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수궁원 2010. 3. 23. 14:36

새해에는,

속절없이 보낸 작년과 달리 무언가 달라지리라는 희망을 갖고

어제

는개가 흩날리는

가는 비를 맞으며

설날을 앞두고 부모님 산소를 찾은 날입니다.

차안에서 흘러나오는

그 노래는

오랫동안 잊은 채은옥의 ‘빗물’이었습니다.

이렇게 비가 내리면 ‘추억’이 떠오르고, 그 사람 생각이 난다는 그 노래가

스산한 겨울비에 혼자 걷고 있는 것입니다.

삼류심야영화관에서 요절한 기형도는 ‘가는 비 온다’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나는 안다, 가는 비……는 사람을 선택하지 않으며

         누구도 죽음에게 쉽사리 자수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쩌랴, 하나뿐인 입들을 막아버리는

         가는 비……오는 날, 사람들은 모두 젖은 길을 걸어야 한다”

 

이제는 KBS 뿐만 아니라 MBC의 뉴스도 영 맛이 간 상황에서

관습적으로 텔레비전을 돌리고,

늦은 밤에 뉴스후를 보면서

좀 더 교활해진 MBC를 보게 됩니다.

더 이상 빌미거리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의도는 알겠으나 사실상 저항의지가 꺽였고,

세종시 문제가 그들만의 리그에서

서로만을 부각시키는데 성공했지만, 그렇다고 현실에서 야권의 대안문제는 이번 선거가

지방선거라는 점에서 물론 정권의 중간심판적인 성격이 있다고 하더라도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점에서

그 방영태도는 한층 교활해진 것입니다.

이정권에 있어 세종시 전략은,

4대강에 대하여

미디어법에 대하여

출구전략에 대하여

가랑비에 옷이 젖듯 권력의 누수가 가시권에 들어간 상황에서

이러한 총체적 난국을 관리하면서

정국의 주도권을 회복한 ‘묘책’이었습니다.

이점에서

지방선거 이후에는

공고해진 수도권 입지를 통해 개헌공방으로

정국을 운용하리라 예상됩니다.

남재희이지요

일찍이 그는 개헌공방의 폭발력에 대해 언급하였고,

노무현은 집권 말기에 제기함으로써 스스로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결국

적절한 시점은 지방선거 이후 정국개편과 맞물리면서

착실한 권력재편을 노리리라 봅니다.

그렇습니다.

이제는

누구도 권력을 ‘독점’하는 시대는 지난 것입니다.

 

해체기에 접어든 분단체제에서

이 위기상황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문제가 초미의 관심으로 떠올랐지만,

그에 따라

기득권세력들의 저항도 만만치 않은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새해에는

무엇이 달라질 것인가 하면서

아니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하면서

늦은 밤 아득해지고,

나는

오규원의 시를 읽습니다.

 

 

         잠자는 일만큼 쉬운 일도 없는 것을, 그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어 두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는

         밤 1시와 2시의 틈 사이로

         밤 1시와 2시의 공상의 틈 사이로

         문득 내가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 그 느낌이

         내머리에 찬물을 한 바가지 퍼붓는다

 

         할말 없어 들어누워 두 눈을 멀뚱하고 있으면,

         내 젖은 몸을 안고

         이왕 잘못 살았으면 계속 잘못 사는 방법도 방법이라고

         악마같은 밤이 나를 속인다.

 

 

                                                                    (문득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이)

 
 
 

나의 이야기

수궁원 2010. 3. 23. 14:34

어제는,

EBS 한국기행 ‘거제도’편을 보면서

시인 김수영이 머물렀던 그 포로수용소도 떠올렸지만

만삭의 몸으로 한 달만 폭격을 피하자고 미군정을 타고 원산에서 거제도로 향한 부모님의 파란만장한 삶이 새삼 떠오른 날이기도 합니다.

몰락한 양반가와 실패한 상인가의 만남이 우리 부모님이셨습니다.

