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의 여행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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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전투 3부작 & 대통령 아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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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 유머 다큐

2018. 2. 9.


<칠레 전투 3부작>


 ●칠레전투 1부 부르주아지의 반란

https://youtu.be/XLuaoJzYbk0


 ●칠레전투 2부 쿠데타

https://youtu.be/5k1Hq9v8mFE


 ●칠레전투 3부 민중의 힘

https://youtu.be/FBWE8pKp68I



대통령 아옌데.<칠레 전투 3부작>


지난 번 글에 이어,1973년의 칠레 이야기를 또 한 번 쓰려 한다.물론 내가 칠레에 대해서 그렇게 잘 아는 것은 아니다.어쩌면 내가 아는 칠레는,고대문명의 흔적이라는 이스터 섬,유럽 리그와 월드컵에서 활약했던 몇몇 축구선수들,대형 마트에서 팔고 있는 칠레산 와인,몇 년 전 우리나라와 체결했던 FTA,지네처럼 생긴 길고 긴 땅덩이 등에 불과할런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칠레 이야기를 또 다시 써내려가려 하는 이유는 그들의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 때문이다.그의 인생 전체와 더불어,그의 죽음을 직접적으로 불러 왔던 '대통령으로서의 삶'은,몇 명의 대통령을 보았었고 앞으로도 몇 명의 대통령을 보아야 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충분하다.이 지치도록 지겨운 대통령 선거의 와중에서 그를 떠올리는 것은 어쩌면 아주 당연한 일이라고 해야 할런지도 모르겠다.

 

물론 칠레와 우리는 여러 모로 다르다.또 칠레 사회의 어떤 면과 우리 사회를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또는 허망한 일이다라고 반론하는 것도 전적으로 가능한 일이다.나도 모르는 바가 아니다.그래도 아옌데의 이야기를 또 하는 이유는 예의 그 지겨움,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이들에게서 느껴지는 한없는 천박함과 그들로부터 풍겨나오는 값싼 향수 냄새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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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살바도르 아옌데

 

 

살바도르 아옌데는 1970년 세계최초로 출범한 선거에 의한 사회주의 정권의 대통령이었다.그는 대통령 당선 이후,그를 지지했던 민중들의 열렬한 뒷받침과 그를 싫어하고 그를 좌초시키려는 기득권층의 방해공작 사이에서,칠레 사회의 개혁을 진행하는 도중 1973년 9월 11일 피노체트를 정점으로 하는 군부의 쿠데타에 끝까지 저항하다가 살해당한 인물이다.

 

그는 쿠데타 세력의 망명회유를 끝까지 거부하며 대통령 궁을 공격하는 쿠데타군(탱크는 기본이며 심지어 그들은 호크 전폭기까지 이용했다) 의 위협에,쿠바의 피델 카스트로가 선물해 준 소총을 들고 저항하다가 살해당한다.

 

살바도르 아옌데,그리고 그를 지지하고 그와 함께 싸웠던 칠레 민중들의 1970년에서 1973년까지의 투쟁을 다큐멘터리로 기록한 영화가 바로 <칠레전투>다.파트리시오 구즈만 감독을 위시한 칠레의 젊은 영화인 다섯 사람은 조명 장비 조차 제대로 없이 달랑 카메라 하나만을 들고 사람들 속으로 파고 들어가,그 삼년간의 역사를 기록으로 남겼다.그들은 수도 산티아고에서부터 광산과 시골의 농장에 이르기까지 칠레 전역을 샅샅이 훑고 다니면서 칠레의 기록을 역사 속에 남겼다.갑작스런 쿠데타의 와중에,이들은 기록된 필름을 6개월에 걸쳐 쿠바로 밀반출하고 ,이어 망명까지 한 끝에 1979년에야 편집을 마쳐서 영화를 완성하게 된다.

 

그 <칠레전투 3부작>중 1부 <부르조아지의 봉기>가 시작하는 시점도 바로 피노체트 반란군이 대통령 관저를 폭격하는 그 순간이다.대통령 관저에서 피어오르는 포연은 나라를 지켜야 할 군대가 자신들의 최고상관을 살해하려는 위협이자 하극상을 상징하는 것 같아 무척이나 낯설게 느껴진다.부서져 내리는 대통령 관저의 벽들과 유리창들을 바라보며 관객은 충격을 받게 되는데,그 충격은 영화 초반부터 의외의 살인사건을 목격하게 되는 스릴러 영화의 관객들이 받는 충격과도 유사하다.단,이 다큐멘터리에서 사용되는 영상이 실제 장면의 기록 화면이어서,관객들은 눈 앞에서 실제의 살인 장면을 목격하고 있는 듯한 감정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는 이 비극적인 쿠데타가 일어나기 3년 전,사회당 후보로 나선 아옌데가 공산당 후보로 나섰던 시인 파블로 네루다 등 진보진영과의 후보 단일화 성공 등에 힘입어 대통령에 당선되는 순간으로 돌아간다.글자 그대로의 환희의 순간이다.

