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수궁원 2010. 3. 23. 14:41

지난 수요일은 최군과 선배등 여러 사람과 차수를 변경하며 주석을 가진 날이었습니다.

이런 만남과 모임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는 문제보다도

관계정립에 있어 좀 더 솔직할 필요가 있겠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서있는 위치에 대한 세심한 점검과 확인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어떤 공통분모를 찾아내기 보다는

긴 시간의 공백에 대한 그동안의 생각을 토로하는 만남이 중요하다는 거지요

사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인지 햇갈리는 것이 요즘의 현실 아닙니까

아무튼

그 황군도 백낙청을 주목하는 것같고

그래서 백낙청과 안병직의 대담을 말한 날이기도 합니다.

 

이 두분의 대담은 여러 점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되는데

우선 자신들의 ‘사상’을 실천하는 만남이었고,

‘소통’의 문제가 결국 시대의 과제임을 새삼 깨닫게 되는 그런 만남이었습니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국가적 과제로서 ‘선진화와 통일’문제에 대해

또한 이명박 정권에 대해

기본적 합의를 이끌어 내고 6·15선언과 국가연합에 대해 적극적인 검토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이 대담의 성과로 안병직은 국가의 ‘정통성’ 보다는 ‘정당성’에 주목하고, 세종시 문제에 대해 전향적으로 그렌트바겐(대타협)을 주문하게 된 것입니다.

 

분단체제 속에서 특권적 지위를 갖는 수구세력과 구분되는 안병직은,

진보그룹의 리더로써 수십년간 쌓아온 자신의 사상을 한순간에 작파한 사람으로

우리의 근대화 과정은 식민지 저개발 상태의 근대화 과정에서 유일한 길이며, 전대미문의 세계사적 의의가 있다는 입장이며,

이 관점에서 역사를 재해석하고, 미래를 전망하고 있습니다.

백낙청 또한

해체기에 접어든 세계체제의 한반도 방식인 ‘분단체제’를 발견하고, 그 극복의 세계사적 의미를 도출한 바 있습니다.

그는

대한민국의 현실극복방안으로 ‘변혁적 중도주의’를 주장한 바

그것의 기본세력이 합리적 보수와 성찰적 진보 아닙니까

이점에서

이번 만남은 남남갈등의 중심세력간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글쎄 남북간의 정상들의 만남보다도

김일성과 문익환 목사님의 비공식 만남에 비견된다면 저만의 주관적 상상입니까

아무튼

이 만남에서 점진적 통일방안인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도출하지요

 

그렇습니다.

이 대담을 읽은 것이 토요일이니깐 그 여진이 아직도 남은 상태입니다.

그러다

손에 든 것이 장편소설‘담배 한 개비의 시간’이었습니다.

출구를 잃어버린 20대의 삶과, 세계, 그 일상과 문화적 감수성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소설이었지요

그 심사평의 하나는,

“비관적 현실을 담담하게 수락하면서도 타인에 대한 관심과 유대를 포기하지 않는, 성숙하고도 건강한 감수성의 세계”라는 것이며,

그러므로

불안이 사랑을 잠식하고 있는 동안에도,

젊음은 어떤 방식으로든 성숙해가고

무수히 많은 사건들 속에서

우리는 늘 지금 이곳에 놓인 스스로를 통절하게 깨달아갈 뿐입니다.

 

 
 
 

나의 이야기

수궁원 2010. 3. 23. 14:39

리영희프리즘인가요

이 책을 들면서 우선 생각나는 것이 이박사입니다.

절필선언이후 노구를 이끌고 이라크파병반대에 나서는 모습을 보면서

실패한 사회주의자가 아니라 사회민주주의자라고 주장하여

과연 우리사회의 이념적 스펙트럼에서

그런 식의 규정이 바람직한 것인가 하는 상식적인 물음을 되묻게 한 것이 그 이박사였지요

해방정국에서 좌우논쟁이 어떤 함의가 있었는가 하는 문제에서

정상사회라고 할 수 있는 유럽사회의 논쟁이

이 질식할 것 같은 이념적 불구사회에서

오로지 진실만을 추구했던 그 사람 리영희를 바라볼 수 있겠는가 하는 역사의식 때문이었습니다.