해서

아버님에게는 그 유서 깊은 족보가 목마르셨고,

어머니에게는 근대화 교육으로 일본유학까지 가신 아버지의 ‘학벌’이 부러우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해방 이후 조선인민공화국의 창설과정을 온몸으로 확인하신 분들인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어머니는 때때로 아버지의 창씨개명에 대해 경멸하셨지만,

이미 몰락한 양반가로 독립운동에 참여하셨다 하더라도 이념적으로 문제가 있었을 터이고,

가산은 탕진했었을 것이니 급진적 토지개혁의 여파는 없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다만

해방으로 자신의 이름을 얻었고

자신의 토지를 가졌고

직책을 가지면서 그 돈 때문에 여동생을 팔고, 굶주림에 허덕였던 프롤레타리아는 아니였기 때문에 그 해방의 의미가 남다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거제도는 통영으로 연결되고,

그 통영은 윤이상이 있기도 하지만 진주여고를 나온 박경리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그녀는,

한국전쟁으로 젊은 남편을 잃고

아들을 잃고

어린 딸과 노모와 함께 생존의 벼랑으로 내몰려야 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문학을 선택한 그녀를 두고

김윤식은,

‘죽음의 집의 기록’에서 보듯 극한상황 속에서 나타나는 인간성의 악마적 측면까지 추구했으며 그 결과는 세계문학사에서 미증유의 영역을 일구어냈다고 알려진 작가 도스토예프스키를 떠올리며 악마적 글쓰기라 했습니다.

 

정말 이런 걸 두고 우연이라 할까요

그 ‘한국기행’을 끝내고 집어든 것이 김윤식의 ‘박경리와 토지’였으니 말입니다.

박완서는

일회적이긴 하지만 그 전쟁으로 영민한 오빠를 잃었고,

중도에 학업을 포기해야 했으며

그 남자와의 ‘시’대화로 진창같은 삶에서 위로받고

화가 박수근을 미군부대에서 만나고

마침내

‘결혼’을 선택하여 그 곳을 빠져나오지요

자신의 절박한 삶의 처지를 문학화한 작가 박경리의 초기작은

그러므로

‘불신시대’

‘암흑시대’인 것입니다.

 

문학평론가 이동하입니까

그는

소설이 정상적 궤도이탈에서 시작되듯

예민한 독자는 그 지점에서 소설에 집작한다고 했습니다.

 

어제는,

물론

김용철의 ‘삼성을 생각한다’를 마무리한 날입니다.

그는,

삼성의 문제가

결국 이재용체제로의 경영권 승계과정이 핵심적인 문제로 정리하였습니다.

거대한 비자금 조성도,

불법적 로비도

이학수 김인주로 대변되는 구조본의 범죄행각도

따지고 보면

이 문제로 귀착되는 것입니다.

 

월요일 이 아침,

이런 글쓰기를 재촉한 것은 아직도 쟁쟁한 김윤식의 글입니다.

안개 낀 장충단 공원에서

갈 곳 잃어 서성이는 사람에게 주는 충격입니다.

 

“‘토지’에서 상대적으로 ‘역사’를 압도하고 있는 ‘자연’이란 무엇인가. ‘토지’ 전체를 통해 깊숙이 울리고 있는 ‘뻐꾸기 소리’와 ‘능소화’의 현란한 빛깔이 그 정답이다. 최서희나 봉순이 또는 원한에 사무친 인물들이 절체절명의 고비에 놓일 때마다 정체 모를 지리산 뻐꾸기 소리는 영혼을 흔들고 있었다. 절망에 부딪칠 적마다 최참판댁 별당 앞에 핀 능소화의 꿈같은 아름다움이 혼백을 함께 일깨우고 있었다.”

 

 

 
 
 

나의 이야기

수궁원 2010. 3. 23. 14:33

돌아가신 부모님께서는,

그러니까 30세, 26세의 젊은 부부로 아이들을 안고 한국전쟁 당시 한 달만 폭격을 피해보자고 해서 거제도로 피난 오셔서 큰 딸은 영양실조로 잃고 온갖 풍상을 겪으시면서 결국 남한 땅에 묻히셨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원 신축공사로 인하여 그동안 살던 사택을 떠나

이제 겨우 일년이 되는 빌라 월세 생활이 무슨 대수인가 하는 느낌도 지울 수 없지요

최군입니까

아파트에서 추락하여 빌라로 보금자리를 옮긴 후

뭐 숨 고를 공간조차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하꼬방 같은 빌라라도 명의는 집사람으로 되어있고,

주택담보대출도 자신 모르게 인출되어 강화도에서 소주 한 병을 꼴각 마시면서 그렇게 부인하고 싶었던 그 ‘부가장’의 실상을 몸서리치게 확인했다고 했지요

그렇지만

한 4개월만 그럭저럭 지내면 될 것 같은 그 빌라생활이 마침내 긴 터널을 지나듯 일년에 다달으니 남다른 감회는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 뜨거운 여름을 냉방기도 없이 거실에서 혼자 버틴 거며

막내딸 때문에 토,일요일에도 사무실에 나와야 했고,

그 혹한의 위풍으로 다시 잠자리를 안방으로 옮겨야 했으며

아이들의 공부 뿐만 아니라

이사 관련 문제에 대해서는 도무지 미더워 하지 않는 아이들의 따가운 눈을 감수하면서

분노와

당혹스러움

그리고 구차스러움이 엄습해 오면서

수 십 차례의 조사와

진술서를 비롯한 고소장, 재정신청서에 이르기 까지

그 기간은 질풍노도의, 연단의 시기였던 것입니다.