 

 그러나 이 3부작 다큐멘터리의 첫번째 부분의 제목은 '부르죠아지의 봉기'이다.부르죠아지로 표현되는 기득권층은 계속되는 탄핵과 고의파업 사보타죠,그들이 장악한 의회에서의 발목잡기고 아옌데의 개혁정책에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다.

 

 

 

카메라는 기득권층이 장악한 '시장'의 발목잡기로 브레이크가 걸려 블랙 마켓과 매급제에만 의존해야 하는 시민들의 불만과 분노,국회의 일정들을 보이콧하고 있는 야당과 노벨 평화상 수상자였다는 헨리 키신저를 필두로 한 미국과 CIA의 움직임을 차례로 보여준다.아옌데가 임명한 장관들은 거의 다 해임결의안을 통해 내각에 발도 못 붙이게 하고 개혁에 관한 법률들은 통과 시도도 못해 본 채 좌초되었다.파시스트들이 준동하는가 하면 우익들에 의해 장악된 군대는 의회에 의해서 시민사회에 대한 폭력적인 권한을 뒷받침할 법적인 근거까지 확보한다.

 

영화는 아옌데를 반대하는 시민들의 육성을 들려주고 파시스트들의 폭력시위와 그에 맞선 아옌데 세력의 맞시위에도 눈을 돌린다.차분하게 그 때 당시의 상황들을 따라가는 것이다.언론은 끊임없이 아옌데를 지지하는 대학생들과 시민사회의 시위를 폭력과 무질서로 몰아가고,이 상황을 통제하지 못하는 아옌데 정부를 철저하게 무능한 정권으로 몰아세운다.(머,두 말 할 것도 없는 조중동의 수법이다.이런 종류의 테크닉엔 국제적인 전통이 있는가 보다)

 

미국 극우단체의 원조를 받는 반 아옌데 성향의 운송노조는 반정부 파업을 일으키고 미국은 칠레 경제를 고사시키기 위해 칠레의 주요 수출품이었던 구리의 시장가격 폭락을 목적으로 미국의 구리를 국제시장에 내놓고,아예 칠레에 들어가야 할 의약품이나 산업장비의 수출 조차도 차단시켜 버린다.모든 부르죠아지들이 연대해 칠레 민중과 아옌데의 숨통 자체를 겨누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아옌데는 미국,그리고 기득권 세력에게 완전히 무릎을 꿇으려 하지 않는다.그는 노동자들의 파업 현장엘 달려가 그들을 설득하고 끊임없이 국민과 대화하며 민중들과의 채널을 유지했다.

 

 

 

 

그는 극심해져버린 빈부의 격차 (지금식으로 말하면 양극화?) 문제를 해소하길 원했으며,자신이 끝까지 고수했던 사회주의적인 대의를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무엇보다 그는 그의 조국 칠레의 대미종속적인 경제구조를 고쳐보려는 시도를 빠뜨리지 않았다.

 

중남미 국가들 대부분이 그랬지만,그들의 경제구조는 기득권층과 그들의 모국인 미국을 위해 완전히 왜곡되어 있었다.특히 칠레의 주된 수출용 지하자원인 구리의 탄광들은 대부분 미국의 다국적 기업들이 소유하고 있어서,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구조적인 측면에서의 접근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아옌데는 고감하게 구리 광산을 국유화하고 노동자들의 활동성을 강화시키믄 방향의 개혁을 단행했다.이것은 기득권 계층과 미국의 직접적인 이윤을 건드리는 조치였으며,이것으로부터 '부르죠아지의 저항'이 시작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었다.

 

 

 

극우 계층들은 진지전 뿐만 아니라,실제의 물리력과 폭력,납치와 살인 등의 방법으로 봉기를 진행했다.대부분은 미국과 연계되는 일이었다.아옌데를 지지하는 쪽에서도 그들이 만든 정부를 끝까지 지키겠노라고 맞서서 칠레 전역은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빠져들어가고 있었다..

