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만의 대북인식

수궁원 2009. 6. 6. 13:55

 미 테러 참사가 터지고 난지 약 4주일만에 드디어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보복 공습에 나섰다. 미국 본토에 대한 처참한 테러 공격이 가져온 엄청난 충격 때문에 전쟁이 쉽게 종결되지는 않을 듯하다.
  
  ‘21세기 최초의 전쟁’이란 미국의 선언에서 나타나듯이 이 전쟁에 임하는 미국의 결의도 심상치 않다. 전 세계의 관심의 초점은 이번 전쟁이 탈냉전시대 국제질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모아지고 있다.
  
  동북아시아에서도 이번 사태가 몰고 올 파장이 어떠할 것인지 각국은 긴장상태에 있다. 이 지역에서는 유일하게 미국으로부터 테러지원국 낙인이 찍혀 있는 북한도 자신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하여 공식적인 반(反)테러 성명을 냈고 유엔에서까지 이를 재확인하였다.
  
  남한의 경우도 대북 화해-협력 정책에 대해 작용할지 모르는 부정적인 효과를 차단하기 위해 북한과 공동으로 반테러 선언을 제안하기까지 하였다. 남북 모두 테러 참사로부터 한반도 문제는 차단시켜야 한다는 데 이해의 일치를 보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테러반대를 명백히 하면서도 군사력 사용은 유엔총회나 안보리 결의를 거쳐야 한다고 미국의 행동을 견제하려는 입장을 보였다.
  
  러시아는 구소련 시대에 아프가니스탄에 개입했다가 패배한 기억과 테러 피해로 미국에 동병상린의 감정을 보이면서도 직접 지원에는 소극적이다.
  
  이 지역에서는 일본만이 미국의 군사 행동에 직접 동참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일본 내 비판세력이나 한, 중 등 주변 국가들에서는 사실상 헌법상 금지되어 있는 집단적 자위권을 허용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다만 일본도 내외의 비판을 의식, 법적으로는 이번 사태에 대한 한시법을 제정하여 미국 지원에 임하고 있으며 한, 중의 반발을 우려하여 고이즈미 총리가 한국, 중국 방문에 나서고 있다.
  
  미 테러 참사, 동북아 질서에 직접적 영향은 없을 듯
  
  미국도 이번 전쟁에서 타격 목표는 아프가니스탄에 집중시키며 그것도 빈 라덴 그룹과 이들을 비호하는 탈레반 정권이지, 아프가니스탄 국민은 아니라고 한정짓고 있다. 미국은 사태가 중동지역은 물론 다른 지역으로 확대되는 것을 원치 않는 모습이다.
  
  현재까지 테러참사가 동북아시아와 직접 관련이 지어질 계기는 없어 보인다. 북미 협상 재개가 미 외교 정책의 우선 순위에서 밀리며 북한에 대한 테러 지원국 해제가 당분간 어려워지겠지만 동시에 미국은 이 지역에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일도 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번 사태에 임하는 역내 국가들의 대응에서 드러나듯이 미국의 강한 영향하에 있는 동북아시아 지역도 미국의 입김이 일방적이고 직선적으로 작용하기는 어려운 나름대로 상대적이지만 독자적인 질서를 가지고 있음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테러 참사는 동북아시아 국제질서를 미국의 눈이 아니라 이 지역의 눈, 우리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할 필요성을 다시금 느끼게 하는 것이다.
  
  탈냉전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동북아시아 국제정세를 바라볼 때 익숙해 있는 것은 냉전적 대립에 입각한 세력 균형의 관점이다. 이미 전세계적으로 소련, 동유럽의 사회주의권이 붕괴하고 냉전이 종식되었지만 동북아시아에서는 남북 대립이 계속되며 평화보다는 불안정한 갈등이 두드러져 보인다. 따라서 이러한 냉전적 세력 균형의 시각은 현실을 어느 정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는 다분히 미국적 시각, 미국의 이해관계 유지를 중심으로 한 것이기도 함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 속에서는 동북아시아, 좀더 넓게 동아시아 세계는 탈냉전시대에 평화와 통합을 이루고 있는 유럽과는 다르다는 오리엔탈리즘적인 차별적 냄새가 묻어 나온다.
  