 

어제지요

‘삼성을 생각한다’의 김용철입니까

의사 아들을 둔 그는,

광주일고, 고대 법대를 거쳐 검찰청 특수부검사로 삼성 법무팀장으로

출세가도의 일선에서

부천의 어느 빵가게의 관리인으로 살아가고 있으니 사람 팔자 시간 문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더이상 법조계를 떠나 현직검사로서 처음으로 삼성행을 자유의지로 택한 사람으로

경영업무가 아니라

법조계 로비와 인맥관리, 범법행위가 다반사 였으니 분수를 뛰어넘는 그 연봉이 무슨 소용입니까

이 땅의 권력 핵심부인 삼성 수뇌부에서부터 검찰, 법원, 특검에 이르기 까지

그들의 몰염치와 사기행각은,

차마 눈을 뜨고는 볼 수 없는 형국입니다.

그에 의하면

삼성은 결국 이건희 일인체제로 중세의 '황제'를 방불하는데

이런 체제가 어떻게 유지될 수 있는지 피터드러커는 연구대상이라 생각합니다.  

한겨레 기자 정석구를 두고

모름지기 우정이란,

비가 오는 날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그 비를 맞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혹한이 몰아친 어제입니다.

서울보증보험 관계자가 현장조사를 한지가 정확히 열흘이 되는 그 전날 저녁 전화를 받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사태를 참을 수 없어

닭의 목을 쥐듯이 그 회사로 아침부터 찾아간 날입니다.

한 시간 동안

판결문만 되뇌이는 팀장 면상에

서류가 날아가고

욕설을 퍼붓고

이성적으로 근거를 요구하면서

문제의 쟁점을 정리하고, 다시금 재검토를 분명히 확인받은 날입니다.

도대체 보증금을 수령하는데 무슨 채권-채무 관계가 분명히 판결로서 판명나야 한다는 주장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기가 찰 노릇이었습니다.

해서

중요한 것은 계약서에 근거하여 시공사의 계약의무가 소홀히 하였다면, 그 사유를 적시하여 계약해지를 통보하면서 바로 그 보증금은 환수조치 하는 것이 그 계약서의 내용이라 했습니다.

따라서

소송 자체가 아니라 어떤 점에서 '계약의무'에 하자가 없는지 입증해야 하는 것은 시공사인 것입니다. 

그날

중국통신원을 만나고

차도가 있는듯 하는 지점에서 다시금 머뭇거리니 무거울 수 밖에 없는 그 중국통신원을 만나고

늘 그렇듯이

교보문고에서

김윤식의 ‘토지와 박경리’를 사들고 들어온 날입니다.

그 토지는 징역에서도 못 읽다

삼 년 전인가 한질을 샀지만 아직도 못 보았고,

다만 드라마와 만화로만 보았을 뿐입니다.

 

그 토지를 두고 김윤식은,

그 앞에는 혼불이 놓이고 그 뒤로는 뭐 지리산이 놓인다고 했던가요

이 소설의 참주제는

그러니까

최씨 일가의 기구한 인생도 아니고

고난에 찬 식민지 시대도 아니고

왕정복구도

독립운동도 아니라

뻐꾸기가 울고

능소화가 있으며

이 땅의 사람들이 목숨을 부지하며 의지하는

바로

‘산천’이라 했습니다.

 

오늘은,

장문의 ‘진정서’를 끝내고

소송 자체에만 얽매일 것이 아니라

건물 인도를 받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전방위 공격루트를 찾아 다양하게 압박하는 것이 마지막 고비 시점에서 너무나도 절실히 느껴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한가로이 이렇게 글쓰기를 하고 있습니다.

누가 읽던,

아니면 누구도 보지 않던

이청준이 그렇듯

어두운 밤길을 걸으면서

고독히

산책하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문득 동무들의 얼굴에 들여다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