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진·답사기/노원구·수락산

도봉산고양이 2020. 10. 17. 05:05

 

1. 충숙공 이상길묘역 (벽진이씨 충숙공묘역)

한글고비로 유명한 이윤탁한글영비에서 남쪽으로 500여m를 가면 충숙근린공원과 함께 충숙공 이상길묘역이 모습을 드
러낸
다.

묘역의 주인공인 충숙공 이상길(1556~1637)은 벽진이씨 집안으로 자는 사우, 호는 동천, 만사이다. 경북 성주에서 태어

났으며, 1579년에 진사시에 붙었고 1585년 문과에 급제하여 풍저창 직장에 제수되었다가 1588년 감찰로서 호조좌랑

제수되었다.

1590년에는 사간원의 정언 겸 지제교가 되었는데, 정여립 반란 사건과 관련하여 최영경의 국문을 주청하였다가 최영경

도당에 의해 모함을 받아 이듬해에 고산 찰방으로 좌천되기도 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예조좌랑으로서 어

호종하여 그 공으로 강원감사 종사관에 제수되었으며, 이후로 병조정랑, 익산군수, 겸예빈 부정을 거쳤다.

1597년 정유재란이 터지자 직접 군사를 이끌고 남원으로 가서 공을 세웠으며,
이듬해에 광주부윤에 임명되었는데 고을

다스리는 것이 제일이라 칭송을 받아 통정대부로 승진하였다. 허나 1602년 조정에서 최영경의 일이 다시 논의되면서

풍천으로 유배되었다. 1608년 사면되어 회양부사, 안주목사, 호조참의를 지냈으며, 1615년에 또 최영경의 일이 거론되

서 파직까지 당했다.

이후 노원 지역 촌사에서 머물렀는데, 도성 안에는 좀처럼 들어가지 않았으며, 당시 집권 세력과 야합하지 않고 곧은 뜻을

지키며 은거했다.

1621년 용천부사로 나갔는데, 명나라 장수 모문룡이 철산 가도에 머물며 청나라를 공격하려 하자 군량을 지원했으며, 용

천 백성들이 그의 공을 기리고자 송덕비를 세웠다.

1623년 동부승지와 병조참의에 잇따라 제소되었고 청나라 사신을 맞고자 접반사로 차임되면서 가선대부로 승진되었다.
1624년 이괄의 난 때 역적을 토벌한 공이 있어 가의대부에 봉해졌으며, 이후로도
평안도관찰사, 호조참판, 전주부윤

조참판, 대사간, 대사헌 등 주요직을 두루 거치다가 80세가 되자 자헌대부가 추가되고 공조판서에 제수되어기소에 들어

갔다.

1636년 병자호란이 터지자 묘사를 받들고 강화도로 들어갔으나 1637년 1월 강화도가 함락되자 '종묘사직이 망하였는데

어찌 차마 구차하게 살겠는가. 나는 성중으로 달려가서 여러 재신들과 함께 죽을 것이다'라며 빈 창고로 들어가 허리띠

목을 매어 자결하니 그의 나이 81살이었다.
이상길이 막 자결을 했을 때 청나라군이 쫓아와 화살을 쏘았는데, 그의 아들 이경이 포구를 지키는 임무를 저버리고 청

라군을 물리쳐 아비의 시신을 수습해 돌아왔으며, 그해 4월 불암산 서쪽 기슭에 있는 선영에 장사를 지냈다. (포구를 지키

는 임무를 저버린 죄로 ​파직을 당했음)


1642년 강화도 충렬사에 배향되었으며, '대광보국 숭록대부 의정부 좌의정 겸 영경연사 감춘추관사'로 추증되었고, 충숙

공이란 시호를 받았다. 또한 그가 남긴 유고를 정리한 동천집이 있는데, 소, 논, 표 등은 탁월한 치세가로서의 면모를 보여
주고 있으며, 특히 권3의
조일기는 연행기록으로서 좋은 자료로 평가를 받는다.

이상길의 벽진이씨 묘역에는 이상길과 그의 부모, 형제, 후손들의 묘 10여 기가 자리해 
있는데, 이상길 묘 밑에는 그의 신

도비가 있다. 신도비는 1661년에 세운 것으로 이경의 부탁으로 송시열이 비명을 짓고 송준길이 글을 썼으며, 김수항이 전

액을 썼다. 그리고 1786년 후손 이해보의 건의로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사망한 김상용 등의 전례에 따라이상길의 신주

를 영구히 제사지내도록 했다.

2. 이상길 신도비를 머금은 비각
1661년에 세워진 신도비는 높이 316cm, 비신 높이 219㎝, 너비 89㎝, 두께 24㎝ 크기로 비석 보호를 위해 비각을 씌웠다.

원래는 신도비만 지방문화재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으나 그의 묘역까지 범위가 확대되었으며, 묘역 서쪽에는 재실이 있는

데, 그곳에 충숙 이공(이상길)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으나 관람은 어렵다.

3. 신도비각 앞에 세워진 하마비

하마비 피부에는 '대소인원개하마'라 쓰여있다. 즉 높고 낮은 사람 모두 여기서 말에서 내리라는 뜻으로 궁궐이나 관청, 서

원, 향교, 높은 관직의 사대부 묘역 앞에 많이 세운다.

4. 벽진이씨충숙공묘역 안내도

5. 이상길묘역을 관리하는 재실인 동천재
팔작지붕을 지닌 건물이 동천재로 그 앞에 솟을대문 스타일의 외삼문이 있고, 그 뒤에 이상길의 영정을 머금고 있는 충영각

이 있다.

6. 동천재 뒤쪽에 자리한 맞배지붕의 충영각

7. 푸른 언덕 위에 닦여진 충숙공 이상길 묘역

오른쪽에 석물들이 주렁주렁 있는 묘가 이상길 묘역으로 묘비(묘표)와 상석, 장명등, 문인석 등을 지니고 있다. 왼쪽에 보

이는 무덤은 이상길의 후손인 예조판서 이우면의 유택이다.

8. 충숙공 이상길 묘역

오른쪽에 석물들이 많은 무덤은 이상길의 형인 평사공 이상철 묘이다.

9. 충숙근린공원

충숙공 이상길 묘역 앞에는 충숙근린공원이 닦여져 지역 사람들의 소중한 휴식처 역할을 한다. 이 공원은 숲이 매우 삼삼

며, 공원 숲길은 동쪽으로 불암산더불어숲까지 이어진다.

10. 삼삼하게 우거진 충숙근린공원 숲길

11. 하늘을 가린 충숙근린공원의 짙푸른 숲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