  나아가서 약소국이자 분단국으로서 한반도가 처했던 상황적 제약이 작용한 발상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국제질서는 주어진 것, 숙명적 또는 항구적인 것이라는 소극적, 체념적인 사고가 깔려 있다. 하지만 다른 세계와 마찬가지로 국제질서도 역사적 산물로서 끊임없이 바뀌어 가는 것이고 또한 구조적 힘에 의해 변화할 수 있거나 의지적 노력에 의해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역사의 유산이 청산되지 못한 동북아 국제 질서
  
  우선 동북아시아 국제질서는 여전히 과거 역사의 유산이 청산되지 못한 채로 남아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20세기의 가장 비극적인 측면을 모두 담고 있는 일제 식민지 지배, 제2차 세계대전과 태평양 전쟁, 한국전쟁의 유산이 아직 뿌리 깊게 이 지역 정세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1965년 한일 국교가 정상화되고 70년대초 역사적인 미중 화해에 이어 일중 국교가 수립되었으나 중국과 한반도에 대한 일제의 침략과 식민지 지배 청산은 불완전하였다. 1956년 일본과 소련도 국교를 수립하였으나 북방영토 문제로 지금까지도 평화조약은 수립되지 못하였다.
  
  90년대 미소간의 냉전 종식에 따라 한소, 한중 수교에 이어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이 실현되어 동북아시아에서 부분적인 탈냉전이 진행되었다. 하지만 남북한 대치 상황이 지속되는 가운데 한국전쟁의 휴전체제에서 평화체제로의 전환은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북한과 일본, 미국의 관계는 정상화는커녕 오히려 대립이 첨예화되기도 하였다.
  
  일제 식민지 지배, 태평양 전쟁, 한국전쟁이란 과거가 불완전하게나마 청산되는 과정에서 북한은 모두 제외된 것이다. 이처럼 동북아시아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식민지 지배, 세계대전, 냉전에 따른 내전과 이념적 대결 등 20세기의 가장 비극적인 유산을 청산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과거 청산 과정에서 제외된 북한
  
  이러한 역사의 변화와 연속성 속에서 동북아시아 국가들의 정치, 경제적 변화는 괄목할만한 것이었다. 탈냉전시대에도 미국은 여전히 정치적으로는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서 군사적 패권을 유지하고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최첨단을 달리면서 세계화와 정보통신 혁명을 주도하고 있다.
  
  냉전시대에 일본은 이미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으며 90년대 이후 장기적 침체에 빠져 있으면서도 정치군사대국으로 발돋움하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중국은 국가사회주의 체제의 개혁-개방에 성공하여 일종의 혼합체제를 유지하며 유례없는 경제번영을 이루면서 21세기 초강대국을 지향하고 있다.
  
  러시아는 구소련의 국가사회주의 체제가 붕괴하며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로의 체제전환이란 힘겨운 과정 속에서 그 후유증을 수습하며 대국으로의 회복을 꾀해 가고 있다.
  
  한편 남한은 자본주의 신흥공업국가로서 경제적 도약에 성공하고 민주화를 이룩하였고 경제적 위기에 허덕이면서도 OECD 가입국으로서 고도자본주의 국가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북한은 70년대까지 제3세계 사회주의의 모범이라 불리었지만 탈냉전시대의 세계적 추세에 적응하지 못한 채 국가사회주의 체제로부터의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동북아, 다양한 체제가 공존하는 역동적 세계
  
  이처럼 동북아시아 국가들은 초첨단자본주의, 신흥공업국가,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 전환국, 국가사회주의 체제 등 냉전에서 탈냉전시대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전세계가 겪은 다양한 체제적 경험을 거의 모두 체현하고 있다. 동시에 그러한 변화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닌 현재진행형으로 가장 역동적인 세계이기도 하다.
  
  지역적으로 볼 때에도 동북아시아에는 남북한 및 중, 일 등 아시아 국가 외에도 미국, 러시아라는 유럽 국가가 들어 와 있다. 또한 동북아시아는 아세안을 형성하고 있는 동남아시아를 포함한 동아시아라는 좀더 넓은 지역 속에 포괄되는 한편 태평양 지역과도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이는 동북아시아 국제질서는 아시아적 경험과 세계사적 경험이 결합된 시각으로 바라 볼 때 제대로 이해될 수 있음을 뜻한다.
  
