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령님 일대기

정원천사 2020. 4. 8. 10:50

조희성 님의 간증담

 

머리에는 제왕상, 가슴에는 북두칠성, 손에는 임금 왕

 

   외할아버지는 임금 왕자의 손금과 북두칠성 점과 제왕상의 골상으로
인하여 혹여 해를 당할까 봐 애써 숨기게 하셨다  

예로부터 비범한 인물들에게는 보통 사람과는 다른 몸의 표상을 가지고 태어난 사례가 많다. 흔히 텔레비전 역사극을 보면 극중 위대한 인물에게서는 반드시 이런 부분에 대해 흥미롭게 다루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다만 현대 의학계에서는 이러한 것을 단지 사람이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라고 보지만, 동양 역학에서는 관상과 사주와 손금 같은 것을 그냥 소홀하게 넘겨보지 않는다.

  이러한 표상들은 한 인물의 정신세계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감정과 운명까지 내포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각도에서 조희성님의 태어날 때부터 몸에 지닌 여러 표상들이 결코 예사롭지 않는 인물임을 단적으로 증명한다. 그 몸에 지닌 흥미로운 표상과 일화와 함께 그분이 펼쳐나갈 우주적 재창조 역사와 인간의 영생의 역사에 큰 획을 긋는 위대한 생애의 예견을 음미해보자.              -편집자

   어렸을 때부터 ‘사람이 하나님(人乃天)’이라는 것을 천도교를 믿는 외할아버지께로부터 누누히 듣고 자라왔다. 이사람은 김포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외갓집은 부평 ‘덴말’이라는 가까운 동네에 있었다. 어릴 적에 외갓집에 자주 가면 외할아버지께서는 항상 어린 것을 업으시거나 손을 잡으시고 장능산 지름길 다니시기를 좋아하셨으며, 재미있는 옛날이야기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교훈이 될 만한 말씀을 많이 들려주셨다. 어린 이사람에게 강조하여 말씀하시기를 늘 “사람이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절대로 욕을 먹지를 말아야 되며, 사람에게 잘 해야 한다. 어느 집에 가더라도 신세를 지지 말고 엽전 한 닢이라도 놓고 나와야 한다.”고 하시던 말씀은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당시에는 일제 식민치하 시절로서 말할 수 없이 생활이 어려운 시대였다.

  외할머니께서는 곤궁한 생계 때문에 “이 영감쟁이 매일 책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먹을 것이 나오느냐?”고 성화를 부리셔도 외할아버지께서는 묵묵히 책을 보며 언행을 흐트러뜨리지 않으신 것을 지켜보았다. 옛 어르신들은 참으로 고매한 인품을 가지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외할아버지께서는 배움에 대한 열정이 매우 크신 나머지 책을 늘 마차에 싣고 다니며 보실 정도였다.

  그래서 집 안에는 수많은 서적을 보유하고 계셨다. 당시 학문의 경지 또한 상당히 깊으셨고, 신실한 신앙가이셨다. 마을에서 드물게 미국유학을 갔다 오신 분이기도 하였다. 외할아버지께서 천도교인이셨다는 것은 후에 가서야 알게 되었다. 많은 이웃으로부터 존경과 칭송을 받으며 지내시던 외할아버지는 모처럼 다니러 온 외손자를 애지중지 같이 다니시며 때론 업어 주시곤 했다.

  해질 무렵 집에 돌아오면 당신 잡수시도록 마련된 귀한 석청(石淸: 꿀)을 선반에서 꺼내어 어린 것에게 자주 먹여 주시곤 하셨다. 그러시면서 “우리 희성(熙星)이가 장차 큰일을 할 제왕상의 골상을 지녔어. 손에는 임금 왕자의 손금이 있고, 가슴에는 북두칠성이 있으니 장차 큰 인물이 될 것이 틀림없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시면서 “이 손금을 누구에게도 보여서는 안 되며 심지어 엄마에게도 보이지 말라.”고 강한 어조로 늘 당부를 하셨다. 당신 손자의 앞날을 내다보듯 각별히 사랑해 주시고 귀여워해 주셨다.

