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수궁원 2010. 3. 23. 14:34

어제는,

EBS 한국기행 ‘거제도’편을 보면서

시인 김수영이 머물렀던 그 포로수용소도 떠올렸지만

만삭의 몸으로 한 달만 폭격을 피하자고 미군정을 타고 원산에서 거제도로 향한 부모님의 파란만장한 삶이 새삼 떠오른 날이기도 합니다.

몰락한 양반가와 실패한 상인가의 만남이 우리 부모님이셨습니다.

해서

아버님에게는 그 유서 깊은 족보가 목마르셨고,

어머니에게는 근대화 교육으로 일본유학까지 가신 아버지의 ‘학벌’이 부러우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해방 이후 조선인민공화국의 창설과정을 온몸으로 확인하신 분들인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어머니는 때때로 아버지의 창씨개명에 대해 경멸하셨지만,

이미 몰락한 양반가로 독립운동에 참여하셨다 하더라도 이념적으로 문제가 있었을 터이고,

가산은 탕진했었을 것이니 급진적 토지개혁의 여파는 없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다만

해방으로 자신의 이름을 얻었고

자신의 토지를 가졌고

직책을 가지면서 그 돈 때문에 여동생을 팔고, 굶주림에 허덕였던 프롤레타리아는 아니였기 때문에 그 해방의 의미가 남다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거제도는 통영으로 연결되고,

그 통영은 윤이상이 있기도 하지만 진주여고를 나온 박경리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그녀는,

한국전쟁으로 젊은 남편을 잃고

아들을 잃고

어린 딸과 노모와 함께 생존의 벼랑으로 내몰려야 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문학을 선택한 그녀를 두고

김윤식은,

‘죽음의 집의 기록’에서 보듯 극한상황 속에서 나타나는 인간성의 악마적 측면까지 추구했으며 그 결과는 세계문학사에서 미증유의 영역을 일구어냈다고 알려진 작가 도스토예프스키를 떠올리며 악마적 글쓰기라 했습니다.

 

정말 이런 걸 두고 우연이라 할까요

그 ‘한국기행’을 끝내고 집어든 것이 김윤식의 ‘박경리와 토지’였으니 말입니다.

박완서는

일회적이긴 하지만 그 전쟁으로 영민한 오빠를 잃었고,

중도에 학업을 포기해야 했으며

그 남자와의 ‘시’대화로 진창같은 삶에서 위로받고

화가 박수근을 미군부대에서 만나고

마침내

‘결혼’을 선택하여 그 곳을 빠져나오지요

자신의 절박한 삶의 처지를 문학화한 작가 박경리의 초기작은

그러므로

‘불신시대’

‘암흑시대’인 것입니다.

 

문학평론가 이동하입니까

그는

소설이 정상적 궤도이탈에서 시작되듯

예민한 독자는 그 지점에서 소설에 집작한다고 했습니다.

 

어제는,

물론

김용철의 ‘삼성을 생각한다’를 마무리한 날입니다.

그는,

삼성의 문제가

결국 이재용체제로의 경영권 승계과정이 핵심적인 문제로 정리하였습니다.

거대한 비자금 조성도,

불법적 로비도

이학수 김인주로 대변되는 구조본의 범죄행각도

따지고 보면

이 문제로 귀착되는 것입니다.

 

월요일 이 아침,

이런 글쓰기를 재촉한 것은 아직도 쟁쟁한 김윤식의 글입니다.

안개 낀 장충단 공원에서

갈 곳 잃어 서성이는 사람에게 주는 충격입니다.

 

“‘토지’에서 상대적으로 ‘역사’를 압도하고 있는 ‘자연’이란 무엇인가. ‘토지’ 전체를 통해 깊숙이 울리고 있는 ‘뻐꾸기 소리’와 ‘능소화’의 현란한 빛깔이 그 정답이다. 최서희나 봉순이 또는 원한에 사무친 인물들이 절체절명의 고비에 놓일 때마다 정체 모를 지리산 뻐꾸기 소리는 영혼을 흔들고 있었다. 절망에 부딪칠 적마다 최참판댁 별당 앞에 핀 능소화의 꿈같은 아름다움이 혼백을 함께 일깨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