  동북아시아의 과거와 현재를 짧게 일별해 보는 것만으로도 이 지역을 이해할 때 요구되는 것은 단순화된 어느 한쪽에 치우친 것이 아니라 매우 복합적이며 섬세한 시각임을 깨닫게 된다. 복잡해 보이는 세계 앞에서 유혹에 빠지기 쉬운 것은 사물을 도식화시킬 수 있는 단순한 잣대로서 앞에서 언급한 냉전적인 세력 균형의 시각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흔히 한반도 국제정세를 중심으로 동북아시아를 바라 볼 때 동원하는 한미일 대 북중러라는 도식도 한 예이다.
  
  극복해야 할 냉전적 시각
  
  그러나 먼저 미일중러 관계만 놓고 보더라도 이 도식은 성립할 수가 없다. 미국이 동북아시아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의 군사적 역할을 확대하려는 것이 탈냉전시대에 지속적인 전략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클린턴 행정부 당시 미국의 정책 변화만 보아도 이러한 전략은 일관성을 유지할 수 없었다. 대선 과정에서 부시(아버지) 공화당 정부의 대중 협력 정책을 강력히 비판했던 클린턴의 민주당 정부는 95년 미일방위협력 지침을 개정하며 일본의 군사적 역할을 확대하는 정책을 취하다가 집권 말기에 가서는 일본을 견제하며 중국에 접근하는 자세를 취하였다.
  
  부시 행정부도 취임 직후 중국에 대한 대결 자세를 선명히 하다가 중국의 올림픽 유치 이후 협력 자세로 바뀌고 있다. 공화당 정부의 일방주의적 외교 정책은 냉전시대처럼 이념적, 현실적 토대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며 국내 군수산업의 이해관계를 중시하는 군사케인즈주의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질서를 형성해 낼 수 있는 추동력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물론 동북아시아 지역이나 중동 지역 등 국지적인 정세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는 있으나 이것이 지속적인 힘으로 작용할 수 있을지 미지수이다. 실제로도 아직 그 파급 효과를 예상하기는 어렵지만 부시 행정부는 미 본토에 대한 테러 참사라는 초유의 장애에 직면하고 있으며 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일방적 외교에서 협력 외교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일본은 장기적인 과제로서 보통국가를 지향하며 동북아시아에서 군사적 역할 확대를 꾀해가고 있지만 미국만큼 대중 대결 자세를 강하게 유지할 수는 없었다. 일본은 일찍부터 중국의 개혁-개방을 경제적으로 지원해 왔으며 미국보다 훨씬 깊은 경제적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
  
  일본은 대만 문제, 역사 문제 등으로 갈등을 야기하면서도 여전히 중국에 대한 개발차관을 제공하고 있다. 환경, 에너지 문제 등에서 중국과의 협력은 거의 사활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지정학적으로 볼 때 멀리 떨어져 있는 미국과는 달리 일본은 중국과 정면으로 군사적 대치를 하는 것은 엄청난 부담이 된다.
  
  중국은 미국과 일본의 대중 견제에 대해 한편으로 대결 자세를 취하지만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한 협상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중국 시장을 수단으로 WTO 가입 등에 협력적 입장을 견지하였다. 러시아도 미국의 군사전략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유지하지만 미국의 경제지원을 필요로 하여 일정한 타협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일본과도 북방영토 문제에서 대립하면서도 시베리아 개발 등에 일본 자금을 끌어들이기 위한 협력 확대를 꾀하고 있다.
  
  미일중러는 과거 냉전시대에서부터 이미 대립 속에서 상호협력을 유지해 왔다. 탈냉전시대에 이러한 흐름은 더욱 강해지며 일면적인 대결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갈등 속의 협력 확대의 관계에 있다. 일본과 중국의 군비 경쟁이 우려해야 할 변수이지만 이를 견제하거나 완화시키는 요인도 작용하고 있음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남북한과 4강의 관계는 분명 냉전적이지만 이는 부분적이다. 한반도 냉전은 남북한 대치 상황과 맞물린 북미, 북일 대립이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다. 반면 남한은 이미 과거 북한과 동맹이던 중국, 러시아와 국교를 수립하고 경제적으로는 북중, 북러 관계를 압도하고 있다.
  
