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사진·답사기/경기 구리·남양주·가평

도봉산고양이 2020. 9. 22. 02:14

 

1. 운악산이 베푼 옥계수를 가득 머금은 현등사 석조

네모난 석조 피부에 시커먼 때가 자욱하여 조선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2. 현등사 극락전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집으로 현등사의 법당이다. 아미타불의 거처로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목조아미타여래좌상

과 아미타회상도 등이 들어있다.

3. 현등사 지장전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집으로 지장보살을 비롯한 명부(저승) 식구들의 거처이다. 

4. 현등사 보광전

'ㄷ' 구조의 넓직한 팔작지붕 건물로 경내에서 가장 큰 집이다. 종무소와 요사, 선방의 기능도 하고 있으며, 최근에 되찾아온

현등사3층석탑 뱃속에 있던 석가여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있다.  

5. 지장전 청동지장보살좌상과 지장시왕도

지장전의 주인인 지장보살좌상은 청동으로 만들어 도금을 입힌 것으로 조선 후기에 조성되었다. 높이는 64.5m로 조선 후기
보살상 중 작은 편에 속하며, 동그란 얼굴과 눈 꼬리가 약간 위로 올라가 반쯤 뜬 눈, 화형의 귀거리를 단 늘어진 귀, 삼각형

코, 살짝 미소를 머금은 입을 표현했다. 

 

금동 피부의 지장보살상 뒤쪽에는 후불탱인 지장시왕도(지장십왕도)가 걸려있다. 가로 212.5cm, 세로 151cm 규모로 지

보살이 가운데 대좌에 반가좌로 앉아있으며, 발은 분홍색의 연꽃 봉오리가 받쳐 들고 있다. 이중원형광배를 두르고 오른손을 어

깨 높이만큼 들었으며, 왼손은 무릎까지 내려 옷자락을 잡고 있다. 

지장보살 무릎 밑 좌우에 도명존자, 무독귀왕을 중심으로 각각 오존씩 시왕을 배치하고 시왕의 우측에는 판관과 우두, 마두,

선악동자 등의 권속들이 배치되었다. 그리고 무독귀왕은 합장인을 선보이고 있고, 도명존자는 석장을 잡고 있다.

이 탱화는 원래 극락전 아미타회상도 좌우에 신중도와 함께 있던 것으로 나중에 이곳으로 옮겨졌으며, 화기 부분이 사라져

버렸지만 사찰소장물품표에 의하면 아미타회상도와 같은 1759년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6. 대군위실 현판

이 현판의 정체는 무엇일까? 자세한 것은 아랫 사진(7번 평원대군과 강녕부부인 홍씨 선가)에서...

7. 평원대군과 강녕부부인 홍씨 선가 위패

평원대군(1427~1445)은 세종과 소헌왕후의 아들로 이름은 이임, 자는 진지, 호는 근행당이다. 1434년에 평원대군에 봉해

졌으며, 1437년 종학에 입학했고 호군 홍이용의 딸과 혼인했다.

학문에 능해 시, 예, 대학연의를 달달 외웠으며, 서체와 사어에도 능숙했다. 허나 두창(천연두)으로 1445년 1월 겨우 18세

의 나이로 사망하고 만다.

 

그는 성품이 겸손하고 효행와 우애가 깊어 세종의 아낌을 받았으며, 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세종 말년의 신병 등과 함께 세

종의 숭불(불교 숭상)을 촉진시킨 원인이 되었다.

1483년 5월 부인 홍씨가 죽었으나 자식이 없기 때문에 예종의 2째 아들인 제안대군 이현을 평원대군 부부의 가계를 잇게
했으며, 처음 시호는 정덕이나 나중에 정헌으로 추시되었다.

현등사는 세종 시절부터 평원대군 부부의 원찰로 지금까지 계속 향화를 받고 있다.

8. 소원대

동그란 돌을 바닥에 깔아놓고 소원대로 삼았다. 석가여래 앞에 소원초를 밝히고 옥등이 걸렸던 소원대에 올라서 석가여래를

향해 합장반배를 하고 소원을 들이밀면 된다. 소원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그건 장담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