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만들어 가는 세상이야기

수궁원 2010. 1. 7. 10:39

민주주의를 사랑하고 생명평화 세상을 꿈꾸며 살아가는 시민여러분.

 

2010년 경인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송구영신(送舊迎新)이라 했던가요? 묵은 것을 제대로 털어낼 수 있는 과단성과 새로움을 위해 호시우보(虎視牛步)하는 지혜가 필요한 해입니다.

 

퇴행으로 점철된 2009년은 참으로 긴 한 해였습니다.

 

민주화시대를 이끌었던 두 전직 대통령을 잃었고, 용산의 망루에서는 우리사회가 따뜻하게 품어야 했던 약한 이들이 이슬처럼 사라져갔습니다. 평택의 쌍용자동차 공장 지붕에서 처절하게 솟구쳤던 노동자들의 비명이 귓전에 맴돌고, 시국을 걱정하며 이름 석자를 올렸다는 이유로 공무원들과 선생님들은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야 했습니다.

 

구시대적인 악습이 사회발전을 짓눌러 새로운 사람, 혁신적인 시스템이 건강하게 착근하는 것을 막았습니다. 4대강 사업을 비롯한 토목사업은 더욱 커져 갔고, 지역균형발전정책을 비롯해 25%의 정책집행단계에 있는 '행정중심복합도시'는 무산위기에 있으며, 사회복지와 서비스의 발전은 더뎠습니다. 정치권력의 손아귀에 미디어가 흡수되었고, 공공성이 취약해진 교육은 자구적인 경쟁력 강화를 위해 사교육 시장 의존율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변화의 힘을 확인하게 됨이 큰 진전입니다.

 

국민들의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로막는 강압적 통치방식이 위헌으로 결론 났고, 지난 정부에서 임명되었다는 이유로 가당찮은 구실을 삼아 해임됐던 인사들은 현 정부의 잘못으로 판결이 내려져 뒤늦게나마 명예를 되찾았습니다. 촛불항쟁으로 저항했던 시민단체들을 '불법폭력시위단체'라 하여 온갖 불합리한 차별을 자행했던 것조차 부당했다는 판결이 이어졌습니다. 굳건히 닫힌 광장은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조례개정 문턱까지 치닫게 되었으며, 10.28 재보궐선거에서는 정권의 오만과 독주를 혹독하게 심판하는 대중들의 현명한 행동을 경험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 밑바닥부터 큰 변화의 힘이 제법 힘 있게 꿈틀거리고 있음을 우리는 확인했습니다. 이제 시민들 스스로가 희망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2010년은 시민참여정치의 원년입니다.

 

2010년은 이명박정부가 집권 중반기로 접어드는 해이지만, 길게 보면 경술국치 100주년, 6.25전쟁 60주년, 4.19혁명 50주년, 5.18민주항쟁 30주년을 맞이하는 해입니다. 그러면서도 6월 2일에는 6명의 광역자치단체장을 비롯한 기초자치단체장과 광역 및 기초의원, 2명의 교육감과 교육위원을 국민들이 직접 뽑는 지방선거가 있습니다. 마치 민주주의와 자주적 평화를 향해 흘러온 근대사가 방사형으로 수렴되어 그날에 닿을 듯합니다.

 

격동의 근대사가 올 해 지방선거를 정점으로 새롭게 펼쳐질 것입니다. 이명박정부의 반민주성, 반인권성, 반환경성을 탓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합니다. 정당의 비정상적인 구조로 인해 시민들이 배제된 정치는 커다란 저항 없이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거기에 조그마한 파열구를 내고 시민이라는 좋은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그것이 시민정치운동입니다. 그것으로부터 희망을 주는 정치는 시작됩니다. 보다 더 민주적이고, 보다 더 평화로운 세상을 향한 시민들 스스로의 우직한 행동이 새 역사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시민운동이 중심에 설 것입니다.