  중국이 군사적으로 북한과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과거 냉전시대와는 다르다. 러시아도 구소련 붕괴 이후 소원했던 북한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있으나 이는 탈냉전시대의 통상적인 국가관계에 가깝다.
  
  중러보다 미일이 더 냉전적
  
  중국도 러시아도 북한이 남한과 군사적 대결을 벌이도록 지원하는 관계는 아니다. 중국이나 러시아는 최근 북한과 관계를 긴밀화하되 남북대화와 북미, 북일 관계 개선을 적극 권하고 있다. 오히려 냉전적인 색채가 강한 것은 부시 정부 등장 이후 미국이나 이에 영합하는 일본 쪽이다.
  
  물론 동북아시아 지역에서도 질서 형성에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미국의 전략이다. 탈냉전시대에 미국은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현상 유지를 전제로 미일, 한미 동맹관계를 확대, 강화하는 정책을 펴며 마지막 냉전 관계인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는 소극적이었다.
  
  남북화해와 북미 관계 정상화는 주한 미군의 현상 변경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주한 미군의 현상 변경은 주일 미군의 변화로 이어지고 이는 이 지역 내 미국의 이해관계를 위협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미국은 탈냉전시대 동북아시아 지역의 질서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그럴 시도도 하고 있지 않다.
  
  이 점에서 새로운 비전과 관련해서는 유럽의 예를 참고로 할 필요가 있다. 분명 유럽의 예를 동북아시아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다만 20세기 전반기에 세계대전을 두 차례나 치른 유럽이 통합을 이루어 내는 것을 통해 국제질서가 항구불변적이거나 숙명적인 것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더욱이 유럽 평화, 통합의 비전은 미국에서 온 것은 아니며 유럽 사람들의 꿈에서 시작된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여기서 결정적인 것은 독일에서 나치즘의 청산이었으며 이것이 독일통일과 유럽통합의 안전판이 되었다. 더욱이 70년대 냉전의 한복판에서 성립한 헬싱키 조약은 체제, 이념 대립을 넘어서 공통의 안전보장이란 성과를 만들어 내었다.
  
  
  
  하지만 동북아시아에서도 냉전시대와는 다른 지역 협력을 모색하며 양자동맹을 넘어선 다자간 협력을 중시하는 흐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노력이 뚜렷한 가시적인 성과 없이 탈냉전시대 10년이 지나갔지만 중단되지는 않았다.
  
  아세안의 지역 협력을 빌리는 형태이긴 하지만 아시아안보포럼(ARF)이 성립하고 중국에 이어 북한도 가입하였다. ASEAN+3의 형태로 한중일 정상회담이 개최되어 한중일 관계가 정례화되어 가고 있다.
  
  남북화해가 동북아 신질서의 기초
  
  미국 개입 없이도 동아시아 지역 내에서 새로운 협력 관계를 만들어 내는 것이야말로 이 지역 정세에서 가장 의미 있는 변수가 될 것이다. 여기서 요구되는 것은 탈냉전시대 유럽에서 추구되듯 동질성의 확대가 아닌 이질성의 상호공존일 것이다. 이는 결코 미국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며 제일차적 당사자로서 역내 국가들의 주도 역량의 문제이다.
  
  무엇보다도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는 남북 관계의 진전이다. 얼어붙었던 남북 대립을 깨고 평화공존 속에서 화해와 협력 관계를 이루어 낸다는 것 이상으로 새로운 변화는 없다.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강고했던 한반도의 냉전이 변화한다는 것이야말로 국제질서는 바뀔 수 없다는 숙명적 관점에 대한 가장 결정적이 반증이 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한반도 평화야말로 동북아시아 국제질서의 고리이자 결절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서동만의 대북인식

수궁원 2009. 6. 6. 13:54

1월 23일 북한측이 정부, 정당, 단체 연합회의를 개최하고 당국 및 민간 차원의 남북대화에 적극 나서는 움직임을 보여 주고 있다. 우연의 일치인지 남북 사이의 물밑 접촉의 결과인지 알 수 없지만 같은 날 남측은 금강산 사업의 지속을 위한 지원 대책을 발표하였다.
  
