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의 녹색평론

수궁원 2008. 9. 9. 13:50

지난 8월 3일 모스크바 근교에서 90세를 일기로 타계한 작가 솔제니친은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정신의 하나였다. 한때 한국의 독자들 사이에서도 그는 상당한 인기가 있어서 적지 않은 작품이 번역되어 읽혔다. 많은 사람들에게 솔제니친은 전체주의 체제하에서 온갖 시련을 겪으면서도 그 체제의 실상을 용기있게 폭로하고, 꺾이지 않는 인간정신을 증언하기 위해서 비타협적으로 싸운 불굴의 이름으로 기억되어왔다.

  그러나, 말할 것도 없이, 솔제니친은 단순한 반공작가가 아니었다. 1974년《수용소 군도》가 국외에서 처음 발간된 직후, 소련당국에 의해서 강제추방된 뒤 미국에서 20년에 걸친 망명생활을 하는 동안 그가 일관되게 보여준 반서구적(反西歐的) 언동은 물론이고, 실제 작품들을 읽어보면 그 점이 분명했다. 예를 들어, 비교적 초기에 씌어진 단편소설〈마트료나의 집〉이 특히 그렇다.

  혁명 후 러시아 오지(奧地) 풀뿌리 농민들의 삶에 관한 이 뛰어나게 감동적인 이야기는 솔제니친이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를 거쳐 전승되어온 러시아의 심오한 정신적, 사상적 맥을 정통적으로 계승하고 있는 작가임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스탈린이 강제적으로 추진한 집단농장화로 인해 러시아의 옛 농민공동체가 어떻게 철저하게 파괴되었는가를 암시하면서, 농민들이 집단농장의 일개 타율적인 노동자로 전락하는 과정에서 농민으로서의 심리와 정서는 말할 것도 없고 인간성마저 잃어가는 비참한 상황을 묘사한다. 하지만, 모두가 모두에 대해서 사나운 늑대가 되어가는 이 상황에서도, ‘거룩한 바보’의 전통, 즉 자기주장이 아니라 자기희생을 습관적으로 실천하는 철저히 겸허한 정신이 끝끝내 살아있음을 작가는 발견한다. 솔제니친에 의하면, 아무리 타락한 세상이지만, 아직 세상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고 있는 것은 자기희생의 습관이 몸에 배인 이러한 ‘거룩한 바보’의 존재 때문이다. 작가는 작품 속에서 가난하고 외로운, 늙고 병든 이 ‘바보’에게 ‘마트료나’라는 이름을 부여함으로써, 그녀가 만물을 품안에 기르는 어머니-대지(大地)를 표상하는 존재임을 암시하고 있다. (마트료나는 ‘마티’에서 왔고, 러시아어에서 마티는 어머니라는 뜻이다.)

  사실, 솔제니친의 저작 속에서 러시아 농민이나 농민공동체에 대한 언급이 그렇게 많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때때로 농민에 관한 일을 묘사하거나 언급할 때 그의 어조는 매우 날카롭고 강렬하다. 예를 들어,《수용소 군도》는 혁명의 과정과 혁명 후 소련에서 일어난 수많은 부조리, 잔혹함, 비극적 사건들을 엄청난 치밀성과 정확성을 가지고 기록한 방대한 기록이다. 그렇게 기록된 사건의 하나로, 1932년 모스크바 근교 집단농장에서 다섯명의 농민이 스탈린의 명령으로 처형당한 일이 있었다. 그 이유는 기막힌 것이었다. 그날 집단농장에서 다른 농민들과 함께 풀베기 공동작업을 다 끝낸 뒤에 이들 다섯명이 농장에 남아서 자기들이 개인적으로 키우는 말을 위해서 따로 풀을 베어서 갖고 간 사실이 발각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솔제니친이 이 사건을 기록하면서 드러내는 극도의 분노이다. “만일 스탈린이 이 다섯 농민 이외에 단 한 사람도 죽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만으로 그는 극형에 처해졌어야 마땅하다”고 쓰고 있는 것이다.

  스탈린에 의해 저질러진 반인륜적 범죄가 한둘이 아닌데도, 특히 이 농민들의 죽음에 관련해서 솔제니친이 이토록 강경한 태도를 드러낸 것은 왜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빠트릴 수 없는 것은 아마도 러시아 옛 농민공동체에 대한 그의 본능적인 애정이었을 것이다. 솔제니친은 특히 혁명 전까지 계속되었던 농촌의 협동적 자치조직, 즉 젬스트보(zemstvo)에 관해 관심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서구 지식인들이 흔히 들먹이는 솔제니친의 이른바 ‘슬라브주의’라는 것도 실은 이러한 자치적 협동성의 생활기반 위에 있던 옛 러시아의 농민적 세계를 옹호하고, 가능하다면 부활시키고 싶다는 갈망에 깊이 관계되어 있었던 게 아닐까. 사실, 이와 같은 농민적 세계란 따져보면 인간다운 삶의 토대 중의 토대이다. 개인으로서나 작가로서 솔제니친의 위대성은 그가 평생 유지했던 강인한 정신적 에너지와 무관한 것이 아닐 텐데, 그 에너지는 바로 이 농민적 세계에 대한 억누를 수 없는 향수 혹은 갈망에 의해서 끊임없이 재충전되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집단농장의 풀을 개인적 용도를 위해서 베어갔다고 해서 사형을 당한 농민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소비에트 사회주의 체제의 본질을 짐작할 수 있는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그 체제는 인간사회의 오랜 관습을 지나치게 가볍게 여기고, 심지어 인간성에 반하는 폭력을 무자비하게 휘둘렀던 것이다. 집단농장만 하더라도 그렇다. 기본적으로 집단농장화는 농민의 심리와 정서를 아예 무시하는 폭거였다. 뿐만 아니라, 생산력이라는 견지에서도 소농 중심 경제가 우월하다는 유력한 학문적 증언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견해를 표명한 당대의 저명한 농업경제학자 차야노프 같은 지식인은 철저히 억압되었다. 그리하여 1928년에서 1933년까지 강행된 집단농장화의 직접적인 결과는 사회적 갈등과 비극적인 대기근에 따른 엄청난 인명손상이었고, 궁극적인 결과는 소비에트 사회주의 자체의 붕괴였다.

  물론, 소비에트 사회주의가 실패한 것은 스탈린의 폭압통치에 전적인 책임이 있는 게 아니다. 그 압제 체제의 근간에는 사회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기본적 인식에 있어서의 혼란이 있었던 것이다. 초기 소비에트의 이상이 무엇이었든, 그것은 결국 산업화와 생산력 제고를 위한 효율적인 시스템으로 환원되어버렸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요체가 생산수단의 국유화였다. 그 결과 농촌은 단지 도시와 공장에 식량과 원료를 공급하는 생산기지로 전락하고, 공동체는 파괴되고, 농민들은 자기 땅에서 유리된 채 집단농장의 한갓 노동자로 편입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생산수단을 국유화한다고 해서 생산력 경쟁에서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가 일차적으로 효과적인 산업화 혹은 경제성장의 도구로 인식되는 순간, 국가가 독점적인 자본가가 되고 인민은 전부 프롤레타리아로 전락하고 마는 기형적인 사회주의 체제의 출현은 거의 필연적이라고 할 수 있다.

  돌이켜보면, 현대 사회주의 운동을 사실상 독점적으로 주도해왔던 맑스주의 자체 속에 이미 사회주의의 기형적인 발전을 예고하는 논리가 내포되어 있었다. 우선, 사회주의가 성립하려면 먼저 물질적 생산력을 비약적으로 높여주는 자본주의 문명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맑스 자신의 생각이 그러했다. 한나 아렌트가 지적했듯이 여기에 혁명이 “자유가 아니라 물질적 풍요함”을 겨냥하는 운동으로 왜소화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있었다. 나아가서, 여기에 내포된 역사 발전에 대한 일원론적이며, 단계론적인 관점은 결과적으로 서구 제국주의에 의한 비서구 민중공동체에 대한 공격과 침탈을 정당화하는 매우 위험한 논리로 연결되고 만다.

  1857년과 58년에 걸쳐 일어났던 인도민중의 대대적인 봉기에 대해서 영국 식민당국이 무자비한 탄압으로 맞섰을 때, 맑스는 이렇게 썼다. “우리는 [인도의] 이 목가적인 마을공동체들이 ‘동양적 전제주의’의 견고한 토대가 되어왔음을 잊어서는 안된다…문제는 이러한 아시아의 사회상태에 근원적인 혁명이 일어나지 않고 인류가 그 운명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영국의 죄악이 무엇이건, 영국은 그런 혁명을 위한 역사의 무의식적인 도구였다.” 이렇게 ‘문명화’라는 개념으로 제국주의와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는 맑스의 논리는 “아시아의 ‘근대화’를 위한 일이었기 때문에 일본에는 아무런 전쟁 책임도, 식민지 지배에 대한 책임도 없다”는 오늘날 일본 보수파의 논리나 이른바 ‘식민지근대화’를 미화하는 한국의 뉴라이트 그룹의 논리와 정확히 일치한다. 그렇게 해서 오늘날 한일 우익논객들이 뜻밖에도 맑스의 충실한 제자가 되어있는 기이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결국 핵심은 ‘근대’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점이다. 맑스를 단순히 근대주의자라고 하는 것은 어폐가 있는 얘기가 되겠지만, 비록 잠정적으로나마 맑스에게도 ‘자본주의 근대’는 역사 발전의 불가결한 단계로서 긍정하고 옹호해야 할 대상이었다. 그 ‘근대’를 통해서만 사회주의가 성립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근대’를 허용해야 할 잠정적인 기간이 과연 얼마 동안이냐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본주의 근대문명이 과연 어떤 수준까지 발전해야 사회주의 혁명이 가능한가 하는 것이다. 이것을 알려줄 객관적인 척도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맑스는 역사법칙에 의해서 언젠가는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고만 말했다. 이렇게 되면 ‘과학적 사회주의’가 그토록 강조한 ‘과학’과는 상관없이 혁명의 때가 무르익었음을 판단하는 것은 전적으로 주관적인 행위일 수밖에 없다.

  이 맥락에서 또 희극적인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지금 오키나와에서 평화운동에 헌신하고 있는 정치사상가 더글러스 러미스는 어떤 글에서 자신이 아는 일본의 한 젊은 맑스주의 운동가에 관한 일화를 들려주고 있다. 그 젊은이는 일본 자본주의가 혁명이 일어나기에는 아직 미숙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혁명적 수준까지 자본주의가 도달하는 것을 돕기 위해서” 지금까지 하던 운동을 접고, 대기업으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이것은 논리적으로 흠잡을 데 없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이런 터무니없는 희극들이 발생하는 것은 서구 자본주의적 산업화, 경제성장에 의해서만 문명생활도 가능하고, 더 높은 단계로의 인간해방이 가능하다고 믿어온 뿌리깊은 ‘근대적 미신’ 때문이다. 실제로 인간생존의 궁극적 테두리인 우주와 자연은 순환의 법칙에 의해서 돌아갈 뿐인데도, 서구 근대문명은 끊임없이 자기중심적인 욕망을 내세워 직선적인 진보를 끝없이 추구·확대해왔고, 그 과정에서 생태적, 사회적, 인간적 한계는 계속 무시되어왔다. 근대문명이란 간단히 말해서 재생 순환적인 태양 에너지 체계의 근본적인 제약을 뛰어넘어 장구한 세월 동안 땅 속 깊숙이 묻혀있던 석탄, 석유, 우라늄, 기타 지하자원을 파 올려서 마구잡이로 사용하자는 지극히 근시안적인 발상에 근거하고 있는 문명인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근대문명이 영속할 수 없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옛날 도쿠가와 막부(幕府) 말기 개국(開國) 초에 일본에 와 있던 영국공사가 당시 일본의 석탄 생산이 비근대적이어서 일본에 기항하는 영국 기선(汽船)들에 원활한 연료공급이 되지 않고 있는 것을 답답하게 생각해서, 막부의 관리에게 근대적인 석탄채굴 기술을 제공하겠다고 제의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막부의 담당관리는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즉, “일본의 석탄은 우리 1대에만 쓰라고 있는 게 아닙니다.” 이 말은 전형적인 ‘비근대인’의 세계관을 명료하게 드러내고 있다.

  지금 우리가 직면한 생태적 위기는 단순히 자원과 에너지를 낭비적으로 소비한 결과라고 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세계관의 문제, 세계인식의 문제이다. 무엇이 정말 좋은 삶이고, 인간다운 삶인가. 혹은 어떤 사회가 진실로 선진사회인가 하는 것에 대한 기준이 오로지 서구 근대적 발전사관에 의거해 있을 때, 위기상황을 근본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사실상 없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맑스주의를 포함한 사회주의 운동세력 대부분이 지금까지 파행을 거듭해온 것도 결국 이러한 발전사관의 덫에 걸려온 탓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글로벌 자본주의의 지배에 대한 대안이 없다는 통설에 대체로 굴복한 채 나날을 보내고 있다. “대안이 없다”는 구호 밑에 강화되어온 것은 히틀러와 스탈린의 것보다 어쩌면 더 지독한 전체주의 체제라고 할 수 있다. 감세, 노동유연화, 규제철폐, 민영화, 자유무역 등등 그럴싸한 언어유희 밑에서 실제로 발생하는 것은 갈수록 벌어지는 사회적 격차, 부와 권력의 극심한 편중, 토지와 물을 포함한 공공재의 가속적인 상품화, 국가기구의 사유화, 그리고 걷잡을 수 없이 심화되는 환경파괴이다. 지리학자 데이비드 하비가 ‘강탈에 의한 자본축적’이라고 부를 만큼 거의 노골적인 형태로 진행되는 이 수탈구조를 우리는 과연 언제까지 허용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정말 이 시점에 ‘대안’이 없다는 게 진실일까.

