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수궁원 2008. 7. 17. 00:10

작가 황석영은 50이 넘은 나이에 육년에 걸친 징역생활을 통해 '일상'을 발견합니다. 작가의 글쓰기는 어떠한 화려한 수사를 떠나 물질이고, 노동이며, 좌에서 우로 쓴다고 했습니다. 김지하는 환상도 물질이라 했던가요,  그대들의 일상은 어떠한가요,  고흐의 '감자를 먹는 사람들'이지요 하루의 고단한 노동을 끝낸 늦은 저녘식탁에는 감자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의 표정은 밝습니다. 신경숙은 이제목으로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병상에 누은 아버지를 곁에 두고 그의 과거를 반추합니다. 가난한 친구를 떠올립니다. 굵은 눈물을 떨구는 오빠를 생각합니다. 그렇게 낱낱이 하나하나가 연결되어 '일상'을 이루는 것이겠지요...    

 

봄날의 빛나는 볕은,
온통 뜨락을 연두빛으로 물들어 놓고
목련이 라일락이 지고 난 자리에는
뭇생령들의 새소식으로 가득합니다.
그렇습니다.
봄은 이렇게 소리없이 지나고 있음을 새삼 확인하게 되는거지요
하늘과 땅이 맞닿는 지평선을 따라
목포로 난 서해안 고속도로를 60살이 넘은 원장님들과
마치 초등학교 소풍을 떠나듯
설레이는 마음 한조각
그리고 떡, 과자, 과일을 나누면서 여정을 떠난지도 무려 보름이 지났는데도 이제야 비로소 실감하는 겁니다.

이웃분들의 원성이 아니라면
그냥 나무는 심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겠지요
물론 20년이라는 긴 세월이 있었고
주변도 몰라보게 변하고
야박한 인심도 한목 한 것이지만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무성해진 버드나무와
건물을 훨씬 넘는 메타스퀘어 3그루,
만추에 노랗게 물드는 3그루의 은행나무의 가지를 치면서
한 그루의 나무를 심는 것은 한 채의 집을 짓는 것과 같다는 말의 의미를 되새기게 됩니다.
모든 물건에는 임자가 따로 있다는 말이,
모든 사물에는 법도가 있다는 말이
떠올려지는 그런 봄날입니다.
오늘은
아침에 사무실에 출근해서
한시간 반 동안 나뭇가지를 손질하고
한시간 반 동안 인터넷에 들어가고
점심을 먹습니다.
짧은 서류결제와
몇잔의 보이차
사회복지관련 전문서적을 읽습니다.

"그런데도 오늘 또
언제까지나 그렇듯 삶은 우리에게 넘치도록 베푼다!
두 손 가득히 선물을 한다.
아침과 오후
황혼과 별
나무의 텁텁한 내음
강을 흐르는 푸르른 물살
빛나는 눈빛
외로움과 소음!
이 모든 것이 존재하다니
나는 얼마나 부자인가.
이 얼머나 풍성한 선물인가.
매 시각 매 순간마다 이렇게 넘치다니!
이것은 선물, 불가사의한 선물이다.
나는 머리가 바닥에 닿도록 감사하고 싶은 마음이다."

 

 
 
 

나의 이야기

수궁원 2008. 7. 16. 23:55

개인 블로그라도 만드는 것이 날지, 광활한 '아고라'에 직접 뛰어드는 것이 날지 이 카페에 정말 누구없소?

뭐 어디에 내밀 것 없는 '부가장'최군이 그렇게 자기 이름 석자를 박고싶어 박박 우겨 지나가는 소도 웃을 그'술과 대화'로 

그냥 판만 열어놓고 오리무중이니

차라리 동네야구라면 '삼진아웃'이라도 있을 터이나

그래 집안의 '가장'이었으면 그 집안 한마디로 콩가루 집안이지라!

천성적으로 그 책임감이라면 손톱의 때만큼도 무거워 하는지라 참, 그 마누라 '혜안'이 뼈 속 깊이 공감하는 바요

그래 왕눈이 주담은 천렵을 잘 다녀왔는가

지난 주말 주석에서

그냥 혼자 있는 것도 아니고

부가장 최군앞에서

용두사미의 삶의 태도가 아니라  그 '이율배반'적 삶에 대해 질타하여 삐졌는가

바다의 파도처럼 그 '삐침'이 상승과 하강을 하루에도 수없이 반복하는 그 일관된 습관에서 알콜 부족으로 목구멍에 가시가 돋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되오!!!

