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낙청의 시국인식

수궁원 2010. 1. 4. 15:10

2010년은 한국현대사의 사건들이 몇십주년 또는 일백주년을 채우는 이른바 '꺾어지는 해'다. 주권을 일본에 빼앗긴 경술국치(庚戌國恥) 100주년에다 한국전쟁 발발 60주년, 4·19혁명 50주년, 5·18광주민주항쟁 30주년, 그리고 6·15공동선언 발표 10주년이 다가온다.

물론 딱히 꺾어지는 해가 되는 과거만 되돌아볼 일은 아니다. 가까이는 아직 초상도 못 치른 채 1주기 곧 소상(小祥)날이 돌아오는 용산참사와 두 전직 대통령의 서거 1주년이 모두 가슴에 새길 날들이다. 게다가 2010년은 이명박정부 3년차에 지방 차원에서나마 전국적인 선거가 열리는, 그 자체로 역사를 만들 잠재력을 안은 해다.

어쨌든 이런 해에 제대로 앞길을 헤쳐나가기 위해서도, 나라의 역사를 하나같이 요동치게 만들었던 지난날의 큰 사건들을 돌아보면서 그것이 남긴 유산에서 무엇을 이어가고 무엇을 바꿔낼지 고민하는 일이 중요하다.

▲ 2010년은 이명박정부 3년차에 지방 차원에서나마 전국적인 선거가 열리는, 그 자체로 역사를 만들 잠재력을 안은 해다. ⓒ뉴시스

식민지 시대에서 6·15 공동선언까지…현대사의 유산들

그중 1910년 이후 주권상실의 역사는 당연히 극복의 대상이다. 식민지시대의 역사를 온통 부정하자는 것은 아니다. 남의 나라 종살이를 하는 도중에도 우리가 스스로 자기 삶의 주인으로 깨우치고 분기해서 이뤄낸 것이 적지 않고, 일본이 주인 행세를 한답시고 결과적으로 우리의 머슴 노릇을 해준 면도 있다. 그렇더라도 식민지지배로 인한 노예생활의 역사가 한반도 삶의 구석구석에 식민성의 해독을 심어준 점을 '나라의 부끄러움'으로 되새겨야 함은 물론이다.

1950년의 6·25는 우리 민족이 식민지지배 청산의 온전한 주인이 못 됨으로써 남북으로 분단된 데서 파생한 참화였다. 물론 전쟁기간도 아무런 성취 없이 당하면서만 보낸 세월은 아니었지만,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그 어떤 보상을 겨냥해서도 결코 반복해선 안될 역사임이 명백하다. 게다가 동족상잔을 겪은 뒤 분단이 '분단체제'로 굳어지면서 독재와 차별 등 식민지시대 이래의 온갖 사회적 병폐가 한반도 전역에 걸쳐 다양한 형태로 뿌리내리게 되었다.

1960년의 4·19혁명과 80년의 5·18민주화운동은 모두 이런 의미의 식민성을 극복하려는 한국 민중의 몸부림이었다. 4·19의 경우 이듬해 군사쿠데타로 독재타도의 성과가 역전되었다. 그러나 박정희시대의 '산업화'에 앞서 민주화운동과 4·19혁명이 있었다는 점이야말로 한국현대사의 자랑이다. 민주주의가 정착할 사회적 기반이 부족해서 '미완의 혁명'으로 끝난 것은 사실이지만, 제1공화국에 대한 4·19의 단죄가 없었더라면 제3공화국 이래의 경제발전 또한 없었을 것이다.

5·18은 4·19하고도 또 달리 처절하게 진압되었다. 하지만 87년 6월 민주화승리의 원동력으로 남았을 뿐 아니라, 신군부의 권력탈취가 과연 민주주의의 기반이 될 산업화의 부족 때문이었나를 묻게 만든다. 분단체제 속의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있던 반민주세력이 자기보존을 위해 선제공격으로 나온 면을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2000년 6·15공동선언이 남북관계의 역사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역사에서도 하나의 이정표가 되는 이유가 거기 있다.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은 4·19 이래--박정희·전두환의 독재시대를 포함하여--결코 부정된 바 없는 국가목표이며 이 목표를 향한 꾸준하고 합리적인 전진이야말로 대한민국 선진화의 필요조건 중 하나인데, 바로 그러한 전진에 필수적인 남북정상 간의 합의가 드디어 성사되었던 것이다. 그만큼 분단체제의 특권에 안주하려는 세력에는 위협적인 사건이었고, 공동선언을 깎아내리는 움직임이 줄곧 이어져온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런저런 현대사의 유산을 2010년에 얼마나 이어가거나 바꿔낼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최근 우리 사회의 흐름을 잠시 살펴보자.

MB정부의 '선진화 원년' 선포…오히려 '3대 위기' 불러

2008년 2월에 출범한 이명박정부는 '선진화 원년'을 선포했다. 이후의 실적에 대한 평가는 다양할 수 있겠지만 진정한 선진화가 실현되었다고는 정권담당자들 자신도 주장하지 못할 듯하다. 다만 실현이 안된 책임을 국민의 몰이해와 반대세력의 발목잡기, 또는 비핵화만 하면 엄청 잘해주겠다는데도 좀처럼 말을 안 듣는 북한정권의 한심한 작태에 돌리고 있을 뿐이다.

2009년 들어서는 '선진화'론에 맞선 '3대위기'론이 도리어 사람들 사이에 설득력을 지니게 되었다. 곧, 민주적 절차와 시민적 권리를 훼손하는 민주주의의 위기, 빈부격차의 확대와 복지의 후퇴를 가져온 서민경제의 위기, 그리고 6·15선언 이래 공들여 쌓아온 남북화해의 성과를 거의 파탄시킨 남북관계의 위기 등 세 겹의 위기를 이명박정부가 초래했다는 것이다.

