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담,초창기역사글

정원천사 2020. 6. 16. 13:14

 
 
 

간증담,초창기역사글

정원천사 2020. 3. 2. 11:24

조희성님의 간증담


탈출, 그리고 또 포로


  
  생지옥 같은 곳에서 모든 사람들이 불안, 초초, 긴장과 실의 속에서 피가 썩어 얼굴이 시커멓게 변해갔다. 그러나 이 사람만은 항상 신앙 가운데 하나님과 교통하는 가운데 마음이 태평한 상태에서 살든지 죽든지 하나님 뜻에 맡긴 채 한 번도 실망이나 낙심을 하지 않았다.

  며칠 간 무작정 남쪽이라 여겨지는 곳을 향하여 도망쳤다. 도저히 기진맥진하여 걸을 힘조차 없기도 하거니와 배가 고파 밥을 훔쳐 먹으려고 어떤 민가의 담을 넘어 부엌에 살짝 들어갔다. 여기저기 밥을 찾아보았으나 밥은 어디에도 없고, 가까스로 숨겨놓은 고구마 삶은 것이 있기에 막 먹으려고 하는데, 누가 뒤에서 “손들어!” 하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 손을 들고 뒤를 돌아보니, 붉은 완장의 내무서원(북한 경찰관)들이 총을 들이대고 있는 것이었다. 고구마는 입에 대보지도 못하고 인민군에게 붙잡혀 곧장 끌려갔다. 그곳은 함경남도 고원군 탄광역전이었다. 원산에서 포로 한 명이 인민군을 해치고 탈출하였다는 긴급 연락을 받은 원산 근처 백 사오십 리는 완전 비상 상태였었던 모양이었다.  

  이 사람은 그것도 모른 채 섣불리 행동하다 그만 잡히고 만 것이었다.인민군들은 이 사람을 잡아서 밤새도록 심문하면서 고문을 가하는데 인간으로서는 차마 견딜 수 없는 그런 고통이었다. 사람의 생명을 놓고 이런 모양 저런 모양으로 장난질을 하며 재미로 고통을 가하였던 것이다.

  발가벗겨 거꾸로 매달아 놓고 몇 사람이 돌아가면서 가죽채로 후려치는가 하면, 매운 고춧가루 물을 코에 집어넣어 고통을 가하기도 하고, 또 더 악랄한 수법으로 전기고문을 가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렇게 밤새도록 고문을 하여 반쯤 죽인 상태에서 양손을 머리 뒤로 하여 묶고는 평양 신양리 형무소로 압송하였다.

 

    ◇ 생지옥 같은 신양리 형무소에 들어가다

  신양리 형무소 감방에는 한 사람이 들어가 앉아도 여유가 없는 작은 독방이 있었는데 그들은 거기에 6명을 꽉 채워 넣었다. 한 사람이 들어가도 꽉 차는 독방에 6명을 억지로 집어넣으니 도저히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하루 이틀 지나 여기저기 쥐가 나자 차례로 한 사람씩 극심한 고통 속에 죽어 나가는 것이었다.

  그런 좁은 곳에서 다른 사람의 쥐가 난 곳을 주물러 주면 주물러 주는 사람의 손에 쥐가 나기 때문에 옆 사람이 쥐가 나도 주물러 줄 수조차 없었다. 그리고 한 사람이 죽어 나가면 좀 나을까 했는데, 또 다른 사람을 집어넣기 때문에 항상 6명이 꽉 찬 상태로 있어서 거의 미칠 지경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형무소에서 주는 밥이라고는 하루에 한 번씩 주었는데, 밀 삶은 것에 모래를 섞어 주먹만큼 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것을 주면서 하는 말이 “너희들은 이왕 죽을 놈들이니까 총살을 시키면 총알이 아까워. 그러니까 모래를 골라내지 말고 그냥 먹고, 맹장병이나 걸려서 돼져!”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진짜로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니 빨리 죽자 하면서 모래 째 먹고는 얼마 후에 참으로 고통스럽게 죽어나가는 것이었다.

  그런 생지옥 같은 곳에서 모든 사람들이 불안, 초초, 긴장과 실의 속에서 지내기 때문에 피가 썩어 얼굴이 시커멓게 변해갔다. 그러나 이 사람만은 항상 신앙 가운데 하나님과 교통하는 가운데 마음이 태평한 상태에서 살든지 죽든지 하나님 뜻에 맡긴 채 한 번도 실망이나 낙심을 하지 않았다.

  구원에 대한 확신과 소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항상 얼굴이 환한 상태로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간수들도 “이 반동  아 새끼는 먹는 것도 없는데 어째 얼굴이 좋다.”고 이상하게 여기면서 놀리며 때리기도 하였다.