  그러나, 깊이 생각해볼 때, “대안이 없다”는 생각에 굴복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물질적 풍요와 계속적인 경제성장이 인간다운 삶의 필수적인 전제조건이라는 고식적인 관점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만일 우리가 용기있게 이 상투적인 관점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사실 ‘대안’은 얼마든지 있다고 할 수 있다. 인류사회는 장구한 세월 동안 공동체의 호혜적 관계망을 토대로 다양한 상호부조의 경제를 경험해왔고, 그것은 아직도 드러나거나 드러나지 않은 형태로 수많은 사람들의 생존, 생활을 떠받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산업화된 세계에서 우리들은 현금이 없으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상호부조의 경제가 붕괴된 상황에서 이 두려움은 사실 당연한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필요한 것은 이 상호부조의 경제를 시급히 복구하려는 노력이지, 상황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온 글로벌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계속적인 굴종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해서는 우리에게 아무런 활로가 열리지 않을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사람들은 ‘상호부조의 경제’라는 개념에서 대뜸 ‘가난’을 연상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상호부조의 경제란 기본적으로 자원과 에너지를 낭비적으로 사용할 것을 강요하는 성장경제 시스템의 바깥에 있는 경제이다. 따라서 이른바 생활수준의 저하는 어느 정도 감수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하여 ‘가난’은 회피할 게 아니라, 우리가 적극적으로 껴안아야 할 미덕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아나키스트 철학자 프루동에 의하면, 정상적인 인간생활은 원래 가난한 생활이었다. 중요한 것은 ‘가난’을 견딜 만하게 하고, 나아가서는 ‘가난’을 삶의 축복이 되게 하는 사회적 바탕, 즉 공생공락의 네트워크를 확보하는 일이다.

  구스타프 란다우어는 유태계 독일인으로 20세기 초 혁명과 반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치열한 삶을 살았던 뛰어난 문예비평가, 사상가, 평화운동가였다. 그는 자신이 신봉하는 ‘사회주의’의 이상을 위해서 헌신적인 생애를 살다가, 1차대전 직후 짧은 순간 존립했던 바이에른 소비에트공화국 혁명정부의 문화담당 각료로 활동하던 중 1919년 49세의 나이로 반동세력에 의해 살해되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란다우어는 ‘사회주의’를 자본주의의 모순에 의해서 언젠가 필연적으로 도래할 미래로 생각하지도 않았고, ‘진보’를 믿지도 않았으며, 생산수단의 국유화를 찬성하지도 않았다. 그가 생각한 ‘사회주의’는 철저히 자발적인 상호부조와 협동적 공동체들의 연합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사회주의의 기초는 생산력의 발전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인간의 사회적 관계였다. 그는 자본주의 국가가 혁명에 의해서 전복될 수 있으리라고 믿지 않았고, 새로운 사회공동체가 국가권력의 장악을 통해서 실현될 수 있을 것으로 믿지 않았다. 그에게 국가는 “하나의 조건, 어떤 종류의 인간관계이자 행동양태”를 의미하였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과는 “다른 종류의 인간관계를 형성함으로써, 즉 우리가 서로서로에 대하여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행동함으로써” 지금 당장 국가의 지배를 벗어나거나 심지어 국가를 폐기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신념이었다. 게다가 그는 생애의 후반기로 갈수록 땅과 농촌공동체를 무엇보다 중요시하게 되었다. 그는 토지를 떠난 인민은 자본가에 맞설 수 있는 독립성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산업노동자들이 도시의 공장으로부터 퇴각할 필요가 있음을 역설하였다. 그들이 만일 ‘협동적 사회주의’ 사회의 일원이 되고자 한다면 대도시를 떠나 농촌공동체에서 농업과 소규모 공업의 결합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 란다우어의 생각이었다.

  구스타프 란다우어의 ‘사회주의’ 사상은 주류 사회주의 사상들에 밀려나 오랫동안 잊혀져왔다. 그러나 ‘사회주의’란 무엇보다 새로운 인간관계를 의미한다는 그의 명료한 메시지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지금 우리들에게 요긴한 지침이 된다. ‘경제’라는 덫에 걸려 사고력이 정지되어 있는 오늘의 우리들에게 그의 메시지는 강력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란다우어와 함께 우리는 우리 각자가 새로운 인간관계를 통해서, 이웃들과 더불어 자발적인 협동체를 형성함으로써 ‘지금 여기에서’ 당장에 자유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필요가 있다.

 
 
 

김종철의 녹색평론

수궁원 2008. 9. 1. 18:36

세계의 가장 원시적인 인간들은 소유하고 있는 것이 거의 없지만, 결코 가난하지 않다. 가난은 적은 양의 재화도, 단순한 수단과 목적 사이의 관계도 아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사람 사이의 관계이다. 가난은 문명의 산물이다.

― 마셜 살린즈《석기시대의 경제학》

 

  나는 그다지 여행을 즐기는 체질이 아니다. 이것은 타고난 성격으로 인한 것인지, 혹은 오랫동안 건강문제를 가진 채 살아오면서 굳어진 습관에 기인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하여튼 무슨 나들이를 해야 할 일이 생기면 반갑기보다도 먼저 부담스럽다는 느낌이 앞서는 것을 보면, 이건 확실히 뿌리깊이 체질화된 반응임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든다. 198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내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도 포함해서 많은 한국인들이 차례차례 자동차 운전을 배우고, 자유로이 이곳저곳을 다니며 새롭고 낯선 풍물에 접하는 경험을 통해서, 말하자면 '풍요로운' 삶을 구가하기 시작하던 무렵과 그 이후에도, 내가 자동차를 아예 거들떠보지 않고 살아올 수 있었던 것도, 따져보면, 내게 남달리 예민한 환경의식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자동차를 타고 여기저기를 다녀야 할 필요도, 그런 생활스타일을 즐기고 싶은 심리적인 욕구도 내게는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자동차 운전을 배우러 다니고 어쩌고 한다는 게 나로서는 지극히 성가신 일이었기 때문이다. .

  그러나, 요즘 나는 내가 정말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나 자신의 정신건강을 지키고자 하는 무의식적인 자기보호 본능이 작용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때가 종종 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나도 사회적인 삶이 있기 때문에 때때로 자동차를 타고 낯선 도시나 농촌을 방문해야 할 경우가 있고, 그때마다 반드시 마주치는 파괴와 오염의 풍경 앞에서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상하기 때문이다.

  일단 길을 떠나면, 아무리 단단히 마음을 다잡아도 허사다. 수십년이 넘게 잠시도 쉬지 않고 계속되어온 개발이라는 이름의 이 광란의 잔치 ― 어머니 대지(大地)의 젖가슴을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짓밟고 파헤치는 패륜행위가 걷잡을 수 없이 자행되고 있는 현장은 내가 어디를 향해 가든 한반도 남쪽 구석구석에 널려 있는 것이다.

  둘러보면, 이 땅에는 손상되지 않은 산과 구릉, 오염되지 않은 강과 호수가 이제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기후풍토에 맞지도 않는 골프장이니 스키장이니 하는 것들을 위해서 오로지 돈이 된다는 이유 때문에 아까운 삼림이 없어지고, 산과 계곡이 기형화되고 있는 모습은 아무리 보아도 볼 때마다 사람의 마음을 갈갈이 찢어놓는다. 소중한 농토가 고속철도와 도로와 아파트와 공장부지를 위하여 멋대로 잘려 콘크리트가 무지하게 퍼부어졌거나 퍼부어지고 있는 것도 참을 수 없는 광경이다. 그럴 듯한 이름과 괴상한 몰골로 주변의 경관을 일그러뜨리고 있는 무수한 러브호텔들과 '가든'들 ?? 그런가 하면, 여름날 시골길을 달리는 자동차의 창을 열어놓을 수가 없을 지경으로 풍겨오는 농약냄새, 썰렁한 농촌마을의 분위기, 게다가, 곳곳에서 마주치는 폐교 조처된 시골학교의 황량한 모습들 …

  그 가운데서도 내가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지금 남한 천지에서 도로건설과 도로확장이라는 명분으로 벌어지고 있는 엄청난 토지훼손과 환경파괴 행위이다. 간교하게도, 대대적인 파괴 행위가 벌어지고 있는 공사 현장일수록 "우리는 환경친화적 도로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따위의 터무니없는 슬로건이 유행처럼 팻말에 크게 적혀 있다. '환경'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다니 고마워해야 할 것인가. 주의해서 살펴보면, 지금 진행되고 있는 대부분의 도로공사는 실제로 불필요한 공사일 뿐만 아니라 심히 자원낭비적인 것이라는 것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이미 한반도 남쪽은 자동차로 접근 불가능한 오지(奧地)라고 할 만한 곳은 어디에도 존재할 수 없게 되었을 만큼 도로망은 조밀하게 건설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까운 땅을 대규모로 망가뜨리는 도로공사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공사를 위한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한 현실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서, 자동차 관련산업과 건설관계 이해당사자들의 이익을 위하여 중앙 내지는 지방정부들이 은밀히 협력을 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증거로서밖에 이러한 공사를 합리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하기는 도로공사뿐이겠는가. 예를 들어서, 무수한 생명의 서식지이자 건강한 생태계의 유지에 관건적인 구실을 하는 거대한 갯벌을 가차없이 죽이는 새만금 방조제 공사는 어떤가. 북한산 관통도로 공사는? 무지와 만용에 뿌리를 둔 이러한 극단적인 야만주의는 언제, 어떻게 중지될 수 있을까? 아마도 이 '역동적인' 경제가 이 모양대로 간다면 이러한 기세는 꺾이지 않을 것이 틀림없고, 그 결과 이 산천은 죄다 콘크리트로 뒤덮여 버리고 말 것이다. 그래서, 비통한 심정으로 나는 종종 마음속으로 기도를 한다. 하루빨리 이 경제가 망하게 하소서 …

 

  땅을 망가뜨리고,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우리의 삶의 근본토대를 파괴하는 이 범죄적인 행위가 버젓이 경제의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는 이토록 기막힌 사태는, 말할 것도 없이, 자본과 국가의 책임이지만, 그러나 이것은 오늘날 자본과 국가체제에 반대하고, 심지어 환경보호 운동에 헌신하고 있는 것으로 되어있는 활동가들까지도 포함한 이 나라의 수많은 지식인들의 책임이기도 하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과연 지금 이 나라의 지식인 사회에서 단순한 환경보호 차원을 넘어서, 인간생존의 자연적 토대가 급속히 파괴, 오염되어 가는 사태에 직면하여, 이 문제를 무엇보다도 농경문화의 쇠퇴라는 비극적 재난에 결부하여 이해하려는 지적, 도덕적 노력을 얼마나 볼 수 있는가 하는 의문 때문이다.   

  오늘날 진보와 보수라는 정치적 입장에 관계없이, 거의 모든 지식인들은 근대주의라는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농경의 의미를 단순히 산업의 일부로 파악하는 데 길들여져 있고, 그 결과 언론, 교육, 문화, 과학, 종교, 의학, 예술을 포함한 거의 모든 지적, 도덕적 체계는 사실상 우리의 삶을 근원적으로 파괴하는 데 유효한 수단으로 동원되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 지식사회에 만연한 농업 및 농촌사회에 대한 뿌리깊은 몰이해와 무관심을 설명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지식인들이 환경문제에 대해서, 혹은 근대주의를 넘어서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른바 탈근대론이라는 것도 근본적으로 근대주의라는 토대를 더욱더 강화하는 기능 이외에 좀더 근원적인 도전으로 나아갈 수 있는 내재적인 힘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따지고 보면, 탈근대론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근대주의라는 토양에서 태어나고 그것을 자양분으로 하여 자랄 수밖에 없는 논리라고도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근대주의와 함께 명백히 도시 중심의 감수성과 세계관을 뿌리깊이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 적어도 일부 지식인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탈근대론이, 지금 갈수록 생태적, 사회적 위기가 심화되어 가는 상황에서 오히려 퇴조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보더라도, 그것은 관념적인 지식인의 담론 세계를 넘어서 참으로 현실적인 힘이 되기에는 뿌리가 허약한 논리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환경문제에 대해서 지식인들이 보여주는 관심도 뿌리가 허약하기는 마찬가지다. 가령, 지금 환경운동에 헌신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왜 우리가 땅을 지키고, 농민과 농촌공동체를 되살리는 것이 긴급하고 중대한 문제인지에 대하여 명확한 인식을 보여주는 사람들은 실제로 예외적일 만큼 드물다. 이것은 놀라운 일이지만 사실이다. 예를 들어서, 지난 봄 대구 근교의 어느 대학에서 열린 대규모 환경관계 토론모임에서, 하루종일 수십명이 발표를 하고 토론을 하는 과정에서 오늘날 농민과 농촌이 멸종될 위기에 처한 현실에 대해서 언급하는 지식인이나 환경운동가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그 모임의 결과로 수백쪽이 넘는 두툼한 자료집이 나왔지만, 그 속에서 농촌문제를 심각하게 거론하고 있는 글은 단 한편도 눈에 띄지 않았다.

  이러한 현상은 다른 면에서는 꽤 비판적인 의식의 개진을 보여주곤 하는 이른바 진보적 지식인 그룹에서도 마찬가지다. 몇년 전《창작과 비평》에 기고한 한 사회과학 전공자는 앞으로 농업은 농민이 없는 상황에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었는데, 그는 그것을 바람직한 현상으로 보고 있음이 분명한 어조를 숨기지 않고 있었다. 그러니까, 일찍이 맑스가 농촌 사람들에 언급하여 '촌뜨기들의 어리석음(rural idiocy)'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던 그 맥락에 따라서 농민은 역사적으로 시대착오적인 존재라는 관념이 '진보적' 경향의 지식인들의 마음속에 뿌리깊이 박혀있는지 모른다.