꺾어지는 해의 언어로 표현한다면, 지난 2년의 흐름을 주도한 집권세력은 4·19와 5·18 그리고 6·15의 선진화 동력을 계승하고 활용하기보다 6·25의 기억에 의지하고 심지어 경술년의 강제병합을 선진화의 중대한 이정표로 삼은 듯한 특권층 위주의 강압적 발전전략을 견지함으로써 세상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놓은 셈이다.

그런데 3대위기론도 현재의 사태를 충분히 설명해준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예컨대 실업자·미취업자·저임금비정규직·파산자영업자가 넘쳐나며 좀 번다는 사람도 사교육비와 주택비에 짓눌리는 오늘의 우리 민생이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음은 분명하고, 이명박정부의 부자편중 정책이 위기를 가중시키고 있는 것 또한 명백하기는 하다. 그러나 빈부양극화는 김영삼정권 말기의 경제파탄과 IMF의 지침에 따른 수습 이래 계속되어온 현상인데다, 잘못된 것은 세계경제의 위기 탓이요 정부의 노력을 믿고 참아줘야 그나마 좀 나아질 거라는 주장을 실증적으로 격파하기란 간단치 않다.

남북관계의 경우도 김대중·노무현 시대의 성취를 거의 다 까먹었지만, 어쩌면 그 성취가 워낙 획기적이었던 덕에 아직 완전히 까먹지는 않은 상황이며 이제 북·미관계의 새로운 전진과 더불어 위기수습의 가닥이 잡혀가는 기미마저 보이고 있다.

3대위기 중 정권의 책임이 가장 실감나는 대목은 민주주의의 위기일 테다. 하지만 이 대목 또한 '민주 대 반민주' 구도로 쉽게 정리될 만큼 명료하지 않다. 삼권분립의 헌정질서가 위협받고 있지만 아직 사법부가 완전히 죽지는 않았고 국회에서도 의석 3분의 1이 채 안되는 야당들의 저항이 무의미하지는 않은 상황이어서 '독재로의 회귀' 또는 '파시즘'을 들먹이는 언설이 성급한 탓도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도대체 이 정권이 독재를 하려는 건지 아니면 (당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더 괴롭지만) 독재의 패러디극을 연출하겠다는 건지 헷갈린다는 점이다. 민주주의의 위기 이전에 상식과 기본적인 염치지심(廉恥之心)의 위기, 나아가 '법치'니 '중도'니 '녹색'이니 하며 한국어의 소통가치를 위협하는 언어생활의 위기가 진행되고 있는 형국이다.

2010년 선거는 새로운 역사를 향한 기념비적 이정표 세울 기회

그 결과 오늘의 상황은 그런대로 기강이 잡힌 독재이던 박정희시대보다 더 먼 과거, 어떤 면에서 아프리카 일부 신생국의 '도적정치'(kleptocracy)에 가까웠던 이승만과 자유당 시절을 연상시키는 바가 있다. 그런데 4·19와 5·18 그리고 6월항쟁을 경과한 나라에서 이런 판이 벌어지니 차라리 어처구니없고 허탈하기까지 한 것이다.

동시에 바로 그런 역사를 거쳐온 한국이기에 '꺾어지는 해'를 맞아 4·19나 87년 6월 같은 민중봉기에 의한 정권전복을 꿈꿀 일은 아니다. 이명박정부는 이승만정권도 박정희정권도 아닌 그 특유의 체질과 속성을 지닌 21세기초 한국의 현실이며 그동안 우리 국민의 성장과 성취를 바탕으로 2010년대 특유의 방식으로 제어하고 견인해야 할 상대인 것이다.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도 4·19 이래의 역사가 열어놓은 합법적인 선거공간이 중요하고 제도권 안팎의 공간을 활용하며 성장해온 시민사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2010년의 선거공간이 정권교체의 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것은, 오늘날 한국에서 정권의 향배 못지않은 핵심과제가 정치권력이 다양한 사회세력과 어떻게 협동해서 국가를 경영하는가 하는 '거버넌스' 문제이기 때문이다(<거버넌스에 관하여> 창비주간논평 2008.12.30). 선거공간에 매몰되지 않으면서도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지혜를 모아 2010년의 선거를 멋지게 치러낸다면 새로운 역사를 향한 기념비적 이정표를 세울 수 있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8·15 경축사에서 '사회통합위원회'의 구성을 약속하여 최근에 출범시킨 것도 2008년의 촛불과 2009년 벽두 용산참사의 후폭풍 그리고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추모열기에 떠밀린 결과일 터인데, 실속없는 위원회 구성이 중요한 게 아니다. 헌법과 법률에 따라 독자적 권한이 이미 부여된 기관들을 대통령이 존중하고 언론과 시민단체 및 양심적인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국정에 충분히 반영되는 체계를 짜는 데까지 나아가야 하며, 새해 선거공간에서 국민들이 결연한 의지를 표현하는 일이 이 역사적 과정의 다음 수순으로 대두한 것이다.

개개인에게도 이것은 성찰과 자기쇄신의 기회다. 나의 평상심에 아니다 싶은 것은 누가 뭐라 해도 아닌 것임을 확인할 때가 되었다. 권력을 잡았다고 이토록 멋대로 해대고 없는 사람이라고 이처럼 천대받는 세상이 내게 아니다 싶으면 다수의 평범한 시민들 마음에도 아닌 것이다. 다만 혹시 혼자서 아니라고 하다가 나만 우스워지는 게 아닐까 하는 불신과 두려움이 진실을 가리고 있을 뿐이다. 2010년은 나 자신부터 이웃과 동료 유권자들에 대한 신뢰를 되찾는 해가 되어야 하며, 그러할 때 3대위기를 완화함은 물론 상식과 인간적 염치를 회복하는 방향으로 흐름을 바꾸는 새 판을 짤 수 있을 것이다.