 


 

 

2.칠레 전투 2부 <쿠데타>

 

군부가 행동을 최초로 시도했던 것은 6월이었다고 칠레 전투 3부작 중 두번째인 <쿠데타>는 얘기한다.심지어 군부는 쿠데타의 예행연습과 사전 준비로서의 암살과 납치 (아옌데에게 우호적인 인물들에 대한),그리고 좌익노동자들을 살해하기까지 한다.마치 쿠데타 성공 이후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암매장하고 고문한 것들을 예고하듯이 말이다.(실제로 쿠데타 이후 7일간 약 3만명의 사람들이 학살당하고 실종되었다)

 

이 긴박한 상황에서 아옌데는 실책을 저지른다.군부의 일부 인사들을 정권 안으로 끌어들여 포섭하려 했고 (피노체트는 쿠데타 한 달 전에 아옌데가 임명한 육군참모총장이었다.),

 

(아옌데와 피노체트의 모습이다)

 

 

야당인 기독교민주당엔 대연정(이것도 많이 듣던 말이다)을 제의했다.보수층에게 우호적인 손짓을 보내기 위해 보수인사를 내각에 기용하기도 했다.영화에선 그 때 내각에 잠시 합류했던 보수인사인 카톨릭대 총장의 인터뷰가 나오는데,그의 이야기는 놀랍게도 '아옌데의 정치는 코드의 정치이자 증오의 정치'라는 소리였다.경악할 만큼 우습고도 슬픈 장면이었다.

 

아옌데는 심지어 법원의 판결을 존중한다며,항상 기득권자의 편이었던 법원을 옹호하기도 했는데,오히려 나중에 야당은 '정부가 헌법을 지키지 않는다'며 공격했다.슬픈 코미디는 세상 어디에서나 반복되는 모양이다.결국 아옌데가 원했던 것은 '혁명'이 아니라 '개혁'이었고,'정면돌진'이 아닌 '우회적인 돌파'였던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겠으나,그가 선택했던 이런 노선들이 과연 옳았는가,하는 것이 지금껏 논란이 되오고 있는 것이다.한편 기득권 계층의 강한 반격에 대항하여 비무장한 민중들 역시 투쟁을 전개한다.물리력과 폭력을 가진 상대방의 위협이 언제나 불안하긴 했지만,<칠레전투> 속 민중들은 다양하게 저항한다.

 

생필품과 물자의 부족에 직면한 그들은,스스로 조합식 경제공동체를 만들어 배급을 통해 부족한 물자를 적절하게 배분하여 위기를 타개해 나가려 하였으며,그 공동체는 경제적인 분야에만 머무르지 않고 초보적인 정치결사에까지 이르게 된다.꼬뮨이 형성되는 것이다.

 

반면 아옌데는 끝까지 합법적인 방법을 고수한다.그는 자신의 정책과 재신임을 걸고 찬반투표를 실시하는 것이다.(이 '재신임'도 익숙한 말이다)

쿠데타가 일어나기 7일 전 아옌데와 그를 지지하는 민중들은 칠레 역사상 최대로 기록된 민중집회를 연다.(서울의 봄을 연상시킨다) 군부로서도 절대절명의 상황이다.비무장한 민중들과 총과 탱크로 무장한 세력들간의 격돌이 임박한 시점이다.

 

 

그리고 쿠데타가 발발한다.9월 11일 아침 아옌데는 국민들에게 마지막 연설을 보낸다.

 

결국 아옌데는 타도당한다.그를 위해 마지막 결전을 단행했던 민중들 역시 죽고 고문당하고 추방당했다.칠레의 사람들은 모두 다 죽은 듯,전멸당한 듯 보였다.

 

쿠데타 성공 후 군부는 자랑스레 인터뷰를 갖는다.그리고 <칠레전투>의 2부인 <쿠데타>가 막을 내린다.

 

to be continued..


 

3.<칠레전투 3부 ,민중의 힘>

칠레전투의 제작자들은 ,민중들의 죽음이 영원한 패배로 끝나고 만 것이 아니라는 것을 주장하려 한다.그래서 실종되거나 납치당했을지도 모를 칠레의 민중 한 사람 한 사람이,아옌데의 개혁 시절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재조명한다.