  일반적으로, 농민과 농촌문제 혹은 좀더 근원적으로 인간생존의 토대에 대하여 지식인들의 편견 혹은 무관심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는가를 암시하는 조그마한 에피소드가 있다. 몇해 전 나는 '민족문학작가회의'가 주최한 한 문학 심포지엄에 발제자의 하나로 초대받아 간단한 발표를 하고 토론자들과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때 심포지엄은 '문학과 환경'이라는 큰 주제 밑에서, 여러 사람이 발제와 토론에 참가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그중 한 부분의 발제용으로〈왜 땅을 지켜야 하는가〉라는 제목으로 내가 미리 쓴 간단한 글도 당일 행사장에서 배포된 자료집에 실려 있었다. 그런데, 정작 자료집을 펴보니 그 글의 제목은〈왜 이 땅을 지켜야 하는가〉라고 고쳐져 있었다. 심포지엄을 주관하고 있던 작가회의의 실무진이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고쳤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으나 실제로 두 제목 사이에는 미묘하나마 의미의 차이가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제목이 고쳐진 것이다. 아마도 그때 작가회의 담당자의 감수성으로는 좀더 구체적이고 명확한 정치적 의미를 내포한 듯한 '이 땅'이 아니라 굳이 그냥 '땅'이라고 할 때의 막연하고 싱거운 어감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오늘날 인류사회가 직면한 근본적인 위기가 본질적으로 ― 국방의 개념으로서가 아니라 문명의 개념으로서 ― 땅을 대하는 방식에 직결되어 있는 문제라는 것에 대해서 현재 이 사회의 많은 다른 지식인들과 다름없는 이해력의 결핍을 드러냈다고 말해도 좋을지 모른다.

  이 조그만 에피소드가 흥미로운 것은 그것이 예외적인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런 이야기는 아마 오늘날 비교적 사회의식이 예민하다고 알려진 대부분의 작가와 시인, 문필가에게도 해당될 것이다. 벌써 오래된 일이지만, 한때 문단에서 크게 주목을 받고 있던 '노동자 시인' 박노해의 작품경향에 관련해서 어떤 평론가가 썼던 용어를 나는 아직 기억하고 있다. 그는 그 무렵까지의 박노해의 문학적 성과를 논하는 평문의 한 대목에서 이 시인에게서 보이는 몇가지 약점 내지는 한계를 지적하면서, 그 한계는 부분적으로 '농경적 상상력'에 기인한다고 말했다. 이미 농경시대는 지나갔고, 농경은 이제 기껏해야 주변적 문제에 지나지 않게 된 시대에 농경사회에 뿌리를 둔 상상력은 시대착오적이라는 생각에서 나온 발언이었음은 말할 필요가 없다. 흥미롭게도, 최근에 나는 이와 흡사한 발언에 또다시 마주치는 경험을 하였다. 최근에〈한겨레〉신문의 한 짧은 시사 논평에서 어느 문학평론가는 신동엽의 유명한 시〈껍데기는 가라〉의 일부를 인용하면서 "때 지난 농경적 상상력"에도 불구하고, 그 시가 지금 상황에서 감동을 준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내가 간과할 수 없는 것은 농적(農的) 세계를 본질적으로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보는 관점이 당연한 것으로 얘기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는 신동엽의 시가 '농경적 상상력' 때문이 아니라, '농경적 상상력'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가치가 있다는 논리를 편 것이다.

  농사 또는 농촌적 가치에 대한 이러한 지식인들의 편견은, 말할 것도 없이, 세계적인 현상이다. 모더니즘은 단순한 문학적 경향이나 예술적 유파라기보다 현대세계에서 교육받은 지식인들이라면 반드시 거쳐야 할 기본적 교양인지 모른다. 결국 같은 이야기지만,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관계없이, 그동안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지식인들은 근대적 제도와 관습의 확립을 통해서 비로소 문명화된 삶이 세계의 일부 지역에서나마 가능해졌다는 것을 믿도록 교육받아왔다. 실제로, 근대적 문화와 예술이 성립하고 발전하는 데 필요한 여러 전제조건은 본질적으로 산업사회와 도시의 발달이라는 보다 큰 테두리 속에서 가능해진 것들이기도 했다. 따라서, 근대 자본주의와 산업문명이 진전됨에 따라 가차없이 붕괴, 해체될 수밖에 없었던 농민과 농촌의 의미가 주변적인 것으로 비쳐지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초현대식 교통수단이 발달해 있다 하더라도 인간의 이동수단으로서 가장 초보적이고 가장 근본적인 수단, 즉 자신의 두 다리로 걸어다닌다고 하는 보행의 중요성이 조금도 줄어들 수 없듯이, 아무리 컴퓨터와 생명공학의 시대라 하더라도 인간사회에서 농경의 중요성은 결코 줄어들 수 있는 게 아니다. 농사나 농경은, 구석기 시대의 상황을 제외하고, 인간이 이 지상에서 비폭력적인 평화의 삶을 지속적으로 영위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형태의 삶의 방식으로서 오랜 세월을 통해서 충분히 검증되어온 방식이다. 흔히 근대주의 프로젝트에 마음을 빼앗긴 지식인들은 이러한 기초적인 사실을 망각한 채, 역사를 직선적인 진보의 흐름으로 파악하는 데 순응해왔고, 그 결과 쉽사리 농민과 농사의 세계가 갖는 중심적인 가치에 둔감하거나 때로는 노골적으로 폄하하는 자세를 취하게 되는 것인지 모른다. 아마도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문학비평가 중의 한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F. R. 리비스는 가령 T. S. 엘리어트와 같은 동시대의 뛰어난 모더니스트 시인에게서도 옛 영국의 농민들을 은근히 내려다보는 듯한 어조가 있음을 주목하고, 그러한 태도가 얼마나 근거 없는 편견의 소산인가를 신랄하게 지적한 바 있다. 리비스에 의하면, 엘리어트가 은근한 경멸감을 품고 대하는 그 '촌뜨기들'이야말로 바로 세익스피어의 위대한 문학이 태어날 수 있는 언어적 토양을 근원적으로 일구어온 사람들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아무리 땅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삶에 익숙해져 있다고 하더라도, 모든 진정한 문화와 예술과 철학의 근본 전제는 언제나 농경문화였고, 지금도 그렇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전통사회에서 대부분의 예술가들과 철학자들에게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는, 자명한 사실이었다. 실제로, 역사의 어느 시기에서나 조금이라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가진 문학이나 예술의 창조는 반드시 흙의 문화에 뿌리를 둔 감수성과 세계관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었다. 우리가 조금만 주의해서 보면, 우리가 쓰는 일상어뿐만 아니라 수많은 시적 은유와 상징과 수사들이 거의 대부분 농경사회에서 성장해온 말들이라는 것은 누구든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지금도 여전히 인간다운 삶에 필수적인 것으로서 옹호하거나 옹호하려고 하는 가치들은 본질적으로 거의 예외 없이 농경문화라는 근본 토양에 뿌리박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서, 생명에 대한 본능적인 사랑, 평등한 관계와 민주주의에 대한 강렬한 욕구, 노동의 존엄성과 인권에 대한 의식, 개인적 자율성, 자치와 자립, 비폭력주의, 협동과 연대, 상호부조와 보살핌 등등, 아무리 인간정신이 경멸을 당하는 짐승스러운 상황에서도 우리가 끝끝내 옹호하고자 하는 이러한 윤리적 덕목들은, 따지고 보면, 신석기 시대가 시작된 이후 형성되고 확립되어온 마을문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싹트고 강화되어온 가치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의 문명비평가 루이스 멈포드의 발언은 특히 경청할 만하다. 그는 일찍이 촌락공동체야말로 인류사회에서 가장 영속적인 가치들을 배태한 원천이었음을 되풀이하여 강조하였던 것이다.《기계의 신화》등 방대한 저술을 통해서 인류사에 있어서 기술적 진보가 갖는 의미를, 생태학적 관점에 근거하여, 집요하게, 또 깊고 장기적인 시각에서 성찰하는 데 생애의 대부분을 바쳤던 멈포드가 만년에 이르러, 인간사회가 건전하게 돌아가려면 전체 인구의 적어도 80%가 농경 혹은 농경에 관련된 일에 종사하고 있어야 한다는 흥미로운 견해를 토로한 것도 마을문화의 핵심적인 의의에 대한 그 자신의 이러한 확신 때문이었다.

  한 사회의 장기적인 생존과 번영이라는 문제에 관련하여, 농민 내지 농촌공동체가 갖는 중심적인 중요성에 관한 성찰은 실은, 문명이 시작된 이래, 비록 소수이지만 좀더 근원적이고 철저한 사고의 궤적을 보여주는 사상가들에 의해서 끊임없이 이루어져왔다. 그러한 사정은 지금도 마찬가지여서, 주류 문화의 두터운 장벽 때문에 이들의 발언에 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래도 이러한 예외적인 정신들의 존재로 해서 우리는 오늘의 문명이 어디에서 근본적으로 뒤틀려버렸는가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지금 미국의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에서 그리스 문화를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는 빅터 데이비스 핸슨 교수도 그러한 사람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본래 캘리포니아의 한 골짜기에서 수세대에 걸쳐 건포도 농사를 해온 농가의 태생으로, 그 자신 좀더 젊었을 때는 직접 농사일을 하면서 살았고, 지금도 그 농장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오늘날 대학교수로 대변되는 이른바 현대적인 학자들의 세계가 도덕적, 정신적으로 얼마나 공허하고 불모적(不毛的)인 세계인가를 묘사하는 어떤 글에서, 자신의 한 동료교수가 건포도 나무(raisin plant)라는 게 있는지 진지한 어조로 물어보던 일이 있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이러한 근본적인 무지 혹은 상식의 결핍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뿌리 없는 지식과 추상적인 관념의 세계는 계속하여 번영을 누리고 있는 반면에 농민계층과 농촌사회가 사실상 소멸 직전에 처한 최근의 상황에 대하여 깊이 유감스러워하고 있다.

  그러나, 고전학 교수로서 데이비스 핸슨의 아마도 가장 중요한 업적은 고전 그리스 문화에 대한 그의 독창적인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서구세계에서 늘 모범적인 정치형태로서 기념되어온 희랍의 민주주의와 그 터전인 '폴리스'의 존재는 폴리스의 시민들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고, 그 시민들은 근본적으로 독립적 자영 농민들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에 의하면, 대략 기원전 8세기에서 4세기까지 그리스의 민주주의가 건재했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원천은 주로 이 시기의 희랍의 농민-시민들의 활력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고전 희랍의 문화적 번성기의 철학자, 또는 소포클레스를 위시한 비극작가들에게 있어서 농사 혹은 농민의 존재가 갖는 핵심적인 중요성은 '자명한' 것이었다. 희랍의 민주주의에서 시작된 서구의 핵심적인 정치적 이념, 예를 들어서 개인적 자율성과 평등, 자립과 자치, 사유재산 개념 등은 따져보면 자신의 손으로 땅을 일구면서 자립적인 삶을 영위하고, 그런 삶에 대하여 깊이 자부심을 느끼고 있던 희랍의 농민-시민들의 세계관과 가치들에서 유래된 것이었음을 핸슨 교수는 그의 저서《또다른 희랍인들 ― 가족농과 서구문명의 농경적 뿌리》속에서 풍부한 인용과 자료를 동원하여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그리스의 '폴리스'의 기원과 쇠퇴는 농업에 달려있었다. 그리스 도시-국가 네트워크를 만들어낸 물질적 번영은 소규모 집약농경, 식량을 생산하고 토지를 소유하는 새로운 방식, 그리고 그에 따른 새로운 종류의 인간의 출현에 말미암은 것이었다. 이 새로운 인간에게 농사일은 단순히 생존이나 이익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실용주의와 절제와 균형의 추구가 근원적인 가치로 여겨지는 도덕적 수월성(秀越性)이 단련되는 도가니였다.
 

  하기는, 독립적인 자작농의 존재야말로 진정한 민주주의가 가능하기 위한 불가결한 기초라는 생각은 미국 민주주의의 초석을 닦은 것으로 알려진 제퍼슨에 의해서, 그리고 제퍼슨식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여러 정치 사상가, 지식인들에 의해서 계속적으로 토로되어왔다. 실제로, 미국의 자본주의와 산업화가 엄청난 규모로 발달함에 따라서 사실상 미국사회는 갈수록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와는 거리가 먼 사회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 그 결과로 오늘날 세계평화와 인류의 생태적 미래에 가장 큰 위협적인 세력이 된 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일이지만 ― 이처럼 미국이 그 자신의 원래의 이념을 배반하게 되는 과정은 무엇보다도 자영 농민들의 존재가 미국사회에서 위축, 소멸되어온 과정에 정확히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제퍼슨이 진정한 민주주의의 기초로서 옹호했던 자영 농민들이 사라지고, 그 대신 소수의 자본가, 기술관료 및 전문가들에게 부와 권력이 집중되는 현상이 갈수록 심화됨으로써 미국사회는 형식적인 민주주의적 제도와 절차에도 불구하고 풀뿌리 인민에 의한 통치라는 것은 공허한 수사일 뿐 사실상 특권적 지배세력에 의한 독과점적 통치체제로 굳어져온 것이다.