 
 
 

백낙청의 시국인식

수궁원 2009. 6. 10. 10:26

후광(後廣) 김대중학술상 수상의 영예를 베풀어주신 전남대학교와 심사위원 여러분께 먼저 감사드립니다. 축하를 위해 이 자리에 와주신 모든 분들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솔직한 심경을 말씀드리건대 워낙이 학술활동이 부진한 제가 다른 상을 받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이 학술상을 타게 되어 죄송하고 면구스러운 마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전남대가 제정하고 5·18연구소가 주관하는데다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이름이 담긴 상을 받게 된 것은 어쨌든 기쁘고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민주주의와 인권신장 그리고 한반도 평화에 기여한 공적은 이미 한국인 최초의 노벨상을 통해 세계적인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김대중학술상을 더욱 영광스럽게 여기는 까닭은 그가 노벨평화상 수상자며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영예에 안주하지 않고 지금도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한 현역 투사로서 노고를 마다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후광선생이나 우리 국민은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참여정부 아래서도 한반도의 평화에 여러차례의 위태로운 고비가 있었지요. 그럴 때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혹은 우리 정부에 대해, 혹은 국민과 해외여론을 향해, 또 어떤 때는 북측 지도자에게, 충고와 설득의 메씨지를 발신함으로써 난국을 타개하는 데 중요한 이바지를 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또 다릅니다. 부시 미국대통령이 오랜 대북적대정책을 겨우 바꾸었는가 했더니, 바로 이곳 한국에서 남북화해에 무성의하고 한반도평화관리에 무능한 정권이 들어섬으로써 6·15공동선언 이래 공들여 쌓은 탑들이 여기저기서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더구나 이런 남북관계의 악화는 국내에서 민주주의의 심각한 후퇴와 서민경제의 파탄이 겹친 이른바 ‘3대 위기’의 일부가 되어 해결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 등장 이후 기대를 걸었던 북미관계마저 지금은 부시 정권 말기보다 오히려 더 긴장된 형국입니다. 이는 한반도문제의 우선순위를 뒤로 돌린 미국측의 인식부족 탓도 있겠고, 북측의 조바심이나 과욕 같은 것이 작용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특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 사태는 우리 국민의 힘으로 얼마든지 막을 수 있었고 지금도 개선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클린턴 행정부가 북미관계 정상화 일보 직전까지 갔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한국측의 꾸준한 설득을 통해 정책전환을 한 덕분이었습니다. 부시의 강경정책이 더 큰 불행으로 안 간 것도 한반도에서의 전쟁에 대한 우리 정부의 결연한 거부와 포용정책으로의 끈질긴 유도가 주효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참여정부 말기에 뒤늦게나마 두번째 남북정상회담과 10·4합의가 이루어졌는데, 만약에 새 정부가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존중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면서 과제별로 합의실행의 완급을 조절해나가는 슬기를 보였다면 북의 2차 핵실험도 없었을 테고 이명박정부의 ‘실용주의’가 한껏 빛을 발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를 통해 우리는 주변정세와 외국세력의 영향이 아무리 크다 해도 한반도문제에서는 결국 한국의 선택이 무시 못할 비중을 차지해왔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부시 행정부가 대북포용정책으로 되돌아온 후부터는 더욱이나 그렇습니다. 저는 이때부터 한반도문제 해결의 주된 전선(戰線)이 북미관계에서 남한사회 내부로 옮겨왔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 종요로운 싸움터에서 한국의 민주세력이 2007년 대통령선거와 2008년 총선거에 잇따라 패배함으로써 오늘의 북미관계 후퇴를 초래하는 데 큰 몫을 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번 학술상 시상 결정의 한 근거로 저의 분단체제론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 어설픈 학설에 약간의 쓸모가 있다면, 그것은 한반도의 평화와 재통합이 남북 각기의 내부개혁과 긴밀히 연동되어 있으며 특히 남한사회에서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이 지혜롭게 결합됨으로써만 분단체제극복의 길이 열린다는 사실을 좀더 체계적으로 분석하고자 했다는 점일 거라고 저는 생각하고 싶습니다.

아무튼 지금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한반도 평화에도 결정적 요인임을 인식하고 민주주의를 위한 결의를 새롭게 다질 때입니다. 이명박정부가 국내정치는 잘못하더라도 남북관계만은 실용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거나, 북한은 원래가 반민주적인 사회니까 우리는 남한의 민주주의 발전에나 몰두하는 걸로 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모두가 분단체제의 작동방식에 무감각한 발상들입니다. 오로지 민주화와 남북화해의 동시적 진전만이 온전한 열매를 맺을 수 있고 그 어느 때보다 절박한 민중생활의 개선도 끌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김대중학술상이 기리는 후광선생의 공적이 남한의 민주화와 한반도의 평화통일 작업을 아우르고 있는 것은 그런 점에서 하나의 표본입니다. 또한 최근에 전대미문의 범국민적 애도 물결을 일으킨 고 노무현 대통령도 참여민주주의 신장 노력과 함께 6·15공동선언의 실천강령에 해당하는 10·4선언을 이루어내는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 누구도 원망하지 말라는 그의 유언이 민주주의의 역행을 방관하면서 적당히들 좋게 지내라는 말이 아니라, 생전에 그가 추구했던 민주주의와 사회정의, 민족의 화해와 통일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폭넓게 화합하라는 당부였음은 더 말할 나위 없습니다. 저 자신도 그런 참된 사회통합과 민족화해에 헌신하는 것이 귀한 상을 주신 뜻에 보답하는 길이라 믿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백낙청의 시국인식

수궁원 2009. 6. 6. 14:05

분단현실에 대한 성찰의 필요성

2009년이 아직 3분의 2 이상 남았지만 되도록 ‘지금 이곳’의 상황에 밀착한 성찰을 하려는 취지로 연도를 명시했습니다. 남북관계를 보나 국내현실을 보나 2009년 4월 현재의 상황은 심각합니다. 불과 1,2년 전과 비교하더라도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하는 개탄이 나올 법하지요.