 

그래서 그들은 3부 <민중의 힘>에서 시간을 다시금 아옌데 집권 18개월 후로 돌린다.아옌데 정부가 일련의 사회주의적 개혁 프로그램을 완수한 뒤이다.그는 광산들을 국유화시켰고 지나친 대토지들을 몰수했으며 은행들을 국유화시켰다.아옌데와 민중들의 환희에 찬 행진은 전편의 비극으로 주눅 든 관객들의 마음을 약간은 위로한다.

 

비록 민-군 내각의 실패와 중도우파의 배신으로 아옌데와 칠레 민중들의 정치적 실험은 실패로 끝났으나,영화는 그 참혹한 실패와 비극적인 죽음들에 대해서는 짐짓 모르는 척,오히려 정권 보다 앞질러가기까지 했던 칠레 민중들의 힘을 조목조목 보여준다.

 

칠레의 민중 노래 '벤세레모스'가 흐르는 가운데,힘차게 손수레를 끌고 가는 젊은이의 영상은,죽었지만 결코 죽지 않을 것이라는,언젠가는 다시 떨치고 일어날 것이라는 '민중의 힘'에 대한 강한 신뢰와 예감을 표현한다.'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이루어낼 수 없었던 투쟁' -영화 속 한 사람의 대사이다- 인 칠레 민중들의 운동과 꼬르돈이라 불리던 그들의 꼬뮨도 재조명된다.거의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농민과 노동자들의 인터뷰를 삽입시켜,그들이 수행했던 혁명이 여전히 불씨가 꺼지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려 하고,그것을 역사의 기록으로 남기고 있는 것이다.

 

이 3부작의 대미를 장식하는 것은 칠레 민중들의 자유로운 토론 장면이다.그들의 대화는 아옌데 정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노동자와 농민들은 그들의 권력 그 자체를 논하고 있으며,민중의 의식이 영영 잠들어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의 열정을 통해 표현한다.마지막 장면에 나타나는 끝간 데 없는 황무지의 영상은,그들의 투쟁이 그리 쉽지 않을 거라는,힘들고 지루하며 목마른 싸움이 될 거라는 상징이다.

 

그러나,세상 그 어디에서도 그런 것이다..

 

4.다시 아옌데

 

아옌데는 실패했다.그리고 그의 동지들은 죽고 다치고 깨졌다.

(영화 '산티아고에 내리는 비'에서의 처형 장면이다)

 

칠레의 민중들은 결국 피노체트의 독재를 끝내고 그를 외국으로 보내버렸지만,역시 죽은 사람은 죽은 것이다.

혹자들은 아옌데의 한계를 이야기한다.그가 추구했던 것은 결국 '부르죠아 민주주의'에 지나지 않았으며 심지어는 아옌데의 존재 자체가 ,민중의 힘을 강력하게 인식한 부르죠아 세력들이 사용한 일종의 '전술적 방패'라고 까지 주장한다.또한 그가 저질렀던 일련의 실수들은 그러한 비난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모든 잘못들과 비난들이 아옌데라는 사람 자체를 폄하시킬 수 있는 결정적 이유로 작동될 수는 없다.그가 어떤 과와 우를 범했다 할지라도,한 사람 인생의 모든 것은 그 죽음의 모습으로 웅변된다.

그는 도망치지 않았다.그는 밀려오는 쿠데타 세력들의 탱크들을 지켜보면서,열 아홉 명의 경호대원들과 죽음의 한복판으로 감연히 걸어들어갔다.

( 영화 산티아고에 내리는 비 속에서 보이는 장면이다.)

 

 

( 이 사진은 쿠데타 군을 관저 바깥에 둔 아옌데의 1973년 9월 11일의 실제 사진이다)

 

그는 임신 중인 딸을 내보내고

 

최후의 항전을 준비한다.

(마지막으로 촬영된 아옌데의 사진이다)

유언 같은 마지막 대국민 연설 이후,

 

 

이번이 제가 여러분에게 말하는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 곧 마가야네스 라디오도 침묵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용기를 주고자 했던 나의 목소리도 닿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계속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항상 여러분과 함께 할 것입니다. 적어도 나에 대한 기억은 이 나라에 온 몸을 바쳤던 사람. 바로 그것입니다.

내가 이제 박해받게 될 모든 사람들을 향해 말하는 것은, 여러분들에게 내가 물러서지 않을 것임을 이야기하기 위한 것입니다. 나는 민중의 충실한 마음에 대해 내 생명으로 보답할 것입니다. 나는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우리나라의 운명과 그 운명에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이 승리를 거둘 것이고, 곧 가로수 길들이 다시 개방되어 시민들이 걸어다니게 될 것이고, 그리하여 보다 나은 사회가 건설될 것입니다.

