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gypsy 2007. 5. 13. 00:38


방송가를 주름잡은 후, 느긋하게 영화로 양반걸음을 뗀 배용준, <스캔들 - 조선남여상열지사>에서 능청스런 바람둥이 선비 역으로 영화계에 신고식을 치른 그를 만나보았다.


배용준을 만난다고 했을 때, 주변인들의 반응은 "어머나, 좋겠다!"와 "고생 좀 하겠군!"으로 양분되었다. 강재호(<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나 준상이(<겨울연가>)의 그 유명한 원조 살인미소를 실물로 볼 수 있다는 건 "어머나, 좋겠다!" 하고도 남을 일이다. 하지만 프리미어 편집장의 입버릇처럼 '와이드'하고, '글래머러스'하고, '핫'한 배용준 인터뷰를 한번도 본 기억이 없는 담당 기자에겐 후자의 우려가 더 절실하게 가슴을 후려쳤다.

인터뷰 하루 전, 우려했던 바는 현실로 드러나는 듯했다. 배용준의 매니저는 프리미어 특유의 직설화법으로 점철된 3장의 질문지를 받아보곤 경악을 했고, 이것이 '추적 60분-안티 배용준' 편이냐며 기자의 진의를 물어왔다. 그날 밤, 프리미어 편집부와 영화사 홍보 담당자, 매니저 간의 수시간에 걸친 설왕설래는 '이렇게까지 얘기했는데…'(배용준 매니저), '뭐 이 정도를 갖고'(프리미어)라는 동상이몽으로 끝을 맺었다.

정작 이런 난기류를 일거에 불식시킨 것은 배용준 자신이었다. 꽃 미소를 흩날리며 약속한 카페에 들어선 그는, 굳이 테이블 건너편을 비워둔 채 2인용 소파에 기자와 나란히 자리를 잡고 앉아 주변 사람들을 당황시켰다. 그리곤 이렇게 말했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그녀를 벽으로 몰아붙인 채 "나만 보란 말이야!"를 외치는 배용준을 바라보던 송윤아(<호텔리어> 중)의 심경이 이런 것이었을까?


그동안 충무로의 열렬한 구애를 거절해온 이유는 뭔가요?
안 맞았기 땜에 그랬죠. 저는 옛날에 방송 ENG 인터뷰도 못했어요. 못한 것도 있지만 하기 싫어서 안 했어요. 근데 어느 순간에 ENG 인터뷰도 해요. 그럼 제가 어느 순간엔 방송 토크쇼나 그런 데도 나갈 수 있겠죠. 그런 단계인 것 같아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늦은 감이 있다고 얘기 할 수 있는데, 그런 과정이 없었다면 이거(<스캔들>) 못했을 거고, 그런 과정이 있기 땜에 더 발전될 수 있는 거고, 그런 거 같아요.

대본이 너덜해질 정도로 준비를 하는 스타일이라고 들었어요.
이번엔 안 그랬어요. 예전의 저는 제 연기밖에 못 봤어요. 어떤 틀을 잡고 한 20번 NG가 나도 매번 같은 연기, 그냥 급하게 카메라 들이대고 찍어도 항상 똑같은 연기…. 주변 환경에 영향 안 받고, 시끄럽건 어쨌건 그냥 내 거만 하고 이런 식이었는데, 이번 영화 같은 경우 테이크를 열 번 간다, 그러면 열 번 다 다르게 했어요. 현장 느낌을 보고, 현장에서 뭔가를 만들어 갔죠. 이런 게 제가 앞으로 해야 될 연기의 방향이라 생각했어요.

배용준씨에 관한 대표적인 선입견은 '폐쇄적이다'라는 건데요. 이건 사생활 노출에 인색해서인 것 같아요.
근데 꼭 그렇게 보여줄 필요는 없는 거 같아요.

어떤 배우들은 상품성에 도움이 된다면, 그 정도는 서비스할 수 있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래요? (잠시 생각) 이전엔 감추고 싶었어요. 내 부족한 면을 보이고 싶어하지 않고, 내가 보이고 싶은 면만 보이고. 지금은 오히려 모든 걸 다 보여주고, 보여준 상태에서 내가 배우로서 발전돼 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더 나은 거 아니냐. 그렇게 오픈을 하면 나도 더 편안하고. 그렇다고 '배용준 집 공개' 이런 건 아닌 거 같아요. 그런 건 난 이해가 안 되더라구.

다작을 하는 스타일은 아닌데.
저는 많이 하고 싶어요. 그렇다고 한꺼번에 두 작품 이상, 이건 못해요. 제 능력이 안 돼서. (<스캔들>의 경우) 촬영 끝내고, 후반작업 다 끝내고, 지금 홍보하고 있어요. 그리고 영화는 10월 9일 날 개봉해요. 지금 다음 작품 고르고 있어요. 이제 결정하면 촬영은 두세 달 뒤에 들어가요. 그럼 다시 촬영, 후반작업하면 5~6개월 지나가죠. 그러면 그게 긴 텀은 아닌 거 같아요.

하지만 방송을 할 때는 그렇지 않았잖아요?
솔직히 그때는 하기 싫었어요. 지금은 옛날에 비해서 연기에 대한 열정, 에너지 그런 게 좀더 강해졌어요.

계기가 있었나요?
제 입으로 이런 말하긴 쑥스럽지만, 옛날엔 스타라는 느낌이 더 강했다면, 지금은 제가 그걸 좀 걷어내고 배우가 되려고 해요. 제 팬들도 제가 배우가 되길 바라고.

