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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룩소(Luxor) 일정 마치고 버스로 후르가다 DESERT ROSE RESORT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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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및산행

2018. 8. 9.









이집트 룩소(Luxor) 일정 마치고 버스로 후르가다 DESERT ROSE RESORT 까지

(2018/6/12일~6/20일,7박9일)


하나투어에서 주관하는 터키/그리스/이집트 3국을 한번에 둘러보고자 하여
터키 이스탄불, 그리스 메테오라-아테네-에기나, 이집트 카이로-룩소-후루가다 등을
중점적으로 관광 하는 패케지 여행으로 2018년6월12일~6월20일(7박9일) 기간 동안
실시한 "[피라미드]이집트/터키/그리스 9일★돌마바흐체+5성3박+추가 10만마일리지"
여행 일정 중 7일차 일정으로 당일 오전 일명 테베(Thebe)라 불리는 룩소(Luxor) 의
STEIGENBERGER NILE PALACE 을 출발 나일강 동쪽에 위치한 이 도시에서 최고로 섬겼던
아몬(Amun)신을 위해 지어진 카르낙 신전(Great Karnak Temple)과 룩소 신전을 오전에
둘러보고 난다음 나일강을 배를 타고 서쪽으로 건너서 신왕국 시대의 제18왕조에서
제20왕조까지의 왕들의 묘소 가있는 왕가의 계곡(The Valley of the Kings) 과
핫셉수트 여왕이 건축한 핫셉수트 장제전을 탐방후 룩소(Luxor)에서의 일정 마치고
버스로 약 350KM 4시간 소요되는 홍해 연안에 있는 휴양도시 후르가다 에 있는
DESERT ROSE RESORT 까지 가면서 살펴본 주변 풍경괴 사막 산야 등 풍경 입니다.

후르가다(영어: Hurghada, 아랍어: الغردقة)는 이집트 홍해 주의 주도이며, 해변에 있는
관광 도시이다. 20세기 초에 건설됐으며, 1980년대 이후 이집트 정부에 의해 관광업이
많이 발달되었다. 후르가다 국제공항이 위치해 있다. 시나이 반도를 제외하고 이집트에
속해 있는 홍해 지역은 약 1080km. 그 중에서 후르가다가 45km를 차지한다. 작은 어촌
마을이었던 후르가다는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변화하고 또 발전하고 있다.
방갈로 짓는 것을 시작으로 발달한 리조트들은 공사 중인 건물들과 마구 뒤섞여 생경한
풍경을 선사한다.

홍해 지역에 분포돼 있는 총 240여개의 호텔 중 150여개의 호텔과
리조트가 바로 이곳 후르가다에 위치해 있다. 때문에 후르가다에서 관광업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을 만나기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는 것만큼 쉽지 않다. 아담한
후르가다공항에서 차로 10분만 달려가면 세계 굴지의 리조트들이 서로 어깨를 견주며
늘어서 있다. 후르가다에는 1박에 40이집션파운드(약 8500원)짜리 저렴한 호텔부터
4020이집션파운드(약 85만원)짜리 럭셔리 호텔까지 다양한 숙소가 마련돼 있다.
후르가다의 물가는 카이로보다 비싸지만 호텔 가격은 등급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 그동안 선뜻 머무르기 힘들었던 고급 호텔에서 호사를 누려보는
것도 후르가다를 제대로 즐기는 방법 중 하나다.






룩소(Luxor)에서는 나일강을 기준으로 서쪽에는 왕가의 묘나 장제전이 소재하고
동쪽으로는 신전들이 있습니다. 서쪽편에 있는 신왕국 시대의 제18왕조에서 제20왕조까지의
왕들의 묘소 와 핫셉수트 장제전을 보고 나서 다시 동쪽으로 나일강을 건너 옵니다 















나일강가에 있는 호텔식당에서 현지식으로 식사를 하고.. 











다음 행선지인 약 350KM 4시간 소요되는 후르가다(Hurghada)로 출발하다.











사막도 지나고, 가면서 중간에 휴게소도 들리면서.. 



