  이미 5월 남측의 월드컵 대회에 시기를 맞추어 북측이 4월부터 아리랑 축제 기간을 설정하고 관광객 모집을 시작하면서 예상된 것이지만 북측의 이러한 발표는 환영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2월 하순으로 예정된 부시 미 대통령의 방한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이며 북미관계 타개를 위하여 전 주한 미국대사 4명의 방북이 추진되고 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겨우 재개되었다 다시 중단된 남북 관계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부시 정부 등장 이래 6개월간 남북대화를 중단시켰던 북측은 사실 작년 9월부터 대화 재개로 방침을 바꾸고 있었다고 여겨진다. 당시 북측은 제5차 장관급 회담에 응하면서 11개 의제 가운데 9개 의제에 합의하는 등 회담에 적극적인 자세로 나온 바 있다. 여기에는 이산가족 상봉, 금강산 육로 관광, 경의선 연결, 개성공단 사업 등 남북 사이에 약속이 되었지만 이행되지 못한 주요 현안이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이 때 북측은 북미관계에서 남북관계를 분리시켜 일정 수준까지는 남북대화를 진전시키기로 ‘전략적 전환’을 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그 직후 열린 금강산 육로 관광을 위한 남북 실무협상에서 북측은 미불된 관광 대가 지불을 남측 정부가 보장해 달라고 요구하였고 이를 남측은 받아들이지 못하였다. 이에 따라 겨우 재개된 남북대화는 초장부터 벽에 부딪친 것이다.
  
  북미관계도 북측은 북중, 북러 정상외교를 통해 안보불안감을 완화시키면서 협상을 재개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었다. 지난 해 9월경 북측은 중국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담에 부시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이 방문하는 것을 계기로 북미 협상을 타개해 보려 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9.11 테러참사의 여파로 무산되고 말았다. 테러 전쟁에 몰두해야 하는 미국 입장에서 북미협상은 외교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 테러 참사는 남북관계에도 영향을 미쳐 북측은 남측의 전군비상경계령을 이유로 제6차 장관급 회담 및 이산가족 상봉 장소로서 서울을 거부했다.
  
  이 문제는 남측이 북측을 겨냥한 것이 아니란 설명을 하고 북측이 양해함으로써 일단 극복되었으나 회담은 부차적 이슈였던 제7차 장관급 회담 일자 명기 문제로 결렬되고 말았다. 다만 이 회담을 통해 북측은 남북대화를 거부하려는 것이 아니었음이 확인되었다고 할 수 있다. 회담 결렬에도 불구하고 일정 수준에서 남북대화와 북미 관계를 분리시키려는 방침은 계속 살아 있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9.11 테러 참사 이후 북측으로서는 새로운 과제를 안게 되었다. 이는 테러 참사가 한반도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차단시키는 것이었다. 특히 테러 전쟁이 예상보다 훨씬 조기에 종결됨으로써 부시 행정부의 다음 대상이 누가 될 것인가 하는 데 국제적인 초점이 모아지게 되었다.
  
  일본 자위대의 아프간 파병이 실현되었고 이제 일본의 군사적 역할 확대가 한반도에 적용될 수 있는 여지가 생기게 되었다. 더욱이 월드컵 행사는 한일간의 테러 공조를 필요로 하게 되어 있으며 자칫하면 88 서울 올림픽처럼 북한의 국제적 고립을 낳을 우려가 있었다.
  
  북측이 김일성 주석 탄생일 관련 행사를 아리랑 축제로 명칭과 성격을 바꾸면서 대응한 것은 이러한 상황에 대한 대응이었다고 보여진다. 또한 세계적인 행사에서 나름대로 경제적 이익을 내려는 욕구도 작용하였을 것이다. 남측도 나름대로 아리랑 축제가 과거 올림픽과 세계청년학생 축전처럼 서로 대립적이 되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었다.
  