이런 상황을 성찰하면서 ‘분단현실’이라는 각도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때 ‘분단현실’은 남북으로 갈라진 한반도뿐 아니라 그 남쪽 대한민국의 현실에도 적용되는 개념입니다. 한국의 현실은 어디까지나 분단국의 현실이요 분단체제의 일부로 존속하는 사회의 현실인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유달리 성찰을 저해하는 현실이기도 합니다. 성찰의 기본은 자신에 대한 반성인데 분단현실은 남 탓하기에 꼭 좋은 여건입니다. 애초에 분단을 강요했던 외세를 탓하고, 남북이 서로를 탓하고, 내부의 비판자마저 상대방 또는 외세의 앞잡이로 따돌리는 일이 습관화되어 있는 현실이지요. 동족상잔의 업보로 한국전쟁 이후 분단이 더욱 굳어진 이래, 성찰부재의 풍토는 한반도의 분단구조가 일정한 자기재생산력을 갖는 ‘분단체제’로 뿌리내리는 데 한몫을 했습니다. 흔히 분단체제의 특성으로 남북의 기득권세력이 일종의 ‘적대적 공생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을 듭니다만, 이런 공생관계가 가능해지는 데도 남을 탓하면서 성찰 없는 인생을 지속하는 우리네 마음의 타성이 작용했을 터입니다.


삼중의 위기와 분단체제

3중의 위기
흔히 한국사회는 지금 경제위기와 더불어 민주주의와 남북관계가 동시에 위협받는 3중의 위기에 봉착했다고 말합니다.1) 그중 경제위기는 세계적인 요인의 작용이 더 큰 게 사실이지만, ‘중산층과 서민경제’에 초점을 맞출 경우 분단의 영향을 한층 실감할 수 있습니다. 실은 한국경제의 전반적인 위기상황도 분단현실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뒤에 다시 언급하기로 하지요.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의 상호연관성
이명박정부 출범 이래 한국 민주주의가 후퇴해온 현실은 가히 참상이라 이를 만합니다. ‘용산 참사’는 하나의 상징적 사건입니다. 철거민들의 구체적인 잘잘못이 무엇이었건 공권력에 의해 국민들이 무자비하게 공격당해 죽어나간 상황에서 정부와 집권세력은 희생자들만 나무라고 그들의 인권이나 민주적 절차에 대해서는 도대체 무관심했습니다. 인권무시와 민주주의파괴는 지금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지요. 삼권분립 등 어렵게 쟁취한 민주적 원칙들이 크게 흔들리고 있으며, 민주화과정에서 정부의 통제로부터 상당한 자율권을 확보했던 언론은 다시 정권의 직접적인 장악 하에 들어가거나 소수의 거대신문 및 재벌에 넘겨질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이런 정황들을 하나하나 열거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경악하고 분노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다만 우리의 경악이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도저히 역행할 수 없이 확립되었다고 믿었던 탓이라면, 이 또한 분단현실에 대한 성찰이 미흡했던 사례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한국에서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이 맞물려서 진행되어온 것은 하나의 상식인데다, 1987년 6월항쟁의 성과도 분단체제(또는 ‘1953년체제’)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 남한만의 성과였다는 점에서, 20년의 민주화과정을 겪은 뒤에도 “비록 군부 쿠데타에 의한 역전 가능성은 거의 사라졌지만 [민주주의의] ‘불가역적 달성’이라고 보기에는 아직 이르다”2)는 진단이 불가피했던 것입니다.

이는 1997년 IMF사태 이래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신자유주의에 투항함으로써 민주주의의 후퇴가 이미 시작되었다는 주장과는 다른 발상입니다. 진보진영 일각에서 제기되는 ‘97년체제’론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의도에서 출발하지만 97년체제론과 우파 담론은 뜻하지 않게 서로 공명하는 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 바 있는데,3) 지금쯤은 97년체제론자들 자신도 진짜 민주주의 후퇴가 어떤 것인지 ‘끓는 국맛’을 보고 있겠지요. 요는 개혁정권하 민주주의의 실상에 대한 지나친 단순화 역시 분단현실에 대한 성찰의 부족을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남북관계의 악화와 분단체제의 특성
국내의 민주화작업이 분단현실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음을 통찰할 때, 작금의 민주주의 후퇴가 남북관계의 악화를 수반한 사실은 놀랄 일이 아닙니다. 물론 민주화와 남북관계 발전이 일대일로 상응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남북화해의 꾸준한 진전 없이 민주화가 지속될 수 없듯이, 민주주의의 후퇴가 일정 수준을 넘는 상황에서 남북관계만 잘될 수도 없다고 봐야겠지요.

그런데 분단체제론을 주창해온 저 자신도 이런 당연한 사태전개를 충분히 예견하지 못했음을 고백합니다. 저는 처음부터 이명박 대통령에게 큰 기대를 안한 축입니다만, 남북 경제협력만은 그가 ‘실용주의자’답게, 그리고 보수정권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과감하게, 추진할지 모른다는 기대를 가졌더랬지요.

하지만 오늘의 남북관계는 그야말로 참담합니다. 민족화해의 상징이던 금강산관광이 막힌 지 오래고 개성관광도 중단되었으며 개성공단은 잔뜩 위축되어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였습니다. 전세계의 주목과 갈채 속에 연결됐던 남북의 철길도 다시 끊어진 상태입니다. 남북간에 쏟아지는 불신과 적대감의 표현을 보면, 6·15공동선언 이후의 신뢰구축노력은 고사하고 90년대 초에 상호 인정과 존중을 약속한 남북기본합의서 이전으로까지 돌아간 느낌입니다.

저는 이것이 이명박정부의 어떤 일관된 전략이나 이념 때문이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물론 지난 정권들의 대북정책과 다르게 하겠다는 이념적 지향도 있고 계획도 있었겠지요. 게다가 국내문제에서 그렇듯이 국정담당세력의 전반적인 무능과 무정견(無定見)·무교양(無敎養)도 크게 한몫했습니다.