  자급자족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단순 소박한 순환형 생활방식과 상호부조와 협동을 통한 '공생공락(共生共樂)'의 삶을 실현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사회적으로 건전하고, 생태적으로 지속 가능한 세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생태적 위기에 대하여 골똘히 고민을 해본 사람이라면 거의 예외 없이 공감하는 견해이다. 그러니까, 미국에 있어서 농민계층이 되살아나서 새로이 활력있는 사회세력이 되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미국 민주주의의 장래를 위해서나 인류사회 전체의 운명을 위해서나 관건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농업 및 농민문제는 결코 역사에서 사라져 가는 주변적 계층에 관한 문제도 아니고, 산업문명의 압력 밑에서 소멸될 운명에 처한 사람들에 대한 동정적 관심이라는 수준에서 처리될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지금 인류사회가 전지구 규모로 직면하고 있는 사회적, 생태적 위기에 관련하여 인간과 생태계의 사활이 걸린 중대한 문제이다. 농민이 사라지면 땅을 보호할 사람도 없어지고, 민주주의의 가능성도 축소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반드시 유념해야 할 필요가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의 농지에 광범위하게 적용된 화학 및 기계농법은 그동안 '녹색혁명'이라는 이름 밑에서 기록적인 식량증산에 이바지해온 것으로 평가받고, 많은 농업전문가들에 의해서 지구상의 폭발적인 인구증가에 대비한 가장 효과적인 농법이라고 찬양되어왔다. 그러나, 실제로 세계의 굶주림의 문제는 단순히 수확량의 문제가 아니라 분배의 문제, 즉 사회적 평등과 부의 비집중화를 통해서만 실제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는 것을 보여주는 많은 증거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문제를 제외하더라도, '녹색혁명' 이후 세계적인 다국적기업들의 주도 밑에서 세계 전역에 걸쳐 수십년간 시행되어온 화학비료와 각종 농약 및 농기계들에 의한 ― 거의 전적으로 석유에 의존하는 ― 집약적 산업영농은 지구상의 모든 생명의 근본토대인 토양이 급속하게 고갈, 오염되는 결과를 빚고 말았다는 비극적인 재난이야말로 아마도 가장 심각한 문제일 것이다. 2차 대전 이후 지금까지 미국에서 전체 농경지 토양의 3분의 1이 사라졌다는 통계만 보더라도 현대적 산업영농이라는 방식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 것인가를 명확히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실은, 미국뿐만 아니다. 세계 전역에 걸쳐 지금 농경지는 대규모로 도시화, 산업화를 위해 급속히 전용되고, 곳곳에서 화학물질과 기계의 남용으로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다. 생명체의 생육과 서식을 가능하게 하는 원천인 땅과 흙이 이처럼 급속히 고갈, 축소되고, 또 질적으로 열화(劣化)되고 있는 사태보다도 더 불길한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그러니까, 재생불가능한 석유에 철저히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뿐만 아니라 토양의 상실과 오염이라는 문제까지 고려한다면, 대기업과 농업관련 전문가들의 이해관계에 봉사할 뿐인 산업적 영농은 하루빨리 폐기해야 할 방법이지 식량증산 운운하며 더이상 장려할 방법이 결코 아닌 것이다.

  그러나, 말할 필요가 없는 일이지만, 사태는 심히 비관적이다. 농사에 관련해서도 지금 이 세계에는 허위의 논리가 광범위하게 유포되고 있을 뿐이다. 아직도 농업전문가들 중에는 유기농법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드러내는 사람들이 적지 않고, 그들과 의견을 같이 하는 자본과 국가의 논리는 계속하여 영농규모를 확대하여 농업 생산의 효율화를 보다 철저히 함으로써 농업이 경쟁력 있는 산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농업문제는 간단히 농가소득의 문제로 환원되고, 농가소득의 증대는 농가를 줄이는 방법을 통해서 도달할 수 있다는 '합리적'인 논리가 활개를 치는 것이다. 결국, 농업전문가들이나 정부나 기업의 사고방식 가운데는 독립적인 자영 농민 ― 소농, 가족농 ― 을 보호하고 되살려내야 한다는 생각은 털끝만큼도 들어있지 않음이 확실하다. 그러니까, 그들의 눈에는 기업농을 보다 효과적으로 시행할 수 있는 농지의 대형화와 효율성의 제고가 중요할 뿐이지, 민주주의의 초석이면서 생태적으로 건전한 삶의 토대인 농민과 농촌은 성가신 존재로 여겨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결과 그렇지 않아도 지난 수십년간 급속히 진행된 이농현상 끝에 이제 고령층 농민들로만 겨우 잔존하고 있는 농촌공동체는 자본과 국가와 전문가들의 협동적인 공작에 의해서, 그리고 많은 지식인들과 도시인들의 무관심 속에서, 바야흐로 괴멸 직전에 이르렀다.

  

  아마도 지금은 문명이 시작된 이래 인간으로서 가장 근원적이고 심각한 질문을 해야 할 상황인지도 모른다. 즉, 농민과 마을이 사라진 세상에서 우리에게 계속해서 인간적으로 의미있는 삶이 가능할 것인가. 아마도 당분간은 농민과 마을이 없어도 산업으로서의 농업은 지속될 수 있을지 모른다. 기업농이나 영농회사들에 의해서 보다 본격적으로 '과학적 영농'이 이루어지고, 소수나마 여전히 농촌에 잔류해 있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농기업에 예속된 농업노동자들로서 연명하거나 도시빈민으로 전락하는 비참한 운명을 감수해야 할지 모른다.

  이미 세계적인 다국적기업들은 21세기의 가장 유망한 산업으로서 식품, 의약 부문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하였다. 몬산토를 비롯한 거대 생명공학 기업들은 지금 유전자조작 농산물을 세계 전역으로 퍼뜨림으로써, 인류사회가 식량문제에 관한 한 자신들에게 거의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데 부심하고 있다. 더욱이, 지금 경제의 세계화라는 이름 밑에서 막무가내로 진행되고 있는 무역자유화와,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는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는 기후, 풍토, 지리, 역사, 문화적 조건에 따른 지역적 차이를 깡그리 무시하고 오로지 시장 경쟁력이라는 논리에 충실할 수밖에 없는 생산방식과 소비주의를 세계 전역에 획일적으로 강제함으로써 다국적기업들의 세계 지배를 돕는 데 앞장서고 있다.

  이러한 추세 속에서, 지난 25년간 지구상에서 100만종 이상의 생물종이 멸종되는 것과 함께 문화적 다양성도 심각하게 훼손되어 가고 있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과정인지 모른다. 영어 제국주의가 어디서나 기승을 부리고 있는 오늘날, 세계 전역에서 아직 살아있는 6,000종의 언어들 중 절반은 이미 아이들에게 가르쳐지지 않고 있으며, 21세기 말에 이르면 세계의 언어는 500종으로 감소할지도 모른다는 가공할 예측도 나오고 있다.

  언어가 사라지고, 토착 내지 전통문화가 위축되고, 그 결과 문화적 다양성이 소멸되어 간다는 것은 오랜 세월 동안 인간공동체에 전승되어온 삶의 지혜와 자연세계에 대한 이해와 지식, 그리고 우주의 의미에 대한 직관이 상실되어 간다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따져보면 엄청난 위험을 자초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생태적 위기가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는 지금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 긴요한 이러한 지혜와 지식이 사라짐으로써 인류사회가 일상적으로 직면하는 문제들에 대해서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돌이킬 수 없는 감퇴를 강요당할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세계화의 압력 밑에서 지역경제와 지역문화가 붕괴되고 있다는 것은 결국 인간다운 삶의 가능성이 하루하루 축소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역자유화와 시장 만능주의가 이대로 계속되는 한 지구생태계와 인간의 삶은 나날이 더 취약해지고, 소생의 희망은 더 멀어져 갈 것이다.

  그러나, 말할 것도 없이, 무역자유화의 논리에 의한 농산물 시장개방 요구와 거기에 대한 자발적 협력 내지 순응주의는 결국 오랫동안 일관되게 계속되어온 농민 및 농촌적 가치에 대한 천시(賤視)의 연장이며, 근대주의적 오만과 편견과 무지의 확대된 국면일 뿐이다. 최근 중국산 마늘 수입 문제를 둘러싼 의론(議論)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듯이, 자본과 국가와 전문가들이 숭상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이윤이지, 생명의 보전이 아니다. 지금 경제성장과 수출입국, 그리하여 이른바 '선진국'으로 '도약'하겠다는 열망이 팽배한 사회에서, 국내의 마늘농사를 보호함으로써 얻는 이익 1,500만달러를 위해서, 마늘을 포기하고 핸드폰을 수출함으로써 생기는 이익 5억달러를 포기하자는 데 동의할 사람이 이 나라의 권력 엘리트와 지식인들과 유권자들 사이에서 과연 얼마나 있을 것인가.

  그러니까, 마늘문제는 궁극적으로 정부의 외교력의 문제나 몇몇 관료의 직무유기와 무능력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한 인간집단으로서 어떤 사회를 바라는가, 라는 좀더 근원적인 의미의 정치적, 철학적 선택에 관계되어 있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좀 가난하더라도 우리 다음 세대들에게도 인간다운 생존이 가능한 농적(農的) 순환사회를 지금부터라도 회복시키는 데 진력할 것이냐, 아니면 지금까지 해온 대로 대외의존적 수출산업을 통한 경제성장의 추구라는 미래가 없는 길을 계속 가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지금 이른바 세계의 산업국가 중에서 홍콩, 싱가포르, 대만을 제외하고는 한국처럼 25% 정도의 식량자급률을 확보하고 있는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서유럽과 북미국가는 오랜 공업 선진국들이면서도 전부 150% 안팎의 수준, 심지어 프랑스의 경우는 200%를 넘는 식량자급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반드시 주목해야 할 현실이다. 아시아의 신흥 공업사회들인 한국, 대만, 싱가포르, 홍콩 등은 식량자급도가 형편없다는 공통점 이외에 환경문제가 심각하고, 이른바 엘리트들의 대부분이 자기 자식들을 미국과 캐나다나 그밖의 '선진국'으로 유학 내지는 이민을 보내는 데 열중해 있다는 점에서도 괄목할 만한 공통점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니까, 사회의 장기적인 생존가능성이라는 근본문제에 대해서는 철저히 외면하면서, 단기적인 경제적 이득의 추구에 혈안이 되어있는 사회일수록 그 사회의 엘리트들은 내심으로는 자기 사회에서 언젠가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돈이 좋다고 하더라도 다음 세대들도 살아가야 하는 생존의 토대를 파괴하는 행위를 이토록 장려 내지는 방치하고 있는 현실을 도무지 설명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농산물은 해외로부터 사들여와서 먹으면 된다고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적지 않고, 그들이 대부분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마음을 심히 암담하게 만든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그러한 사람들이 흔히 농사의 원리와 산업의 원리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잊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지금 농민의 운명과 농촌의 생존가능성에 대하여 고민을 하는 것은 물론 일차적으로는 식량의 안정적 공급에 대한 염려(지금 미국산 쌀값이 싼 것은 그나마 우리의 쌀 생산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지 국내의 쌀 경작지가 현저히 축소되는 날 주로 아시아 시장을 겨냥해서 생산되고 있는 미국산 쌀 가격이 천정부지로 폭등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문제이다), 그리고 농업의 환경보전적 기능 ― 기후의 안정화에 대한 기여, 홍수조절, 지하수 함양, 경관의 유지 등등 ― 이 중단되는 사태가 불러일으킬 경악할 만한 환경재난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지만, 이에 못지않게, 농경문화가 갖는 근원적인 미덕, 그리고 그 미덕의 실천이야말로 사회적 분열과 인간소외가 극에 달한 오늘날 다른 어떤 것보다도 가장 시급히 필요하다는 신념 때문이다.

  그 미덕이란, 간단히 말해서, 사람으로 하여금 늘 겸손한 마음을 갖고 살지 않을 수 없게 하는 농사의 원리에서 나오는 것이다. 농사는 사람이 짓는 일이지만, 사람의 힘만으로는 농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철저히 터득한 사람만이 제대로 된 농사꾼이 되게 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농경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연 속에서 차지하는 인간의 위치와 한계를 끊임없이 의식하게 만든다. 아무리 사람의 재간이 뛰어나고, 기술이 정교하다 하더라도 별과 달의 운행을 마음대로 할 수 없고, 기후를 통제하고, 흙의 성질을 마음대로 바꾸고, 벌레와 새와 짐승이 오가는 것을 제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무리 혹독한 가뭄이 들어도 궁극적으로 인간에게는 가뭄을 견디는 일 이외에 다른 해결책이 존재할 수 없다. 저수지를 만들고, 수리시설을 정비하는 등의 일은 어디까지나 부분적이고 지엽적인 노력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러한 고통과 참을성의 습득을 통해서 인간은 대지 위에서 겸손해지고, 자기보다 더 큰 존재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운명에 대한 수동적인 굴복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세계적인 반핵운동가이자 생태철학자인 다카기 진자부로(高木仁三郞)가 그의 저서《핵의 세기말》속에서 명석한 언어로 설명하고 있듯이, 세계의 토착민 또는 전통적인 농민사회에서 전형적으로 발견되는 그러한 겸손의 자세는 결코 숙명적인 수동의 태도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수용(受容)할 줄 아는 큰 마음"에 관계되어 있는 것이다. 다카기는 자연을 단지 정복과 통제와 관리의 대상으로 여기는 세계관에서 나온 전형적인 현대기술로서 원자핵 에너지가 갖는 근본문제를 언급하면서, 이와 대조적으로 비서구 세계의 민중생활 속에서 광범위하게 살아있었던 '수용적 마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그들은 마구잡이로 자연과 사물의 움직임에 개입하는 게 아니라, 자연과 인간 간의 상호관계를 중시하고, 스스로 자연과 화합하며, 공생하면서 보다 훌륭한 삶을 영위해 간다. 그리고 거기에서 문화를 발효시킨다. 그러한 문화의 존재방식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많은 면에서 좀더 고도의 삶의 기술과 현명함을 몸에 붙이고, 좀더 유연한 감성과 좀더 고도의 지성과 신체를 획득한다.
 