 

새 역사를 위해 시민들의 마음을 크게 모아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누군가는 책임있게 나서서, 철저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시민들이 더 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일, 새로운 일꾼들이 정치의 전면에 나서서 호혜의 정치, 희망의 지역을 만들 수 있도록 하는 일, 그 모든 것은 시민참여정치 원년에 이뤄야 할 것들입니다.

 

시민참여정치 원년은 정치로부터 배제되고, 홀대받은 시민들이 다시 그 중심에 서고자 하는 일이기에 시민운동이 중심에 설 것입니다. 제한된 주권이 아니라 온전한 시민주권시대를 위한 대장정을 시민들과 함께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당당하게 시민참여정치의 광장을 열어젖힐 것입니다. 시민 여러분들도 늘 함께해 주시길 바랍니다.

 

2010년 1월 5일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함께 만들어 가는 세상이야기

수궁원 2009. 10. 26. 10:20

"사람을 키워내는 일, 그것이 가을을 견디는 일"

절박한 상황은 언제 석과가 떨어질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석과란 하나 남은 과실로 내년에 뿌릴 씨앗을 뜻합니다. 석과를 가지고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석과를 지키기 위해서는 엽락(葉落), 즉 잎사귀를 떨궈 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거품을 거둬내는 것입니다. 환상을 청산하는 것. 더 나아가 우리가 갇혀 있는 '문맥'을 탈출하는 것입니다. 우리 시대를 지배하는 '문맥'은 엄청납니다.

엽락을 하고 나면 나무가 드러납니다. 몸이 드러나는 거죠. 한 사회의 뼈대, 개인의 뼈대가 선명하게 보입니다. 한 사회의 정치적 주체성은 어느 정도인지, 경제적 자립 기반, 문화적 기능은 어느 정도인지, 환상에 가려서 안 보이던 것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떨어진 잎사귀, 엽락은 뿌리를 따뜻하게 하는 거름으로 작용합니다. '분본(䆏呠)'이라고 하죠. 가을에 필요한 일입니다. 여기서 '본'은 무엇일까요? 한 사회, 또는 한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뿌리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본'은 사람입니다. 자기 자신이기도 하고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결국 사람을 키워내는 일, 그것이 가을을 견디는 일입니다. 사회에 가장 저력으로 묻혀있는 가능성을 키워내는 일이 중요합니다. 이 이야기에서는 그것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성과 논리로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려 하는 '문맥'에 갇혀있다"

그럼 어떤 사람을 키워내야 할까요? '머리, 가슴, 발'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사람은 머리로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어떻게 알고 있을까요? 책에서 읽거나 선생에게 강의를 듣고, 신문, 텔레비전 등을 보고 압니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아는 인식은 주입된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 사회 상부에서 시스템을 장악하고 있는 사람에 의해서 주입된 게 반드시 있습니다. 이것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 외에도 '문맥'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중세에는 마녀 처형으로 수십만 명에서 수백만 명의 마녀가 처형됐습니다. 처형당한 마녀 중에는 강압에 의한 경우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고 자신이 마녀라는 것을 승인하고 처형당한 이도 많았습니다. 중세를 지배했던 마녀 '문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는 어떨까요? 냉정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현 사회에는 근대 사회를 경고하며 쌓이고 쌓인 강고한 '문맥'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타자화하고 자연을 대상화하며 우리가 이성이라는 이름으로, 논리적으로 세계를 이해하려는, 근대적인 '문맥' 속에 우리는 갇혀 있습니다.

제가 감옥에 처음 들어갔을 때는 '왕따'였습니다. 30명이 감옥 생활을 했는데, 그 안에서 저는 한동안 다른 재소자들을 대상화해 분석을 하고 있었습니다. 결손 가족인지, 무슨 죄로 들어왔는지 등을 파악하면서 말입니다. 제가 완전히 근대 '문맥'에 갇혀 있었던 겁니다. 나중에 깨달았죠. 마치 근대와 전근대, 비근대를 대상화 했던 똑같은 논리를 제가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재소자들이 겉으론 아무리 친하게 대해도 실질적으론 왕따였습니다.