  우스운 얘기지만, 외할아버지는 어린 이사람에게 손금을 남에게 보이지 못하게 할 요량으로 “사내는 주먹을 꼭 쥐고 다녀야 된다.”고 말씀하시며 어려서부터 주먹을 꼭 쥐고 다니게 하셨다.

  그래서 젊은 학창시절에는 “주먹 쥐고 다니는 사나이”로 통하기도 했다. 또한 더운 여름철에는 어린 것에게 긴 러닝셔츠를 꼭 입히셨는데, 가슴에 북두칠성의 점을 가리기 위해서였다.

  또 ‘사내대장부는 모자를 쓰고 다니는 것’이라고 하여 모자를 항상 쓰게 하셨다. 그때만 해도 뭘 모르던 아이인지라 더울 때면 할아버지 몰래 러닝셔츠를 벗어 던지고 알몸으로 돌아다녔었다.

  그러면 살짝 숨어계시던 할아버지는 얼른 달려오셔서 “이 놈아, 할아버지가 러닝셔츠 입고 다니라고 그랬지.” 하시며 긴 곰방대로 머리를 때리곤 하셨다. 외할아버지는 이사람이 몸에 가지고 있는 증표로 인하여 혹여 해를 당할까 봐 이처럼 손금과 북두칠성 점과 머리에 새겨져 있는 제왕상을 애써 숨기게 하셨던 것이다.

  옛날부터 큰 인물이 될 만한 사람은 반드시 죽임을 당하는 것을 염두에 두신 할아버지의 애정의 손길임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여기에 얽힌 한 일화가 있는데, 육군 장교시절 논산 훈련소에서 근무하던 때였다. 그 때, 부천에 있는 소사 신앙촌까지 영모님을 뵙기 위해서 올라갔다가 내려오곤 하였다.

  그런데 무더운 여름 어느 날, 논산역 앞에서 날씨가 더워서 모자를 벗고 나오는데 갓 쓴 웬 할아버지가 넓죽 세배 절을 하는 것이었다. 이사람은 젊은 청년인데 갑자기 하얀 수염을 기른 할아버지가 절을 하니 너무 당황한 나머지 얼른 그 자리를 피해서 달아난 일이 있었다.

  그런데 또 다른 날에 전과는 다른 할아버지가 또 갑자기 이사람 앞에서 세배 절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이것이 한 번도 아니고 또 그러는 고로 무슨 영문인지 알려고 그 할아버지에게 물어보았다. “할아버지 왜 이 젊은 것에게 창피하게 세배 절을 하시는 거예요.

  지나다니는 사람이 절 이상하게 보잖아요!” 그랬더니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기를 “젊은이! 다른 것이 아니고 젊은이의 관상을 보니 앞으로 제왕이 될 제왕상을 지녔지 않소. 그래서 이 영광스럽고 귀한 만남을 절로써 예를 갖추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시었던 경험이 있었던 것이다.*  


 
 
 

정도령님 일대기

정원천사 2020. 3. 26. 11:08

조희성 님의 간증담

 

마음 먹으면 기필코 이루어냈다

 

   누구나 어린 시절은 개구쟁이며 자기중심적 성향이 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느 아이와 남달리 지혜로운 면과 일찍이 부모님의 고생과 타인의 고통을 가슴 아프게 여기는 효성심이 유별났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궂은 일, 힘든 일을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고 자발적으로 나서서 희생하는 조희성 님의 성품이 특별했다.

  어릴 적부터 희생적인 마음, 타인의 아픔을 나의 아픔처럼 여기는 성품은 선한 양심의 피가 강하게 흐르지 않고서는 생각할 수 없다. 나무도 어린 떡잎 때부터 그 나무가 제대로 자랄지를 가늠하듯이, 한 인간의 인물됨도 어릴 적 성격과 품행의 결과가 그 사람의 앞날에 중요하게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다. 조희성님이 왜 위대한 이긴자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가늠하게 하는 어린 시절을 감상해 보도록 하자.