  산업주의 문화는 이러한 겸손의 자세를 조롱하고 비웃으면서 성장해왔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산업인간'은 도덕적, 정신적으로 극히 왜소한 미숙아가 되어버렸다. 산업의 세계에서 만물의 척도는 인간의 한계를 모르는 자기 확대의 욕망이다. 그리하여, 자본과 기술의 힘으로 얼마든지 자연적 제약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교만심이 분별없이 확대되어왔고, 그 결과로 지금 우리는 스스로의 생존의 발판을 제거하는 데 열중하고 있는, 인류 역사상 가장 난폭하고 어리석은 시대에 살게 된 것이다.

  우리는 오늘날 단 한순간도 사회적 약자를 괴롭히고, 자연세계에 훼손을 가하지 않고는 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 근원적으로 폭력에 기초한 삶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면서 살아가고 있다. 일찍이 간디는 독립을 쟁취한 이후 인도가 가야 할 장래에 대한 비젼을 말하는 자리에서, "진리와 비폭력을 실천하는 삶은 우리가 도시가 아니라 촌락에서, 궁전이 아니라 오두막에서 살 때만 실현될 수 있다"라고 말하였다. 도시 중심의 뿌리 없는 소비주의 문화가 걷잡을 수 없는 전염병처럼 창궐하는 오늘의 현실에서 이것은 시대착오적인 헛소리로 들리기 쉽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 사람다운 삶을 생각한다면, 간디의 말에 담긴 심오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맹목적인 성장과 발전의 논리에 대하여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거부하고, 농(農)의 세계의 근원적인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지혜와 용기가 없다면, 우리가 인간의 위엄과 품위에 대하여 계속 얘기한다는 것은 공허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김종철의 녹색평론

수궁원 2008. 9. 1. 18:35

이런 소중한 모임에 불러주셔서 영광입니다. 아침에 대구를 떠나서 지금 막 당도해서 분위기도 모르고 대뜸 여기 서게 되어서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점심때도 되고 했으니 빨리 끝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조금 늦어지더라도 너무 미워하지 마십시오.

  전주에는 '한울생협'이 있고, 서울을 비롯해 전국의 여러 도시에 '한살림'을 비롯한 다양한 이름의 생협 조직 속에서 생산자와 소비자들이 농산물 직거래를 중심으로 생명을 살리는 활동을 시작한 지 이제 10년이 다 넘었습니다. 오늘 이런 자리는 사실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는 모임입니다. 연례적인 모임이겠지만, 오늘 이런 모임은 여기서 생산자 농민들과 도시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우리가 과연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함께 궁리하는 그런 자리란 말이에요. 어떻게 보면 이 자리는 국무회의보다 더 중요한 자리입니다. 국무회의는 맨날 깨부수는 의논만 하는 곳이잖아요. 어떻게 하면 이 산천을 때려부술 것인가, 어떻게 하면 밑바닥 백성들과 온갖 목숨붙이들을 괴롭힐 것인가, 알고 보면 결국 그런 얘기들을 우리가 낸 세금 받아 가지고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진짜 아이들 제대로 사람답게 키우고, 좀더 나은 사람 꼴을 하고 살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우리끼리라도 서로 협동하고 도울 것인가, 이런 거 연구하고 궁리하려고 모였단 말이에요. 세상에서 이보다 더 중요한 모임이 어디 있겠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자부심을 가져야 해요. 점심 좀 늦게 먹어도 됩니다.(웃음) 전 아침도 안 먹었어요.

  저도 텔레비젼에 중독이 되어서 아직 텔레비젼을 끊지 못하고 사는데, 아무것도 아닌 줄 알면서도 집에 있는 날은 대개 9시 뉴스는 보게 되죠. 요즘 서울에서 대학을 나와서 별 하는 일 없이 지내는 우리 딸이 잠시 집에 내려와 있는데, 어제 같이 텔레비젼을 보고 있다가 갑자기 이 아이가 얼굴이 빨개지면서 "아빠, 세상이 왜 이래"라고 조그맣게 소리를 질러요. 평소에 그런 소리를 잘 하는 아이가 아닙니다. 또 어제 뉴스가 특별히 다른 날보다 더 끔찍한 얘기도 아니었어요. 물론 가만히 들으면 전부가 다 기막힌 뉴스들이지요. 어제는 올림픽 이야기도 나왔지만, 서울의 아파트 단지들에서 주민들이 담합해 가지고 아파트 값을 그냥 무턱대고 올려놓는다는 얘기, 여러분도 아마 들으셨을 겁니다. 갑자기 5천만원, 1억원 이상으로 껑충 덮어놓고 올려놓고, 그런 값 이하로 팔지 못하도록 이웃을 협박하기도 한다는 그런 뉴스가 나왔잖아요. 이게 서울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해요. 그런 사람들이 뉴스기자에게, 남들이야 10억을 받든 20억을 받든 당신들이 무슨 간섭이냐고 대들더군요. 물론 그런 값으로 아파트가 매매되지는 않겠지만, 그래 놓으면 상당히 시가가 상승할 거라는 계산을 하고 그런 짓들을 하는 거겠지요. 사람들 마음이 이젠 사악할 대로 사악해져서 같이 더불어 산다는 개념 같은 것은 벌써 깨끗이 사라져버렸어요. 이런 뉴스는 사실 새로운 것도 아니죠. 그런데 우리 딸이 좀 예민한 아이거든요. 예민하지만 평소에는 그런 소리 전혀 안하는데, 어제는 무엇 때문에 더 참을 수 없었던지 버럭 그런 비명 같은 소리를 내질러요. 눈에는 눈물까지 글썽해 가지고. 제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물론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뉴스에 접하면 마음이 언짢아지겠지요. 말은 안하더라도 말입니다. 그런데 내 자식이란 말이에요. 저는 학교 선생 하면서 거짓말을 많이 하고 살아요. 학생들을 보고 내가 너희들을 내 자식처럼 생각한다라고 말하지요.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잖아요. 노력을 해도 잘 안됩디다.(웃음) 내 자식의 반쯤은 생각할 수 있는지는 모르지만 엄밀히 내 자식은 아니니까 심리적으로 거리를 두고 살잖아요. 학생들이 좀 억울한 사정이나 고달픈 문제를 갖고 있어도 여유있는 마음으로 충고하면서 지나갑니다. 그러나 막상 내 자식이 저러니까 내 마음이 못 견디겠어요. 솔직히 말해서 당분간 세상이 개선될 가능성은 없잖아요.

  저는 철드는 게 늦어서 고등학교 다닐 때는 사회적인 문제는 별로 생각하지 않고 살았어요. 그때는 모두다 가난했으니까 특별히 부러워하거나 미워할 만한 부자도, 잘난 사람도 우리 주변에는 없었어요. 그러다가 서울로 가서 대학을 다니면서 세상에 기막히게 큰 부자도 많지만,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이 너무도 많은 걸 보고, 또 그때가 한일회담 문제로 대학 캠퍼스가 늘 시끄러울 때였으니까 소위 사회적, 정치적 의식이란 게 조금씩 생기지 않을 도리가 없었지요. 그런데 제가 그때 품었던 한가지 의문이 있었습니다. 이 세상은 왜 이렇게 나쁜 놈들이 활개를 치고 착하고 어진 사람들은 왜 늘 억눌려 살아야 하는가 하는 거였습니다. 이 의문은 실은 아직도 풀지 못하고 있는 의문입니다. 하여간 그때 이십대에 저는 저 나름으로 그런 심각한 의문으로 괴로움이 많았는데요. 그런데 수십년이 지난 뒤에 지금 내 딸이 바로 그런 심정을 토로하고 있는 거란 말이에요. "아빠, 세상이 왜 이래"라고 하는 말에 아무 답변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 걔가 계속해서 하는 말이 "아빠가 녹색평론이니 뭐니 하면서 애를 써봤자 세상이 뭐 달라지겠어?"라고 해요. 달라질 리가 만무하죠.

  지금은 최대의 위기입니다. 인류사상 이런 위기는 없었어요. 지금 세상이 온통 미쳐 돌아가고 있잖아요. 어제 뉴스에도 곧 철도파업이 있을 거라는 얘기도 나왔고, 요즘 기차 타면 철도원들이 띠 두르고 있는 걸 볼 수 있는데, 철도 민영화 계획 때문이죠. 아마 전기도 가스도 모두다 민영화될 모양입니다. 정부라는 게 이 사회의 약자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최소한의 책임도 포기한 것 같아요. 민영화해서 철도 경영이 빨리 흑자로 돌아서게 해야 한다, 철도사업이 수지맞는 장사가 되어야 한다는 거 아닙니까. 민영화해서 흑자경영을 이룬다는 것은 결국 무슨 얘깁니까. 대량 해고시킨다는 얘기죠. 그리고 대부분 자동화, 기계화로 처리하는 시스템으로 가겠다는 거죠. 일단 공공사업이 아니라 사기업이 되면 철도요금도 물론 자유롭게 올릴 수 있겠지요. 국가가 개입할 명분도 방법도 없어지잖아요.

  그런데 왜 이렇게 되어가고 있을까요. 이 모든 것은 결국 세계 자본주의 체제를 이끌어가고 있는 대자본과 다국적 기업들로부터의 압력 때문이란 말이에요. 모든 공공사업을 사기업화해야 한다, 국가의 보조금 지불제도는 모두 폐지하고, 국산과 수입산에 대한 구분도 철폐되어야 한다, 시장을 완전 개방하라, 구조조정하라, 그렇게 하면 가난한 사람들도 언젠가 다 부자가 될 수 있다, 이것말고는 대안이 없다 ……. 이런 다국적 기업들의 주장에 국민으로부터 선출된 정부라는 게 동조하는 정도가 아니고 앞장서서 나가고 있잖아요. 세계화 시대에 치열한 국제경쟁에 이렇게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면서 모든 걸 장사논리로만 이끌고 가잖아요. 그러나 이런 식으로 계속 가다간 사람도 사람이지만, 이 나라 산천이 조만간 완전히 망가질 도리밖에 없어요.

  며칠 전 미국 대통령이 다녀갔지만 참 한심하데요. 참 우울했습니다.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새삼스럽게 우리가 별 수 없이 식민지 백성이라는 사실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현실을 보면서, 명색이 대학교수랍시고 내가 학생들 앞에서 이러쿵저러쿵 지껄이고 있다는 게 한없이 수치스럽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정말 이게 무슨 꼴이냐. 백여년 전에 이 나라의 선비들 심정을 한번 생각해봤습니다. 그때는 물론 기가 막혔겠지요. 그러나 지금이 그때보다 상황은 더 고약한지 모릅니다. 그땐 나라가 눈앞에서 망하는 걸 알고는 있었잖아요. 지금은 더 지독한 내부적 침략이 계속되고 있는데도 망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어요. 지금은 예전처럼 노골적인 정치적 . 군사적 식민지로 전락하는 일은 없겠지만, 안으로는 더 지독한 노예의 삶이란 말이에요. 인간다운 위엄을 지키면서 살 수가 없게 돼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자기 자동차 가지고 시내를 벗어나서 훤히 뚫린 도로로 나가면 해방감을 느낀다는 사람들이 꽤 있는데, 한번 생각해 보세요. 지금 정부가 해외자본가나 IMF나 미국 사람들의 압력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지금 당장 우리가 석유를 들여오지 않으면 한국경제가 그대로 주저앉습니다. 한방울도 나지 않는 석유를 들여오려면 외국자본에 의지하지 않을 수 없고 그 사람들이 하라는 대로 안 따를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정부를 욕하고 자본가를 욕하지만 따지고 보면 문제는 궁극적으로 나 자신한테 있어요. 내가 내 자동차를 유지하려고 하는 한에서 나도 공범이에요. 우리 각자가 매일 매일 살아가는 방법이 바로 나 자신의 삶을 망가뜨리고 있는 원흉이란 말입니다.

  아까 대구에서 전주로 오는 동안 지리산 휴게소에서 잠깐 쉬다가 왔는데, 또 연중행사가 시작되었더군요. 지리산 고로쇠 수액 판다고 크게 써 붙여놓고 플라스틱통들을 잔뜩 늘어놓았더군요. 자기 몸 보신한답시고 애매한 나무들을 못 살게 하는 건 밀렵꾼들 통해서 야생 짐승들 간이나 쓸개 빼먹는 짓이나 똑같잖아요.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자기 몸뚱아리 하나 살찌고 편하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살고들 있잖아요. 기후변화 같은 데 대해서는 개인으로서 실감을 느끼지 못한다고 칩시다. 그러나 지금 공기는 숨을 쉴 수 없을 정도고, 물은 마실 수 없는 것으로 되어가고 있는 데다가 그마저 고갈되어가고 있습니다. 자기는 그렇다치더라도 자식들은 어떻게 해요. 그리고, 하루하루 먹고 살아가기 바쁜 사람들은 몰라도 이 사회에서 지식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이런 걸 좀 생각하면서 살아가라고 위임받은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맨날 누가 뭘 많이 먹는가 하고, 거기 빌붙어 먹을 궁리들이나 하고 살아가고 있어요. 조금 양심적이라는 사람들도 기껏 한다는 소리가 지식정보 사회라느니 남북협력을 통한 시장확대 운운하면서 지금까지 해왔던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사고방식에 그대로 빠져 있어요.