마침내 후르가다 DESERT ROSE RESORT에 도착 합니다. 







■후르가다 (Hurghada)


후르가다는 이집트 홍해 주의 주도이며, 해변에 있는 관광 도시이다.다이버들의 천국…홍해 '후르가다(Hurghada)'바닷물 수정같이 맑아… 최고의 휴양지이자 수상스포츠 즐기기에 최적 , 20세기 초에 건설됐으며, 1980년대 이후 이집트 정부에 의해 관광업이 많이 발달되었다. 후르가다 국제공항이 위치해 있다.


'후르가다(Hurghada)'는 홍해 연안에 있는 카이로(Cairo)에서 동남쪽으로 약 370km 지점에 있다. 이곳에는 아름다운 산호초 군락과 다양한 종의 많은 물고기가 서식하고 있다.  터키에서 흘러온 맑은 바닷물은 수정같이 맑아 이집트에 있는 도시들 중 수상스포츠를 즐기기에 최적의 장소다.


홍해의 바닷물은 속이 훤히 보일 정도로 맑아 세계 다이버들이 찾는 다이버들의 천국과도 같은 곳이다. 특히 후르가다는 돌고래를 만나 다이빙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테베(Thebes)의 유적 -다음백과 


고대 이집트 제국의 수도, 테베에는 4군데의 주요유적지, 즉 카르나크, 룩소르, 왕들의 계곡, 왕비들의 계곡이 있으며 그밖에 왕들의 장제전도 중요하다.


파라오들이 자신의 무덤을 은밀한 왕들의 계곡에 감춘 신왕국시대에는 무덤보다 장제전의 겉치레에 집중될 수밖에 없었으며, 왕들은 장제전을 더 크고 웅장하게 만들기 위해 경쟁했다(매장). 장제전은 지은 사람이 죽은 뒤 그 영혼을 기리는 의식을 거행하기 위한 건물이었지만 모두 테베의 최고신인 아몬에게 바쳐졌고, 신왕국 신전의 독특하고 핵심적인 형태를 갖고 있었다(이집트 종교). 장제전들은 테베 서부의 골짜기 가장자리에 세워졌는데, 대체로 지형에 따라 북쪽에서 남쪽으로 죽 늘어서 있다.

초기에 지어진 장제전은 대부분 흔적만 남아 있다.


다이르알바리에 있는 하트솁수트 여왕의 신전은 지금까지 남아 있는 제18왕조의 대규모 건축물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장엄한 건축물이다(장제건축). 이 여왕의 건축가인 세넨무트는 BC 1490년경 멘투호테프 2세의 장제전 옆에 있는 절벽 구석에 일련의 주랑과 3층으로 이루어진 안뜰을 설계했다.


골짜기 쪽으로부터는 스핑크스들이 늘어서 있는 길을 통해 접근하도록 되어 있고, 앞뜰에는 나무와 덩굴식물이 심어진 정원이 있었다. 계단식 대지를 등지고 다음 층으로 올라가는 비탈길 양쪽에는 회랑이 있었고, 이 회랑의 지붕은 2줄로 늘어선 기둥들이 떠받치고 있었다. 다음 층에 있는 안뜰 서쪽에도 이와 비슷한 회랑이 뻗어 있었으며, 아누비스 신과 하토르 여신의 부속 예배당이 있었다.


맨 꼭대기층의 테라스에는 기둥이 늘어선 큰 방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 양쪽에는 예배당 및 뒤쪽 절벽을 파서 만든 성소가 있었다. 주랑과 예배당에 새겨진 많은 돋을새김 조각은 더없이 아름답고 매우 흥미롭다. 거기에는 2개의 오벨리스크를 거룻배에 실어 아스완에서 카르나크로 운반하는 장면을 묘사한 조각과 하트솁수트 여왕이 기적적으로 태어나는 장면을 묘사한 조각이 있으며, 여왕이 홍해 건너편에 있는 향료의 땅 푼트로 파견한 해상무역단을 묘사한 조각도 있다.