  ◇ 초등학생으로 모 품앗이를 하다

  집에서 짓는 농사는 모두 소작이었다. 아버지라는 분은 가정의 일과 어려움은 아랑곳 않고, 항상 이웃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쌀을 갖다 주는 등 언제든 먼저 남을 돕기를 마다하지 않는 분이셨다. 그러다보니 처음에는 40여 두락이 되었던 것이 20여 두락으로 농지가 줄어들게 되어 생활이 더욱 궁핍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자식들이 많은 고로 될 수 있는 대로 가산이 줄어들지 않게 하시려고 추수가 끝나면 아버지 몰래 벼 가마니를 감추시는 등 살림 걱정에 무척 애를 쓰셨다. 어머니께서 농사일을 비롯한 자녀 부양과 가사 전반에 걸친 일에 몹시 고생을 하심으로 어린 나이에도 어머니가 너무나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초등학교 시절부터 농번기에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모 품앗이를 다니게 되었다.

  처음에는 무슨 초등학생이 어른을 대신하여 모를 심겠냐고 강하게 거부하셨으나, 포기하지 않고 “저도 해보고 싶어서 그래요. 한 번만 시켜봐 주세요”하고 자꾸 조르니 마지못해 해보라고 허락하셨다. 그렇게 시작되었던 것이다. 어머니 아버지 대신 모를 심다 보면 같이 일하는 어른들이 “야! 희성이, 모 참 잘 낸다.” 하며 칭찬해 주시니 기분이 정말 좋았었다.

  그러면서 아픈 허리를 세우고 쉬면서 점점 모 심는 면적을 넓혀 주는 어른들의 속내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어른들이 넓혀 주는 면적을 다 심기도 전에 못줄이 넘어가는 고로 허리 한 번 제대로 펴보지 못하고 계속해서 모를 심어야만 했다. 어린 나이에 허리가 끊어져 나가는 것 같고, 팔 다리가 아프며, 고사리 같은 손끝이 닳아서 통증이 오고 피가 날 정도가 되었다.

  해가 지고 어두워질 때까지 그 고통을 참고 견디었다가 기어코 일을 끝내고 집에 오곤 하였다. 매일같이 계속 반복하여 모내기철이 끝날 무렵쯤 되어서는 온몸이 춥고 떨려오는 말라리아 병에 걸려 밤새도록 앓고 밤을 지새우다가 이튿날이면 또 아픈 몸을 이끌고 모를 내러 간 적도 있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일을 자원하였던 것이다.

  부모님께서 “아픈데 무슨 일을 하느냐”하시며 만류를 하셔도, 내가 이렇게 힘든데 부모님은 오죽 하시겠는가 하는 생각을 가지고 내가 고통을 당하는 만큼 부모님이 쉴 수 있을 것이라 여겼던 것이다. 그래서 농번기 방학동안 모내기 일을 계속하였던 것이다.

  ◇ 나무를 해서 읍내에 팔아오다

  
또한 겨울철이면 산에 가서 나무를 하여 집 뜰 안에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또 그 장작을 읍내에 내다 팔아 가계에 보탬이 되게 하였다.

  장작을 힘에 겨울 정도로 짊어지고, 눈이 와서 무릎까지 빠지는 추운 날씨 속에서도 2km가 넘는 눈길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읍내에까지 가서 팔아 오곤 하였다.

  그 추운 눈 덮인 길을 끙끙거리며 고통을 참고 견디며 중간쯤 가다 보면 미투리 짚신을 신은 발이 온통 눈에 젖고 발이 시려 깨어져 나가는 것 같고, 손은 손대로 시려 손끝을 칼로 베어내는 듯 극심한 고통이 가해 오는 그걸 참고 한 것이었다.

  무거운 짐을 내려 좀 쉬어야겠는데, 온통 눈으로 덮인 상태라 피할 장소도, 쉴 곳도 없어 이중 삼중으로 더해지는 고통에 엉엉 울면서도 기어이 읍에까지 가서 장작을 팔아오곤 했던 것이다.

