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진·답사기/정동·덕수궁·시청 주변

도봉산고양이 2020. 10. 23. 12:17

 

1. 원구단(환구단) 정문

시청 앞 서울광장 동쪽 건너편에 원구단(환구단) 정문인 맞배지붕 삼문이 있다. 1897년 고종이 옛 남별궁터 자리에 원구

단을 세우고 하늘에 제를 지내 황제 위에 올랐던 곳으로 1899년 원구단의 중심 건물인 황궁우가 지어지고 1900년에 동무

와 서무가, 그리고 1902년에 석고단이 세워졌다. (그밖에 어재실, 향대청이 있었음)

정문은 언제 세워졌는지는 정확하지 않으나 1900년에 소공로가 닦여지고 1901년에 원구단이 크게 중수되어 그때 지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지금은 황궁우 서쪽에 있으나 원래는 황궁우 남쪽인 조선호텔 출입구가 있는 소공로 도로변에 있었다.

왜정은 1913~1914년에 걸쳐 망국의 천단인 원구단을 부셔버리고 그 자리에 총독부 직영 조선철도호텔을 세웠는데, 그때

부터 원구단 정문은 엉뚱하게 조선철도호텔의 정문 신세가 되버린다.

이후 호텔 정문으로 계속 살아오다가 1967년 조선호텔이 새로 지어지고 태평로가 확장되면서 이전이 논의되었고, 1968년

정문이 매각되어 1969년 5월 우이동에 있던 그린파크호텔로 넘어가 그곳의 정문이 되었다. 

허나 기록 부실로 그 사실도 40년 가까이 묻혔고, 2007년 그린파크호텔을 재개발하는 과정에서 호텔 문으로 쓰인 한옥문

이 원구단 정문이란 것이 밝혀졌다. 하여 서울시와 문화재청이 협의해 2009년 12월 그것을 원구단으로 가져왔다. 하지만

원래 자리에 세우기는 힘들어서 서울광장 방향인 황궁우 서쪽에 이전, 복원했다. 


원구단 정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로 1고주 5량가의 구조이다. 중앙부 고주가 종보 하부에 맞춰져 있고, 양쪽 보가 맞

보의 형식으로 고주 양 옆에 끼어들어간 구조이며 익공과 보아지, 화반, 대공 부재의 초새김 등 전반적인 구조 및 형태가

종묘 정문, 사직문(사직단 정문) 등과 매우 유사하다. 또한 막새의 주된 무늬도 용봉 무늬가 사용되어 있으며, 지붕 마루에

용두 및 잡상이 설치되어 있는 등 조선시대 단, 묘 정문의 전형적인 양식을 이어받았다.

 

제국의 성스러운 원구단 정문에서 호텔의 정문으로 격하되었고 그 위치까지 박탈되어 엉뚱한 곳으로 옮겨지는 등 우여곡

절도 많았고 창건 당시의 원형이 부분적으로 훼손 변형되는 고통도 있었다. 허나 원구단의 첫 관문으로 역사적인 상징성

이 있으며. 건축사적으로도 조선 왕실 건축의 위용을 잘 간직하고 있고, 이전 복원할 때 최대한 원 부재를 활용하여 복원

하면서 당시의 원형이 잘 남아 2011년 7월 서울시 지방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2. 옆에서 바라본 원구단 정문

원구단(환구단) 황궁우도 보려고 했으나 마침 보수공사 중이라 들어가지 않고 질곡의 역사를 살아온 정문만 사진에 담았다.

비록 완전한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했고 변형, 훼손된 부분이 있기는 하나 그래도 이렇게 고향에 돌아와 황궁우를 지키고 있

으나 그나마 다행이다. 참고로 하늘에 제를 지내는 원구단(원단) 제도는 삼국시대, 고려에도 있었으며, 조선 때도 유지되다

가 세조 때쯤 폐지되고 만다. 

3. 원구단(환구단) 안내문

원구단(환구단)은 환구단이란 이름으로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는데, 그 정문은 '원구단 정문'이란 이름으로 지방문화

재로 지정되어 있다. 환구단이나 원구단이나 비슷한 이름과 성격이나 한쪽은 환구단, 다른 한쪽은 원구단이니 이름 통일이

시급해보인다. (환구단 쪽이 맞다고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