아니면

100만 백수가장의 하나인 '소군'의 특기인 잠수중인감

하긴

잔머리 철학도처럼 코앞에 닥친 그 논문으로 머리를 쥐어짜고 있는가

따지고 보면 도대체 '이율배반'적 삶에서 벗어나는 이 어디 있겠소

새벽1시까지 학원수업 마치면 차로 데려오고 아침 밥 먹여 보내는 마누라의 '수고'가 가상하지 않소

주담은 그 아이의 미래를 어느 지점에 놓고 있는지요

이게 어쩌면 강남권 일반고교생의 일과겠지요

그러니 그 이율배반에 너무 상심하지 마시라!

예전에 리영희 선생은,

자신을 두고 수정주의자라고 몰아치던 PD계의 외딸이 인천에서 노동운동중에 수배라서 걱정이 되는 차에 외우 박현채선생에게 그 아이의 걱정을 토로한 적이 있다지요  

그 때 가만히 듣던 박선생이 "시방, 니 나한테 딸자식 자랑하고 있지?"라고 되물었다나요

그렇소

주담은, 시방 고역같은 노동을 묵묵히 감수하고 있는 자식 자랑을 하고 있지요!!!

언젠가 가물가물 하는데 그 중국통신원

부흥회에서 통성기도하듯 두손들고 자아비판한 것 같은데

호랑이 꼬리 잡아서 그 꼬리가 머리가 되고, 또다시 그 머리가 꼬리가 되는 '사건'에 허우적거리고 있는지요

이 정도의 날씨라면 그 천진은 죽이겠지요!!!

해서

주담 말이 씨가 되어 딴나라 사람이 되어 버렸는지요

지난 주 목요일이지요

학기말 시험을 끝낸 큰딸과 함께 영화'크로싱'을 보았습니다.  

중간고사 성적이 무지 안좋아 잠 자는 새벽2시에 깨어 한바탕 소동을 피우고,

지금껏 건성건성 해오던 그 공부습관을 하나하나 씩 점검하여 규칙적이면서 일관된 습관으로 바로잡는 노력이 있었습니다.

그게 얼마나 먹혀들었는지 잘 알지는 못하지만

반복과 암기의 약효가 그런대로 통한 시험이었다는 느낌입니다.

딸내미 때문에,

지난날 중학생 때 나는 어떻게 공부했지를 기억해 보고

요즘 아이들의 공부법을 인터넷으로 뒤지고

언젠가 본 동경대교수의 공부법을 떠올려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내 의식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은 신영복 선생이지요

예전에 서당에서는 천자문부터 순차적으로 몽땅 외우고 스스로 깨우치는 방법을 채택했다지요

이런 방법으로 3~4년이 지나면 한자로 한시를 짓는 경지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는 겁니다.

요는 본인이 공부를 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겠지요

그래도

그날

시험이 끝난 날,

스스로가 대견해 하는 모습에서 어떤 안도감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비로서

그 아이에게 '위로'할 수 있는게 함께 영화보는 것이었지요

전직 축구선수 출신으로 지금은 함경도 탄광에서 광부로 일하는 차인표는 아들 하나를 둔 단촐한 가정을 이루면서 살고 있었습니다.

임신한 아내가 결핵에 걸리고,

그 아내의 약을 구하기 위해 중국행을 결행하고 마침내 한국에 정착하게 됩니다.

이 사이에 아내는 죽고, 외아들은 수용소에서 찾아 몽고에서 해후가 이루어지지만 그것도 싸늘한 시신이었습니다.

이 대목에서 대책없이 박하사탕의 설경구가, 깊고 푸른 밤의 안성기가 떠오르는 건지요

공항에서 아이의 음성이 들리고 그 빗줄기를 맞으며 과거를 추억하는 차인표와

기찻길에서 "나는 돌아가고 싶다"고 외치는 설경구,

아메리카 드럼이 산산이 부서진 상황에서, 그 메마른 사막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는 안성기가 뜬금없이 교차하는 겁니다.

세계화의 그늘은,

햇살이 공평하게 대지를 비추듯

남한사회에도, 아메리카에도, 그리고 북한이라 해서 예외는 아니겠지요

그날

저녁8시부터 딸은 잠이 들어 아침까지 내리 잤습니다.

 

      35년을 심라의 짐꾼으로 늙어온 글라마 헤나(51세)와

      헤딘(56세)형제가 150킬로그램이 넘는 무거운 모직원단

      짐을 함께 지고 나란히 언덕길을 오르자 태양과 알라신

      께서 비 오듯 흐르는  그들의 땀을 잠시 닦아주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