  제가 제일 마음이 아픈 게 뭐냐 하면, 농업이 붕괴되고 있다는 거예요. 아무리 지금 곤란한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우리가 그래도 내일을 기약해 볼 수 있고, 지금은 엉터리지만 그래도 다음 세대쯤 가서는 희망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볼 수 있기 위해서는 땅이 남아있어야 해요. 그런데 지금 둘러보십시오. 일년에 여의도의 몇십배나 되는 농경지가 잠식되고 있다고 하잖아요. 그것도 한해 두해가 아니라 30년 이상이나 계속되어왔는데, 거기다가 지금은 가속이 붙었어요. 멀쩡한 국도와 고속도로가 다 있는데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도로가 새로 건설되고 있습니다. 왜 이럴까요. 요즘 언론에서는 경제가 조금 안정되어 간다고, 경제지표가 나아지고 있다고 그러지요. 우리나라는 참 특이한 나라 같아요. 지금 온 세계 전체가 경제가 나빠져 간다고 합니다. 미국도 10년 넘게 장기호황을 누려왔지만 이제부터는 아니라고 하잖아요. 일본은 거의 회생할 가능성이 없다는 말도 들립니다. 전세계적인 투자과잉, 생산과잉으로 물건 팔아먹을 데가 없다고 그래요. 그런데 유독 한국경제만 그 와중에서 살아남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잖아요. 그런데도 경제상황이 나아지고 주식시장이 활기를 띠고 있다는데 그 근거가 뭘까요. 건설경기와 부동산시장 때문입니다. 다른 게 뭐가 제대로 돌아가는 게 있습니까. 그러니까 당장의 곤경 모면해 보려고 지금 계속 땅을 마구 파헤치고 그린벨트 없애버리고 부수어버리는 거예요. 자기 콩팥 떼어 팔아서 돈 있다고 착각하는 꼴이죠.

  저는 대통령 선거에 아무런 기대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입니다. 신문에 보니까 벌써 이름만 다를 뿐이지 똑같데요. 대통령 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정책이라고 내놓는 게 전부가 다 똑같고, 여야도 아무 다를 게 없어요. 노무현이라는 사람이 예외적으로 성장보다는 분배에, 경쟁보다는 연대가 중요하다는 얘기를 하는 것 같은데, 그런 사람도 과연 농업문제에 대해서 깊은 고민이 있을까요? 우리 농촌에는 이제 유권자도 별로 없잖아요.

  하여간 제가 제일 절망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농업붕괴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도 제가 감사한 마음으로 왔어요. 여러분이 하자는 게 결국 뭡니까. 농촌 살리자는 거죠. 제가 한살림이나 이런 생협활동에 대해서 관심이 많으니까 사정을 조금 압니다만 아무 영문도 모르고 들어온 주부들이 많잖아요. 그저 식구들에게 무공해, 무농약 음식 먹여볼까 싶은 생각으로 가입했을 뿐이죠. 그건 물론 나쁜 일이 아니죠. 그만한 애정이라도 가지고 있는 게 정말 다행스러워요. 세상에는 유기농산물이 비싸니 어쩌니 하고 이 운동을 트집잡거나 우습게 보는 사람들도 있는데, 유기농산물이라고 비싸면 얼마나 비싸겠습니까. 세상에서 제일 터무니없이 싼 게 농산물 아닙니까. 그동안 계속하여 농촌이 붕괴되어온 건 농산물이 제 값을 못 받아왔기 때문이란 말이에요. 공업화를 한답시고, 소위 근대화를 한답시고 고의적으로 농산물 가격을 억제하고, 공장과 도시의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 농촌경제를 고의적으로 망하게 해놓은 결과가 지금의 농촌이란 말입니다. 이렇게 오래 길들여오다 보니까 보통 사람들이 온갖 쓸데없는 물건들을 한마디 불평도 안하고 값비싸게 사들여 놓으면서도 정작 농산물 가격에 대해서는 호들갑을 떨어요. 김치냉장고 사들여 놓으면서 정작 거기에 들어가는 김치 어머니, 배추와 무에 대해서는 아주 홀대를 하거든요. 그리고 언론도 늘 공업제품에 대해서는 아무 군소리도 못하면서 상투적으로 유기농산물 비싸다는 얘기만 곧잘 합니다. 그래서 뭐 도농직거래 운동이란 거는 알고 보면 도시 중산층들이 자기네들끼리 해먹는 수작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하는데, 참 서글퍼요.

  어쨌든 저는 순전히 가족 이기심이 동기가 되었다 할지라도 자기 식구들에게 가급적 독이 없는 음식, 가급적 영양분이 있는 음식을 먹이겠다고 하는 그런 마음으로 이런 생협활동에 참가하는 분들이 참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분들이 있어야 죽어가는 농업과 농촌을 살려보겠다는 최소한의 꿈이라도 꿀 수가 있습니다.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고 자식들에게 안심하고 먹일 게 없다는 생각 때문에 밤잠을 제대로 못 자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야 오늘날 이 현실에 대하여 정말 근본적으로 고민할 게 아닙니까.

  그런데 중요한 것은 세월이 가도 노상 무농약 농산물 먹어보겠다는 그런 수준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곤란하다는 얘깁니다. 궁극적 목표는 농촌을 살리는 일이에요. 내가 도시에서 살고 일자리를 갖고 있다고 해서 나한테 농촌이 관계없는 것이 아니잖습니까. 내가 도시에서 설사 무슨 일을 하고 있든 간에 농촌이 살아있어야 내 뿌리가 존재해요.

  그런데 농촌 살리기라는 문제를 오해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들어보셨겠지만 '태평농법'이라는 거 말이죠. 이런 얘기 그동안 별로 공개적으로 하지는 않았습니다만, 태평농법이라는 거 생각해보면 참 곤란한 것입니다. 지금 태평농법 한다는 그분이 5만평인가 하는 땅을 자기가 고안한 쇠갈퀴 같은 것을 부착한 콤바인을 사용해서 무경운 ― 이 말은 원래 일본의 자연농법 창시자 후쿠오카 마사노부 선생의 자연농법에서 가져온 것인데 ― 으로 땅을 갈지 않고 따로 비료도 하지 않고 농약 같은 것도 치지 않고 풀도 매지 않고 농사를 지으니까 거의 일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태평농법이라는 거죠.

  농촌에서 농사짓는 게 괴로운 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하는데 실제로 태평농법으로 하면 한 사람이 몇만평을 감당하는 것도 손쉬운 일이 되는 거지요. 그래서 그 책이 꽤 관심을 끌었는데, 그런데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저는 이게 땅 부자들 귀에 들어가면 곤란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예를 들어 돌아가신 정주영씨 같은 분 말입니다. 그런 재력과 저돌적인 성격을 가진 사업가라면 그냥 몇몇 소수의 인원을 고용해서 무슨 상무다 부장이다 하는 그럴듯한 직함을 주고는 콤바인 몇대 주고 어마어마한 땅을 경작하도록 할 수 있을 거란 말이에요. 소수의 부자들이 농토를 독점하고 그런 식으로 기계를 써서 유기농산물을 만들어낸다고 한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 나라의 농업과 농촌이 어떻게 될까요. 미국의 기업농이 그런 식이죠. 그러나 거기서는 비행기로 비료 주고 농약 치고 하니까 지금 미국의 농토가 쇠퇴하고 얼마 안가면 사막화의 위험도 있다는 게 알려지면서 이런 대규모 기계화 농법으로는 계속 더 갈 수 없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대규모 기업농으로 가서는 토양을 보존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하는 반성이 지금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이 태평농법은 그런 문제까지 해결해줄 수 있단 말이에요. 약도 안 치고 비료도 안 쓰고 땅을 갈지도 않아 땅을 점점 기름지게 만들고 그러면서 사람의 노동은 필요없고 …… 얼마나 환상적입니까. 현대적인 산업체제의 논리와 딱 맞아 들어가잖아요. 기계화 . 자동화를 통해서 인력을 줄이죠, 그렇게 생산한 것을 도시의 백화점에서 유기농산물이라고 값비싸게 팔아먹을 수 있고. 그런데 그게 뭐가 문제냐. 한번 생각해 보세요. 이런 식으로 된다면 결국 농촌 마을이 없어집니다. 농촌 공동체가 없어져요. 농촌 공동체는 농촌에서 하는 일이 노동집약적인 일이기 때문에 성립될 수 있습니다. 일하고 살아가는 데 서로 협동하고, 주고 받지 않으면 안될 많은 일거리가 있고 생활방식이 있으니까 자연히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어 상호부조의 삶을 영위해가는 거죠. 우리의 전통사회뿐만 아니라 농사를 중심으로 하면서 기초적인 생명유지 수준에서 땅에 뿌리를 박고 살아가는 모든 토착적 사회가 다 이런 식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런 사회에서는 실업이란 개념이 있을 수가 없죠.

  요즘 실업자 문제가 점점 심각해져 가고 있는데, 이 문제는 현재와 같은 산업체제를 고수하는 한 절대로 해결이 안됩니다. 구조적으로 볼 때 실업자가 늘 일정한 수준 이상으로 존재하고 있어야 돌아가게 되어있는 게 자본주의 체제이고 산업주의 문명입니다. 빈곤문제도 그래요. 별 생각 없이 우리가 모두가 부자로 사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부자가 부자로서 행세할 수 있는 사회는 필연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늘 존재하고 있어야 해요. 모든 사람이 전부 부자가 되면 부(富)라는 게 아무 의미가 없어요. 아무도 아쉬울 게 없으니까 부자의 권력이 먹혀들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경제성장 제일주의를 목표로 하고 있는 한, '빈곤퇴치'라는 것은 실은 헛 구호일 뿐입니다. 누군가가 계속 빈곤상태에 있지 않으면 경제성장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산업사회에서의 노동이란 것은 사람이 자발적으로 즐겨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싫고 재미없는 노동이지만 임금을 받을 수 있고 보상을 받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산업적 노동은 본질적으로는 강제노동입니다. 가난하지 않다면 무엇 때문에 그런 강제노동을 받아들이겠습니까. 그러니까 경제성장, 개발, 산업문명, 진보라는 것은 기실은 끝없이 빈곤을 확대 재창출하도록 구조화되어 있는 체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빈곤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려면 부자가 없는 세상으로 가야 합니다. 다 같이 자신에게 필요한 것만큼 땀흘려 일하면서 그저 최소한도로 인간다운 생존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의 경제, 최대한도의 자급자족이 가능한 문화 속에서만 실업도 해결되고, 빈곤문제도 해결되고, 출산, 육아, 교육, 의료, 노인부양 문제를 포함한 온갖 생활문제가 비로소 극복될 수 있습니다. 지금과 같은 체제를 확대하고, 경제성장을 계속해 나가서 사회복지 예산을 증대시켜서 문제를 해결한다는 이른바 산업선진국형 복지체제에 기대를 걸고 있는 사람이 많지만, 그 방법으로는 결국 죽도 밥도 안되게 되어있어요. 우선 생태계가 견디어 내지를 못합니다. 그것은 결국 오늘의 생태적 위기와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한 주된 원인을 가지고 해결책을 찾는 모순적인 방법일 뿐입니다. 그리고 스웨덴 같은 이른바 모범적인 복지사회가 얼마나 더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벌써 스웨덴은 국고가 비어가고 있다고 해요. 그런 문제와는 별도로 스웨덴과 같은 국가적 복지체제가 과연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체제인지도 의심스럽습니다. 세계에서 자살률이 제일 높은 나라가 스웨덴입니다. 근본적으로 인간성에 반하는 무슨 문제가 있다는 얘기거든요.

  모든 점을 고려할 때 저는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살아있는 마을 공동체가 중심이 되어있는 사회말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옛날과 똑같은 모양의 농촌 공동체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고, 의미도 없어요. 어떻든 우리가 인간다운 삶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는다면 어떤 형태로든 땅이 살아있고 농촌에 마을이 풍성하게 살아있는 세상으로 가야 합니다. 인간다운 위엄을 유지하고 권력에 대해서든 물건에 대해서든 기계에 대해서든 노예가 아닌 자유인의 삶을 살아가자면 말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가장 분명하게 선각적으로 자기 사상의 핵심으로서 말씀하셨던 분이 바로 간디입니다. 간디는 우리나라에서는 인도의 독립을 위해서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싸웠던 인도의 민족적 영웅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은 굉장히 영성적으로 깊이있는 정치-경제사상가이자 문명비판가입니다. 간디는 보면 볼수록 대단한 혜안을 가졌던 분입니다. 20세기 초에 이미 산업주의 문명이 인류 전체에 대하여 큰 재앙이 될 날이 곧 올 거라고 말했거든요. 간디는 일생을 두고 인도사람들이 입는 카디라는 옷을 손수 물레로 돌려서 짜서 입었습니다. 인도 사람 각자가 집에서 혹은 마을에서 자기가 입을 옷을 손수 지어 입어야 진정한 독립을 얻을 수 있다고 했어요. 말로만 독립투쟁, 식민지 청산을 떠들면 아무 소용없는 일이죠. 자기자신들의 생활이 자치, 자립적인 것으로 되도록 토대를 만들어놓는 게 가장 확실한 독립의 조건이란 말이죠. 식민세력에 대해서, 혹은 제국주의자들에 대해서 외교적으로 혹은 정치 . 경제적으로 혹은 군사적으로 맞설 수 있는 힘을 하루빨리 키워야 독립 . 자존할 수 있다고 흔히들 생각하지만 그건 근본적으로 몰지각한 소리라는 거죠. 그런 방식이 진정 가능할지도 의심스럽지만, 그런 방향으로 추구해서 소위 경제성장을 이루고 정치적 위상을 높였다고 하는 사회들을 한번 곰곰이 들여다보세요. 대내적으로는 차별구조가 강화되고, 대외적으로는 지금까지의 제국주의자, 식민주의자들 못지않은 가혹한 약탈, 착취자가 되는 겁니다.

  간디는 인도의 진정한 독립은 영국으로부터 정치적으로 독립한다고 해서 이룩되는 게 아니라고 일관되게 말합니다. 그래서 간디가 생각하는 것은, 진정하게 새롭고 자주적인 인도의 토대는 53만8천개의 농촌 마을이며, 그 마을들 속에서 자립적인 삶의 방식이 번성하는 것이라고 했어요. 그래서 독립 이후에 간디의 제자들 가운데 많은 젊은이들이 인도의 농촌으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하늘의 조화인지 독립되자마자 간디가 암살 당해요.

