가락을 서로 맞대고 있는 선정인의 모양인데 손가락이 유난히 길게

표현되어 있다. 선정인 아래로 U자형의 옷주름이 늘어져 있으며, 늘어진 옷자락이 대좌 상단을 살짝 덮고 있다.
머리에는 보관이 씌워져 있으며, 머리 뒤에는 보관을 묶은 리본이 섬세하다. 리본 밑으로는 보관 띠가 보살좌상의 등 뒤에
이르기까지 길게 늘어져 있으며, 보관 안에는 보발을 묶은 보계가 있다.
보계 앞에는 여의두 모양의 장식이 붙어 있다. 보살의 머리카락은 귀를 지나서 어깨 위까지 늘어져 있는데, 어깨 위를 덮고
있는 세 가닥 보발의 표현이 정교하다. 또한 양쪽 귀에는 꽃 모양의 귀고리 조각이 잘 남아 있으며, 머리카락에는 검은 채

이, 대좌에는 붉은 채색이 남아있으나 채색 시기는 알 수 없다. 현재는 몸통 전체를 하얗게 분을 칠해 그 채색은 확인하기 어

렵다.

 

절의 이름이 관음사다보니 관세음보살로 애지중지되고 있으나 원래 정체는 알 수 없으며, 선정인 수인 위에 보살상의 지물
이 있었을 가능성도 있으나 현재로써는 오리무중이다. 허나 가슴 앞의 가로 주름과 그 아래의 리본, 오른쪽 어깨를 덮은 반
달 모양의 옷자락, 왼쪽 팔위의 ‘Ω’형 옷자락의 표현 등에서 볼 때 조선 전기 16세기 불좌상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특징
이 잘 나타나 있다. 하여 16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지며, 크기는 작으나 얼굴 부분을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보존상태도

좋고, 조각도 매우 우수하다.

14. 유리막 안에 소중히 담긴 석조보살좌상

예전에는 붉은 피부, 검은 피부가 뒤섞여 마치 진흙탕에 빠진 듯한 모습이었는데, 근래에 머리부터 다리까지 온통 하얗게

분을 칠해 많이 젊어졌다. 그로 인해 문화유산의 제일 매력인 고색의 미가 많이 떨어졌다. 사람은 젋거나 어려 보이는 것이
좋지만 문화유산은 늙어보여야 제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