  보통 아이들 같으면 그렇게 혼이 나면 그 다음날에는 안 가든지, 만약 가더라도 좀 가볍게 짊어지고 가겠지만, 그렇게 혼이 나고도 여전히 전날의 양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게 힘에 겹도록 짊어지고 또 울면서 가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항상 극한에 달하는 고생을 하며 고통을 참고 견디는 시련과 역경을 견디어 나갔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스스로 그렇게 하였다. 산에 가서 나무를 해도 남보다 많이 해야 했고, 일을 해도 다른 사람보다는 더 많이 더 열심히 하였으며, 짐을 짊어져도 언제나 힘에 겨울 정도로 짊어지고 끙끙거리며 오금을 제대로 옮기지 못할 정도로 지고 다니는 습성이 늘 몸에 배어있었던 것이다.

  기꺼히 스스로 자신을 짓이기는 생활을 했던 것이다. 비가 온다고 해서 나무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번 목표를 세우면 꾸준하게 했다. 잠시라도 집에서 드러누워 쉬거나 놀지 않는 성품이었다.

  ◇ 공부에 의욕을 불태우다

  어린 시절, 동네 서당에 다니며 한학을 배울 때는 머리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어서 배운 것을 금방 잊어버려 훈장님에게 매를 맞는 일도 많이 있었다. 하여간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는 배움에 대한 촉매제가 될 만한 동기부여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중학교 들어가면서부터는 공부도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마음이 강하게 생겨났다. 처음에는 공부가 잘 되지 않았다.

  그러나 공부를 잘 해야겠다는 강한 의욕이 생기고 나서부터는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면 저녁 6시에 일찍 잠을 자면서 어머니에게 9시에 꼭 깨워달라고 하여 하루 3시간씩 자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저녁 9시부터 시작하여 밤을 새워 공부를 하였던 것이다. 잠이 오면 나가서 찬물에 목욕을 하거나 뒷동산에 올라갔다 내려오는 등 기를 쓰고 공부를 하므로 코피도 부지기수로 흘렸다.

 한번 공부에 빠져들기 시작하니 학교 가는 시간에도 영어 단어 암기 공부를 했다. 학교에 가려면 한참을 가야 하는데, 길을 가면서 단어 카드를  한 손에 쥐고 외운 것을 다른 손으로 옮기면서 노력에 노력을 하였던 것이다. 모든 과목을 그처럼 공부를 하였다. 최종에는 영어사전을 한 장 한 장 뜯으면서 암기를 하여 기어이 사전을 통째로 다 외웠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학교에서 수석을 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어떤 일이든지 마음먹으면 반드시 해냈다.*


 
 
 

정도령님 일대기

정원천사 2020. 3. 17. 13:44

조희성 선생의 간증담

 

삶에 대한 희망을 품으니 앞길이 열리다


 

겉으로 볼 때, 상당히 주변 여건이 좋아졌다.  그러나 열아홉 살 때부터 행동은 물론 마음으로 죄를 짓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기를 쓰는 투쟁의생활을 시작하였다.

  “마음으로나 눈길로나 음란죄를 짓지 않으려면 여자를 뱀같이 보라”는 박재동 목사의 말에 따라 정욕을 이기려고 자신에게 욕을 퍼붓기도 하고, 숨이 끊어질 때까지 호흡을 멈추는 등, 털끝만한 죄도 짓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쳤다.

  ◇ 서울 시내 이발소에 비누를 납품하다

  자살을 경험한 후, 현실의 삶에 전보다 더 의욕을 불태웠다. 열심히 공부도 하고 장사도 힘을 다해 매달렸다.그렇게 삶에 대한 희망을 품으면서 물건을 들고 여기 저기 팔러 다니는데, 어떤 아저씨가 조언해주기를 “이발소에는 비누를 많이 사용하니까 이발소에 한 번 가 보라.”고 하였다.

  그래서 이발소에 찾아 갔더니 이 사람이 고학하는 학생임을 측은하게 여기시고 비누를 팔아 주셨다. 게다가 고맙게도 이용사협회의 간부로 있는 사람을 주선시켜줘서 서울 시내 이발소에 비누를 납품할 수 있게 해주었다.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장사를 하니 좀 더 좋은 조건과 생활환경에서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제법 돈도 많이 벌게 되었고, 얼마 후에는 흑석동에 방을 얻을 정도가 되었다.