그러다가 작업장 등에서 수감된 사람들의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이 걸어온 파란만장한 사연을 듣게 되자 '아, 나도 저 사람과 같은 부모를 만나 같은 경험을 했다면 같은 죄명을 가지고 저 자리에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구체적인 예를 이야기해볼까요? 제가 감옥에 있을 때 나이가 마흔쯤 된 친구에게 접견이 왔었습니다. 생전 편지도 받지 못하던 친구였는데 말입니다. 그 친구도 놀라고 같은 방 수감자들도 놀랐습니다. 접견을 마친 뒤 궁금해서 물으니 자기 또래 남자가 왔는데 자신의 엄마가 개가해 가서 키운 아이였다고 했습니다. 수감자의 엄마는 2살과 3살인 자식들을 삼촌 집에 맡기고 개가를 했던 겁니다. 엄마가 들어간 집은 남매를 두고 어머니가 죽은 집이었답니다. 엄마는 그 집에 가서 그 남매를 계속 키웠고 그렇게 자란 아들이 접견을 온 것입니다. 둘이 만나니 할 이야기가 없었습니다. 그 친구는 한참 침묵 후에 굉장히 미안해 하며 "만약 당신 어머니를 우리 어머니로 데려 오지 않았다면 내가 그 속에 있고 당신이 밖에 있었을 것이다"라고 했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대상화, 분석화했던 나 자신이 얼마나 비인간적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머리 아픈 거랑 마음 아픈 거랑 굉장히 차이가 나잖아요. 마음이 굉장히 아팠습니다. 그때부터 참 많은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같이 이해를 하게 됐습니다.

"분석보단 아픈 마음을 이해하는 게 필요"

일흔 넘은 할아버지가 감옥에서 한 방을 사용했습니다. 저녁 시간 신입 수감자가 방에 들어오면 분위기가 냉랭합니다. 아무래도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니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재미있는 건 신입이 들어오면 노인네가 신입을 두고 '이리로 와보라'고 한 뒤 자신의 70 평생 이야기를 한다는 겁니다. 이 이야기는 신입이 들어온 지 하루가 안 돼서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하루가 지나면 이 노인이 별 볼일 없는 게 파악되기 때문에 신입이 듣지 않습니다. (웃음)

노인의 이야기를 매번 신입이 들어올 때마다 들었습니다. 한 4~5년 정도였죠. 그렇다보니 외울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근데 시간이 지날수록 노인의 부끄러운 부분은 빠지고 자랑하는 부분은 부풀려지는 걸 알 수 있었죠. 그 이야기를 들으며 만약 저 분이 자기 인생을 다시 시작한다면 실제로 살았던 삶이 아닌 각색한 삶을 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기 인생 이야기를 각색했다는 건 약간의 반성도 있고 이루지 못한 소망도 있다는 것이기에 말입니다.

그 노인을 사실의 주인공으로 이해할 것인가, 각색된 삶의 주인공으로 이해할 것인가를 상당히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노인의 사실대로의 삶을 파란만장한 우리 현대사가 각색한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분석과 이성적 판단보다는 아픈 마음을 열고 그를 이해하는 게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머리에서 가슴까지는 가장 먼 여행입니다. 여기까지 가는 동안 나는 5~7년 걸린 듯합니다. 그때서야 감옥에서 왕따를 면했습니다.

▲ 이날 강연회는 개그맨 김제동과 신영복 교수를 보기 위한 청중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프레시안

"우월감을 버리고 자기를 변화시키며 관계를 건설해야"

머리에서 가슴으로 이동했다면 그 다음으로 중요한 건 아픈 마음을 자기 삶 내의 깊숙한 곳에 들여 놓는 것, 즉 관계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발'이라고 칭하겠습니다.

