득도,성불,완성,영상

정원천사 2020. 3. 20. 08:05

추석 명절날 꼭 알아야 할 영의 법칙


 

  죽은 사람을 바라보면 죽은 사람의 영이 들어온다

설날이나 추석날 한국인들은 죽은 조상들을 생각하며 제사를 지내거나, 추도식을 올리면서 망자(亡者)를 그리워한다. 그때 죽은 사람들의 영이 활개를 치기 시작한다.승리제단 식구들은 사자귀신을 죽일 수 있는 영은 오직 이기신 하나님뿐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마귀를 박멸소탕하는 기도를 끊이지 않고 하여야 한다.

  설이나 추석과 같은 명절 연휴 때 유독 사람들이 많이 죽는다. 일반인들은 사고가 많이 나는 이유를 명절이기 때문에 교통량이 많은 것에 두고 있다. 물론 아무래도 교통량이 많으면 사고가 많이 일어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영의 세계에 무지한 사람들이 흔히 저지르는 잘못된 판단이다.

  ◇ 사람의 실체는 신이다

  명절날 사람이 많이 죽는 이유를 알려면 제일 먼저 사람의 실체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사람은 물질인가 신인가?  지면관계상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람은 신이다(자세한 내용은 승리진경, 새말씀 편 6장 참조). 성경도 사람을 신이라고 말하고 있다.

  즉 너희들은 신들이니 지존자의 아들들(시편 82:6)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신을 달리 말하면 영이다. 영은 생명이다. 생명은 피다. 사람은 부모의 피로 태어난다. 따라서 한 사람 속에는 모든 조상의 피가 들어있다. 피가 영이므로 사람은 영의 집합체가 된다. 한 사람 속에는 죽은 조상들의 영이 가득 차 있는 것이다.


미륵부처님에게는 금화(金花)가 핀다고 한 불경 말씀대로 금화가 조희성 선생 주변에 환하게 피었다
금화의 주인공 조희성 선생

  ◇ 바라보는 대로 바라보는 영이 들어온다

  앞에서 사람은 신이요 한 사람 속에는 죽은 조상들의 영이 가득 차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기본적인 사실 위에서 명절날 사람이 많이 죽는 이유를 알아보자. 바라보는 대로 바라보는 영이 들어오고, 생각하는 대로 생각하는 영이 들어온다는 영의 법칙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즉 죽은 사람을 생각하면 죽은 사람의 영이 들어온다. 또 죽은 사람의 사진을 바라보면 죽은 사람의 영이 들어온다.

  그게 뭐 어떻냐고 반문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이건 죽느냐 사느냐 하는 생사가 걸린 굉장히 중요한 영의 작용임에도 말이다. 사람의 죽음은 마귀의 영에게 하나님의 영이 소멸되는 현상이다. 다시 말하면 생명인 하나님의 영이 사망의 영에게 완전히 사로잡혀 소멸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죽은 자는 하나님의 영이 완전히 제로가 되어 오직 마귀의 영만 100% 있게 된다.

  ◇ 명절날 사자귀신이 날뛴다

  설날이나 추석날 한국인들은 죽은 조상들을 생각하며 제사를 지내거나, 추도식을 올리면서 망자(亡者)를 그리워한다. 그때 죽은 사람들의 영이 활개를 치기 시작한다. 죽은 사람들의 영에는 그 사람을 죽게 만든 사자귀신이 붙어있다. 그러므로 죽은 사람들을 생각하는 순간 그 사자귀신이 그 사람들 속으로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자귀신이 운전자로 하여금 헛것이 보이게 하거나 졸음을 일으켜 죽음으로 몰고 가게 된다. 명절날 들어온 사자귀신이 명절 당일 아무런 해코지를 하지 않았더라도 나중에 병마를 일으킨다든지 하여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간다. 사자귀신은 사람에게 가장 해가 되는 원수마귀인 것이다.

  ◇ 어떻게 명절을 보내야 좋은가

  그렇다면 명절날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세상 사람들은 명절날 사자귀신의 발동에 대하여 아무런 대책이 없다. 따라서 우리 승리제단 식구들은 사자귀신을 죽이는 기도를 열심히 해야 한다. 사자귀신을 죽일 수 있는 영은 오직 이기신 하나님뿐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마귀를 박멸소탕하는 기도를 끊이지 않고 하여야 한다.