아멘호테프 3세가 지은 장제전은 테베에 있는 모든 신전 가운데 가장 크고 가장 화려했음이 분명하다.그러나 후세의 파라오들은 이것을 거의 완전히 파괴해 버렸고, 오늘날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몇 개의 토대와 높이가 10m나 되는 거대한 돌기둥, 그리고 멤논의 거상(巨像)이라고 부르는 2개의 조상뿐이다. 멤논의 거상은 한때 장제전의 탑문 앞에 있는 통로 양쪽에 서 있었지만, 지금은 농경지 한가운데에 외로운 파수꾼처럼 앉아 있을 뿐이다.


이 조상들은 아멘호테프 3세를 나타내고 있다. 머리에 쓴 관을 합하면 높이가 거의 22m나 되는데, 각각 하나의 돌덩어리를 잘라서 만든 것이다. 북쪽에 있는 조상은 이따금 해가 뜬 직후에 기묘하게 높은 소리를 냈기 때문에 고대에는 '노래하는 멤논'으로 유명했다.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와 그의 왕비인 사비나를 비롯하여 수많은 로마 관광객들이 이 놀라운 소리를 듣기 위해 테베를 찾았다. 그러나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시대에 석공들이 이 조상을 군데군데 수리한 후로 '노래하는 멤논'은 두번 다시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쿠르나에 있는 세티 1세의 신전은 일부만 남아 있고 앞뜰과 탑문은 사라졌다.이 신전의 일부는 세티 1세의 아버지인 람세스 1세의 장례식에 바쳐졌는데 세티의 아들인 람세스 대왕이 완성했다. 람세스 대왕의 모습은 신전의 돋을새김 조각에 묘사되어 있다. 벽은 파라오들이 여러 신들에게 제물을 바치거나 신들의 총애를 받고 있는 종교적인 장면들만으로 장식되어 있다(벽화).


라메세움이라고 부르는 람세스 2세(람세스 대왕)의 장제전은 많이 파괴되었지만 옛날의 웅장함을 어느 정도 간직하고 있다.

넓은 바깥 탑문은 람세스 2세가 시리아에서 히타이트인들과 싸우는 활기 찬 장면으로 장식되어 있고, 내부 탑문은 카데시 전투 장면과 수확의 신 '민'의 축제 장면으로 장식되어 있다. 또한 오시리스로 가장한 왕의 커다란 조상들이 안뜰의 기둥들을 장식하고 있다. 첫번째 안뜰에는 의자에 앉아 있는 람세스 2세의 거상이 있었다. 지금은 일부만 남아 있지만, 그것이 얼마나 거대했는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 거상의 높이는 18m가 넘고, 무게는 1,000t 정도일 것으로 추정된다. 2번째 안뜰 너머에 있는 다주식 큰 방은 카르나크 신전의 큰 방과 비슷하다(다주실). 그 너머에는 기둥으로 떠받친 방들과 지금은 사라진 성역이 있었다.

장제전 주위에는 높은 벽돌담이 있고, 이 담장 안에는 둥근 천장을 씌운 건물의 유적이 광범위하게 남아 있다. 이 건물들은 군수품 창고, 마구간, 작업장, 그리고 장제전 관리인들이 사는 집이었을 것이다. 디오도루스 시쿨루스는 라메세움을 '오지만디아스의 무덤'이라고 불렀다.


마디나트하부에 있는 람세스 3세의 신전은 신왕국 시대에 만들어진 커다란 장제전들 가운데 가장 시대가 늦고 가장 남쪽에 있는 신전이다.전체적인 설계는 라메세움을 본떴다. 넓은 정면 탑문과 2번째 탑문으로 분리되어 있고 주랑으로 둘러싸인 바깥쪽 뜰과 안뜰, 기둥으로 떠받친 큰 방과 그보다 작은 2개의 전실, 그리고 그보다 더 작은 방들로 둘러싸인 성역 등이 라메세움과 비슷하다. 다주식 큰 방은 일부가 파괴되어 있고 기둥들은 첫번째나 2번째 받침대 높이까지 허물어져 있지만, 다른 것은 잘 보존되어 있다.