  월드컵 행사와 아리랑 축제가 상호 보완적인 평화행사로 개최될 수 있다면 전 세계에 남북의 평화의지를 내세울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북측으로서도 세계적인 이벤트에 협력하는 자세를 국제적으로 어필함으로써 테러 지원국의 오명을 벗을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다.
  
  금강산 육로가 되든 경의선 철도가 되든 관광객을 남에서 북으로, 북에서 남으로 실어나를 수 있다면 이는 제1차 남북정상회담 못지않은 세계적인 이벤트로 부각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서 이러한 구상이 실현될 수 있다면 그 동안 확산되던 남북관계를 둘러싼 비관적 분위기를 반전시키고 제2차 정상회담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 남측이 금강산 관광 지원 대책을 발표한 것은 일단 제5차 장관급회담 개최 국면으로 남북관계를 되돌리고 나아가서 이를 단순한 복원이 아니라 확대 방향으로 전진시키기 위한 노력이라 볼 수 있다.
  
  그동안 남북관계가 소강상태에 빠졌던 원인을 구체적으로 들자면 하나는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 지닌 불확실성이고 다른 하나는 남측의 대북 지원능력의 한계였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의 동북아 정책은 아직 뚜렷이 정리돼 있지 않은 것 같다. 국무부의 아미티지나 국방부의 월포비츠 등 이른바 지일파가 개헌 해석을 해서라도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실현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은 우려할 만한 대목이다. 그러나 대북 정책 등을 중심으로 한 미국의 동북아 정책은 여전히 불확실성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현 시점에서 첫 번째 원인인 부시 정부의 대북 정책을 움직여 낼 지렛대는 남북대화 밖에 없는 듯하다. 남측의 대북 지원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하지만 북측이 6개월 동안이나 남북대화를 중단시킨 것도 적지 않은 실책이었다. 우선 북미관계를 움직여 낼 타이밍을 놓친 것이다. 다음으로는 남측 사회 내에서 대북 여론을 악화시킴으로써 국내 정치 변수가 남북관계에 개입하게 만든 것이다.
  
  역으로 북측 내부에서도 협상파의 입지가 줄어들고 이를 견제하는 내부적 요인이 작용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는 북미 관계에서 보면 이를 움직여 낼 수 있는 남한 사회의 내적 동력을 상실시키는 결과가 되었다. 남북 관계에서는 그 내적 저해 요인이 서로 맞물림으로써 악순환 관계에 빠지도록 하였다.
  
  뒤늦게나마 남과 북이 각각 남북관계의 촉진 요인을 발동시킴으로써 이를 상호 선순환 관계로 가도록 결단하고 나선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물론 여기에는 상당한 저항이 따를 것이다.
  
  다만 이는 남북관계에서 가시적 성과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냄으로써 극복해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6.15 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 추이를 되돌아보면 어차피 맞을 매라면 빨리 맞는 편이 옳았다.
  
  남북 관계는 국민적 합의 과정도 중요하지만 주요한 결단의 시점을 놓침으로써 악화를 자초한 측면도 크다. 이제 남북은 서로 인내를 갖고 상호 이해와 양보를 통해 이 상황을 타개해 가야 한다. 이제 더 이상의 주저와 동요는 통하지 않는다

 
 
 

서동만의 대북인식

수궁원 2009. 6. 6. 13:54

어쩌면 부시 대통령은 역대 미국 대통령 가운데 한국에서 가장 환영받지 못한 대통령이 될지 모른다. 그는 미국 내에서는 아프간전쟁을 승리로 이끈 성과로 아직 인기가 높지만 한반도에서는 그 역사적 평가가 역사의 시계 바늘을 거꾸로 돌려놓은 미국 대통령으로 남을 수 있다.
  