그러나 분단현실을 차분히 성찰할 때 이 모든 요인들의 결합에는 분단체제 특유의 어떤 특징이 관철되고 있음을 실감합니다. 대통령 자신이 비록 남북관계를 국내정치와 분리시켜 전향적인 대북정책을 추진하고 싶어도, 민주주의와 민생의 퇴보로 국내 민심을 잃었을 때 마지막으로 의지할 것은 거대신문 등 사회의 요소요소를 점거하고 있는 기득권세력입니다. 작년의 촛불시위 이후 벌어진 상황이 바로 그것이지요. 정권담당자로서는 일시적인 응급처방으로 저들을 이용하고 한숨 돌린 뒤 다시 대북정책을 국내정책과 분리해서 추진할 생각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단체제의 성격상 한쪽에서 수구세력이 득세하면 상대편에서도 비슷한 메카니즘이 작동하기 마련이고, 남북관계 악화의 책임은 저쪽에 있다는 ‘남의 탓’ 습성이 새로 힘을 얻게 됩니다. 궁여지책으로 ‘집토끼나 챙기자’고 선택했던 대북강경책이 어느덧 손쉽게 여론의 지지도를 높이는 방도로서 집권자를 유혹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유혹에는 치명적인 착시현상이 끼여 있습니다. 오늘날 남북관계가 악화될 대로 악화된 것 같지만 실은 남북간에 약간의 충돌만 있어도 한국경제가 요동치고 국민들이 사재기에 나서던 6·15 이전과는 천양지차의 상황입니다. 이명박정부가 ‘기다리는 전략’을 구사할 수 있는 것도 지난 10년 동안 쌓아놓은 기반 덕분이지요. 게다가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 등장으로 한반도 긴장이 어느 수준 이상으로는 안 가리라는 기대도 있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남북대결을 빌미로 독재정치를 수행하던 박정희시대를 복원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결과적으로 분단체제의 동요는 계속되면서 그 극복의 길이 묘연해지고, 민주주의가 후퇴하되 권위주의 질서의 확립도 불가능한 어정쩡한 혼란기가 연장될 우려만 커지고 있습니다. 남북관계만 아니라 한국사회 전체에 어떤 획기적인 전환이 요청되는 시점입니다.


성찰 부재의 유형들

수구세력의 타산과 맹목
앞서 말씀드렸듯이 분단현실에 대한 성찰의 부족은 분단체제를 존속시키는 힘으로 작용합니다. 이는 어떤 사회현실이 일종의 체제로 자리잡음으로써 획득하는 일반적인 속성이기도 하지요. 역사적으로 형성되고 사회적으로 구성된 특정 현실을 마치 자연스러운 환경인 양 받아들이게끔 사람들이 길들여지는 것입니다.

이런 가운데도 우리 사회에는 분단을 분명하게 의식하고 이를 자신들의 단기적 이익을 위해 활용하는 데 극도로 유능한 세력이 있습니다. 자신의 특권적 지위를 누가 문제삼을 때마다 ‘남북분단의 특수상황’에서 불가피한 제도라고 우겨대고, 문제제기하는 사람들을 ‘친북’이요 ‘빨갱이’로 몰아세우곤 합니다. 다시 말해 그들은 분단현실에 대한 성찰은 없지만 분단을 누구 못지않게 의식하며 약삭빠르게 이용할 줄 압니다. 그리고 북한정권을 소리 높여 비난하지만 결과적으로 북의 기득권세력을 강화하는 데 기여하며 그 점을 딱히 앞아하지도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진정한 보수주의가 아닌 수구세력이라 일컬어도 틀린 말이 아니겠지요. 대한민국의 참 보수라면 민주주의를 포함한 대한민국 60년의 정당한 성과를 간직하고 지켜내려는 의지가 있어야 하며, 분단체제의 변혁을 꿈꾸지는 않더라도 분단체제가 흔들리는 현실을 직시하고 그 동요기를 관리하는 능력을 지녀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분단체제가 굳건했던 시기로 되돌아가려는 부질없는 시도로 도리어 혼란을 조장하거나, 북한정권의 조기 붕괴라는 개연성도 희박하고 감당할 대안도 없는 사태를 꿈꾸는 공상의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물론 저들의 반북주의가 남녘에서 당장 자신의 잇속을 챙기는 데 유용하다는 점에서 결코 몽상가들만은 아니지요. 어떤 의미로는 사익실현의 대가들이고 숙달된 기술자들인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성찰 없는 통일운동의 역효과
이와 대조적으로 분단극복을 역설하며 더러는 이 목표를 위해 훌륭하게 헌신해온 통일세력이 있는데, 이들 중 상당수도 분단을 의식하기는 하되 분단현실에 대한 성찰이 부족하다는 문제점을 드러냅니다. 한반도의 분단이 원래 외세에 의해 강요된 것은 사실이지만, 분단체제가 성립한 데에는 한반도 내부세력의 작용도 있었고 전쟁보다는 분단이 낫다는 주민들의 실감도 가세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세월이 흐를수록 분단현실에서 이득을 보는 특권층이 남과 북 양쪽에 상당한 기반을 갖게 되었습니다. 분단체제의 이런 범한반도적 성격을 무시하고 남녘의 극우세력과 주한미군만 사라지면 자주통일이 된다고 믿는 것은, 북쪽의 정권만 무너뜨리면 자유민주주의 통일이 된다고 주장하는 것만큼이나 공상적입니다. 따라서 다수 국민을 통일작업에 끌어들이지 못하고, 오히려 민간통일운동을 친북행위로 몰고 가는 수구세력에게 빌미를 제공하기 십상입니다. 이처럼 분단체제 극복에 실질적인 기여를 못하는 분단극복운동 내지 ‘민족해방’운동을 진정한 진보로 인정하기는 힘들겠지요.