안쪽 방들의 벽에는 왕이 신들 앞에서 예배드리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또한 전차를 탄 왕이 리비아인들을 닥치는 대로 베어 쓰러뜨리고, 아모리족의 도시를 공격하며, 포로로 잡은 리비아인과 아시아인 및 해적들을 아몬 신과 무트 신 앞으로 끌고 오는 전투 장면들도 묘사되어 있다. 신전의 바깥 벽에는 이집트인이 펠레세트인(필리스티아인)과 셰르덴인 및 셰켈레시인 등 '해양민족'과 벌인 대규모 해전이 자세하고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거대한 탑문의 바깥쪽 정면에 새겨진 돋을새김도 뛰어나다. 이것은 갈대가 우거진 습지에서 파라오가 들소를 사냥하는 광경을 묘사하고 있다. 신전 옆에는 궁전 유적이 있다. 신전을 둘러싼 담장 동쪽에 나 있는 높은 문에는 요새처럼 총안이 뚫려 있다. 신전 구내에는 작은 신전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투트모세 3세와 하트솁수트 시대에 지은 것이지만, 그후 여러 파라오들과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및 로마의 지배를 받던 시기에 변형되거나 덧붙여졌다.


또다른 신전은 사이스 왕조의 한 여왕이 지은 작은 장제전이다. 여기에는 신성한 호수와 우물이 있고, 라메세움과 마찬가지로 진흙벽돌로 지은 집들과 둥근 천장을 씌운 군수품 창고의 유적이 남아 있다.


마디나트하부 신전 남쪽에 있는 유적은 테베 서부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 중 하나였음이 분명하다. 말카타에 있는 아멘호테프 3세와 티이 왕비의 궁전이 그것이다. 사실은 4개의 궁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중 하나가 '위대한 왕비'의 것이다.


왕은 왕비를 위해 이 궁전에 호수를 만들었는데, 유람선을 띄울 수 있을 만큼 큰 규모였다. 이 호수는 굴착된 커다란 물웅덩이로 판명되었으며 지금도 말카타 남동부까지 뻗어 있는 흙무더기선으로 그 흔적을 더듬어볼 수 있다. 그러나 최근에 나타난 증거를 토대로 의문이 제기되었는데, 이 호수는 나일 강을 따라 오르내리는 배들이 정박할 수 있는 항구였을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이다.

고대 이집트에는 테베 이외에도 대도시가 있었지만 후세 사람들에게 테베만큼 많은 유산을 남겨준 도시는 없다.


역사적 장면이 묘사된 테베의 거대한 신전들, 고대인의 일상생활과 종교적 믿음을 풍부하게 보여주는 무덤들, 그리고 오늘날 세계의 박물관과 개인 소장품을 채우고 있는 그 무수한 골동품들은 모두 그 유산의 일면이다. 고대 테베만큼 고대인들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준 유적은 지금까지 거의 없었다.


■이집트(Egypt)- 다음백과 


세계에서 가장 오랜 문명의 역사를 가진 나라 중 하나인 이집트는 동쪽으로는 이스라엘·아카바 만·홍해와 접해 있고, 남쪽은 수단, 서쪽은 리비아, 북쪽은 지중해로 둘러싸여 있다. 이집트에는 겨울과 여름의 두 계절만 있다. 겨울은 서늘하고 온화하며, 여름은 일반적으로 무덥다. 이집트의 종교는 이슬람교이며, 대부분이 수니파에 속한다. 이집트는 부분적으로 자유기업을 인정하는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가진 개발도상국이며, 산업의 약 70%가 국유화되어 있다. 수도는 카이로이다. 남북길이 1,055km 남쪽 국경선에 면한 동서 최대너비는 1,250km다. 동쪽으로는 이스라엘과 아카바 만, 홍해와 접해 있고, 남쪽은 수단, 서쪽은 리비아, 북쪽은 지중해로 둘러싸여 있다.