 

국제정세에 대해 알고싶으면 리영희를 찾았던 김지하부터

시인 고은은

이 평안도 사내를 두고 표정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사실 평생을 두고 독불장군으로, 외로운 늑대처럼 소리 지르는 처지였어요.

북한에서 내려온 소학교 친구도 없고, 동향 사람도 없고, 중학교라는 것이 일제

말기 친구들과는 내가 가는 길이 전적으로 다르니까 어떤 교류가 없었어요. 해양

대학의 동창들은 다 바다로 나가 있는데 나는 육지에서 6.26전쟁 7년 동안 향로

봉 등에 있었으니까, 아니면 형무소 감방에 있거나 지하실 감방에 있거나. 그런

의미에서 난 참 외롭게 살아왔어요.”

 

이 글을 읽고, 뭉클해진 나는

길을 걸으며

‘창작과 비평’을 사고 들어온 날이기도 합니다.

이효석 문학상을 받은

젊은 작가 편혜영의 장편소설‘재와 빨강’에 대한 서평을

늦은 저녁에 읽으면서,

한 고독한 남자의 초상이 참으로 묘하게 겹쳐지는 것입니다.

서평자는,

카프카의 K만큼이나 고독한 주인공을 얻게 된 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을 인용합니다.

 

“닿을 수 없는 먼 과거”를 등지고, “짐작할 수 없는 정도로 넓고 방대”한 현재속에서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인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남자가 이제 이국의 공중전화부스

안에 있다.

 

물론 ‘창비’를 손에 들고서

가장 눈에 간 것은,

아이 하나 둔

그리고 재개발에 밀려 어느 농촌 폐가에 둥지를 틀면서

결국

남편은 공사장 인부로 떠나고 자신에게는 업무방해죄로 소환장이 날아온 부분을 다룬

공선옥의 장편소설도 있었지만

백낙청의 글이었습니다.

우리 사회는 분단체제로서,

이 체제가 해체기로 접어들 정도로 우리 사회는 선진화되었지만

그것이 온전한 민주화를 이룰 정도로 ‘정상사회’는 아니라는 점입니다.

또한 비핵화 문제도

단순히 평화협정을 이루고, 북미수교와 대규모 경제원조가 이루어진다고 해서 해결되는 사회도 아니며

그 개혁 개방도 쉽게 이루어지기 어려운 사회이기에

유일한 해법은

‘남북연합’이라는 것입니다.

이점에서

2007년 대선은 진정한 보수파의 집권도 중도실용의 승리도 아니며,

본질상 그것은 1987년의 군사독재 종식과 2000년의 포용정책 출범 이래 분단체제 속의

특권적 위치가 크게 위협받고 다분히 위축되었던 수구세력이 반격의 총공세를 벌인 마당

입니다.

따라서

남북연합 건설작업에 역행하는 정권을 견제하며

당장에 2010년부터라도 국정운영체제에 본질적 개선을 이루어 현정권으로 하여금 진전된 프로그램을 개발하도록 견인하는 것이 일차적 과제이며,

민주화의 또 한차례 전진을 통해 국내에서는 말하자면 곧 3차 정권교체의 관문을 통과함을써 이제 생명력이 소진되어 말기적 혼란에 빠진 ‘87년체제’를 드디어 넘어서는 일이 다음 목표인 것입니다.

 

무언가

흔들린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최군

소군

주담

‘지금 여기서’의 행복만큼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그렇소

이 시대의 영민한 작가 김연수는,

“따라서

고통은,

그것을 이해받거나, 소멸시키거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고,

껴안고,

데리고 다녀야 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하고 있지 않는가

아니

리영희는,

편혜영은,

박완서는 “그래, 그때 내가 새대가리였구나”하는 후회의 말을 하면서,

 

   “주인 남자도 잠자코 귀를 기울였다. 다 듣고는 분수에 넘치는 사치

를 한 것 같다고 고마워했다. 나에겐 그 소리가 박수보다 더 적절한 찬

사로 들렸다. 우리에게 시가 사치라면 우리가 누린 물질의 사치는 시

가 아니었을까. 그 암울하고 극빈하던 흉흉한 전시를 견디게 한 것은

내핍도 원한도 이념도 아니고 사치였다. 시였다.”