  외삼촌댁에 있던 형님을 불러와 같이 공부하게 되었고, 또한 고향 김포에서 여동생이 올라와 같이 살면서 밥도 지어주게 되었다.

  또 당시로서는 상당히 거금인 3만원을 삼보주식회사라는 회사에 투자하여 주주가 되기도 하였다.

  이 회사는 대만에서 설탕을 수입하여 국내에 유통시키는 무역회사였다. 그런데 그만 설탕을 싣고 오던 배가 침몰하여 주식이 휴지 조각이 되었으며, 이 회사는 6.25전쟁 때 없어졌다.

 

  ◇ 모든 상황이 순조롭게 풀리고 좋아지는 것 같았다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되고 학교에서는 항상 모범생이자 우등생이었다. 그러다보니 친구들에게 인기도 많아 친구들이 서로 이 사람을 친구를 삼으려고 할 정도였다. 이 사람은 성격상 공부를 해도 그냥 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교과서를 모두 외워 버렸다.

  수업시간에 집중하여 듣기만 하고 집에 와서는 그것을 공책에 필기하였다. 그리고 틈만 나면 암기장을 만들어 외우면서 공부하였다. 오직 장사와 학업에만 열중하여 잡념이 없을 때인지라, 수업 시간에 고도의 집중을 발휘해서 설명을 들었다. 집에 와서는 핏속에 녹음이 되었던 것을 재생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 죄 짓지 않으려 애쓰는 사춘기 시절

  겉으로 볼 때, 상당히 주변 여건이 좋아지고 생활하기에 큰 불편함이 없었다. 하지만 이 사람은 열아홉 살 때부터 행동은 물론 마음으로 죄를 짓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기를 쓰는 생활을 시작하였던 것이다. 성경 말씀대로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였다.

  사춘기 시절, 왠지 여자 치맛자락만 봐도 이상한 생각이 들어오는 고로 치맛자락을 쳐다보지 않으려고 땅만 쳐다보고 다녔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평상시와 같이 서둘러서 땅을 쳐다보고 학교를 가는데 그만 전봇대를 사정없이 들이받아 정신이 한참 동안 가물가물한 적도 있었다. 당시 흑석동에서 종로로 학교를 다녔는데, 노량진에서 전차를 타려고 급하게 앞도 제대로 안 보고 가다가 그랬다.

  한창 젊은 시절인지라 여자에 대한 묘한 감정이 강하게 따라다닐 때였다. 당시 기성 교회 부흥회에 열성적으로 참석하였는데, 그 때 감리교 부흥 강사인 박재봉 목사가 하는 말이 “마음으로나 눈길로나 음란죄를 짓지 않으려면 여자를 뱀같이 보라”고 하였다. 물론, 여자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그때부터 여자를 뱀같이 보면서 그 감정을 이기려고 애를 썼다.

  그리하여 전차에서도 옆 좌석에 여자가 앉으면 기겁을 하고 벌떡 일어나 다른 곳으로 피하곤 하였다. 그러면 어떤 짓궂은 여자는 이 사람을 따라와서 “나 때문에 학생이 일어났나 본데 가서 앉으라”고 하면 이 사람은 “나는 서서 가는 게 더 좋아요.” 하는 식으로 대답하거나 아예 대꾸도 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순진하고, 어떻게 보면 바보스럽기까지 할 정도로 고지식했다.

  혈기 왕성한 젊은 시절 때는 정욕이 올라오면 ‘이 개 같은 마귀새끼!’ 하고 자신에게 욕을 퍼붓기도 하고, 그래도 그러면 호흡을 멈추고 질식하여 죽을 정도가 되도록 몰아붙이면 정욕이 사라지는 극단적인 방법까지 동원하여 죄를 짓지 않으려는 체험도 했다.

  그래도 정욕이 올라오면 미친 사람처럼 마구 달리기를 하거나, 심한 노동을 가하며 자신을 짓이기는 생활을 하니 정욕이 사그라지는 것이었다. 하나님을 신앙하는 사람으로서 털끝만큼 만한 죄도 짓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쳤다. 나쁜 감정과 욕망에 사로잡히는 것을 한순간도 멀리하려고 악착같이 애를 쓰고 기를 썼던 것이다.*