 ●자연환경


이집트는, 경관의 지배적인 특징인 북류하는 나일 강에 의해 크기가 다른 극도로 건조한 두 지역으로 나뉜다. 보다 큰 사막지대인 서부 사막(앗사흐라알가르비야)은 와디(건천)가 없는 낮은 대지이며, 보다 작은 동부 사막(앗사흐라앗샤르키야)은 석회암과 사암층의 대지로 와디에 의해 널리 개석되어 있으며, 남동부에는 험준한 산들이 솟아 있다.


동부 사막의 북동부에 있는 시나이 반도에도 와디가 많다. 시나이 반도 남부 산지에는 해발 2,642m의 이집트 최고봉인 캐서린(카트리나) 산이 있으며 동부 사막의 홍해 구릉지대(이트바이)에는 해발 1,800m가 넘는 산이 많다. 나일 강은 이집트 영내에서는 중요한 지류가 없으며, 가파른 벼랑들 사이에서 대략 8∼16km 너비의 바닥이 평평한 유역을 따라 흐르다가 카이로 북쪽에서 부챗살 모양으로 갈라지며 삼각주 저지대를 이룬다.


이 삼각주는 길이 160km, 너비 240km로 인구가 조밀하고 연중 관개가 이루어지는 지역이다. 자연 식생은 지역에 따라 다르다. 건조한 서부 사막은 대체로 생명체가 없는 지역이지만, 수분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서든 사막의 다년생식물과 풀이 자란다.

서부 사막보다 덜 건조한 동부 사막에는 이따금 비가 내려 몇몇 종류의 식물이 자랄 수 있는데 그중에는 타마리스크, 아카시아 및 수많은 종류의 가시관목, 작은 다육식물들, 방향성의 약초들이 있다. 나일 강 유역과 삼각주, 그리고 산재하는 오아시스들에서 이집트 농업의 거의 대부분이 이루어지며 인구의 99% 이상이 여기에 거주한다.


이집트에는 겨울(11∼3월)과 여름(5∼9월) 두 계절만 있다. 겨울은 서늘하고 온화하며(알렉산드리아에서의 1월평균기온은 11∼18℃), 여름은 일반적으로 무덥다(카이로의 7월평균기온은 29℃). 연강우량은 알렉산드리아에서 약 175㎜ 카이로에서 약 25㎜ 남부의 아스완 부근이 약 2.5㎜로 지역에 따라 편차가 심하다. 또한 홍해 연안 평야에는 강우가 거의 없다. 광물매장량은 보통 수준이며, 철광, 석유, 천연 가스, 석고, 인산염과 우라늄 등이 산출된다


 ●역사


이집트는 세계에서 가장 오랜 문명의 역사를 가진 나라 가운데 하나이다.BC 2925년경에 상이집트와 하이집트가 통일되었는데, 이는 메네스 왕에 의해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통일로 인해 이집트 문명은 절정기에 들어섰고, 이후 약 3,000년 동안 본토 출신들이 계속해서 지배자의 위치를 이어갔다. 역사가들은 31개 왕조에 걸쳐 BC 332년까지 계속된 이집트의 고대사를 고왕국·중왕국·신왕국으로 구분한다.


피라미드는 고왕국의 유산이며, 오시리스 숭배와 조각의 세련미는 중왕국에서 이루어진 것이고, 제국시대와 유대인의 출애굽은 신왕국에 속한다(→ 이집트 미술, 이집트 법, 이집트 종교).


아시리아의 침략은 BC 7세기에 일어났으며, 페르시아의 아케메네스 제국이 이집트에 왕조를 세운 것은 BC 525년이었다.BC 332년 알렉산드로스 3세의 침략으로 마케도니아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시작되었으며, 이 왕조시대에는 이집트의 통치자들이 헬레니즘 세계에 깊이 뿌리를 박고 있었다. 알렉산드로스에 의해 건립된 알렉산드리아 시는 헬레니즘뿐만 아니라 셈족 학문의 중심지로 발전했으며, 머지 않아 그리스의 철학과 과학이 최고의 발전을 이룩하는 데 구심점이 되었다.