  또한 명절날은 사자귀신이 사람을 죽이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날뛰는 때임을 인식하고 나들이를 삼가는 것이 좋다. 부득이 이기신 하나님을 믿지 않는 가족들과 명절 모임을 갖게 되는 경우에는 그들과 어울리되 마음 중심으로는 이기신 하나님만을 사모하면서 마음속으로 기도를 더욱 열심히 하여야 한다.

  이 길은 영생의 길이다. 현재의 생활풍속은 다 죽는 사람들이 만든 것이다. 그것을 따르면 죽음에 가까워질 것이다.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물고기처럼 현 시류를 거스르는 반대생활을 해야 영생이 보장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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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천사 2020. 3. 13. 10:39


 이기는 삶

절박함과 인내


세상은 머리 좋고, 교육받은 낙오자로 넘쳐난다
오직 인내와 끈기로 끝까지 해내는 사람이 성공한다

  만일 지금 성실하게 일하는 것밖에 내세울 것이 없다고 한탄하고 있다면 그 우직함이야말로 가장 감사해야 할 능력이라고 말하고 싶다. 지속의 힘, 지루한 일이라도 열심히 계속해나가는 힘이야말로 인생을 보다 가치 있게 만드는 진정한 능력이기 때문이다.

  그런 우직함이야말로 꿈꾸는 곳에 이르는 가장 빠른 길이 된다. 너무 빨리 급하게 서두르다 보면 가지 말아야 할 길로 들어서기도 하고, 처음에는 앞서가다 금방 지쳐버리기도 한다. 빨리 가는 것이 미덕처럼 여겨지는 사회이지만, 진정한 승리는 크고 원대한 목표를 갖고 우직하게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않으면서 우보만리(牛步萬里)로 끈기 있게 조금씩 나아가는 사람에게 돌아간다.  

   ‘최고가 되려면 최고를 만나게 하라’에서 할리우드 컨셉 디자이너, 스티브 정은 다음과 같이 역설하고 있다. 결핍이 나를 열정적으로 일하게 만들었다. 너무 가난해 제약이 너무 많았고, 기회가 충분히 채워지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내 몸에서 ‘해보고 싶다’, 이루고 싶다’라는 간절함이 넘쳐났다. 결핍이야말로 성장을 가져다주는 가장 센 동력이다.
  
또한 카이스트 정재승 교수는 “결핍은 욕망을 낳고 과잉은 거부를 낳는다”라고 말하며, 내과의사 폴 투르니에는 “역경이 없으면 이를 극복하는 창조력, 문제 해결 능력은 배양될 수가 없다”라고 하였으며,

  제네바 의대 앙드레 헤이널 교수는 “역경이나 부족, 박탈의 경험 등이 있어야 창조력이 길러질 수 있다”라고 주장한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나무에 가위질하는 하는 것은 나무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부모에게 야단맞지 않고 자란 아이는 좋은 사람이 될 수 없다. 겨울 추위가 심할수록 다가오는 봄의 나뭇잎은 한층 푸르다.

  이와 같이 사람도 역경에 단련되지 않고는 큰 인물이 될 수 없다”고 했다. 결핍을 극복하고 역경에 단련되기 위해서는 인내로써 끝까지 참고 견뎌야 한다. 재능으로도 안 된다. 위대한 재능을 가지고도 성공하지 못한 사람이 지천이기 때문이다. 천재성으로도 안 된다. 교육으로도 안 된다.

  세상은 머리 좋고, 교육받은 낙오자로 넘쳐난다. 오직 인내와 끈기로 끝까지 해내는 사람이 성공한다. 그러므로 뭔가 잘 안된다면 자신이 천재가 아니라고, 교육을 적게 받았다고 자책할 것이 아니라, 절박함과 인내가 부족한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어떤 사람이든 추위, 더위, 배고픔, 목마름을 이기지 못하고, 불쾌한 일을 참고 견디는 힘이 없다면, 그는 결코 인생의 승리자가 될 수 없다.

  그런 사람은 결코 빛나는 명성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인내는 정신의 숨겨진 보배이다. 그것을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인 것이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불행이나 빈곤, 심지어 질병까지도 필요한 것이다. 이런 것들이 없다면 인간은 곧 오만해지기 때문이다.