  이제부터야말로 간디의 사상과 철학이 인도사회에서 제대로 된 실천을 기다리고 있던 바로 그 시점에서 암살을 당해요. 그러고는 네루가 등장하죠. 네루는 간디의 정치적 제자이지만, 스승의 사상과 철학에 대해서 깊이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네루는 속으로는 간디의 역사와 문명에 대한 관점에 대해서 늘 거리를 두고 있었어요. 말하자면 이 문제에 있어서는 간디를 망령든 할아버지쯤으로 생각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농촌 마을 중심의 사회를 이야기하고, 수공업적 생산방식을 말하는가 하고 말이죠. 그래서 네루는 인도가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빨리 산업화와 경제성장을 해야 한다, 그래서 그 방법으로 자본주의뿐 아니라 사회주의적 모델도 적용하고, 그래서 소비에트 연방으로부터 원조도 과감히 받아들이면서, 한때는 중립 외교를 표방하고 그랬잖아요. 그런 점 때문에 세계의 지식인들로부터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듣기도 했지만, 지식인들이 말하는 진보라는 개념 자체가 사실은 굉장히 문제가 많은 거예요.

  하여튼 네루는 인도의 산업화를 가장 우선적인 국가 시책으로 삼았고, 그래서 이미 독립 초기부터 거대한 댐 건설들을 국가적 프로젝트로 계획하였어요. 지금 인도에는 예를 들어서 나르마다 강 같은 경우에 강이 얼마나 큰지 대형 댐이 3,000개나 건설 완료되거나 공사중이거나 계획중이라고 합니다. 그게 대부분 네루 시대부터 계승된 국가적 프로젝트예요. 댐 건설이나 원자력 발전소, 핵무기, 새만금 매립공사, 고속도로, 공항, 관광진흥 ― 이런 게 전부 같은 뿌리에서 나오는 발상들입니다. 간디를 암살한 것은 고드세라는 힌두교 청년이었는데, 세상에 알려지기로는 힌두교도와 무슬림들 간의 갈등 속에서 간디가 무슬림들을 끼고 도니까 화가 나서 암살했다고 하지만, 법정 최후진술을 보면 단순히 그런 게 아니었어요. 최후진술에서 고드세라는 청년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내가 간디 선생님을 존경하기 때문에, 그분이 영원히 인도 사람들의 아버지로 남아 있도록 하기 위해서 암살을 했다 ― 라는 겁니다. 자기가 보기엔 간디가 미쳤다는 거죠. 서구식 근대화와 산업문명과 진보를 거부하니까. 지금까지는 영국으로부터 독립운동을 하는 과정에서는 간디가 옳았지만 이제부터 현대사회를 건설해 나가는 과정에서는 간디는 오히려 인도의 적이 될 것이다, 그래서 인도민중의 적이 되기 전에 그분을 영원한 인도인의 아버지로 모시기 위해 죽였다는 거죠. 이 얘기가 맞을지도 몰라요. 간디가 계속 살아서 인도의 산업화를 막았더라면 아마 인도의 지식인, 지도층 사이에서 간디를 공격하는 사람이 많았을 겁니다. 실제로 산업주의나 서구식 경제발전에 관한 간디의 생각에 동조하고 귀를 기울인 인도의 지도층은 거의 없었어요. 그런데 간디가 정확히 예견한 대로 산업주의 문명이 지구와 인류의 재앙이 되었다는 게 분명해진 오늘날에 와서는 간디가 옳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세계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과 같은 발전, 진보의 논리로는 인류에게 전망이 없거든요. 기술의 발전으로 극복될 것 같아요? 지금 지식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은근히 생명공학의 발전에 기대를 걸고 있는 사람들이 꽤 있는데,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보아도 기술을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현대적 기술이라는 건 본질적으로 조작하고 통제하는 기술입니다. 인간의 기술적 지식과 재간이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저 자연의 한없이 정교하고 신비스럽고 복잡한 질서를 무슨 수로 통제한다는 겁니까. 생명공학 기술로 품종개량을 시도하는 문제만 하더라도 그 결과가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무도 모르는 거란 말이에요. 또 그런 기술로 개량을 하다보면 종내에는 생물종다양성이 소멸되어버려요. 생물다양성은 지구 생물권을 유지하게 하는 근원적인 조건인데 이게 훼손된다면 모든 게 끝입니다. 제 주변에도 이렇게 안이한 생각을 하면서 자기들 전공에만 열심인 교수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끔 그래요. 지금 하고 있는 공부들 좀 중단하고 세상 돌아가는 문제에 조금만이라도 근본적인 관심을 기울여보라고. 생명공학이라고 하는 아무것도 확실하게 예측할 수 없는 불투명하기 짝이 없는 기술에 인류의 장래를 맡기고, 수천년 수만년 동안 우리가 생명을 유지하는 확실한 방법으로서 실천해왔던 방법을 포기하자는 게 말이 되느냐. 지금 우리가 식량자급도가 25%도 안되는 형편에서 정부 사람들은 앞으로 농가 가구수를 10만 이하로 줄이겠다고 계획하고 있는 이런 상황에서 제발 우리 모두가 농업과 농촌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고민 좀 하고 살자고요. 그리고, 농사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꼭 식량문제 때문만이 아니잖아요.

  저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도 농촌이 반드시 살아나야 된다고 믿습니다. 사람이 사는 가장 높은 가치가 뭡니까. 무엇 때문에 우리가 살아요? 여러분들은 뭐라고 생각해요? 전 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건 우애, 즉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라고 생각해요. 제가 젊은 시절에 이런 이치를 깨달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뒤늦게 좋은 사람들 다 놓치고 이제 이런 생각을 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건 건강도 아닌 것 같아요. 건강이 제일이라고 얘기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물론 살아있는 동안 우리가 건강하게 살도록 할 수 있는 데까지 노력은 해야죠. 그러나 인생에 있어서는 건강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는 게 분명해요. 우리 각자가 이 세상을 하직할 때를 상상해보면 그건 확실한 것 같아요. 가끔 저는 내 자신이 죽을 때를 가상해서 뒤에 남은 가족이나 내 자식들에게 무슨 말을 하고 죽을까를 생각해봅니다. 임종시의 말이라는 건 자기의 인생을 요약하는 것이니까 거기에 위선과 거짓이 끼여들 틈이 없죠. 그러니까 사람이 자기에게 가장 진실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할 거란 말이에요. 어떤 이태리 철학자는 무신론자일수록 죽기 직전에 솔직한 이야기를 한다는 얘기를 했어요. 죽은 뒤에는 털어놓고 참회할 데가 없으니까요.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까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저 같은 경우에도 죽을 때, 평생 동안 돈을 많이 벌지 못한 것에 대해서 후회하거나 유감스러울 것 같지는 않아요. 또,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출세를 못한 걸 억울하다고 생각하면서 죽을 사람도 없을 거예요. 내가 권세가 많아서 남들을 좀 부려먹지 못하고 가는 게 아쉽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지 않아요. 그리고 또 평생 좀 건강하고 기운도 세게 지냈더라면 하고 회한의 눈물을 흘리게 될 것 같지도 않습니다. 부귀영화를 누리고, 자손이 번창하고, 세상에서 이름도 날리고 …… 이런 게 보통 사람들이 늘 탐하는 것인데 말이죠. 옛날 소설〈옥루몽〉같은 걸 보아도 그런 욕망의 세계에서 우리 조상들도 살았거든요. 이런 욕망은 지금도 마찬가지로 우리들 속에 뿌리깊이 있잖아요. 그런데 이 모든 것도 죽는 순간에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단 말이에요. 대체로 숨을 거두기 직전에는 누구든, 사람들하고 좀더 잘 지냈으면 좋았을 걸, 누구에게 그렇게 박절하게 하지 않았어야 옳았는데, 그러니 너희들은 사이좋게 잘 지내고 남들에게 친절하게 해라 등등, 이게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인간이 생의 마지막 무대에서 내뱉는 공통된 대사입니다. 인간이란 본래 영물이니까 평소에는 등신같이 살고, 어리석기 짝이 없는 듯해도 속 깊이에서는 알 건 다 알고 있어요. 핵심은 무엇인지 뭐가 진짜인지 알고 있는 거예요. 알고 있으면서도 살아있는 동안에는 온갖 장애물이 가로막고 있어서 엉터리 짓 하다가 죽는 순간에는 깨닫습니다.

  제일 중요한 건 결국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우정입니다. 지난 1월에 제가 전주에 왔다가 돌아갔습니다만, 그때 저하고 같이 시간을 보낸 분이 몇분 여기 앉아 계신데, 그날 황급히 돌아가는 바람에 미친놈 꼴이었지요. 사실 바쁜 건 죄악입니다. 바쁘게 지내다보면 사람들과 차분히 이야기를 나누지도 못하고, 남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주의집중을 할 수가 없잖아요. 어떤 철학자는 도덕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주의집중의 문제라고 해요. 그건 정말 옳은 말인 것 같아요. 요즘 우리들 생활이 뿌리로부터 어긋나있는 것은 우리들이 대체로 바쁘게 지내는 것과 굉장히 큰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여튼 그날 모처럼 제가 전주에 왔다가 행사가 끝나고서 저녁을 먹으러 가는데 저를 자동차에 태우고 어디론가 가더라고요. 저는 모처럼 전주 음식맛 좀 보고 가는가보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자동차가 시내를 벗어나서 교외로 가요. 그래서 어디로 가느냐고 물어보니 새로 생긴 채식 전문 뷔페식당으로 간다는 거예요. 제가 속으로 자업자득이란 생각이 들더라고요.《녹색평론》에서 맨날 채식 얘기를 하니까 이 분들이 저를 생각해서 그리로 데리고 간 거예요. 실은 저는 고기는 안 먹지만, 채식주의자는 아니거든요. 가끔 계란도 먹고 생선도 먹고 때로는 라면도 먹습니다. 그런데 채식전문 식당이라는 건 그렇다 합시다. 뷔페는 문제 있는 거 아니예요? 한번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집회를 가지고 행사를 할 때는 뷔페식이 필요할지 몰라요. 그렇지만 이 서양에서 들어온 뷔페라는 음식 먹는 방법이 과연 인간간의 관계를 결합시키는 것인지 분리시키는 것인지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우리 전통사회뿐만 아니라 모든 토착사회에서 음식은 어떻게 먹습니까? 나누어 먹잖아요. 된장찌개를 상 가운데 놓고 여럿이 둘러앉아서 나누어 먹습니다.

  예전에 중국에서는 유토피아를 대동(大同)세상이라고 했답니다. 동양에서는 유토피아라는 말을 안 쓰고 대동세상이라고 하죠. 그런데 대동이라는 말이 원래 무슨 말이냐 하면, 동양철학 전공하는 친구에게 물어보니까, 동(同)자가 본래 상형문자인데, 그게 천막을 쳐놓고 그 밑에서 사람들이 함께 밥 먹는 모습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동양에서는 이상사회가 별 게 아니라 사람들이 밥을 같이 먹는 세상, 즉 한 식구로 사는 세상이라는 얘기죠. 혈연, 지연, 부족, 인종, 종파, 높은 사람 낮은 사람 따위를 따지지 않고 그냥 세상 사람들이 같이 밥을 먹는 세상 말입니다.

  지금 세상 돌아가는 꼴이 하도 기막혀서 우리가 주저앉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그러나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곳곳에서 틈을 비집고 당장 대동세상을 실천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를 들어, 제가 좀 아는 분인데, 이 분은 밖에 나와서는 식사를 좀처럼 하지 않으려고 해요. 음식점에서 사서 먹는 밥이란 게 전부 오염되어 있잖아요. 그러니까 조금이라도 농사와 농산물 유통에 대해서 아는 사람의 눈에는 그게 독이지 인간의 식사라고는 할 수 없거든요. 그러나 그런 생각 때문에 자꾸 바깥 생활을 기피하다 보면 사람 만나는 기회도 줄어들고, 협소해지고, 늘 혼자서만 지낼 수밖에 없잖아요. 제가 아는 어떤 이는 당근을 절대로 안 먹는 사람도 있어요. 당근은 오염된 땅의 중금속을 잘 흡수하는 성질이 있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음식에 당근 들어가 있으면 일일이 건져내고 먹어요. 그러면 어떻게 되겠어요? 사람들에게서 멀어지잖아요. 오염된 음식이라도 여럿이서 같이 나누어 먹는 것이, 좋고 깨끗한 식품 혼자서 뒤돌아 앉아 먹는 것보다는 낫다는 얘기이죠. 아까 말씀드렸죠. 내가 이 깨끗한 음식 먹고 수명을 10년 더 늘릴지는 모르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우정의 문제는 어떻게 되느냐 이걸 생각해보자는 겁니다.