로마인은 BC 30∼AD 395년에 이집트를 점령했으며, 그후 이집트는 행정적으로 동로마 제국(뒤의 비잔틴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의 관할하에 들어갔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그리스도교도들에 대한 관용령을 내림으로써 이집트의 공식 교회의 발전이 촉진되었다. 알렉산드리아는 아리우스·아타나시우스·오리게네스·클레멘스와 같은 초기 그리스도교 교부들의 활동 무대였다. 비잔틴 제국의 이집트 지배는 비잔틴 군대가 아라비아의 침략군과 3년의 무력 충돌 끝에 이집트에서 철수한 642년에 끝이 났다. 그후 200∼300년 내에 이집트는 아랍어를 사용하는 나라로 바뀌었고, 이슬람교가 지배적인 종교가 되었다. 이집트는 우마이야 왕조와 아바스 왕조 칼리프국의 일부였다.


그후 969년에는 파티마 왕조 칼리프국의 중심이 되었으며, 상당한 독립과 중요성을 획득했다. 1171년에 이어 이집트는 아바스 왕조의 지배로 귀속되었다.


아바스 왕조 칼리프국이 무너지고 맘루크들이 득세한 것은 1250년의 일이었다. 맘루크들은 아라비아 세계의 군대를 증강하기 위해 이용된 비아라비아·비이슬람의 노예들이었다. 그들이 이집트에 세운 왕조는 1517년까지 지속되었으며, 이집트를 이슬람 세계의 동부 아랍어 사용권의 중심지로 만들었다.이때까지는 이집트의 아랍화가 거의 완성되었다.


1517년에 이집트는 오스만 투르크에 함락되어 이스탄불(옛 이름은 콘스탄티노플)에서 다스리는 속주로 되돌아갔다. 맘루크 왕조 말기에 시작된 경제의 쇠퇴는 계속되었고, 그와 함께 이집트 문명도 쇠퇴했다. 1798년 프랑스군의 침략은 불과 몇 년 동안이었지만 이집트를 유럽의 정치무대로 끌어들이는 데 충분했다.


프랑스군이 떠난 뒤 이집트는 무하마드 알리의 수중에 들어갔다. 알바니아인이었던 것으로 알려진 알리는 오스만을 명목상의 종주국으로 하는 하나의 왕조와 제국을 일으켰다. 그와 그의 후계자들의 치부(致富)와 팽창주의 정책으로 인해 이집트는 영국에 막대한 빚을 졌고, 영국은 1882년 내란의 와중에 기회를 틈타 이집트를 점령했다(대영제국).


이집트는 1914년 영국의 보호령이 되었으며, 1922년 명목상의 독립을 얻고 입헌군주국이 되었다.1952년 쿠데타로 군주제가 타도되고, 가말 아브델 나세르가 2,000년 이상의 역사 속에서 최초의 이집트 본토 출신의 지배자로 떠올랐다. 그는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하고, 잠시나마 시리아 및 예멘과의 연방 수립을 시도했으며, 아스완 하이 댐을 건설했다. 1956, 1967년에 이스라엘과 2차례 전쟁을 치렀으나 실패로 끝났다. 그의 후계자인 안와르 엘 사다트는 나세르가 시행했던 강도 높은 사회주의 정책의 일부를 파기하려 했으며, 또한 이스라엘을 공격해(1973) 시나이 반도의 작은 영토를 되찾았다.


그후 중동평화회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다가 1981년 10월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에게 암살당했다. 그의 밑에서 부통령직을 맡고 있던 호스니 무바라크가 그뒤를 계승하여 사다트의 평화주도정책을 계속했으며, 1982년 이집트는 1967년에 잃었던 시나이 반도에 대한 영유권을 회복했다.





이집트 원왕조 군주
초기왕조 시대 군주고왕국 시대 군주중왕국 시대 군주신왕국 시대 군주기타 군주왕비궁의 사무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