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작소설(小說) ◈

스파이크 2014. 8. 27. 12:12

 

★ 

 

…씨발…우리 전방 가나 봐

 

동기놈는 그 한마디를 하며 뭔가 굉장히 심각한듯 혼자 세상의 무거운 짐은 자신의 어깨에 모두 짊어진 것처럼 인상을 찌푸렸습니다. 하지만 그때 당시 저는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정확히 한 달 후에 입대를 한 터라 훈련병 시절의 달(月) 수까지 합친다 쳐도 사회생활은 고작 4개월 뿐이 안된 그냥 철없는 어린애에 불과해 그 친구과 왜 그렇게 인상을 썼는지 알 수 없었지요. 아무튼 군에 입대하기 전까지 군생활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뽀빠이 이상용 아저씨가 '우정의 무대'에서 보여준 재밌고 웃긴 군발이들의 모습과 가끔 겨울철 뉴스에 나오는 최전방 극한의 온도에서 경계 근무에 여념이 없는 분위기가 전부였습니다. 그때 당시만 해도 인터넷이란 언어가 등장하기 전, 파란색 바탕 화면의 PC통신 이란 말 조차 없던 시절이었고 그렇다고 몇 개 되지도 않은 정보 메체인 티비나 신문 등에선 철저하게 정제된 군생활의 편안하고 멋진 모습만 조작하여 비추려 노력하던 때였지요. 

 

그런 군인들의 거짓된 모습만 전부인 줄로 알고 갔던 어리버리한 저로썬 훈련소에서 동기 놈들이 떠들었던, 어디가 빡쎄고 어디는 '만고'1라는 비공식적 정보들이 오히려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또한 고등학교 시절엔 티비에 나오는 군인들의 한겨울 하얀 '야상'2이 굉장히 멋지게 보여 언젠가 나도 저렇게 입어 보리라는 생각에 흐뭇한 미소를 지을 정도로 큰 착각을 하고 있었지요. 일명 스키복이라 불린 이 점퍼는 주변의 색과 비슷한 하얀 색감으로 인해 꽤 인상적으로 멋져 보였는데, 이것을 입고 철책 울타리를 한 손으로 잡고 흔들어 보이며 큰 총을 옆에 차고 점검하는 그들의 모습은 나라를 지키는 멋진 사내 그 자체로만 느껴졌었습니다. 결국 그곳으로 가는 젊은이들은 돈 없고 빽 없는 놈들이 대부분이었다는 사실과 두 번의 총기 사고로 엄청난 인명이 살상되는 참극의 현장이 되풀이 되던 곳이란 걸 상상도 못 한체 말이지요. 

 

아무튼 여담 입니다만 제가 말련 병장 시절에 뽀빠이 이상용 씨가 28사단 사단장과 고대 동창이라 MBC에서 우리 부대를 촬영하러 온 적이 있습니다. 티비에서만 보던 장면들을 실제로 보게 돼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고 생각은 하지만 막상 녹화 현장은 그닥 재미있진 안터군요. 그 때 뽀빠이 이상용 씨의 키가 생각보단 너무 단신이라 놀랐던 기억과, 코너 사이마다 쏟아내는 음담패설이 질퍽해 엄청나게 웃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특히 무대 앞으로부터 이등병, 일병, 상병, 병장 순으로 자리를 배정 했기 때문에 이등병 애들이 주로 그의 장난에 타캣이 됐지요. 아무튼 여가수가 발랄한 음악으로 반바지 차림의 빽댄서들과 춤을 추고 나가자 이등병 하나를 손으로 가리키며 야, 너 쟤들 보고 섯지. 시작한지 5분도 안 됐는데 벌써 스냐. 야, 내가 휴지 한 통 줄테니 저기 옆에가서 세번만 흔들고 싸고와라고 놀렸습니다. 그 농담에 부대원들은 깔깔 거리며 좋아라 즐거워 했지요.   

 