근대 사회가 냉정한 개인의 존재성을 중요시해서 개인의 자유와 독립, 해방을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개인주의가 계속되면서 폐단이 사회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서구 사회는 근대 사회가 도달한 최고의 가치가 톨레랑스라고 합니다. 차이와 다양성을 존중하고 공존하는 것 말입니다. 하지만 톨레랑스가 최고의 덕목인지는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수감자들의 파란만장한 삶에 대해 굉장히 마음 아프고 충분히 이해하고 나도 그 자리에 서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그 사람에 대한 연민, 우월감, 차이…. 이런 것을 버리지 못한 상태에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톨레랑스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옥에 있을 때 같이 있던 친구 중 이름이 '대의(大義)'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참 좋은 이름이라고 생각해서 그 사람 볼 때마다 '당신 아버지가 참 속상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서른도 안 됐는데 절도 전과가 3개나 됐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친구에게 어느 날, 이름을 누가 지었느냐고 물으니 굉장히 기분 나빠 했습니다. 알고 보니 돌이 채 되기도 전에 광주도청 앞 대의동 파출소에 버려져 그냥 '대의'라고 이름 지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충격을 받았습니다. 문자를 통해 그 사람을 읽으려 했던 나의, 먹물들의 관념성을 변화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고 느꼈습니다.

또 예를 들어볼까요. 나이 많은 목수가 집 그림그릴 때는 주춧돌을 먼저 그리고 제일 나중에 지붕을 그립니다. 이걸 보고 굉장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일하는 사람들은 집짓는 순서대로 그림을 그린다는 사실이 놀랐습니다. 책, 학교, 교실에서 자기 인식을 키운 저는 지붕부터 집을 그리는데 말입니다. 이런 관념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차이라는 건 서로 존중하고 공경할 것이 아니라 차이야 말로 자기를 변화시킬 수 있는, 대단히 감사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변화해야 합니다.

"변화하지 않고 소통은 불가능"

변화하지 않고는 지금 화두가 되어 있는 소통은 불가능합니다. '그래 네가 말해봐라, 내가 들어볼께' 식은 소통이 절대 안 됩니다. 자기와 다른 사람의 의견이 자기 의견 변화에 중요한 계기가 될 때만이 소통이 가능합니다. 변화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모든 살아있는 것은 변화하고 있습니다. 자기 영토를 고집하고 그 영토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모든 기득권은 변화를 거부합니다. 자기 서버를 지키는 데 몰두하는 웹 1.0세대입니다.

이와는 다르게 젊은 세대의 정서는 웹 2.0으로 갔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서버인 셈입니다. 정서가 전혀 다릅니다. 그래서 가슴에서 발까지, 또 하나의 긴 여행, 어떻게 하면 나 자신의 관념성을 버리고 저 사람들을 배울 수 있을까. 안다는 게 많은 지식을 가진다는 걸 말하진 않습니다. 생각이 열려 있어야 합니다. '문맥'에 갇혀 있는 걸 뚫고 나와야 합니다.

교도소에서는 담배를 못 핍니다. 그래서 담배 값이 굉장히 비쌉니다. 직원 사무실 청소하러 가는 젊은이들이 교도관 재떨이에 꽁초를 줍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그걸 잘 아는 직원들은 재떨이에 물을 가득 부어 꽁초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젊은이들은 물에 빠졌지만 다행히 풀어지지 않은 담배를 가져와 말린 뒤 팔거나 핍니다. 맛이 좀 심심합니다.

말린 담배 꽁초의 이름이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여러분이 이름을 지으면 심심하겠지만. (웃음) 교도소에서는 '심청이'라고 불렀습니다. 미적 감각이 뛰어났습니다. 애정, 공감에 머무르지 않고 적극적인 관계를 만들 수 있을 때만이 진정한 자기 변화, 자신을 키워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무의 완성은 명목이 아닌 숲"