칠레 만세! 민중 만세! 노동자 만세! 이것이 나의 마지막 말입니다. 나의 희생을 극복해내리라 믿습니다. 머지않아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보다 나은 사회를 향해 위대한 길을 열 것이라고 여러분과 함께 믿습니다. 그들은 힘으로 우리를 우리를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무력이나 범죄행위로는 사회변혁 행위를 멈추게 할 수는 없습니다. 역사는 우리의 것이며, 인민이 이루어내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자유롭게 걷고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할 역사의 큰 길을 인민의 손으로 열게 될 것입니다."

 

 

20세기 현대 정치에 이와 같은 정치가가 얼마나 존재하는가? 혁명가이자 게릴라로 살았던 체 게바라와도 또 다르다.

 

 (아옌데와 게바라의 사진이다)

아옌데는 무엇보다 현실정치가였다.과거 귀족계층 출신의 의사이자 4선 국회의원이었으며 상원의장에 장관을 두 번 씩이나 역임한 사람이다.이 경력을 한국사회에 그대로 대입할 수 없다는 건 잘 알지만,과연 우리나라 현대사를 통틀어 이와 같은 경력을 가진 사람이,자신의 대의를 위해서 목숨이라는 희생을 바친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그가 초라하게 죽지 않았기 때문에,예를 들어 망명지에서 쓸쓸하게 사망하거나 쿠데타 세력에 의해서 어이없이 단죄당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그 자신이 아련한 신화로 남을 수 있었으며 칠레 민중의 가슴 속에 영원한 영웅으로 각인될 수 있었던 것이다.그리고 그의 장렬한 죽음에 사회과학적인 잣대를 들이댄다는 것은 어쩌면 차갑고도 무능한 일일 것이다.

 

아옌데가 죽음까지 불사할 수 있었던 이유는,자신이 '누구를 위한 대통령'이라는 사실을,'어떤 사람들의 지지로 자신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는지'를 철저히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었다.마지막 순간 그가 비루해지고 초라해질 수 없었던 이유는 ,자신의 모습을 강렬하게 쳐다보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진짜 '의리'란 이런 것이다.

 

5.열 두 명의 난쟁이들

 

거리거리마다 부착되어 있는 열 두 개의 명함판 사진들을 쳐다보면서 줄곧 느끼는 것은,2007년의 진흙탕 레슬링장에 등장한 이 분들의 참을 수 없는 왜소함과 가벼움이다.우리가 '대통령'라고 부르는 직책에 갖고 있는 기존의 감각이나 개념과는 참으로 거리가 먼,그저 지역 국회의원 선거에나 어울릴 법한 분들의 사진이,시끄러운 로고송들과 어울려 춤을 추고 있다.그래서 '찍을 사람이 없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아옌데를 바란다는 것이 아니다.우리 사회의 인재 풀이 저 정도 밖에 안된다는 것,게다가 저 분들 사이의 지지율의 지형도까지 고려해보면,'죽 쑤어서 개 주고 만'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찬란한 실책까지 느껴지는 것이다.이 허당의 느낌,이 공허함의 원인은 도대체 무얼까?

 

위장전문가인 어떤 분은 그렇지 않아도 좋을 리가 없는 내 위장의 어떤 반사들을 끊임없이 자극하고,이제는 단골손님이 되어버린 어떤 분의 뽀샵처리된 사진은 그의 가련한 열망만을 지속적으로 상기시켜 준다.사람들을 얼싸안고 다니는 잘생긴 어떤 분은,동정심 유발만이 유일한 목표처럼 보이는데,그의 목표처럼 진심어린 동정심을 유발시키는 데에 성공하고,어쩔 수 없이 표를 던져야 할 어떤 분은 처음엔 가장무도회에 등장한 노신사처럼 보였다가 이젠 그만 노회한 정치신사처럼 그 이미지가 바뀌어 간다.

 

문화방송 무한도전에 쌍으로 집어넣고 싶은 분들도 있다 (이 두 분은 실명을 밝혀야 할 것 같다.난 정형돈과 정준하 혹은 하하와 노홍철 대신에 이인제와 허경영을 투입한다면 '무한도전' 시청률이 아주 대박이 날 거라고 생각한다.잠깐,그럼 이회창은 박명수?)