그 후 녹화가 모두 끝나고 2주가 지나 강제적 단체 본방 사수를 할 때 수많은 병사들 중, 제 얼굴이 클로즈업 되서 나오는 바람에 중대에서 엄청난 환호성이 터진 기억이 있습니다. 그 때 방송 탔다며 PX에서 우리 소대원들에게 과자를 쐈던 기억이 나네요. 크크크크...어이없어 정말...그냥 지나가다 잠깐 나온 것 뿐인데 말이지요. 또한 우정의 무대를 보러가기 전, 출연진에 대한 많은 유언비어들이 살포 됐었는데 특히 그 당시 최고 인기구룹이었던 '룰라'가 온다는 소문에 우리 고참들이 풀 발기하여 노심초사 기다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 제일 잘 나가는 혼성구룹 룰라가 산꼴 오지까지 올리도 만무 하였거니와, 싸바싸바 엉덩이 춤 하나로 다음날 전투력을 현저하게 떨어 뜨렸던 '김지현'씨가 우정의 무대 따위에서 노래하는 조건은 있을 수 없는 것이었음에도 순진 무구한 군바리들은 설마설마 하며 녹화 날만 기다렸지요. 그것도 모자라 우정의 무대가 끝나면 군인들의 허전한 마음을 위로 하기 위해 스트립쇼가 준비 돼 있다는 정말 어처구니 없는 소문까지 양산 돼, 순진한 쫄따구들까지 괜한 망상에 들떠 기대감만 부풀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벌거벗은 육떡쇼가 있었냐고요? 그 날 육떡은 커녕 육공트럭도 지원이 안 돼 추운 겨울 날 1시간이 넘는 거리를 온 몸이 꽁꽁 얼어 붙도록 대대까지 왕복 해야야만 했습니다. 씨발씨발 거리면서...

 

그럼 다시 원래 이야기로 돌아가 그렇게 열차는 느릿한 속도로 한참을 달려 의정부 역에 도착하였고 바로 그곳에서 기디라고 있던 '육공트럭'3에 올라 호로가 씌여진 캄캄한 짐칸에 택배 부려지듯 주루륵 앉아 어디론가 한 참을 이동했습니다. 그곳이 바로 의정부에 있는 신병 교육대였고 트럭에서 내린 우리는 점심을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연병장에서 이름과 함께 새로운 번호가 부여 돼 트럭이 올때까지 2박 3일을 대기한 후 육공 트럭에 실려 또 다시 도착점도 모른체 이동 하였지요. 그렇게 그날 최종적으로 도착한 곳이 28사단 사단 휴양소로 의정부에서 왠지 모르게 굉장히 멀다고 느껴진 시골 같은 느낌의 한적한 동네였습니다.

 

그렇게 28사단 휴양소에 도착한 우리는 논산에서 처음 출발 했을 때보다 훨씬 적은 인원만 남게 되었고, 그 얼마 안남은 동기들도 그 다음 날 몇 명만 제 곁에 남고는 각자의 대대로 뿔뿔이 흩어졌지요. 그런 사단 휴양소는 길다란 막사가 3개동으로 나치에 의해 만들어진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연상 시키듯, 삼각형 모양의 지붕에 1급 바람물질인 슬래이트로 만들어져 있는 싸구려 건물이었습니다. 정문을 등지고 좌측엔 신병들이 묶는 숙소가, 가운데 둘 째 동엔 제대를 위해 마지막으로 들러 사회 적응 교육을 3박 4일간 받기위해 도착한 말년 병장들이 묶는 숙소가 있었지요. 그리고 세번째 동이 바로 말년들과 신병들이 번갈아 가며 정신교육을 받는 곳이라 기억 되는데, 시간이 훨씬 지나 예비역이 돼 그곳에 다시 도착 했을 때의 기분은 뭔가 다른 방향에서 원점으로 돌아왔다는 생각과 교도소에서 만기 출소를 하며 감호소에서 죄를 털어버릴 기쁨에 손꼽아 날짜를 기다리는 출소자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휴양소에 도착하여 막사 안에서 인원점검을 끝낸 우리는 '대기' 하라는 지시를 받고 저녁 식사가 있을 때까지 이런저런 잡담을 뿌리며 서성 거렸지요. 그리고 해가 꺾여가기 시작할 즈음 '활동복'으로 갈아입고 식사집합을 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여기서 활동복이라 함은 일반 대중들이 편하게 입는 츄리닝을 뜻하는 것으로, 탈영시 눈에 잘 띠어 빨리 잡히라고 주황색의 형광물질을 넣어 만든 형편없이 촌스러운 군발이 패션의 아이콘 이었지요. 그렇게 느긋하게 식사를 끝내고 우리 동기 중 임시로 정한 인솔자가 전투화를 닦으라는 전달 사항을 알려주자 동기들은 삼삼오오 막사 앞에 모여 쭈구리고 앉아 말표 구두약의 뚜껑 꼭지를 돌려 구두솔에 묻친 후 전투화를 닦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우리 막사 반대편 예비역 병장들의 숙소에서도 사회인처럼 머리를 기른 선배 몇 명이 어슬렁 어슬렁 슬리퍼를 신고 나와 런닝셔츠를 잘라 만든 헝겁에 구두약을 묻혀 물방울을 조금씩 떨어뜨리며 전투화를 닦기 시작했지요.