어떻게 관계를 만들까요? 숲을 만들기 위한 과제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 많은 사람들이 일하는 방식에 있어서 아직도 근대적인 사고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논리 중심으로 뭔가 자기 이념을 강요하려는 근대 '문맥'에 갇혀 있습니다.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계속해서 변화해야 합니다. 사람들 정서를 정확히 읽을 수 있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제가 얼마 전 오대산을 갔습니다. 오대산 저쪽으로 흐르는 물은 북한강, 이쪽으로 흐르는 물은 남한강이 됩니다. 대단히 먼 여행입니다. 반면 오대산 바위, 즉, 웹 1.0 바위는 자기 정체성이 매몰되어 있는 바위입니다. 멀리 못 갑니다. 거기 그대로 있기 때문입니다. 시냇물은 강물을 만나면 자신이 강물이 됩니다. 강물은 바다를 만나면 바다가 됩니다. 부단히 변화합니다. 자기 영토성, 이해관계를 버리고 꾸준히 변화하는 유목주의, 그게 근대를 벗어나는 탈근대의 화두입니다. 우리 자신은 물론이고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변화하면서 소통하고, 점점 바다로 가야지 자기는 변화하지 않고 톨레랑스, 즉 근대 패러다임의 변형을 말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이가 변화해서 숲으로 가야 합니다. 사실 '발'이라는 건 변화의 상징이기도 하고 우리 삶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발로. 이게 하나의 나무라면 나무의 완성은 명목이나 낙락장송이 아니라, 숲입니다. 나무의 최고 형태는 숲입니다. 숲을 만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혼자서는 안 됩니다.

"사회를 바꾸진 못했지만 나 자신은 바꿨다"

길고 긴 여행(수감 생활)을 마치니 20년이 걸렸습니다. 마칠 즈음 저는 근대적인 '문맥'에서 나 자신이 시원하게 벗어났다고 생각했습니다. 단순한 연민, 공감, 공존의 근대적 변형을 뛰어넘고 뭔가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만들어 냈다고 생각했습니다. 자기 개조를 이뤄냈다고 생각합니다. 실천가들이 사회를 바꾸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자기를 바꾸는 것에는 실패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사회는 바꾸지 못했지만 나 자신은 바꿨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감옥에서 출소한 뒤 친구들은 저보고 칭찬하느라 그런지 '너 하나도 안 변했다'고 했습니다. 옛날과 똑같다고 했습니다. 칭찬인가 뭔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웃음) 크게 변한 부분은 눈에 띄지 않습니다.

여럿이 함께 가면 됩니다. 가치 지향이 없으면 문제라고 하는 이도 있지만 함께 가면 길은 등 뒤에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계몽주의 사고가 도처에 남아 있습니다. 이상주의가 도처에 남아 있습니다. 여럿이 함께 가면 길은 저절로 생깁니다. 누군가에게 스승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 제자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함께 갑니다. 여기 모임도 숲이라고 생각합니다. 움직이는 숲. 감사합니다.

 
 
 

함께 만들어 가는 세상이야기

수궁원 2009. 6. 8. 16:17

지난 5월 내가 이명박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순방에 동행한 이후 그야말로 수많은 사건들이 숨가쁘게 지나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북의 핵실험, 남의 대량파괴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전면 참여 등으로 이어지는 상황 속에서 잠 못 이루는 번민의 나날이 계속되었다.

욕먹을 각오를 했다지만 그 반응은 지나치게 거칠었다. 특히 ‘변절’ 논란은 극단으로 양분된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확인시켜 주었다. 언론은 아예 몇몇 적대적 의견을 빌려 ‘변절’이라 규정한 뒤 상업적으로 재생산하는 데 열을 올렸다.

연이어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급작스런 죽음이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고 언론은 다시 그쪽으로 일제히 몰려갔다. 돌이켜보면 우리 사회 모두가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물론 현 정권의 공안당국과 언론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 사회가 여과 없이 정보를 폭식하고 무책임한 소문들을 배설해내어 그를 벼랑 끝으로 몰아붙인 것이다. 나는 대중들의 깊고 광범위한 애도가 작고한 대통령에 대한 후회와 연민의 감정이면서 또한 현재의 정치 사회적 상황에 대한 실망의 표출이라고 본다.