 

라고 고백하지 않는가!

 
 
 

나의 이야기

수궁원 2010. 3. 23. 14:38

마침내 호랑이의 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신영복은,

‘점’에 대해 자신의 한계를 아는 겸손함에 그 의미가 있다고 했나요

그런 의미에서

삼재의 마지막 해에 해당하는 작년은 여느 해와 다를 뿐 아니라

파란과 곡절, 만장으로 점철된 내 생애에 있어서도 참으로 고통스런 한해로 기억될 것입니다.

그런 새해가

세종시의 난타전으로 시작되었으니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당혹감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나는 어떻게 될까

내년이면 내후년 십년 후면…살아 있을까

결혼과 아이라는 참호 속에 기쁘게 처박혔을까

우주의 그 단순한 요구를 따르기엔

그것이 진정 희망이 되기엔

미래가 너무 암담하다 빙벽이 의식은 깨지지 않고

휴식도 혁명도 없이 나날의 영구차에 실려

나의 나, 나의 당신은 붕괴되고 있다”

 

이 세종시의 역학을 보면서

문득...

김용철이 떠오르는 것은,

그 의도와 달리

삼성의 경영승계와 불법자금이 대선정국에서 우리 사회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했으나 결국 합법화 되었다는 그 명백한 사실 때문입니다.

이런 걸 두고 역사의 간지 또는 아이러니라 할까요

누구나 앉아서 고사될 수는 없다는 점에서 박근혜의 저항은 분명히 유념했으리라 보지만

그 핵심세력의 내심에는 시간이 갈수록 ‘초조함’을 감지케 하고 있습니다.

역사를 긴 호흡으로 보자면

백낙청은,

5.18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5·18은 4·19하고도 또 달리 처절하게 진압되었다. 하지만 87년 6월 민주화승리의 원동력으로 남았을 뿐 아니라, 신군부의 권력탈취가 과연 민주주의의 기반이 될 산업화의 부족 때문이었나를 묻게 만든다. 분단체제 속의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있던 반민주세력이 자기보존을 위해 선제공격으로 나온 면을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이점에서

세종시 전략은 그들의 의도에서 충분히 활용되었으며

그 시기가 매우 짧은 것이 흠이긴 해도

따라서

박근혜에게 너무 힘을 실어준 점이 있다하더라도

쉽게 ‘초조함’을 드러내는 것을 보면,

우리가 이정권에 대해 아무튼 압도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역대 어느 정권과 비교하더라도

이정권은 반민주세력의 일부이고, 아직 정권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며

단지 자신의 단기적 이득에 매우 민감한 정권일 뿐입니다.

 

이번 지방선거는,

이정권의 명운을 가르는 선거라는 점에서 그 세력들은 사활적 이해를 걸고 있는 형국이지만,

따라서 모든 정책이 이 선거에 초점이 맞춰지고

정교한 정치공학이 난무하지만

결국 승부는 수도권에서 나리라 예상됩니다.

때문에

긴 호흡으로 이번 선거를 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지방선거 승리를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느냐에 달렸다. 가령 2006년 지방선거 때 한나라당이 전국을 휩쓸었던 것처럼 되기는 어려울 거라고 본다. 그러나 몇몇 주요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이기고 전체적 의석수가 눈에 띄게 늘어날 수 있다. 이를 통해 국민이 이명박 정권의 일방 독주를 묵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면 승리가 되는 것이다.”

 

오늘,

새해가 시작되면서

나는

또 다시

그 주관성과

무모함이

내 삶의 기초이며,

반성이 반성하지 않는 삶의 태도임을 아프게 확인하는 겁니다.

 

나보다 밥술 적은

소군,

최군,

이박사,

주담,

아니

송군

머리가 있으면 기억하시라!

 

              “이렇게 살 수 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살은 온다”

 

는 것을... 헐...헐... 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