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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궁원 2008. 8. 5. 22:35

2000년대 들어 대전환기를 통과하고 있는 중국의 정치․경제․사회를 세계체계론의 관점에서 치밀하게 논구한 역저. 주목받는 현대 중국사회 연구자이자 브로델, 월러스틴, 아리기 등 세계체계론의 성과를 비판적으로 소개해온 백승욱 교수(중앙대 사회학과)가 최근의 연구성과를 담았다. 사회주의․노동․동아시아를 핵심어로 삼아, 눈부신 경제성장으로 세계화의 선두권에 진입한 동시에 세계화가 빚어내는 위기의 전형이 되어가는 중국 사회변동의 심층을 탐사하고 전지구적 변화의 진폭을 측정한다.

세계를 향한 ‘시야’로서의 중국

중국의 20세기는 제국주의 위기와 세계대전, 사회주의 출현과 냉전, 개혁개방과 세계화로 삼분되며, 각각의 시기는 당시의 전지구적 변동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중국의 변화양상을 온전히 파악하려면 세 시기에 나타난 세계의 변화상 속에서 구조적 연관을 읽어내야 하며, 역으로 지난 백년간의 세계 변화에 대한 설명은 중국이 지나온 길을 되짚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특히 사회주의 건설기의 유산은 오늘날 중국의 사회현실을 비판하는 이들에게 저항의 논리를 제공하면서도, 동아시아와 세계경제에 순조롭게 편입해 급속성장을 추진해가는 데 하부구조로서 작동한다. 저자는 이러한 사회주의 경험을 가리켜 오늘날 중국이 끊임없이 넘어서려 하나 넘어설 수 없는 ‘유령과 같은 실체/허상’이라고 표현한다. 이 유령은 늘 노동이라는 쟁점을 불러낸다. 문화혁명 이후 노동관리 기제인 ‘단위체제’의 등장부터 최근 노동계약법 도입을 통한 신자유주의적 경로 탐색에 대한 논쟁까지 사회변화의 방향을 두고 맞붙는 충돌에는 사회주의의 본질과 노동의 의미에 대한 물음이 빠지지 않는다. 그리고 사회변화의 방향에는 동아시아라는 지역구도가 개입한다. 중국의 사회변화는 냉전기 미국 헤게모니의 영향 아래 동아시아 발전국가의 등장과 변천, 일본 중심의 국제적 분업구조의 형성과 확장, 탈냉전기 동아시아 국가들의 변모, 화교자본의 변신과 중국의 경제성장과 맞물려 있다.

노동의 위기, 사회불평등의 심화

중국의 고속성장 이면에는 극심한 사회양극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중이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비교 가능한 자료가 있는 나라 중 최대”이다. 떵 샤오핑의 ‘선부론(先富論)’의 결과 나타난 일시적 현상이라는 진단도 있지만 2000년대 들어 정치지도층조차 ‘균부론(均富論)’과 ‘조화사회(和諧社會)’라는 구호를 내걸듯 그 정도가 심각하다. 저자는 중국의 사회불평등을 도농간, 지역간, 계층간 격차로 구분해 분석하는데, 특히 1~2장에서 노동자계급 내의 분화에 따른 계급격차 문제와 신자유주의적 노동계약법 도입에 따른 중국 노동자의 위기에 집중한다. 중국 사회주의의 특징인 국유기업과 집체기업이 구조조정을 겪으면서 실업과 불안정고용이 중요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면직’(고용은 유지하되 대기발령 상태로 두는 것)이라는 제도를 운영하며 공식 실업률을 묶어두고 면직자들의 생활보조를 책임지지만 이것마저 최근 축소되는 추세라 고용 불안정성은 계속 높아지고 노동쟁의가 증가하고 있다. 기업의 경영관리자를 비롯한 도시 부유층의 수입과 권력이 비약적으로 증가하면서 일반 노동자층과의 괴리도 커지고 있다.