금강산 사고 이후 대북관계 개선에 대한 강박증
‘알타이 연합’은 ‘과도적 연방제’를
보수층에 설득할 우회로라 여겼고
‘평화열차’는 남북 철도 연결을
세계 속에서 기정사실화하자는 생각이었다

내가 비난을 무릅쓰고 중앙아시아 순방에 동행하기까지는 현 정권이 들어선 이후 점점 악화되고 있는 남북관계에 대한 위기의식 때문이었다. 올해는 내가 1989년에 방북을 결행한 지 20주년이 되는 해다. 차츰 남북의 갈등이 결정적으로 표면화되던 금강산 사고 이후부터 뭔가 관계 개선을 위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렸던 것이 사실이다.




내가 망명하고 있던 1993년에 김영삼 정부가 들어섰고 잘 알 만한 사람이 뉴욕으로 나를 찾아왔다.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북의 의향을 타진해 달라는 부탁이었고, 나는 남북 정부 사이에서 메시지를 받아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이것이 내가 귀국을 감행하게 된 몇 가지 이유 중의 하나였는데 김 주석의 급작스런 사망으로 남북 정상회담은 좌절되고 나는 오랫동안 갇혀 있어야만 했다.

1998년 2월에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나는 대통령 특사로 5년 만에 석방되었다. 석방 후 3개월쯤 되었을 무렵이니 꼭 이맘때이다. 당시의 정부 당국자가 나를 찾아와 대북 접촉을 제안했다. 정상회담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고 의견을 받아다 달라고 했다. 나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실로 십여년의 간난고초가 지긋지긋했고 하루라도 빨리 작가로서 문학에 복귀하고 싶던 때였다. 그러나 주위의 벗들은 내가 겪은 우여곡절도 경륜이니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고 맞춤한 아이디어를 거론했다. 나중에 밝혀지면 부담스러울 테니 장길산 남북 영화 합작을 위한 접촉으로 언론에 흘리자는 얘기였다. 나는 일단 응낙하고 베이징으로 가서 북쪽에 통보했다. 그런데 마침 꽃게잡이 철이라 서해교전이 터지는 바람에 일주일을 기다려서야 간신히 북의 책임부서 요원들과 만날 수 있었다. 그후 김대중 정권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많은 위기를 극복하면서 역사적인 6·15 정상회담이 실행되던 때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남북관계는 차츰 갈등이 고조되었고 과거의 모든 공개·비공개 접촉선이 끊어지게 되었다. 나는 지난 시절 민주화 통일운동을 하던 벗들과 만난 자리에서 현 정권이 비록 국민들과 소통하려는 노력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하더라도 남북관계 개선과 국내 사회 정치적 문제에 대한 시민사회의 의견을 전달할 수 있는 최소한의 대화 창구가 여러 방면에서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내 나이 정도의 인사라면 이전부터 친소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보수·진보 쪽 인사들을 두루 알고 지낸다. 한국사회가 다종다양한 인맥으로 얽혀 있는데다 그동안 정치 사회적 지형이 몇 번이나 변화해왔기 때문이다.

서먹한 상대와는 일감으로 대화가 시작되기 마련인데, 그것이 ‘평화 열차’와 ‘알타이 연합’과 관련된 기획이었다. 그것은 남과 북에 동시에 화두를 던지면서 대화를 틀 수 있는 빌미이기도 했다. 남북 몽골 중앙아시아 연합론은 동남아연합이나 유럽연합 등 각종 경제·문화 협력체들과 별로 차이가 없는 발상이다. 다만 여기서의 변수는 ‘북’이다. 북과의 관계 개선이라는 열쇠가 없이는 애초부터 출발이 불가능한 기획인 만큼 우선적으로 북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현 정부의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었던 것이다. ‘알타이 연합’론을 두고 황당하다거나 신제국주의 또는 파시즘적 발상이라고 지당도사 같은 말씀을 하는 이들이 있지만, 구체적으로 지난 정부 때에 동몽골 개발을 위한 합의문서가 그 가능성을 보여준다. 분단체제에서는 매우 어렵다는 점과 한반도 주변 정황, 그리고 공개적으로 정부가 나설 수 없다는 점 때문에 지지부진하고 있었던 것뿐이다. 나는 이 기획이 남북의 과도적 연방제에 대하여 보수층을 설득할 수 있는 우회로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6자회담이 한반도의 비핵화를 위한 현실적인 안이기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기득권을 끊임없이 확인시켜 주는 측면이 있지 않은가. 한·중·일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 연합론은 바로 저러한 틀을 벗어나기가 힘든 생각으로 보인다. 우리도 이러한 질서를 현실로 받아들이되 무엇인가 다른 카드도 있었으면 하는 고심의 결과가 ‘알타이 연합’이다. ‘평화열차’ 역시 지난 십년간 남북이 이루어낸 금강산 관광지구와 개성공단에 이어서 제시했던 다른 기획들과 남북 철도의 연결을 세계 속에서 기정사실화하자는 안이었다.