  80년대 초 취임한 레이건 대통령은 전두환 독재정권을 지지한 대통령으로 시작했으나 정권 말기에는 한국의 민주화를 겪었고 무엇보다도 소련의 고르바초프와 냉전 종식을 위한 계기를 마련하였다. 부시 대통령이 현재의 ‘악명’을 떨쳐버리고 향후 어떠한 업적을 남길지 이번 정상회담 결과만을 보아서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우선 부시 대통령은 그 동안 한반도 남북에서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던 ‘악의 축’ 발언을 상당히 의식하여 그 우려를 불식시키는 데 부심한 듯하다. 부시의 변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한국 시민사회의 반미 움직임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한반도에서 전쟁은 있을 수 없다고 하며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디까지나 대화와 평화적 방법을 활용할 것임을 강조하였다. 이 점에서 김 대통령이 과거 레이건 대통령이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 비난하면서도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냉전 종식의 초석을 놓았다고 지적했음을 부시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미 군수산업과 금융자본의 이해 상충
  
  부시가 경제위기 이후 한국에 유입된 해외투자의 규모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 대목도 주목된다. 이는 한반도 긴장 악화로 득을 볼 군수산업만이 미국의 이해는 아니며 긴장 완화와 직결된 한국에 투자된 금융자본의 이해도 중요함을 인식한 발언일 것이다. 이제 한국 경제에서 주식 가격의 등락은 국내 정치를 움직이는 주요 변수일 뿐 아니라 미국 월가의 주요 관심사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부시는 여전히 자신의 부정적인 북한 인식에는 변함이 없음을 되풀이해서 밝혔다. ‘악의 축’이란 표현에서 톤은 낮추었지만 독재체체(despotic regime)란 용어를 쓰고 있다. 철저하게 북한 정권과 주민을 분리시키는 어법을 쓰고 있기도 하다.
  
  자유란 가치와 북의 주민에 대한 애정, 이산가족 문제 등을 강조함으로써 강경한 대북 인식에 인도주의적 포장을 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도 결코 협상을 통해 관계를 진전시키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북 체제 변화를 북미협상의 조건으로 내걸어
  
  이 발언을 확대 해석하면 북한 체제 변화가 북미 협상 진전의 조건이 되는 셈이다. 협상을 앞두고 있는 적대 국가의 내정 변화를 강조한다는 것은 힘으로 굴복시키겠다는 것이나 다름 없다. 미국이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대북 경제제재 조치가 과연 북한 주민에게 이로운 것이냐는 의문도 생긴다.
  
  나아가 이러한 도식은 남북 관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부시는 미국의 인도주의 지원을 계속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북한 정권이 아닌 주민에 대한 지원이란 한정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부시는 남한의 대북 지원 가운데 인도주의 지원 성격을 갖는 식량ㆍ비료 외에 전력 지원, 사회간접자본 건설 지원 등에는 반대한다는 뜻일 수도 있다.
  
  현재 남북대화에 가장 중요한 변수는 북미 관계 외에 남한의 대북지원 능력에 있다. 향후 한국 정부가 한미 협조의 틀 속에서 대북 경제 지원 문제를 얼마나 돌파해 낼 수 있는가가 중요한 과제가 된다.
  
  따라서 미국이 다시 한번 조건 없는 대화 원칙을 확인하며 북한에게 대화에 나오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어느 정도 북미 관계 개선의 의지가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에 대해서도 지지를 선언했지만 북측이 호응이 없다는 데 실망했다고 말했다.
  
  남북관계의 진전ㆍ성과 인정 안해
  
  이 판단에는, 현재 중단 상태이기는 하지만 작년 북측이 남북대화를 재개한 것이나 올해 초 북측이 다시 남북대화 의사를 밝히고 있는 사실은 반영되어 있지 않다. 진정 남북대화를 바란다면 이러한 조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고무하는 것이 도리일 것이다.
  
  물론 경의선 연결의 마지막 역인 도라산역을 방문하여 두 정상이 침목에 서명하는 이벤트를 연출함으로써 남북 대화를 위한 여건 조성에는 협력한다는 자세를 보였다. 그러나 부시가 여기에 적은 글도 매우 인색한 내용이다. 이 철도를 통해 이산가족이 하나가 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이는 당연하고도 중요한 점이다.
  
  하지만 경의선 연결 구간은, 아직 합의의정서 교환 절차를 남겨두고는 있으나, 남북 국방장관 회담과 군사실무회담을 통해 남북의 공동관리 구역으로 되어 있는 지역이다. 이를 유엔군사령부와 인민군의 회담에서 추인한 것이기도 하다. 이는 엄연히 남북한, 미국의 정부가 관여한 성과이다. 제한적, 부분적이긴 하지만 군사적 긴장완화와 신뢰구축의 중요한 진전이며 남북의 평화를 향한 중요한 첫 걸음이 된다. 부시는 그동안 재래식 군사위협을 강조했으면서도 이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는 것이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부시 정부가 강조하던 재래식 군사위협 문제에 두 정상은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북한 재래식 군사력의 후방배치 문제는 주한 미군 재배치 요구로 이어질 것이며 한국 군 재배치 문제와도 무관할 수 없다.
  