  많은 경험을 가진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인생에 있어서 정말로 견디기 힘든 것은 나쁜 날씨의 연속이 아니라 오히려 구름 없는 맑은 날씨의 연속이라고 한다. 성공의 열쇠는 좋은 환경과 조건이 아니라 바로 절박함과 인내인 것이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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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천사 2020. 3. 6. 08:36

하나님(부처님) 되는 첫째 수행법


예 배


    ◇ 이슬성신형 인간으로의 변화

  승리제단의 예배란 무엇일까? 비유하자면, 불사영생에 이르기 위한 필수자격인 이슬성신형 인간, 아니 이슬성신형 의인이라는 면류관을 얻기 위한 마라톤이다.생명을 유지하는 동안 송충이는 솔잎, 사람은 음식을 먹고 산다. 그렇지만 이들은 반드시 죽는다. 그렇다면 ‘나’라는 주체의식인 자존심에서 비롯된 오욕칠정을 다 이겨낸 극기승자, 성인 또는 의인들의 주식은 무엇일까? 바로 감로해인, 이슬성신이다.

  선악과를 먹기 이전 영생을 누릴 때 항상 품었던 마음의 양식인 성경에서 말하는 영적인 생명과일이다.오늘날 인간 세상에는 이미 일일일식(一日一食), 오후불식(午後不食), 간헐적 단식 등 최소한의 식량으로 남들보다 건강하게 장수의 삶을 누리는 수행자나 보통 사람들이 상당수 있다.

  그러나 50보 100보, 흥청망청 살아가는 타락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수행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도 죽음을 숙명으로 받아들인다. 입으로 음식을 먹고 소화를 시켜내야만 하는, 썩을 양식을 조금이라도 먹어야만 생명을 보존할 수 있는 신체기관을 가진 인간의 몸으로는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결론이다. 음식을 먹지 않고 살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이슬성신형 인간이다.

  인간이라는 표현을 빌었지만 그는 음식으로 에너지를 보충하며 시한부 생명을 살다 죽음을 맞는 보통의 인간이 아닌 죽음의 한계를 이겨 낸 의인이다. 그는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식물이나 동물을 해하지 않고 감로 이슬성신만으로 홀로 독립해서 스스로 존재할 수 있는 존엄성을 가진 하나님이요 홀로 평화로운 지극한 평화주의자이다. 그의 마음과 오장육부는 음식을 받아들일 수 없는 습성과 구조에서 벗어나 있다. 굳이 이해를 돕기 위해서 유교나 불교 또는 기독교의 용어를 빌자면 구세진인 정도령, 생미륵불, 구세주라는 표현으로 대체될 수 있다.

    ◇ 예배는 마라톤이다

  승리제단 예배는 의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의 꿈을 현실에서 생생하게 이루어 주는 온 우주를 통틀어 단 하나밖에 없는 등용문이다. 성스러운 예배를 굳이 마라톤 전투에 비유하는 이유가 있다. 예배는 영적인 아마겟돈 전쟁이다. BC 490년 있었던 마라톤 전투는 소수의 병력으로도 전술이 뛰어나면 승리할 수 있다는 사례를 보여준 역사상 최초의 전쟁이다.

  그리스의 용사 페이디피데스가 마라톤 전장에서 아테네까지 42.195 km를 달려 승리의 소식을 알리고 절명하였다하여, 마라톤 경주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생긴 것이다. 유사 이래 최초의 이슬성신형 의인이신 이긴자 구세주께서 당신께서 영적인 아마겟돈 전쟁에서 승리하며 획득한 100% 승리가 보장된 전술을 가지고 직접 설교하신다는 점, 그리고 예배를 통해서 이슬성신형 인간으로의 변화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시작부터 끝까지 단 일초도 멈추지 않고 나라는 자존심의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전력질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라톤을 시작하기 전 30분 정도 워밍업으로 몸을 풀 듯, 온전히 예배에 몰입하기 위해서는 30분 전부터 준비찬송을 해야 한다. 마라톤 경주에서 중간에 들어오거나 빠져나가면 자연적으로 경주자로서의 자격을 박탈당하듯이 준비찬송에서부터 마지막 찬송이 끝나는 순간까지 단 일초도 정신집중과 정성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 소크라테스의 대화법

  승리제단 예배의 이긴자 구세주 말씀은 유사 이래 처음 있는 참 진리요 영생의 말씀이다. 옳고 곧은 정도의 진리는 곧 생명의 언어이다. 말씀의 시작과 끝, 원인과 결과가 정확하게 일치한다. 진리를 가장한 죽음 너머의 가르침이나 대화 또는 교리는 요행히 현재의 죽음은 면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죽음을 재촉하는 시간낭비에 불과하다.