이전 정권 때도 북핵 실험 강행 했지만 대화 지속 노력
현 정부는 PSI 전면 참여로 스스로 북과의 대화 봉쇄
공약 이었던 ‘중도실용’은 슬로건에 그쳐 버리고
노 전 대통령 상징적 죽음으로 민주 대 반민주 전선
남북은 전쟁 직전 상태로 진입했다

일을 시작하면서 숨가쁘게 고조된 남북의 갈등 사이에서 간간이 민간 교류가 지속되면서 물밑으로 오간 대화가 있었다. 비핵과 교류 협력이 서로 다른 차원에서 협상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잘 먹히지 않았고 상황 논리가 앞서갔다. 물론 나는 전쟁과 핵무기를 절대로 반대하며 북의 무모한 군사적 행동을 혐오한다. 그러나 십여년 동안 되풀이된 북핵 위기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북쪽에서는 일관되게 쌍방의 ‘한반도 비핵화’와 정전체제에서 ‘평화체제’로의 전환을 끊임없이 대미협상 의제로 내세우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북은 노 대통령의 서거와 핵실험이 관계가 없다고 발표를 하면서 이제는 로켓을 아이시비엠(ICBM)으로 명명하여 그것이 대륙간횡단미사일임을 주장한다. 이는 미국과 일괄 타결식 직접 협상을 하겠다는 적극적인 의지의 재표현인 듯하다. 김대중 정부 때에는 양쪽의 인명이 살상되는 준전쟁 상황인 서해교전이 두 차례나 있었고 노무현 정부 때에도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이 강행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 정부의 북에 대한 교류 협력과 평화를 위한 각고의 노력은 지속되었다. 그런데 현 정부의 피에스아이 전면 참여는 그동안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며 스스로 북과의 대화를 봉쇄한 결과가 되었다. 이제 미국의 협상 결과만 추종하고 기다리는 것으로 그친다면 남쪽은 앞으로 한반도의 평화를 견인해낼 수도 없거니와 당사자로서의 주도권도 행사할 수가 없게 된다. 비핵화는 국제적인 공조 속에서 추진하더라도 핵문제와는 분리하여 민간의 교류협력 사업을 재개하고 6·15선언을 실천하기 위한 남북 협상과 정상회담이 추진되어야 한다. 그것이 협상을 이끌어갈 주인다운 태도다. 평화를 위한 노력은 어떤 상황에서도 명분을 잃거나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 정부는 촛불시위 이후 용산참사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모든 정책을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의 반대 방향으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역행한 것이 사실이다. 사회 전반에 걸친 우편향이 가속화하면서 민주주의의 위기가 심화되었다. 현 정권의 공약이었던 중도실용은 슬로건에 그쳐버리고 민주주의와 남북의 평화 협력은 실낱같던 희망조차도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상징적인 죽음으로 민주 대 반민주의 전선이 형성되고 있으며, 남북은 전쟁 직전 상태로 진입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다는 자기반성과 변화가 없이는 현 정권의 모든 정치적 가능성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나야 온갖 야유와 비난 속에서 서재에 틀어박히면 그만이지만,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상실하게 될 귀중한 몇 년이다. 굳이 덧붙이자면 나는 평생에 작가로서의 내 삶이 그 어떤 정치권력보다 하찮은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으며, 특정한 파당이나 패거리를 뛰어넘은 문학의 독립성을 스스로 포기하지도 않을 것이다.

황석영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