 

    ◇ 어떠한 죽음의 위협에도 하나님을 놓지 않았다

  이 사람은 하나님을 신앙하는 사람으로서 생의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인민군 모르게 모래 섞인 밀밥을 입안에 넣어도 모래는 골라내고 밀만 먹었다. 하루는 모래를 골라내다가 그만 간수에게 들켜 긴 막대기로 머리를 얻어맞고 정신이 아찔한 적도 있었다.

  이 사람은 감방 안에서도 끊임없이 잔잔하게 찬송을 불렀다. ‘죄 짐 맡은 우리 구주’라는 찬송을 콧노래로 부르니 같이 있던 사람들이 노래 곡조가 너무 좋다며 가르쳐달라고 하기에 가르쳐 주어 같이 부르기도 하였다. 이 찬송을 부르니 하나님께서 폭포수와 같이 은혜를 주셨던 것이다.

  또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라는 찬송을 콧노래로 부르며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리는 생활을 하였던 것이다. 독방 안에 들어온 죄수는 모두 중벌로 다스려져 결국, 죽게 될 운명이었다. 서로의 기구한 사정 얘기를 들어보니, 그 중에서도 이 사람 만큼 매를 무지막지하게 맞은 사람은 없었다. 모두들 “다시는 그러지 않겠으니 봐 달라.”고 하면서 놈들에게 굴복했기 때문에 모진 매를 좀 피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 사람만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회유나 공갈 앞에서 결코 굴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끝끝내 형(가족)이 있는 곳을 말하지 않았던 고로 김포에 있던 가족들이 무사할 수 있는 반면에 이 사람은 죽을 때까지 모진 매를 맞아야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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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천사 2020. 2. 14.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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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회, 술고래가 술을 끊게 되다


영생학을 읽은 후 편안하다 포근하다 행복하다는 느낌에 마음 깊이 감사함을 느끼며 1년 동안 거의 매일 그 책을 읽게 되었고 표지 안에 있는 정도령님 존영을 바라보며 살았다.

신기한 것은 『영생학』책을 읽은 날부터 잘 때에 방바닥에 안개 같은 것이 내 등을 늘 받쳐주었고 새털 같은 것이 이불이 되어 덮어줌으로써 공중에서 누워있는 것 같았고 괴롭고 불안한 마음이 사라지고 마치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편안하고 여유로운 마음을 갖게 되었다

  ◇  『영생학』책에서 만난 정도령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동네 어른들과 아버지로부터 정도령 이야기를 들었고, 작은아버지는 정도령이 인부지간(仁富之間)에 나타날 것이라는 말씀을 해주었다. 또한 어머니께서는 언젠가 ‘길라라비 훨훨’하고 날아다니면서 사는 때가 올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며 저에게 말씀해주신 적이 있고, 어머니께서 저를 임신하셨을 때 우리 집 울타리에 커다란 달이 비추다가 갑옷 입은 장수로 변하더니 다시 달로 변하여 하늘로 올라가는 태몽을 꾸었다는 말씀을 듣고, 살아서 정도령을 만날 수 있겠다는 근거 없는 신념이 있었다.

  동네 어르신들은 1970년대 초에 북한 무장공비의 출현으로 사회가 불안할 때에 “빨리 정도령이 나타나야 할 텐데. 정도령이 나타나야 저런 어지러운 세상이 없어지고 살기 좋은 세상이 올 텐데…” “인부지간(仁富之間)에서 정도령이 나타나는데…”하며 한숨을 짓곤 하였으며, 또한 정도령이 나타나면 “늙지 않고 늘 청춘으로 건강하게 오래 사는 사회가 된다”는 말씀을 많이 듣고는 정도령에 대한 호기심이 마음 한편에 굳건히 자리하고 있었다.

  1988년 9월말 추석을 쇤 어느 날 수원역에서 부산행 열차를 타기 위해 차표를 사고 보니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다.

  시간을 보낼 겸 역 근처 「경기서점」에 들러 책을 대충 훑어보는데 저쪽에 『영생학』 책이 눈에 확 들어왔다.

  책제목이 너무 마음에 끌려 그 책을 사게 되었고, 부산역에 도착할 때까지 너무 재밌게 일독을 하였다.

  『영생학』책에는 사람이 죽는 원인이 피의 썩음에 있고, 썩은 피만 제거하면 병에 걸리지 않고 늙지 않는다는 내용과 마음먹은 대로 피가 변한다는 것, 그리고 예언서(격암유록)의 정도령 출현에 관한 내용 등을 소개한 것이 그 동안 본 어떠한 내용의 책보다 구체적이고 이해할 수 있도록 기록되어 있었다.