진보진영 일각의 ‘후천성 분단인식결핍 증후군’
진보의 이름을 걸고 전통적 통일운동세력의 진보성을 부인하는 지식인·활동가·정치인 가운데도 분단현실에 대한 성찰이 부족한 사례는 수두룩합니다. 그중 일부는 ‘반북좌파’라 일컬음직한데--우리 사회에는 친북좌파 외에 반북좌파도 있고 문선명 총재나 고 정주영 회장 같은 친북우파도 있지요--북한현실에 대한 그들의 비판에는 경청할 점도 많습니다. 그러나 분단체제 전체에 돌려야 할 책임마저 오롯이 북한정권에 귀속시킨다는 점에서 수구세력의 북한 때리기와 상통하는 바 있습니다. 분단체제는 한반도의 남과 북 외에 세계체제의 주요 행위자들까지 관련된 복잡한 체제니만큼 그 특정한 국면에 대한 책임규명은 실로 복잡하고 다양하게 마련입니다. 그렇다고 북한정권의 책임이 여타 행위자의 몫보다 확연한 경우마저 ‘분단체제 전체의 책임’ 운운하며 호도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분단체제는 남과 북의 모두가 참여하고 있는 매우 특이한 복합적 공동체로서, 어느 경우에도 참여자 개개인의 책임이 전무할 수 없습니다. ‘나는 멀쩡한데 쟤네들은 왜 저 모양이냐’라는 성찰부재의 태도를 진보의 이름으로 정당화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반북까지는 아니더라도 북의 존재를 되도록 무시하면서 남한만의 발전을 꿈꾸는 세칭 진보세력이 의외로 많습니다. 특히 지식인·학자들의 세계에서 그렇지요. 이는 한국의 지식계가 이땅의 구체적인 현실에 뿌리박은 공부보다 분단이 없는 외국의 현실에 연유한 이론의 학습과 전파에 치중한 탓이라 생각됩니다만, 아무튼 남북의 점진적 재통합을 수반하지 않는 평화국가 또는 평등사회의 수립이라든가 남한의 독자적 사회주의 또는 사회민주주의 건설 같은 주장을 ‘아니면 말고’ 식으로 내던지는 사례를 자주 만납니다. 저는 이를 ‘후천성 분단인식결핍 증후군’이라 부르기도 합니다만, 이런 식의 무책임한 진보주의가 적어도 단기적 현실대응력에서는 뛰어난 수구세력을 제압하지 못할 것은 뻔하지요. 아니, 때로는 수구세력에 대한 저항을 오히려 약화하는 일도 없지 않습니다. 참된 진보와는 거리가 먼 것이지요.

중도세력은 오합지졸인가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갖가지 편향된 입장을 떠나 중도를 찾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좌우의 극단을 뺀 중간세력이라면 수적인 다수를 이룰지언정 오합지졸에 불과합니다. 선거철에 어떻게든 다수표만 긁어모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정객이라면 이들을 겨냥한 ‘중도 마케팅’으로 만족할 수 있겠지요. 그러고는 선거가 끝나면 기존질서의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있는 수구세력과 기꺼이 손잡거나 적어도 휘둘리면서 적당히 세월을 보내고 다음 선거를 준비하는 거지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원칙 있는 중도, 일관된 경륜과 지속적인 실행력을 갖는 중도입니다. 단순히 중간지대에 많은 사람들이 포진해 있어서가 아니라 한반도 분단현실의 특성상 그 어떤 극단적 노선도 분단체제가 남북 주민들의 삶에 들씌워놓은 멍에를 벗기고 족쇄를 풀어줄 수 없다는 성찰을 바탕으로 정립되는 ‘변혁적 중도주의’가 바로 그것입니다.



변혁적 중도주의: 성찰하는 진보와 합리적 보수의 만남

변혁적 중도주의의 개념과 성립근거
‘변혁적 중도주의’는 현실정치의 표어로는 적당치 않습니다. 변혁이라는 낱말이 보수적 또는 중도적 성향의 사람들에게도 위화감을 주는 수가 있기도 하지만, ‘변혁’과 ‘중도’가 한데 묶인 사실 자체로도 대중적 구호의 간명함을 잃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바로 이 점이 ‘변혁적 중도주의’로 하여금 한갓 표어를 넘어 개념으로 승격토록 해준다고 저는 감히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변혁의 대상은 한반도의 분단체제입니다. ‘분단체제’도 간단치 않은 개념입니다만 지금은 어느정도 공론화된 개념이므로 여기서 길게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변혁’도 ‘혁명’을 에둘러 말하거나 단순한 ‘변화’를 더 그럴싸하게 표현한 것이 아니라, 발본적이면서도 꽤 장기적이고 굳이 폭력혁명을 수반하지 않는 사회변동을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변혁적 중도주의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이런 개념들에서 출발하여 몇가지 전제를 충족시켜야 합니다. 첫째 분단체제가 더 나은 체제로의 변화를 요하는 억압적인 체제이고, 둘째로 그 변화의 내용은 전쟁이나 혁명일 수 없고 그렇다고 분단체제의 단순한 개량일 수도 없으며, 셋째로 더 나은 체제로의 변혁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등의 전제들입니다. 그럴 경우 분단체제의 변혁을 위해 폭넓은 중도세력이 힘을 합쳐야 하다는 결론은 쉽게 따라올 것입니다.

한반도의 남과 북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억압적이며 남의 경제력이나 북의 군사력에 비해 주민들의 삶의 질이 (각기 다른 정도로) 열악한 사회라는 점은 요즘 들어 한층 실감되는 주장입니다. 다만 분단을 만악(萬惡)의 근원으로 설정하는 것도 과학적인 태도는 아닌 만큼, 억압적인 현실의 어떤 부분이 분단에 기인했거나 분단 때문에 가중되고 있느냐를 정확하게 분석하는 과제가 남습니다.

어쨌든 이런 현실을 전쟁이나 폭력혁명으로 타파하기에는 한반도가 너무나 위험한 지역이라는 사실 또한 분명합니다. 반면에 한때 분단체제가 동요기 내지 해체기에 들어섰다는 희망에 부풀었던 이들조차 요즘은 분단체제 극복이 과연 가능할지, 차라리 분단체제가 다시 맹위를 떨치는 현실을 인정하면서 부분적인 개량이나마 시도하는 게 현명하지 않을지를 고민하는 경우가 눈에 뜨입니다.