영화를 선택한 것도 그것과 관계 있나요? 영화배우들이 방송배우들에 비해 더 많은 존중을 받고 있는 게 사실이잖아요.
그거랑은 관계가 없어요. 영화를 하면 배우고, TV를 하면 탤런트다 이런 말장난, 너무 편협한 거 같아요. TV를 하는 분들 중에도 정말 연기 잘하시고 그런 분들 있잖아요. 조지 클루니가 TV할 때는 탤런트고, 영화 하니까 배우가 됐나?

CF 스타라는 이미지가 배우에게 감점 요인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두려움은 없나요?
아뇨. 우리 영화시장이 넓어져서 세계적으로 배급이 되고, 흥행도 하고, 그래서 영화 출연료도 커진다면 CF 안 하겠죠. CF는 내가 만들어 논 이미지를 파는 거잖아요. 돈 있으면 안 하죠.

미남 연예인 리스트를 뽑으면 꼭 높은 순위에 오르는데….
제발 안 들어갔음 좋겠어요.

외모가 자신의 커리어에 미치는 영향이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나요?
지금은 어쩔 수 없이 너무 커요. 근데 이렇게 생긴 걸 어떡해요.

아무 종이에나 사인하지 않는다고 들었어요.
그렇게 한지 한 8년 된 거 같아요. 내 사인이 들어간 종이가 막 굴러다니는 게 싫어요. 그래서 사인지를 준비하고, 좀더 정성스럽게 하려고 하죠.

공인에 대한 매너를 지키지 않는 언론이나 대중에게 민감한 것 같아요.
언론에 대해 민감한 부분은 딱 하나 있어요. 시나리오는 쓰지 말아야죠. 굳이 안 좋은 부분을 끄집어내고 그런 거에 대해 뭐라 그러고 싶진 않아요.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고,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으면 기사가 나갈 수도 있는 거예요. 다 좋다 이거예요. 확인은 해야 될 거 아니에요? 이런 이런 얘기가 있었다, 그런데 배용준씨는 이렇게 얘기했다, 이게 아닌 거 같다, 그런 게 있어야 되는데…. 그리고, 왜 불리기를 해? 광고 출연료 4억, 5억 받았으면 '4억, 5억 받았다' 나가면 되는 거지 왜 그걸 7억, 8억으로 나가냐 이거예요. 모르겠어요. 매니저들도 문젠 거 같고. 매니저들한테 얘기도 해요. 제발 좀 그러지 말아 달라, 혐오감 느낀다, 그게 결코 잘 나가는 잣대가 되는 게 아니다. 어떤 땐 그거 꼭 액수가 나가야 되냐? 힘들게 일하는 사람들 100만원, 200원 받는데 갑자기 광고 한편 찍고 7억, 8억 그러면 얼마나 싫겠어. 오히려 저는 배우가 정확히 얼마 받는다, 세금은 얼마 나가고, 왜 이렇게 받을 수밖에 없는가, 그런 얘기를 하면 좋겠어요.

그런 경우 짚고 넘어가는 편인가요?
그게 내가 나이를 먹은 건데, 옛날엔 제가 부딪혔어요. 지금은 싸우는 게 싫어요. 힘들고. 그런 게 있으면 오히려 피하게 되고. 다행히 저에 대한 기사가 나가는 게 있어도, 저희 팬들은 하나도 안 흔들려요. 거기에 힘을 얻었어요.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배우들 중 친한 사람이 있나요?
김승우씨…는 친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사람도 날 친하다고 생각하는지는…하하. 개인적으로 좋아해요. 김태우씨는 제가 정말 좋아하는데 역시 절 어떻게 생각하는지는…하하. 그리고 류승수라고, 친구예요. 이 새낀 날 좋아하는 거 같아요. 하하하.

매니저분이 사전에 질문지를 요구하기에 말을 잘 못하나 보다 했어요.
지금 제 얘기가 답안지 준비해서 하는 말 같진 않죠? 저희 매니저들이 다 초창기부터 같이 일했던 친구들이에요. 지금 저 친구들이 일을 너무너무 훌륭하게 잘 해요. 근데 첨엔…물론 제가 매니저들을 가르친다는 건 우습지만, 그랬어요. 신인들하고도 일을 해야 하고 그렇잖아요. '너네들이 신인들의 이미지를 관리해야 되는데, 그러다 보면 기사도 너희들 의도에 부합되게 할 수 있도록 해야지 않겠냐? 준비를 해라, 너희들 나름대로.' 옛날에 그랬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그렇게 하고 있어요. 아이러니 한 건, 차에 타보면 질문지가 파일로 딱 정리돼 있어요. 자기들이 답을 다 달아서. 최근엔 못 봤어요. 그러다 얼마 전에 한번 봤는데, 정말 깜짝 놀라서 그랬어요. '너희는 어떻게 내 생각을 100프로 이상을 알고 있냐?' 내가 할말이 그대로 적혀 있는 거예요.

초창기엔 배우들이 매니지먼트를 따라가는 게 보통이지 않나요?
너무 강했었죠, 제가. 제 생각이 너무 강했고, 타협을 못했고, 오로지 내 뜻을 관철시키려 하고.

당신 같은 사람에게도 '이 여자는 도저히 내가 유혹할 수 없겠군' 싶은 상대가 있나요?
어떻게 그런 상대가 있을 수 있어요? 제가 유혹하려는 마음을 가졌다면 왜 유혹을 못하겠어요.

대단한 자신감이군요.
그런 게 아니구요. 정말 내가 유혹해야겠다, 마음을 먹고 하면 누가 유혹이 되겠어요. 진심으로 해야죠. 그러면 다 통하게 돼 있어요. 진심이라니까요, 바람둥이들은.

[ELLE]2003/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