  최고의 지혜를 가진 이긴자 구세주의 설교는 이미 그 학습효과가 검증된 소크라테스의 대화법 형식으로 진행된다. 묻고 답하는 식이다. 잠시라도 대화에 집중하지 않으면 물음에 맞는 대답을 할 수 없다. 언제라도 크게 물음에 대답할 수 있도록 항상 아랫배에 힘을 주고 당신의 말씀에 집중해야 한다. 스승의 물음에 답하지 않는 거만한 제자라면 그는 진리를 배울 자격조차 없는 학습부진아에 불과하다.

    ◇ 불광불급(不狂不及)

  예배를 인도하시는 이긴자 구세주는 언제나 확신에 찬 최고 목소리의 말씀으로 예배가 끝나는 순간까지 당신의 모든 에너지를 쏟으시는 모습이다. 만약 성도님들이 100% 예배에 미쳐서 몰입하게 되면 당신께서 말씀하시는 강도에 맞추어서 대답하게 되어 당신께서 주시고자 하는 은혜에 그대로 상달될 수 있다. 당신께서 은혜를 주시고자 하는 위치에 은혜를 갈망하는 내 혀가 닿아 있지 않으면 절대 은혜의 단맛을 볼 수 없다.

  한 번 은혜 맛을 본 사람은 손바닥과 목구멍 그리고 무릎이 터져 피가 나더라도 그 다가감의 광적인 노력을 멈출 수 없다. 승리제단 예배는 정직하다. 정성을 기울인 만큼 변화를 입게 되어 있다. 일주일에 한두 번 예배 보는 사람과 하루에 두 번 예배 보는 사람과 그 변화의 정도가 다르고, 무성의하게 예배보거나 예배 중간에 들락날락 하는 사람과 처음부터 예배 마칠 때까지 전력 집중해서 예배에 임하는 사람은 그 변화의 정도가 하늘과 땅 차이다.

  반드시 그 변화의 정도와 결과를 정직하게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때가 온다. 언젠가 예배 찬송을 인도하시면서 당신을 따라 박수찬송 하느라 숨을 헐떡이는 성도를 향해 단상에서 흐뭇하게 웃으시면서 하신 말씀이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다. “그렇게 숨이 가뻐? 예배는 저렇게 봐야 은혜가 돼!”승리제단 예배는 평등하다. 그 성스러운 경주에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 인종과 종교의 구분 없이 인간이면 누구나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다. 어떠한 변칙이나 특혜도 있을 수 없다. 누구나 예배에 참석해서 전심전력을 기울이면 속세의 오욕칠정을 벗어난 이슬성신형 인간으로 출세할 수 있다.

    ◇ 예배의 긴장을 24시간 지속하라

  예배는 곧 이슬성신형 인간으로 완성되기 위한 마라톤이다. 힘들다고 누가 대신 달려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 누구의 손을 잡고 도움도 받아서도 안 된다. 승리제단=예배=이긴자 구세주와 1: 1, 이것은 절대 공식이다. 승리제단에 나오는 목적이 의인되기 위한 것이고, 세계 만민을 구원하기 위한 구세주 역할을 하기 위해서라면 예배시간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그리고 예배시간에 가졌던 백척간두에 선 것 같은 각오와 긴장감을 24시간 지속할 수 있도록 예배 순간순간 기울인 정성을 기억하고, 그 은혜를 간직하기 위해 항상 아랫배에 힘을 주고 생활해야 한다. 그래야만 세상의 잡념에 오염되어 몸의 기운이 떨어지려는 순간 생명의 진액을 재충전하여 그 은혜의 기운을 항상 유지할 수 있다.

  진인사대천명 아닌가. 열심히 예배 보라! 그리고 내 마음과 몸의 변화에 주목하라. 어느 날 문득 이슬성신 외에는 내 식성에 맞지 않는 때가 오리라. 그 변화의 순간까지 감동받고, 희생하고, 봉사하며, 침묵하라. 놀라운 말씀에 감동 받는 당신, 마침내 엄청난 변화에 감탄하게 될 것이다.

  오늘도 성전에 임하기 위해서 핸드크림을 바르는 순간 뜨거운 피가 성도들의 심장을 두드리고, 얼굴엔 자신만만한 웃음꽃이 핀다. 그 은혜의 맛을 아는 자! 감동과 변화의 예배 시간이 가슴 설레게 기다려진다.*

안병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