분단체제의 복권은 불가능
최근에 한 소장학자는 이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하며 분단체제 극복노력의 중요성을 다시 확인한 바 있습니다.

“한반도에서는 이제 10년간의 분단체제의 동요가 중단되고 다시 분단체제가 강화되는 방향으로 역사의 흐름이 전환된다고 단정할 수 있는가? 필자는 기본적으로 여전히 분단체제의 동요하는 단계에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우선 내부적으로만 보아도 남한에서 민주주의의 퇴행은 아직 구조화된 상황은 아니다. 작년 촛불항쟁이 보여준 것처럼 여전히 팽팽한 긴장상태에 있으며 민주주의를 계속 진전시키고자 하는 동력이 만만치 않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동시에 국제적 상황도 주변국가들이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며, 적어도 6자회담 메커니즘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도 남과 북의 모험주의적 행동에 제약을 가할 것이다. 냉전체제와 분단체제가 서로 조응하던 상황과는 큰 차이가 있다. 따라서 분단체제를 복권하려는 움직임은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심각한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며, 그러한 움직임이 실패할 경우 분단체제의 동요는 더욱 분명하게 드러날 가능성도 높다.”4)

다소 길게 인용한 것은 기본적으로 제가 동의하는 내용이기 때문이고, 아울러 한두 가지 의견을 여기에 덧붙임으로써 저의 생각을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겠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저는 분단체제의 동요가 지난 10년간이 아니라 1987년 6월항쟁 이래로, 그러니까 20여년에 걸쳐 진행되었다는 입장입니다.5) 다시 말해서 남한의 군사독재가 무너지고 뒤이어 동서냉전이 종식되면서 분단체제는 중요한 기둥을 잃었고, 이명박정부 하에서의 남북관계 악화가 분단체제의 복권으로 귀결하려면 김대중·노무현 정권뿐 아니라 노태우 정권의 대북정책마저 물러야 하기 때문에 그 가능성이 더욱 희박하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저는 “분단체제를 복권하려는 움직임” 자체가 그것이 남북 어느 쪽에서 일어나는 것이든 분단체제가 가망없이 흔들리고 있다는 증거라 봅니다. 이남주 교수의 지적대로 지금은 “냉전체제와 분단체제가 서로 조응하던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남북대결을 강화함으로써 분단체제를 안정시킬 도리가 없으며, 분단체제의 억압성을 초보적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활용하던 시대도 세계경제의 변화로 이미 과거지사가 되었습니다. 안될 일을 억지로 하려 드는 것은 위기를 심화시킬 따름입니다.
문제는 어차피 과거회귀와 현상유지가 다 불가능한 판에 어떻게 앞으로 나갈까 하는 것입니다.



6·15공동선언에 대한 다양한 해석
남북관계의 발전에서 2000년의 6·15남북공동선언이 획기적인 돌파구를 열었다는 점은 누구나 쉽게 인정할 수 있습니다. 논란의 여지가 남는 것은 이것이 단순히 남북관계의 돌파구냐 아니면 한국의 민주주의와 민생을 위해서도 획기적인 사건이었느냐 하는 문제겠습니다.

앞서 분단현실에 대한 성찰부족의 몇가지 유형을 열거했습니다만 6·15공동선언을 접근하는 방식에서도 그 점이 잘 드러납니다.
예컨대 수구세력의 경우입니다. 진정한 보수주의자라면 통일을 서두르지 않겠다는 쌍방의 합의가 이루어져 전쟁의 위협이 제거되고 화해협력의 과정을 통해 대한민국의 지속적인 발전이 보장될 뿐 아니라 시장경제, 자유민주주의 등 ‘보수적’인 가치가 북녘에 전파될 가능성이 열린 것을 환영하련만,6) 보수보다 수구에 해당하는 세력은 6·15공동선언 제2항이 북측의 ‘고려연방제’를 수용했다고 비난하며 국론분열의 주범으로 낙인찍고자 합니다. 이는 물론 억지입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저들 특유의 현실감각이 작용한 면은 있습니다. 6·15공동선언은 남북 양쪽의 기득권을 일정하게 보장하는 문건이지만, 강경한 남북대결의 지속만이 지켜줄 수 있는 과도한 특권들에 대해서는 위협일 수밖에 없습니다. 수구세력이 정말로 두려워하는 것은 김정일 위원장 스스로 “냉전시대에나 하던 이야기”7)로 규정한 고려연방제가 아니라 노태우정권 이래 남측이 주장해온 남북연합이 실현될 가능성이며, 따라서 6·15의 중도주의적 노선으로 국론이 단합되는 일이 없게끔 ‘현실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2항에는 별다른 관심을 안 보인 채 오로지 제1항에서 ‘우리민족끼리’ 자주통일하자고 두 정상이 합의했다는 점에서 6·15공동선언의 획기성을 찾는 일부 통일운동가들의 태도도 도움이 안됩니다. 6·15를 둘러싼 극과 극의 대립을 조장하기 쉬운 이런 태도가 기득권을 지키려는 수구세력에는 오히려 반가울 테지요. 더구나 북측이 ‘우리민족끼리’를 하나의 ‘리념’으로까지 승격시켜 매사에 적용하는 마당이니, 통일운동가들의 그런 태도는 마치 6·15공동선언이 남한 민중의 구체적인 삶과는 별개로 ‘친북’ 대 ‘반북’의 전선을 긋는 것으로 만들기 십상입니다.

반면에 IMF사태 이후 민중생활의 궁핍화를 특히 중시하는 쪽에서는 6·15공동선언을 그다지 획기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97년체제’라는 표현 자체가 6·15를 남북관계라는 ‘부차적 영역’에 국한된 사건으로 자리매기는 발상이지요. 본질적인 문제는 신자유주의에 의한 서민경제의 파탄이라는 겁니다.