 

그 모습이 신기했던 나는 힐끗힐끗 곁눈질로 구경을 하였는데, 구두솔로 힘껏 닦아 구멍뚤린 뻣뻣한 녹색 군용 양말에 손을 넣어 박박 문지르는 내 전투화 보다 훨씬 더 번쩍 거린다는 것을 발견 했습니다. 그런 흘깃 거림을 눈치 챘던지 예비역 병장이 나한테 한 마디 하더군요. 멋지냐. 어때 번쩍번쩍 하지. 그 말은 들은 나는 네, 그렇습니다라고 일반적인 목소리로 대답했고 녀석은 씩 웃으며 가르쳐 주마라며 스리슬쩍 쪼그린 자세로 어기적 어기적 내 곁으로 걸어왔습니다. 그리곤 이게 '물광'이라고 하는건데 전투화 광을 내는거엔 물광이랑 '불광'이 최고지. 알아. 언더스텐. 그러면서 자신의 다른 짝 전투화에 구두약을 충분히 바르고 헝겁으로 닦은 후, 구두약 뚜껑에 담아온 깨끗한 물을 몇 방을 똑똑 떨어뜨려 촘촘히 문지르더군요.

 

그러자 기름에 섞인 물이 거짓말처럼 전투화의 가죽을 맑고 깨끗하고 자신있게 빛내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봤지라고 자랑스럽게 말하곤 바로 어디서 왔냐고 묻더군요. 논산훈련소에서 왔습니다라고 하자 아니 호텔말고 네가 살 던 집 말이야 집이라고 다시 질문을 던졌지요. 그래서 서울 잠실에서 왔다고 하니 좋은동네 사네라며 씩 웃었습니다. 그 때 옆에 있던 다른 예비역 병장 하나가 얘 잡고 뭐 하냐, 다 닦았으면 담배 걸고 장기나 한 판 두자며 일어나길 보챘지요. 그러자 알았다는듯 피식 거리며 자리를 뜨려 할 때 전투화를 닦고 있는 우리들을 향해 불쌍하다는 듯, 한 손엔 전투화를 들고 슬리퍼를 끌며 쭐레쭐레 막사 안으로 들어가 고개를 삐쭉 내민곤 한마디를 던졌습니다.


야, 이제 니들은 행복 끝, 불행 시작이여...

★  

각주 1

졸라 편하다는 군대 속어.

각주 2

추운 계절에 군대에서 전투복 위에 입는 더터운 잠바.

각주 3

군대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트럭. 60트럭이라 불리우는 이 트럭의 원 베이스는 미국 M602이다.미국의 AMG사(현 크라이슬러)의 M35계열 트럭을 유럽 나토 동맹국에서 쓸 수 있게 12 볼트로 바꾼게 602이다. 우리나라는 1966년 도입하여 사용하면서 시작된 이름.

  1. 졸라 편하다는 군대 속어. [본문으로]
  2. 추운 계절에 군대에서 전투복 위에 입는 더터운 잠바. [본문으로]
  3. 군대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트럭. 60트럭이라 불리우는 이 트럭의 원 베이스는 미국 M602이다.미국의 AMG사(현 크라이슬러)의 M35계열 트럭을 유럽 나토 동맹국에서 쓸 수 있게 12 볼트로 바꾼게 602이다. 우리나라는 1966년 도입하여 사용하면서 시작된 이름. [본문으로]
기다렸는데..잘 읽었습니다
수고하셨어요^~^
기다려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계속 좋은 글로 찾아 뵙겠습니다.
말표구두약? 간만에 옛기억이 납니다 ㅋ
첨 사용할때 여는방법몰라 애먹었답니다~
룰라,~ 김지연인가? tv볼딱마다 베시시 좋아라했는데..
군인들께 위로와 감사한 마음이~
남자라면 당연히 가는거라 생각했는데,,

3부 기다리며 휘리릭~ 뿅!~^^*
정말 세상 밖으로 나오보니 말표 구두약을 쓸 일이 없더군요. ㅋㅋㅋ
잘보고 갑니다. 추천 꾸욱~
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 저도 93년 4월 군번,,28사단 81연대,, 104 주특기,,, 그때 우정의 무대에 " 모노" 라는 밴드가 왔던걸로 기억되네요,,,,
추억을 살려 재밌게 읽었습니다.
ㅋㅋㅋ...모노라는 구룹...이름을 잊어서 쓰질 못했어요. 남자 3명 온 것만 기억하고...끝날때 함께 걸어가면서 누가 니들오랬어, 룰라불러 하면서 장난쳤던 기억이 납니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