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수궁원 2010. 1. 10. 14:45

지금 나는,

적막강산에 휩쌓인 사무실에 앉아 있습니다.

막내 리현이로 인해 난장판이 되어버린 집으로 향할 것인가

아니면

궁상떨며 사무실에서 마음을 가다듬을 것인가 하는

중대 기로에서

결국

사무실로 향한 것입니다.

오늘은

무슨 거창한 종무식은 아니었지만

직원들은 아침부터 사무실을 청소하고, 나는 켜켜이 쌓인 책상 먼지를 털고

조촐한 점심식사를 하고 하루의 업무를 마감했습니다.

사소한 행복이라 할까요

오래전에 직원이 선물한 만년필이 늘 말썽이었는데

그게 깨끗이 정리되었고,

오후에는

목도리와

고급 볼펜과 샤프를 세트로 마련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런 식이라도

이 추운 한해의 끄트머리를

좀 우아하게 보내고 싶었던 거지요

 

어제지요

그 법원감정서 때문에 늦은 새벽까지 잠 못이르다가

깨워보니 11시였지요

참 난감해 하면서 법원으로 향한 날입니다.

감정서를 수령하고,

정식재판 변론준비를 위해 수사기록을 열람하여 복사한 뒤

사무실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3시가 약간 넘은 시간이었습니다.

그 후 시청 직원들이 방문하고,

한차례 팀장과 격렬한 설전이 있었지요

우선

저자신은 그들이 들고 올 문제를 이미 충분히 예상했었고,

그들은 법안자체를 그동안 정확히 이해하지 못해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선제공격으로 기선을 제압하고

그 후의 페이스는 상상에 맡깁니다.

다만

형사 수사에서 수사관이 입증책임이 있듯

그들은

스스로 법적 논리를 갖고 입증해야 할 것입니다.

아무튼

이제는 그동안의 학습경험을 통해 절대로 끌려가는 일은 하지 않을 작정입니다.

 

그런데 겨울밤은 왜 이다지도 긴지요

이제는

저물어가는 길목에서

꺼억 꺼억 목매이지 않고는 저 겨울밤을 견딜 수가 없습니다.

자꾸만 왜소해 보이는 빌라 생활도 벌써 10개월에 접어들었습니다.

새롭게 시작된 임시거처였지만,

아이들도 만족했고

그런대로 자신을 갈무리하기에는 안성맞춤이라 생각했지요

그러다

5월부터 거실에서 생활하기 시작하여

그 뜨거운 여름을 용케 견디어왔지만

결국

요사이는 집사람과 막내 리현이와 함께 안방을 쓰고 있습니다.

어제지요

스산한 눈의 잔해가 곳곳에 남은 월요일날 밤은,

그러므로

쓸쓸했습니다.

이박사가 문자메시지로 ‘우울한 겨울’이라 했던가요

아니면

울산으로 내려간 영근의 생활을 안스러운 목소리로 전한 주담 때문인지요

해서

소설가 김재영에 집중한 날입니다.

그는 66년생의 성대출신입니다.

그 성대에 꽂혀,

부천시절 손금을 봐준 그 성대 여학생과는 얼마 전 통화를 한바있지요

그러고 보면

대학시절 술만 먹으면 찾았던 소녀

수녀가 되겠다는 그 소녀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영등포 공단에서 여공노릇도 했다는 한 여성은 드라마 작가가 되었고,

첫사랑의 쓰디 쓴 추억을 남긴 간호사 소녀는

성큼 자라 아이들의 엄마가 되었겠지요

그렇습니다.

순임이는 군산으로 내려 갔고,

한 남자의 남편이 되었고,

지금은 병상에 누워 그 때 그 사람을 찾으며 죽어 갔지요

 

이 소설가 김재영은,

물론 처음 접하는 작가지만

그 얼굴만큼 상큼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그도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일 터이고,

무엇보다도

그 이념의 시대 격동의 세월을 함께 겪으며 살아 왔으리라 짐작됩니다.

그가 그리는 소설은,

‘꽃가마’에서

‘폭식’에 이르기까지

한 살아있는 인간들이

얼마나

절망하며

좌절된 삶을 살고 있는지

매일 매일 스스로 허물어지는지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김인숙의 ‘안녕, 엘리나’도 그렇고,

이 긴 겨울밤을

견디는 힘인 것입니다.

 

얼마전 김병익은,

그의 비평집‘기억의 타작’에서

선생과 황태자로 유명한 작가 송영을 두고,

아이러니한 소외의 증상은

지금 변두리 아파트에서 그 증상을 살고 있고,

원룸의 독신자 남녀들을 통해 그 고독한 삶의 형태를 보며

그 비정함을 안쓰럽게 그러안기도 하며, 염산으로 그 증상을

찾아 나서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20대의 곤혹스런 시절을 보내며 몸으로 겪는 존재론적 불안감이

60대에 이른 지금에도 여전히, 그 얼굴을 달리하면서

끈질기게 원초적인 인간 상황으로 고독한 자신을 싸안고 있다는 거지요

하여,

한해가 저뭅니다.

아!

집에서 밥 먹으라는 전화가 왔습니다.

그리하여

새해에는 큰 희망을 창조적 실천으로 이루어내기를 기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