‘신자유주의에 의한 서민경제의 파탄’은 오늘날 유달리 실감나는 말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런 시점이기에, 1997년과 2000년의 관계에 대해 우리는 새롭게 깨닫는 바가 있습니다. IMF 구제금융을 계기로 한국사회는 ‘신자유주의에 의한 서민경제의 파탄’을 일차 경험했습니다. 그 상황에 대응하는 한가지 방식은 오늘날 이명박정부가 추진하는 것과 비슷한 정책이었을 것입니다. 서민생활의 파탄에 아랑곳없이 신자유주의를 열성적으로 받아들이면서 그에 따른 민심이반에는 5공식 ‘법질서 확립’과 김영삼정권의 대북강경노선 계승으로써 대응하는 방식 말입니다. 물론 당시에 이미 10년의 민주화과정을 겪은 우리 국민에게 통할 수 없는 정책이었겠지요. 하지만 어쨌든 그런 가능성을 상상해봄으로써 우리는 김대중정부 아래서 우리 국민이 실제로 선택한 길, 즉 금융위기를 계기로 흡수통일의 꿈을 접고 공안정국을 자제하며 남북의 화해·협력과 한반도 평화정착에서 한국경제의 새로운 활로를 찾고자 한 길이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위해서도 얼마나 현명한 선택이었는지를 실감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2009년의 시점에서도 그 길로 되돌아가는 것 말고는 민주주의의 회생도 서민생활의 안정도 있을 수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역주행을 막아낼 합리적 보수와 성찰적 진보의 만남
요는 민생과 민주주의, 남북관계의 ‘3중 위기’를 조장하는 이명박정부의 역주행을 막아내는 일입니다. 한가지 유리한 점은, 1997년과 달리 지금은 신자유주의가 본고장 미국에서마저 완전히 신용을 잃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점에서는 우리 정부만이 외로운 ‘나홀로’ 역주행을 하고 있는 형국이지요.

하지만 분단체제에는 그나름의 작동논리가 있어, 이 체제의 퇴행적 요소들이 일단 응집되기 시작했을 때 그 흐름을 바꾸기가 간단치 않습니다. 설혹 이명박 대통령 자신이 예컨대 남북관계라는 특정 분야에서만은 좀더 실용적이고 전향적인 태도를 취할 생각을 품더라도 그게 마음대로 안되는 기제가 발동된 거지요. 이럴 때는 국민들이 대대적으로 나서서 큰 흐름을 바꿔주는 길밖에 없습니다. 다만 분단체제가 복합적인 것만큼이나 국민들도 ‘3중 위기’의 상호연관성을 통찰하며 복합적인 전략으로 대응해야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기존의 잣대에 얽매임이 없이, 성찰하는 진보와 합리적 보수가 만남으로써 폭넓고도 줏대있는 중도세력을 형성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예컨대 민주주의문제에서는 분단체제가 남한의 독자적 민주화에 부과하는 한계를 인정하고 남북화해의 진전과 결부된 현실적인 개혁노선에 합의하며, 민생문제에서도 자본주의 세계체제 및 그 하위범주로서의 분단체제가 떠안은 조건을 일단 수용함으로써 세계시장으로 열린 한반도경제권의 건설과 남한경제의 발전을 도모할 새로운 종합적 설계를 짜야 합니다. 이는 남북관계의 발전 역시 합리적 보수와 성찰적 진보가 동의할 수 있는 내용으로 채워진다는 뜻이 되겠지요. 물론 이런 중도세력 사이에도 견해차와 갈등이 있을 테지만, 어디까지나 변혁적 중도주의라는 큰 틀에 동의하는 세력 내부의 생산적인 갈등이요 차이로 작용할 것입니다.

저는 한반도의 통일이 20세기 후반 그 어느 분단국과도 다른 독특한 방식으로,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가운데 평범한 시민들의 참여가 한결 두드러지는 ‘시민참여형’으로 진행되리라고 주장해왔습니다. 아니, 통일의 개념 자체가 달라지는 만큼 한반도식 통일은 이미 진행중이라고 했습니다. 요즘 상황에서는 이런 저의 주장이 허황된 낙관론으로 들릴지 모릅니다. 그러나 거듭 말씀드리지만 분단체제의 온갖 퇴행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분단체제의 흔들림이 더욱 심해지는 말기현상이지, 분단체제가 안정을 되찾는 사태와는 거리가 멉니다. 물론 파국의 위험은 엄존하지요. 그러나 그럴수록 평상심을 갖고 분단현실을 성찰하며 각자가 자기 위치에서 최선을 다할 때, 아마도 오늘의 시련은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남북연합의 건설을 향한 마지막 고비가 될 것입니다.


미주)-----------------
1) 일찍부터 이 점을 강조해온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근에 이를 다음과 같이 정리한 바 있다. “지금 우리는 3대 위기에 봉착해 있습니다. 민주주의 위기, 중산층과 서민경제의 위기, 남북관계의 위기가 그것입니다.”(문익환목사 방북 20주년 기념행사 기념사, 2009.4.2)
2) 졸고 「6월항쟁 이후 20년, 어디까지 왔으며 어디로 갈 것인가」, 『황해문화』 2007년 여름호 178면.
3) 김종엽 「서장: 87년체제론에 부쳐」, 김종엽 엮음 『87년체제론』, 창비 2009, 19면.
4) 이남주 「늦봄 방북 20년, 통일운동의 성찰과 전망」, 늦봄 문익환 방북 20년 기념심포지엄 자료집 『늦봄 방북 20년, 통일운동의 성찰과 전망』(사단법인 통일맞이, 2009.4.2) 15면.
5)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 ‘책머리에’ 5~6면 등 참조.
6) 바로 그런 이유로 6·15공동선언 발표를 환영한 예로 김경원 「남북통일은 전쟁위험 제거로부터」, 『창작과비평』 2000년 가을호, 및 같은 호의 좌담 「통일시대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서의 그의 발언 참조.
7) 임동원 회고록『피스메이커』(중앙북스 2008) 10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