  제가 좋아하는 블레이크라는 영국 시인이 있는데, 이 사람의 잠언에, "새의 보금자리, 거미의 거미줄, 사람의 우정"이라는 구절이 있어요. 그러니까 새와 거미에게 제일 중요한 게 새집과 거미줄이듯이 사람에게 제일 중요한 것이 우정이라는 얘기죠.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런 우정 또는 우애가 우리가 마음 먹기에 따라서 쉽게 되거나 안되고 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우정이 유지될 수 있게 하는 생활이 있어야 하고 생활방식이 있어야 합니다. 남들의 도움이 필요없는 생활방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 돕고 협동하는 생활을 유지할 수도 없고, 아쉬워할 리도 없습니다. 예를 들어, 의료문제나 요즘 주부들의 제일 큰 관심사가 아이들 양육하는 문제, 출산문제 등인데요. 이런 얘기 제대로 하자면 시간이 한참 걸리니까 오늘은 그만둘 수밖에 없습니다만, 하여튼 요즘 한국에서 제왕절개율이 50%라는 사실은 정말 기가 막히는 문제입니다. 의사들은 별문제 없다고 할지 모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고 해요. 왜? 우리는 단순히 살덩어리가 아니란 말이에요. 우리는 심층에 뿌리깊은 무의식을 가지고 있는 존재입니다. 제왕절개를 통해서 태어나거나 출산시에 기술적 간섭을 많이 받고 태어난 아이들은 심리적으로 근원적으로 행복하지 못하다고 해요. 불란서의 유명한 산과의사 미셀 오당이라는 분은 지구의 생태적 미래는 인간의 아이들이 어떤 방식으로 태어나느냐 하는 데 달려있다고 말합니다. 자기의 마음이 평화롭고 자유로워야 우리가 타인이나 자연세계에 대해서 폭력적으로 대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굉장히 중요하고 근원적인 얘기이죠. 그런데 지금 현대 기술사회에서는 산파를 거의 볼 수 없잖아요. 산파가 저절로 없어진 줄로 아십니까? 미국의 의사협회라는 것은 원래 산파를 포함해서 자치적으로 건강을 돌보는 민간의 많은 지혜와 기술을 없애고 불법화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단체입니다. 그래서 현대적 기술의학이 지배를 하게 되면서 사람들이 서로를 돌보는 자주적인 능력들을 잃어버리게 된 겁니다.

  옛날에는 아이를 낳고 애를 기르고 사람이 죽을 때 임종을 하고 장사를 치르는 게 비즈니스가 아니라 우리의 삶의 중요한 통과의식이었고, 이런 의식은 전부 가족과 마을의 힘으로 치러냈잖아요. 지금은 인간생존에 필요한 모든 기초적인 것들이 전부 상품이란 형식으로 접근하게 돼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전부 돈을 벌지 않으면 죽는다고 하는 고정관념 속에서 살고 있어요. 당장 현금을 구해야 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우리가 미친 듯이 살고 있단 말이에요. 그러나 공동체 속에서 살아간다면 사람과 사람끼리 돈 관계를 떠나서, 또 국가의 복지체제라는 것을 떠나서 우리가 자주적, 자치적으로 살 수 있는 힘이 생기고 진정으로 안전하고 위엄있는 삶이 가능해집니다. 애써 저금하려고 할 필요도, 꼬불칠 필요가 하나도 없잖아요. 내가 일할 기운이 없어지면 동네사람들이 나를 돌보아줄 것이고, 내 죽은 뒤에 내 자식들도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으니까요. 교육도 그래요. 오늘날 우리사회가 엄청난 교육지옥이 되어있는 것은 정말 배움에 대한 갈망 때문이 아니라는 건 우리가 다 아는 일입니다. 경쟁적으로 남을 제치고 남의 위에 군림하기 위해서, 아니면 남의 뒤에 처지지 않기 위해서 미친 듯이 달려가는 것 아닙니까. 이러니 우리 꼴이 늘 참혹하기 짝이 없어요. 그런데 공동체적 상황 속에서 사람들이 협동적으로 서로 도우면서 살아간다면 지금과 같은 교육도 필요없는 것이 됩니다. 본래 인간은 학교라는 제도를 통해서가 아니라 삶의 현장 속에서 저절로 배움을 익히며 성장합니다. 그것이 오랜 인류사회의 경험이거든요. 학교교육이라는 것은 사회적 서열화를 전제로 하고, 또 그러한 차별적인 서열화를 강화하는 데 이바지할 뿐입니다. 그러니까 학교는 사람들이 서로 우애있게 사는 것을 원천적으로 방해하는 근대적 질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에 아미쉬라는 독특한 공동체가 있다는 걸 여러분들도 알고 계시겠지요. 지금 수십만명이 주로 인력과 축력에 의지하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농사를 짓고 공동체를 만들어 살고 있는데, 그들은 수십년간 투쟁해서 미국 연방법원으로부터 자기 아이들을 미국의 학교에 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권리를 인정받았습니다. 그 사람들은 성경을 읽을 수 있는 능력과 기본적인 셈법만 알면 족하지 더이상 교육이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아마 지금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일 겁니다. 농사지으면서 수공업 제품 만들어 내고, 현대적 테크놀로지를 될수록 멀리하고, 텔레비젼은 말할 것도 없고, 전화도 집집마다 두고 살지 않습니다. 전화가 집집마다 있으면 가족의 해체를 가져올지 모른다고 동네에 공중전화 한 대씩 두고 있다고 합니다. 얼마나 현명한 사람들이에요. 그 사람들은 미국의 주류 사회처럼 살아가면 필연적으로 사람들 사이에 소외와 차별이 생길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그런 생활방식은 하느님에 대해서 불경(不敬)을 저지르게 된다고 생각하니까요. 저는 현대문명의 본질은 이 '불경'이라는 개념으로 생각해봐야 한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서, 지금 우리가 마시는 이 물이 좋으냐 나쁘냐, 이 물이 어느정도 오염이 되어있느냐 하면서 이른바 과학적으로 접근해서는 우리가 결국 이 기술사회의 논리에 말려들어갈 뿐입니다. 그렇게 되면 맨날 갈팡질팡 할 수밖에 없어요. 중요한 것은 이 물을 하느님 앞에 바칠 수 있느냐 없느냐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죠. 동학에서는 깨끗한 물 한잔으로 한울님께 심고(心告)하라고 하잖아요. 물이 더럽다는 것은 하느님의 눈으로 봤을 때 우리의 삶이 죄악에 가득찬 것이라는 얘기가 되거든요. 그걸 무슨 약품으로 아무리 소독을 하고 정화를 한다 한들 우리의 삶의 야만주의와 불경함이 씻어지는 것은 아니지요.

  다시한번, 이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농촌 공동체를 살리고, 땅으로 돌아가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런 생협활동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혼자서는 못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혼자서는 불가능하고 큰 의미도 없어요. 일본의 자연농법 창시자 후쿠오카 선생 같은 분은 대단한 양반이지요. 한사람의 사상가로서 오늘의 인류를 위해서 값진 가르침을 보여주는 사람이지만, 그 방법은 보편적인 것이 될 수가 없죠. 그분은 자연농법이라는 농법을 창시하고 그런 농법의 철학적 의미를 가르쳐주고는 있지만, 공동체의 의미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고, 그냥 산속에서 외롭게 살고 있어요. 아무리 사상이 훌륭하다 하더라도 혼자서는 재미가 없어요. 에른스트 블로흐라는 독일의 철학자는 성경에 나오는 "하느님의 왕국이 너희의 가운데(among you) 있다"라는 말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해요. 이 말을 잘못 번역해서 "너의 속에(within you)"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정확하게는 내 개인의 내부가 아니라 너와 나 사이에, 사람들과의 관계에 천국이 있다는 얘기라는 거죠. 그러니까 결국 여럿이서 같이 땀을 흘려 일하고, 같이 놀고, 서로 보살피면서, 함께 밥 먹고 사는 데서 사람다운 삶이 존재한다는 뜻이죠.

  미국에 예수의 생애를 평생 연구해온 종교사학자로 존 도미니크 크로싼이라는 학자가 있는데, 이 사람은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인물로서 예수를 꼭 볼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교회에서 예수를 어떻게 신화화해왔든지 간에 성경에 나타난 예수의 가르침은 본질적으로 그 당시 예수의 실존적 상황에 깊은 관계가 있다는 관점이지요. 이 학자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핵심은 복음서를 통해서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는데, 그것은 한마디로 같이 밥 먹어라(eating together)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의 아픔을 낫게 해주는 것(healing)이라는 겁니다. 이것은 단순히 질병을 치료하는(cure) 게 아니라 몸과 마음과 심령의 건강을 다 아우르는 포괄적인 치유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이것도 단순히 의료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신적, 영적인 교감의 문제인 거죠.

  그런데 크로싼이라는 학자는 이러한 복음서의 핵심적인 가르침은 근원적으로 당시의 지중해 연안지방의 유태 농민의 세계관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책 제목이《역사적 예수》인데 부제가〈지중해 연안의 유태인 농민의 생애〉로 되어있습니다. 여기서 농민이라고 하면 절대로 대농(大農)을 얘기하지 않아요. 농민은 항상 소농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음식 나누어 먹는 것은 근본적으로 농민의 풍습이고 세계관이라는 거죠. 복음서에 보면 예수가 굉장히 급진적이잖아요. "천국은 이와 같으니" 하면서 드는 예수의 몇몇 유명한 비유 중의 하나에, 어떤 장자가 저녁밥을 해놓고 사람들을 초빙한 이야기가 있잖아요. 동네 부자들과 세력가들을 집으로 불러서 같이 저녁식사를 하기로 약속이 되어있는데 시간이 되어도 이 사람들이 안 와요. 그래서 하인을 보냈는데 전부다 바빠서 지금 못 온다는 전갈이 옵니다. 무슨 갑자기 할 일이 생겼다, 다른 약속 때문에 못 간다, 부자들이나 잘난 사람들은 항상 이렇습니다. 그래서 장자가 하인을 보고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 저 큰 신작로에 나가서 지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누구든지 보이는 대로 데리고 와라, 그 사람들하고 같이 식사하자, 그렇게 말해요. 그런데 이 학자의 얘기를 들어보니까 이건 대단한 이야기예요. 당시도 위계사회이기 때문에 사회적 신분이 다른 사람끼리는 같은 식탁에 절대로 안 앉았답니다. 계급이 같고, 신분이 같고, 인종이 같고, 종파가 같아야 식탁에 같이 앉는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신작로에서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데리고 와서 같이 식사하자는 이야기는 인간사회에 있는 모든 차별과 불평등성을 전부 근원적으로 부정하는 굉장히 혁명적인 선언인 셈이죠. 그런데 이 사상의 뿌리가 무엇이냐 하면 그게 바로 농민의 세계관이라는 겁니다.

  제가 바르게 이해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동양의 노자사상의 근본 뿌리도 농민의 세계관이라고 해요. 당시 중국은 이미 국가체제를 만들어서 왕이 있고 통치체제가 확립된 계급사회였지만, 중국의 변방에는 제도화된 통치체제도, 지도자도 없이 그냥 풀뿌리 민중들끼리 자유롭게 마을을 형성해서 살고 있었는데, 그 사람들이 바로 오랑캐란 이름으로 불리던 사람들입니다. 노자의 무위자연이라는 사상은 그런 사람들의 생활을 묘사한 것이라는 견해지요. 노자는 요순사회도 이미 아니라고 하잖아요. 아무리 어진 정치를 한다 하더라도 이미 국가체제니까 진정한 자주적, 자치적 민중 공동체는 아니지요. 청동기 시대 초기에 자발적으로 상호부양의 유대관계를 이루어서 살았던 농민의 세계관이 바로 도가사상의 뿌리라는 얘깁니다. 모든 사람이 아무 차별 없이 한 지붕 밑에서 같이 밥 먹는 대동세상 말입니다. 위계질서가 확립된 사회가 되면 말이 쉬워서 그렇지 자기 하인하고, 거지하고 같이 밥 먹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와 같은 밥을 같이 먹는다는 근원적인 평등의 세계관, 즉 뿌리깊이 농민적인 가치를 우리가 상실했기 때문에 이 세상이 이렇게 지옥이 되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부분적으로 땜질을 한다고 해서 해결이 될 리가 없습니다. 며칠 전에 부시 대통령이 와서 전쟁은 안하겠다고 말했다고 해서 다들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는 모양이지만, 참으로 서글프고 비참한 이야기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민족의식을 발휘해서 우리도 힘을 길러야 된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저는 그러한 부국강병의 논리는 거꾸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 사람들에게 정말 사람이 어떻게 사는 게 사람답게 사는 것인지 보여줄 만한 생활을 우리가 창조해야 합니다. 꿈같은 소리를 제가 하고 있는지 몰라요.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그런 게 없겠는지 끊임없이 틈새를 비집고 찾아보면서, 이 야만적인 사회의 지배논리를 거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대로 그냥 체념하고 따라갈 수는 없잖아요. 우리가 정말 자식들을 사랑한다면 말입니다.

  오늘 너무 심각한 얘기만 해서 아름다운 시를 한편 읽고 끝내겠습니다. 평생 농촌에서 가난하게 살다가 간 프랑스의 시인 프란시스 잠이 쓴 시인데, 여러분에게 들려드리고 싶어서 번역시집《새벽의 삼종에서 저녁의 삼종까지》(곽광수 옮김)를 가져 왔습니다. 제목이〈위대한 것은 인간의 일들이니 …〉로 되어있는 작품인데, 이 시에서 어떤 인간의 일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것이라고 시인은 생각하는지 한번 들어봅시다.

 

위대한 것은 인간의 일들이니
나무 병에
우유를 담는 일,
꼿꼿하고 살갗을 찌르는
밀 이삭들을 따는 일,
암소들을 신선한 오리나무들 옆에서
떠나지 않게 하는 일,
숲의 자작나무들을
베는 일,
경쾌하게 흘러가는 시내 옆에서
버들가지를 꼬는 일,
어두운 벽난로와, 옴 오른
늙은 고양이와, 잠든 티티새와,
즐겁게 노는 어린 아이들 옆에서
낡은 구두를 수선하는 일,
한밤중 귀뚜라미들이 날카롭게
울 때 처지는 소리를 내며
베틀을 짜는 일,
빵을 만들고
포도주를 만드는 일,
정원에 양배추와 마늘의
씨앗을 뿌리는 일,
그리고 따뜻한
달걀들을 거두어들이는 일.
 

  이런 '위대한' 일들을 하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저도 정말 간절해요. 얘기 그만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