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진·답사기/노원구·수락산

도봉산고양이 2020. 10. 16. 02:58

 

1. 하계동 이윤탁 한글영비

하계동 서라벌고등학교 동쪽 길 건너편 언덕에 이윤탁 묘역이 있다. 서쪽을 바라보고 있는 이 묘역은 바로 앞(서쪽)에 아

파트가 들어서고 신작로(한글비석로)가 닦이면서 묘역 앞부분이 강제로 썰려나가 지금처럼 벼랑에 자리한 이상한 모습

이 되었다. 

이 묘역은 이윤탁과 고령신씨 부부의 합장묘로 그들은 묵재 이문건의 부모이다. 이윤탁 묘는 원래 태릉 자리에 있었으나

그곳에 왕릉(태릉)이 들어서면서 이곳으로 밀려났는데, 그떄 고령신씨와 합장했다. 1536년 묘 앞에 비석을 세웠고, 문인

석 1쌍과 상석을 두었는데, 여기까지 보면 서울에 흔하고 흔한 조선시대 사대부 묘역과 다를 것이 없다. 영비각이란 이름

을 지닌 비각에 깃든 묘비는 비석 앞면과 뒷면에 무덤 주인의 이름과 일대기가 쓰여있고, 북쪽 면에는 한글, 남쪽 면에는 

한자로 쓰인 경계문이 쓰여있는데, 바로 북쪽 면에 쓰인 한글 내용이 이 비석과 묘역의 가장 큰 매력이다. 그는 이

의 비석 중 가장 오래된 한글 비석, 즉 한글비석 1호인 것이다. 하여 역사적 가치가 높으며 국문학사에서도 무척 중요

료로 애지중지되고 있다. 

이 비석은 1536년 당시 한글(훈민정음)이 얼마나 널리 쓰였는지는 알려주고 있으며, 비석에 쓰인 한글 서체는 훈민정음

해례본의 서체와 용비어천가 서체의 중간형을 성격을 지닌다. 그리고 비석의 이름인 영비(靈碑)를 제외하고 순 한글로 쓰

여 있는데, 본격적으로 한글로만 작성된 문헌은 18세기에나 등장을 하니 그보다 200년이나 더 앞섰다. 또한 언해문이 아

닌 원 국문 문장으로 15세기 이후 한문 원문을 번역한 언해문이 한글자료의 주류를 이루었으나 이 비석은 짧은 문장이긴

하나 처음부터 한글로 쓰인 문장으로 한글이 한문의 번역도구가 아닌 우리의 생각과 느낌을 직접 전달하는 도구로 변화했

음을 알려주고 있다. 또한 ‘한글영비’에 쓰인 국어 현상은 그 당시의 언어를 잘 반영하고 있어 그 시절 국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2. 영비각에 감싸인 이윤탁 한글영비

비석의 이름인 영비는 비석 양쪽에 쓰인 '영비'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 무덤에 해코지를 하지 말 것을 경고하는 문구가 한글

과 한문으로 쓰여있다. 부모의 묘를 생각하는 이문건의 지극한 마음이 이 영비를 탄생하게 하였고 비석에 한글을 표기한

그의 작은 센스가 이 비석의 가치와 팔자를 크게 바꾸어 우리 역사 및 국문학사에 아주 중요한 존재로 애지중지된 것이다.
만약 한글 비문이 없었다면 조선 중기에 그저 그런 사대부묘로 주목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이 땅 최초로 한글을 머금은 매력으로 일찌감치 서울지방문화재로 지정되었는데, 그때 지정 명칭은 '이윤탁 한글고비'였다.

그러다가 2007년 국가 보물로 특진되면서 '이윤탁 한글영비'로 이름이 바뀌었다.

3. 이윤탁 한글영비의 매력, 한글이 쓰인 왼쪽 면

4. 한글영비를 지닌 영광의 주인공, 이윤탁 묘역

근래 무덤 아랫도리에 새로 호석을 둘렀고, 무덤 뒤쪽에 병풍석까지 두르는 등, 손질을 많이 하여 근래 무덤처럼 매우 젊어

졌다.

5. 고색의 때를 가득 머금은 이윤탁 묘역 문인석

6. 이윤탁 묘 봉분 옆에 세워진 한글영비 복사본 비석

7. 이윤탁 한글영비 남쪽 면에 새겨진 한문 경고문

8. 영비각에 소중히 그리고 답답하게 감싸인 이윤탁 한글영비

원래 비석만 있었으나 그의 보호를 위해 근래 맞배지붕 비각(영비각)을 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