  이는 남북, 북미 간의 정치적 신뢰 형성이나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 등 문제와 함께 포괄적으로 다루어질 수밖에 없는 복잡한 사안이다.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문제에 북미는 거의 10년을 투여하고도 해결을 보지 못하고 있다. 재래식 군사위협은 이보다 훨씬 복잡하고 시간적으로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문제이다. 이는 한미간에 계속 협의 대상으로 남겨 두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전체적으로 이번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보면 미국이 북미관계에서 당장 긴장을 고조시키지는 않을 것임을 확인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는 어쩌면 한국이 F15기 구입을 수락한 데 대한 대가일지 모른다.
  
  현재 미국 대외 정책의 우선 순위는 이라크에 있다. 따라서 북미 관계는 우선순위에서 밀려 급격하게 악화되지도 않겠지만 그렇다고 진전도 있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남북끼리 해볼 테면 해봐라"
  
  이제 공은 남북한으로 넘어 온 셈이다. 이번 방한에서 보인 부시의 태도와 발언은 최소한 남북한이 대화를 할 능력이 있다면 해보라는 뜻일 수 있다. 이 점에서는 미흡하기는 하지만 현재 남북한 관계에 최대 현안인 경의선 연결에 대해서 부시가 일단 협력하는 상징적 제스처를 보인 것이야말로 이번 정상회담의 최대 성과라 할 수 있다.
  
  이제 한반도 상황은 우선 북한측이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어떻게 보고 북미 협상에 어떤 식으로 나올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부시의 대북 발언은 그 어조가 이전보다 절제되기는 했지만 남한에서 한 것이란 점에서 북한에게는 훨씬 자극적으로 비칠 수 있다. 북한의 체면은 다시 한번 손상을 입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어 북한은 제4차 이산가족 상봉 사업에 응할 가능성이 높았었다. 그러나 이산가족 상봉을 직접 북한 체제 변화와 결부시키는 부시 발언은 북한을 주저하게 만들 수 있다. 경의선 연결도 마찬가지이다. 이를 북한 주민의 왕래에만 의미를 한정한다면 김정일 위원장은 경의선을 타고 서울 방문을 할 수 없다는 뜻인가? 따라서 북한이 북미 협상에 나서는 데는 이러한 체면 훼손을 만회할 일정한 여건 조성이 필요할지 모른다.
  
  북이 남북대화에 성의있게 응하느냐가 관건
  
  북한에게 본질적인 것은 부시 발언 자체라기보다는 그것이 함축하는 상황 변화일 것이다. 일단 북한이 부시 발언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좀 더 여유를 가지고 북미 관계의 상황 자체가 군사적 긴박성은 완화된 것으로 보고 이를 진전으로 평가한다면 어떤 식으로든 대화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물밑 접촉 등이 이루어질 수 있으며 민간 행사나 접촉 등을 통해 대화 여건이 조성되면서 공식 협상이 개시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는 지루한 만남의 시작이 될 뿐일 것이다.
  
  역시 한미 정상회담 이후 초점은 남북대화 진전 여부에 있다. 북한은 이미 아리랑 축전을 월드컵 행사에 맞추어 협력적으로 개최할 의사를 보였다. 일본의 고이즈미 정권도 부시 정부의 대북 강경 발언에는 호응하지 않고 일본의 역할은 다르다고 밝혔다. 이는 부시 발언이 월드컵 행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는 의사 표명일 수 있다.
  
  한반도 정세는 북측이 이 두 행사를 계기로 어느 정도 남북대화에 응할지에 달려 있다. 당장은 이산가족 상봉이 시발점이지만 무엇보다도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하이라이트가 되었던 경의선 연결까지 북한이 과감히 나설 수 있는가가 최대의 열쇠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