사회주의 시장경제 실험과 동아시아모델의 변천

중국의 개혁개방은 농촌에서 시작해 도시의 공장으로 퍼져갔다. 1980년대에 본격화된 국가와 기업의 새로운 관계 설정, 기업내 경영관리자의 위임 강화는 ‘현대기업제도’로 정착돼 90년대의 기본노선이 되었다.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모순형용은 여기서 나왔다. 저자는 중국의 이러한 발전노선을 ‘동아시아’라는 맥락에서 볼 것을 주문한다. 같은 시기 동아시아 의 여러 국가들은 ‘탈발전국가적’ 구조조정으로 나아가는 반면, 중국은 오히려 ‘발전국가적’ 모델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발전국가란 국가가 금융부문을 통제하고 수출지향 산업화를 통해 고속성장을 추구하는 형태이다. 일본․한국․대만으로 대표되는 이 모델은 냉전기 미국이 만들어낸 ‘쇼윈도우’이지만 탈냉전기에 접어들어 과거의 동아시아모델을 유지하기 어렵게 되자 ‘워싱턴 컨쎈서스’의 논리가 작동하는 전지구적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개혁개방 당시 외채가 거의 없었고, 해외자본 도입에서도 차관이 아닌 직접투자를 선호하고, 동아시아 국제적 하청체제의 하위파트너로 편입하면서 발전국가적 모델을 지향하고 있다. 저자는 3~6장에 걸쳐 1990년대 중반 본격적인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으로 세계자본주의에 통합되는 과정을 자세히 풀어내며, 특히 미국 금융위기의 안전판으로 성급히 거론되는 중국의 금융화의 현황을 분석한다. 중국의 금융개방이 가속화되고 외환보유고가 급증하고 있지만 미국이 주도하는 전지구적 금융화의 파생효과로 진행되는 면이 크다. 또한 무역흑자와 외환보유고만으로 금융위기를 막기는 역부족이며 오히려 미국발 금융위기를 아시아로 전달하는 통로가 될 수도 있다.

중국식 제3의 길은 가능한가

중국은 소유제(공유제 우위)와 정치권력(인민 민주독재) 면에서 여전히 사회주의국가임을 표방하고 있지만 저자는 두 가지 모두 법규정에 불과할 뿐 실상은 급격한 ‘궤도이탈’ 중이라고 진단한다. 7․8장에서는 최근까지 중국 내에서 격렬하게 벌어진 지식인들의 사상적 논투(신자유주의/근대성/민주주의 논쟁)를 통해 이념과 체제의 변화 방향을 가늠하며,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소용돌이에 함께 놓인 중국과 한국의 역사적 경험을 공동으로 전유하고 그 한계를 넘어서려는 모색을 담았다. 중국 사회주의의 변화는 공유제 원칙의 후퇴, 국유기업의 비국유화 구조조정, 사영기업가의 공산당 입당 허용 등 프롤레타리아 정당에서 코포라티즘적 통치정당으로 전환하려는 시도이다. 이를 통해 시장 지향의 국가관료와 국유기업의 상층 관리자, 외국자본을 결합해 ‘국가자본주의’(또는 관료자본주의)라 부를 수 있는 발전주의 노선을 추진하려는 것이다. 저자는 중국 사회주의 역사가 민족주의적 경향과 공산주의적 경향의 모순적 결합에서 출발했으며, 문화혁명을 계기로 민족주의적 경향이 우위에 섰지만 1970년대 개혁개방으로 다시 반대쪽으로 휘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본다. 이런 상황에서 비판적 지식인 집단을 중심으로 현시대 자본주의의 파괴력과 중국 사회주의 속에 내장된 발전주의 지향을 비판하며 마오 쩌뚱의 ‘유령’이 호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유령이 지식인들의 것과 노동자 대중의 것이 아직 괴리되어 있지만 점차 그 목소리가 닮아갈 것이라고 예상한다.

세계화의 경계란 말이 적절한 시점이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