 

저 열 두 명의 왜소한 분들 중,그래도 승리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세 분들에게서 감지되는 결정적인 공허함의 원인은 그 분들이 제시하는 약속들의 두루뭉수리함과 그들의 정체성이다.그들은 실체가 거의 잡히지 않는 약속들을 제시하고 있는데,거기에 결여된 것은 그들이 도대체 '누구를 위해 나섰느냐'하는 점에 대한 분명한 선언이다.'국민'이니 '시민'이니 하는 이제는 낡아져버린 거대한 개념을 통해,'경제

니 '실용'이니 하는 손에 잡힐 것 같지만 절대로 구체적이지는 않은 단어들을 통해,그 분들은 일종의 환상을 만들어내려 애를 쓰지만,그 환상 속에 존재하지 않은 것은 그들이 복무하려는 계층이나 계급의 이익이다.

 

또는 성공적으로 은폐한다.

사실,온 국민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야말로 절대적인 거짓말이다.누군가에게 행복을 줄 수 있다면,다른 누군가는 덜 행복해지는 것이다.경제를 살릴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더 뻔한 거짓말이다.어찌 보면 '행복제조'보다도 훨씬 저차원의 거짓말이다.그가 살리는 경제가 '누구'를 위한 경제라는 것이 너무 자명하니까 말이다.기꺼이 속아주려는 사람들의 마음이 이상해질 정도로 말이다.사람들은 지난 수십년간 너무도 여러 번 속아왔기에,무관심과 눈감음으로 일관하지만,그 댓가를 치뤄야 할 사람들도 바로 그들인 것이다.

 

반면 아옌데의 분명한 죽음은 사실 자신의 인생을,대통령으로서의 자기 자신을 설명하려는 죽음이다.구체적으로 내놓고 해답을 구하려는 죽음이다.그는 자기 자신이 그 어떤 누구의 ,어떤 사람들의 대통령이었는지를 설명하려고 자발적으로 죽음을 맞는다...

 

권영길 역시 분명하게 말해야 한다.누구를 적대시하고 누구를 편들 지를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대통령이 안되더라도 좋다.두루뭉수리하게 돌려 얘기하는 것은 지금의 미디어 환경에서 혼란 만을 가중시킬 뿐이다.그래서 그의 모습이 그렇게 '배우'처럼 보이는 것이다.

 

12명의 난쟁이들의 30미터 짜리 경주가 허망해 보이는 것,재미없어 보이는 것.에리카 김이나 빛나는 백수 이영민씨가 흥미로워 보이는 것은,바로 이런 결여를 반영해 주는 것이다.

 

6.마지막 ,윤상원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가장 '아옌데스러워'보이는 사람은,광주항쟁 때 최후까지 도청을 지켰던 윤상원이다.

 

대통령도 아니었고 명망있는 운동가도 아니었고,오직 '광주에서의 10일'을 통해 일부 국민들만이 알고 있는 윤상원이 ,나는 가장 아옌데와 비슷해 보인다.윤상원이 아옌데와 겹쳐보이는 이유는,그의 '사랑'과 '자존심' 때문이다.윤상원은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그가 지키고 싶은 대의에 대한 '사랑' 때문에 목숨을 바쳤으며 그로 해서 그가 몸담았던 일들에 대한 '자존심'을 지켜냈다.

 

윤상원이 무장혁명을 이루려고 했던 사회주의 혁명투사였다는 가설도 27년이 지난 현재로서는 의미가 없다.'지식인'들이라고 불리웠던 광주의 사람들이 도청 진압군들의 임박한 살해 위협 속에 도피하거나 움츠러  들었을 때,윤상원 만이 홀로 남아 죽음에 저항했었다는 것,그럼으로써 '난동'으로 격하되었을 수도 있을 광주 꼼뮨의 의미를 지켜냈다는 것,그것이 바로 윤상원의 의미인 것이다.윤상원의 마지막 인터뷰는 we will fight until the last man 이라는 말로 끝이 나고,그들은 실제로 그렇게 했다.아옌데의 마지막 연설이 오버랩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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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전투 3부작에서의 '칠레민중'들의 모습은 혁명의 와중 속에 강력한 프라이드를 가지고 자기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집단적 용기의 한 단면이다.혁명은 의식적 요소나 ,혁명적 이념을 가진 정당에 의해서만 좌지우지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어떤 사회의 지배적 가치를 부정하고 사람들의 보편적 관심을 향해 달려가는 당당한 세력들의 모습이 있어야 가능한 일인 것이다.

 

윤상원과 아옌데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마지막 한 점을 찍었다.열 두 명의 왜소증 환자들과 비교해 마음이 답답해지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