  또한 어려서부터 들었던 진짜 정도령이 출현했다는 것을 책을 통하여 알게 되었고 막연하게나마 살기 좋은 세상에서 죽지 않고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이 생겼다. 신기한 것은 『영생학』책을 읽은 날부터 잘 때에 방바닥에 안개 같은 것이 내 등을 늘 받쳐주었고 새털 같은 것이 이불이 되어 덮어줌으로써 공중에서 누워있는 것 같았고 괴롭고 불안한 마음이 사라지고 마치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편안하고 여유로운 마음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고향을 떠나 객지 판잣집에 라면상자를 깐 바닥에서 생활하기도 하고, 친척 집에서 신세를 지거나 자취하며 생활하다 보니, 따뜻한 방에서 편하게 사는 것이 어릴 적부터 그렇게 그리웠는데 마치 그것이 이루어진 듯 아주 편안하고 포근하여 나만의 새로운 세상을 살아가게 되었다. 편안하다 포근하다 행복하다는 표현을 이럴 때 하는구나 하며 마음 깊이 감사함을 느끼며 살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1년 동안 거의 매일 그 책을 읽게 되었고 표지 안에 있는 정도령님 존영을 바라보며 살았다.

  ◇  술고래가 술을 끊게 되다

  나는 초등학교 다니기 전부터 어른들로부터 술을 배웠다. 반농·반어촌에서 넉넉지 못한 집안에서 태어났기에 흉년이 들면 양식이 부족하므로 보리밥을 끓여 음식을 불려 먹기도 하였고, 술 찌꺼기를 끼니로 때우기도 하였고, 부모님의 뜻에 따라 일찌감치 객지생활을 하였다.

  아버지께서 경비로 근무하시는 인천의 어느 보세창고 공터에 합판으로 만들어진 숙소에서 지내면서 그 회사에 근무하는 어른들이 거의 매일 중국음식점에서 빼갈이라고 하는 술과 안주를 시켜 드시면서 장난삼아 내게 그 술을 먹여 일찌감치 술맛을 알고 자연스럽게 술을 배웠다. 그러다보니 고등학교 졸업하면서는 친구들과 어울려 더 술을 먹게 되었고, 결혼하고 30대 초반에 알코올 중독 증세가 나타났을 정도로 술에 젖어 살았다.

  그런데 『영생학』책 속에 간증담 내용을 보면 술, 담배를 자연스럽게 끊었다는 간증내용을 보고 고민을 하였다. 직장생활하면서 대인관계상 술과 담배는 필수기호품인데 술과 담배를 끊으면 대인관계에 문제가 생길 것이 두려웠고, 내 자신이 술을 입에 달고 살다보니 술을 끊었다는 것이 내게는 커다란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마음으로 ‘저는 이긴자이신 조희성님이 진짜 정도령님이라는 것을 의심치 않습니다.

  저도 살기 좋은 세상에서 살고 싶습니다. 그러나 저는 죄가 많아 정도령님 앞에 가기가 부끄럽습니다. 언젠가 저를 정도령님께 인도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정도령님께 기도를 하였다. 죄가 많이 있음을 자책하고 중간단계를 거쳐 정도령님께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단전 호흡하는 곳이나 마음 수련하는 곳을 찾아다니며 얼마동안 다른 곳을 다녔었다. 이렇게 술을 즐겨 마시면서도 정도령님 생각은 떠나지 않았다.

   ‘언젠가 내가 술을 끊고 정도령님이 계신 곳에 갈 수 있을 날이 오겠지’하고 막연하게 생각하였다. 그 무렵 거의 한 달 동안 비슷한 꿈이 여러 번 반복해서 꿔졌다. 하얀 두루마기를 입은 노인과 까만 두루마기를 입은 노인이 때로는 땅에서, 때로는 공중을 날면서 서로 칼싸움을 하였다. 나중에 하얀 옷을 입은 노인이 이겼다. 그 꿈을 꾼 후 내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술을 안 먹어도 괜찮겠다는 마음이 강하게 생겼던 것이다. 그런 마음의 변화가 온 것은 책을 읽은 지 약 6개월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제단에 와서 나중에 알고 보니 정도령님께서 나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시어 그런 꿈을 꾸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영생학』책을 구입하여 읽은 지 1년쯤 될 무렵인 1989년 추석(1989.9.15.) 쯤 작심을 하였다.

  내 일생 마지막으로 술을 먹고 정도령님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하고, 네 명의 처남에게 각각 양주 1병씩을 사라고 주문하였다. 3일간 처남들이 산 양주를 함께 먹고, ‘내 인생에서 술과는 담을 쌓았다. 음주세상에서 졸업했다’고 굳게 다짐을 하고 부산에 있는 집으로 왔다. 그 이후 나는 술좌석에 가게 되면 평생 먹을 술을 다 먹고 음주세상을 졸업했다며 양해를 구하곤 했다.*

김원찬(57세)/ 부산제단 책임승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